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69
269
뭐부터 하지?
“가자. 진우 형이 차 대기해 놓겠대.”
“기자들 아직 있으려나?”
“있겠지.”
멤버들을 따라 이동하던 이안이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주위를 맴돌면서 시끄럽게 해야 할 녀석이 사라졌는데도 허전함이 없었다. 아마 그의 실체를 마주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이안이 출국 언제야?”
“다음 주 금요일.”
“아, 회사 위치 바뀌어서 아쉽다. 출국 전에 김치찌개 진하게 땡겨야 하는데.”
“압구정? 거기 진짜 맛있는데 언제 한번 가자.”
멤버들을 보니 긴장이 풀린 이안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뭘 거기까지 가. 주영이한테 해 달라고 하면 되는걸.”
“주영아!”
“아 꺼져.”
김주영은 양옆에 달라붙는 조태웅과 박진혁을 피해 이주혁의 옆으로 섰다.
“나왔다!”
병원을 나오자마자 빠르게 터지는 플래시에 훈훈한 분위기는 어디 가고 고개를 푹 숙인 아위는 빠르게 밴 안으로 들어갔다.
“징하다 진짜.”
“이게 다 우리가 너무 슈퍼스타라서 그래.”
“아니 근데 병원까지 따라오는 거 에바 아니야?”
멤버들 전부 탄 것을 확인한 김명진은 한결 밝아진 멤버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웃었다.
“얘들아, 얘기는 잘하고 왔어? 상태는 어떤 거 같아?”
“괜찮은 거 같아요. 형도 같이 들어가지.”
“나까지 왜 들어가. 괜히 복잡하게.”
다시 앞을 본 김명진이 작게 숨을 뱉었다. 박세온의 일이 있고 나서 며칠간 아위 멤버들의 분위기가 말도 아니었다. 만약 박세온의 상황이 최악까지 갔었더라면… 김명진이 소름 돋아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었다.
한참을 뭔가 생각하던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세온이 언제 퇴원한대? 얘기 들은 거 있어?”
“다음 주 화요일이랬나? 듣기로는 상태가 진짜 좋대. 기적이라는 게 진짜 있나 봐.”
김 현의 말에 이안이 어색하게 웃었다. 있긴 있지. 내가 대가를 치렀지만.
이안도 저승사자에게서 뭐 하나 얻으려고 배짱을 부린 거지, 멀쩡한 박세온을 보면 막상 그 대가가 아쉽지는 않았다.
“근데 그건 왜 물어봐?”
“아니, 나 출국하기 전에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해서. 같이 밥 먹은 지 오래됐잖아.”
“그거 좋네.”
이안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출국하기 전에 박세온을 만날 시간은 충분했다. 양인준이 어떻게 그를 꿰었는지 자세한 얘기를 들어 봐야 했다.
‘사실 물어볼 것도 없지만.’
상황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뭔들 못할까. 그래도 정지수가 마음을 먹어서 다행이지.
이안이 앞으로 할 일은 정지수를 도와 ST엔터를 탈탈 터는 것이고 점점 폭주하는 양인준을 막아야 했다.
‘할 일이 많네.’
* * *
“올라가게?”
“나 머리가 아파서 좀….”
숙소에 도착해 방에 들어온 이안은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저승사자가 이안의 이마에 댔던 메모리 카드, 진의 기억이 흡수된 것이다. 그 때문에 머리에 열이 올랐다.
‘이제 뭐부터 하지?’
다행인 건 아직 이 시점의 양인준은 세를 불리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이안은 진의 기억을 뒤적였다.
‘일단 양인준을 견제할 사람이 필요해.’
세상에는 양인준 같은 악질 기자가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을 보도할 것을 가슴에 새기는 일명 참 기자도 있었다.
결국, 양인준이 직접 손을 쓸 만큼 유능했던 한 사람과 버티지 못하고 외국으로 도피해 버렸지만 그래도 타국에서 사회의 부조리함을 꾸준히 보도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둘을 찾아야 했다.
기억을 더 뒤져 보니 다행히 양인준이 그들을 뒷조사한 기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정보대로라면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얼추 됐고.’
양인준이 간과한 게 있다면 그를 대체할 수단은 어디든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인준도 그걸 알고 있어서 더욱 인맥 다지기에 신경 쓰는 것이다.
‘이제 양인준에게 연결된 끈을 하나씩 잘라 내야 해. 예를 들면 청화 그룹이라든가….’
지금이야 스폰서 연결책이라는 작은 끈만 연결해 둔 상태라 빠르게 끊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 큰 기업은 이미지를 신경 쓰니까.
베개에 얼굴을 묻은 이안은 마치 잠에 빠진 듯 미동도 없었지만, 머리는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잠깐, 내년에 총선이 있잖아.’
22대 국회의원 선거. 어쩌면 판도를 아예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안은 진의 정보를 더 살펴봤다. 그래도 경력을 허투루 먹은 게 아닌지 유용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었다.
‘얼추 판은 짠 거 같은데….’
벌떡 일어난 이안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형. 바빠요?”
* * *
“자, 니가 부탁했던 연습생 시간표.”
“고마워요.”
양인준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이안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었다. 바로 ‘아메리칸 갓 아이돌’ 말이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
“글쎄요….”
“컨셉 잡는다고 하지 않았어? 아직 못 정한 거야?”
“네, 애매해서… 어떻게 하지? 좋은 생각 있어요, 형?”
나탈리 벨과 이안 빼고는 전 시즌을 함께 했던 심사위원이었다.
그중 카이저 피셔는 특유의 냉랭한 표정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독설로 인기를 끌었다.
그를 제외한 심사위원은 온화하고 긍정적이며 카이저 피셔의 말을 듣고 눈물을 쏟는 참가자를 감싸 주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다른 심사위원은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있었다.
‘카이저가 노선을 잘 잡은 거지.’
카이저 피셔가 프로그램 시청률을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극적인 건 잘 팔린다.
‘슬슬 캐릭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는데….’
해마다 발전하는 그의 독설은 유행어가 되어 어록이 생길 정도였고, 시즌이 계속되면서 이런 노선이 질릴 만할 때쯤 되면 늘 독설만 일삼던 그가 성질을 죽이고 어울리지 않게 따뜻한 말을 하면서 참가자를 격려하면서 큰 화제성을 이끌었다. 나중에는 그가 인정하는 참가자는 큰 주목을 받을 정도였다.
“글쎄…. 난 니가 굳이 컨셉 같은 거 안 잡아도 잘할 거 같거든.”
“그래요?”
“어, 평소처럼 해. 너 우상유니 때 잘했잖아. 그때는 경력도 얼마 없을 때였는데.”
“에이, 그때는 그냥 노오력하라 이거밖에 안 했잖아요.”
이안은 우상유니의 반응을 직접 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팬들이 우리 이안이는 누구 가르치는 것도 잘하고, 천재고, 안목도 좋다고 띄워 주는 것이 어색해서였던 게 컸다.
“빈말이 아니라 너 그때도 반응 괜찮았어. 잘했고.”
“그런가?”
김명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갓아의 촬영을 다니는 동안 옆에서 서포트 할 그는 이안이 나왔던 우상유니와 그 당시 커뮤 반응을 하나씩 정독했다. 굳이 찾지 않아도 팬들이 잘 정리해 둔 자료가 있어서 수월했다.
그때는 가르치는 걸 딱히 의도하지 않아도 잘했었는데 아갓아는 카이저 피셔라는 막강한 비교군이 있어서 더 신경 쓰는 것이었다.
“카이저 피셔는 제작자로 나중에 훈수나 좀 두는 것뿐이지 너처럼 직접적인 트레이닝은 안 해 줄 거잖아. 그 점은 더 우위에 있지. 그냥 너 하고 싶은대로 해.”
이안은 뭔가 머쓱해져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마이킷 만난다고 했지?”
“네, 근처에서 보기로 했어요.”
“근데 벌써 나가게? 약속 시간 저녁 아니야?”
“근처에 아는 형 만나기로 했어요.”
김명진은 별 의심 없이 이안을 보냈다. 데뷔 6주년을 앞둔 애들을 너무 간섭하긴 힘들었고, 이안이라면 별 사고를 치지 않을 거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
“헐!”
“대박.”
소속사가 더 넓고 좋은 곳으로 이사 가고, BHL엔터는 연습생을 추가로 모집했다. 피버와 같이 몰래카메라를 했었던 그 연습생 중에서도 몇몇은 방출되거나 다른 회사로 옮기고 그 자리를 새로운 얼굴이 채웠다.
“안녕하세요. 연습하고 있는 거예요?”
“안녕하세요!”
뒤에서 수군대던 연습생들은 이안이 먼저 인사를 걸자 슬금슬금 다가와서 한마디씩 했다. 많이 봐 봤자 중학생 될 나이의 애들이 이러고 있으니 삐약대는 병아리 같았다.
“힘들겠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저기서 데뷔조로 올라가겠다고 치열하게 싸우겠지. 말 한번 걸어 줬다고 황송한 얼굴로 몰려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이안은 회사 로비로 향했다.
“형!”
때마침 정류원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이안을 찾고 있었다.
“얼굴 보는 건 오랜만이네. 나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니야?”
“제가 그만큼 형 챙겨 주잖아요. 직원은 뽑았어요?”
“얼추? 더 뽑아도 되지?”
“당연하죠. 형이 다 하는데.”
이안은 혹시 몰라서 정류원을 데리고 회사 직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 카페로 안내했다.
“이쯤 되면 내가 투자 전문가인지 니 개인 매니저인지 구분도 안 된다.”
“에이, 이젠 번듯한 회사 대표님이시잖아요. 원래 퇴사하고 대표님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요?”
“얼씨구, 말은 잘하네.”
정류원이 피식 웃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이안을 따라온 것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벌이가 달라졌으니까. 자리에 앉은 정류원이 태블릿 패드를 톡톡 두들겼다.
“니가 말했던 박청아 기자랑 강서욱 기자 알아봤는데.”
“어떻게 됐어요?”
“시기가 참 좋았어. 박청아, 이 사람은 편집장 얼굴에 사직서 던지고 쉬던 중이라더라. 얘기 들어 보니까 완전 골 때려.”
다른 언론사 특종 대충 베껴 쓰는 건 이건 내가 원했던 기자 생활이 아니다. 너네들 입맛에 맞춰 기사 안 쓰겠다는 패기를 보여 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퇴사하고도 소신을 잃지 않고 블로그에 꾸준히 고발 기사를 올렸다고 한다. 이안이 씨익 웃었다. 양인준이 직접 손을 쓸 정도로 위기감을 줬던, 그가 찾던 사람이 맞았다.
“강서욱 기자도 만만치 않던데? 편집장 허락 없이 기사 올린 거 들켜서 짤렸대고. 다 왜 이래? 젊어서 그런가….”
정류원이 혀를 내둘렀다. 아직 경력은 짧지만 어쨌든 소신 있는 사람인 건 확실했으니까.
“근데 너는 어디서 이런 사람들만 발굴하냐. 재능이다, 재능.”
“그냥 어디서 들어서요. 자세한 건, 아시죠?”
“그래 뭐, 토 달지 않기로 했으니까.”
이안이 의미심장하게 웃자, 정류원이 두 손을 내보이며 항복 의사를 표현했다. 태블릿 패드를 조작한 그가 이안이 보내온 정보를 깔끔하게 정리한 화면을 보여 줬다.
“그리고 이건… 너 나중에 정치할 거야?”
“아뇨?”
“이거, 총선 판도가 바뀔 정보인데? 확실해? 이래도 되는 거야?”
“그냥, 회사 몸집 불리려면 이런 것도 필요하잖아요. 아, 형이랑 안 맞아요?”
“이득 앞에 정치 성향이 어딨어, 그냥 말 맞는 편 내 편이지. 잘 이용해 볼게.”
정류원은 군말 없이 태블릿을 끄고 가방에 넣었다. 너무 쉽게 믿는 거 아닌가? 이안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시험하듯 말을 던졌다.
“또 궁금한 건 없어요? 내가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었냐든가….”
“…너도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너무 쉽게 믿는 거 아니에요? 우리 할아버지가 대체 형한테 뭘 해 준 거예요?”
“너희 조부님이 나에게 해 준 것을 떠나서, 이게 신뢰라는 거야. 니가 안 좋은 일로 빠지는 것도 아니고.”
이안이 던져 주는 상세한 정보는 마치 미래를 엿보는 것 같았다. 정확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니 말 들어서 손해는 안 봤으니까.”
오히려 이득이라면 이득이었지.
뭐가 더 옳고 그른 건 중요하지 않지만, 어디가 더 이득이고 아니고를 따지는 정류원으로서는 당장 해결해야 할 궁금증보다 앞으로 이안과 함께 해서 더 많이 얻을 것들을 생각했을 뿐이다.
“ST엔터 건은 법무법인 아율 측에서 맡기로 했어. 거기가 엔터 전문으로는 빠삭하잖아.”
“그렇죠.”
“듣기로는 계약서 자체에 문제가 많아서 빨리 결론 날 것 같다더라.”
“다행이네요. 형, 내가 오늘 고맙다는 말을 했었나?”
“맨날 하잖아. 그리고 비즈니스 사이에 고맙다는 말 남발하는 거 아니야.”
손목시계를 쳐다본 정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가야겠다. 인기 있는 연예인이랑 만나면 이게 문제야.”
“다음에 술이나 한잔해요. 제가 살게요, 좋은 곳에서.”
“그 말, 꼭 지켜. 간다.”
정류원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안을 검지로 가리켰다.
밖으로 빠져나가는 정류원의 뒷모습을 바라본 이안이 작게 숨을 토해 냈다.
‘일단… 당장은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