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94
294
청와대 오찬 참석.
고액기부자 오찬을 담당하는 청와대 직원은 누군가와 통화를 마치고 허탈하게 웃었다. 한참을 허공을 쳐다보던 그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대체 왜?”
전경련 회장 모임에 와야 할 사람이 왜 와? 직원이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청화 그룹은 갑자기 재단을 통해 기부 의사를 밝혔다. 오찬에 초대해 달라는 정중한 요청까지 곁들여서. 말이 요청이지 통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오찬에는 무려 이 회장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누구를 옆에 앉히지?”
기부 액수도 상당하고 대기업의 요청인데 안 들어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이 회장의 한쪽 자리는 영부인이 확정이고, 다른 쪽에 앉힐 사람을 고민하던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설마 신예지 보러 오는 건가?”
신예지는 이안과 함께 연예인 대표로 참여하는 배우였다. 꾸준한 기부와 구설수 없고 탄탄한 커리어, 단아한 이미지로 국민의 호감도가 높았고, 오찬 자리에 빠짐없이 출석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에이, 아니겠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나간 거 같아서 고개를 저었다. 그만한 거물이 단순히 배우 하나 보려고 청와대까지 온다고? 이 큰돈을 기부까지 하면서?
“그럼 왜?”
어차피 이 회장이 오는 건 변함없지만,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에 빠진 직원이 음흉하게 웃었다. 자리 배치도 파일을 연 그가 영부인의 옆에 이 회장을, 그리고 그 옆에 이안의 이름을 적었다.
“이 회장도 오징어 한번 돼 보시죠.”
연예인의 연예인이라 불리는 이안은 ‘니 얼굴도 내 앞에서는 지나가던 평범한 행인일 뿐’ 같은 파괴력으로 동종 업계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뜬금없이 연락해서 의문을 안겨 준 나름의 복수였다. 남들은 꿈도 못 꿀 재력과 사회적 위치에 있는 그 이 회장도 이안의 옆에서는 한 마리 오징어가 되겠지.
이안의 옆에 앉는 걸 이 회장이 원한 건 줄도 모르고 직원이 낄낄 웃었다.
* * *
아위(AWY) 이안, 배우 신예지와 연예계 고액기부자 자격으로 청와대 오찬 참석
‘靑 고액 기부자 오찬’ 이안·신예지·청화 그룹 이대철 회장 참석
“이열, 멋있는데.”
방에서 나온 이안을 본 멤버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어두운 톤의 정장으로 격식 있게 차려입은 이안이 거실로 내려왔다.
“청와대 정도면 밥도 장난 아니겠지?”
“궁금하다. 어떻게 나오는지.”
“근데 우린….”
소파에 앉아 컵라면이나 후루룩 먹고 있던 멤버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숙연해졌다. 목 부분이 늘어난 맨투맨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 머리는 정리를 안 해서 산발이었다.
“우리는 치킨 시켜서 양념만 핥고 버릴 수 있는데 왜 컵라면이야?”
조태웅이 한탄하듯 말하자, 이주혁이 웃었다.
“이거 먹고 시켜. 어차피 이거로 배 안 찰 거 아냐. 내가 산다.”
“주혁이 형!”
“형!”
“역시 저작권 부자!”
컵라면을 내려놓은 멤버들이 이주혁에게로 달려들었다. 무겁다며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이주혁을 불쌍한 눈으로 쳐다본 이안이 소파에 앉았다.
저 난장판에 합류하지 않고 라면 국물을 마시던 김주영이 이안을 향해 물었다.
“샵도 들를 거야?”
“들러야지. 기자도 들어가서 사진 찍는대.”
“그래서, 얼마나 했어?”
그 질문에 이주혁에게 붙은 멤버들이 고개를 돌려 이안을 쳐다봤다.
“아, 깜짝이야.”
이안은 고개를 뒤로 뺐다. 네 명의 얼굴이 동시에 자신을 향하니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다. 김 현이 히죽 웃었다.
“신예지 선배님은 막 몇십억 했다던데?”
“허억… 그럼 너도?”
“야 대단하다 진짜. 연예인인데 잘 번다고 무조건 많이 기부하란 법은 없잖아.”
“그래서, 정확히 얼마야?”
그렇게 말하는 그들도 적지 않은 돈을 꾸준히 기부해 왔으면서 괜히 엄살이었다.
“이안이 준비 다 했어?”
멤버들이 더 추궁하기 전에 다행히 임진우가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이안은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현관을 향했다.
“다녀올게.”
“엉.”
금세 이안에게 흥미를 잃은 멤버들은 배달 앱을 살피면서 어느 브랜드의 치킨을 먹을지 진지하게 토론했다.
* * *
밴에 올라탄 이안은 숍으로 향했다. 운전석에서 룸미러로 이안을 살핀 임진우가 넌지시 물었다.
“이안이 너 타투는 안 아팠어? 발목 아프다던데.”
“장난 아니었죠. 태웅이는 눈물 줄줄 흘려서 눈 빨개진 거 알아요?”
“그래? 태웅이 말로는 니가 더 울었다던데?”
“…걔 말 믿지 마요, 형.”
조태웅, 벌써 선빵을 치다니. 이안의 대답에 임진우가 작게 웃었다.
아위 중에서도 연기 욕심이 있는 이안과 조태웅은 카메라에 잘 안 잡히는 부위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발목이었다.
임진우는 홍보팀으로 직접 찾아와 재계약 기사를 올릴 타이밍을 상의하던 박진혁을 본 적이 있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진혁이 걔가 낭만이 있어.”
“그렇죠? 안 그렇게 생겨서 기념일 같은 거 완전 따져요.”
“그렇게 감성이 있어야 곡도 쓰고 그러는 거지.”
임진우가 숍의 문을 열었고, 이안이 들어갔다. 면식이 있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이안을 담당하는 아티스트가 뒤에 섰다.
“이안이 안녕. 무슨 시상식 가니?”
“누나 기사 못 봤어요? 저 청와대 가요.”
“진짜? 막 사진도 찍히겠네? 맞다. 재계약 축하해.”
축하해야 할 일인가? 이안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하도 언론에서 해체하니 마니 떠들어 대던 터라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오죽하면 뒤에서 언제 인사할까 각을 재고 있던 신인 아이돌 그룹도 이안에게 인사하면서 저희도 선배님들처럼 오래 가고 싶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와 내가 청와대 안에를 다 와 보네.”
숍에서 머리를 만지고 바로 청와대로 향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오래 걸렸다. 보안상 절차를 다 밟고 안으로 들어간 임진우의 어깨가 경직됐다.
“다녀와.”
“차에서 기다리게요? 오래 걸릴 거 같은데….”
“원래 너네 기다리는 게 내 일이야.”
임진우는 이안의 등을 두들기고는 다시 밴 안으로 들어갔다.
“이쪽입니다.”
이안은 직원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미리 도착해 대기하고 있던 출입 기자들이 분주히 이안의 사진을 찍었다.
오찬장 입구에 초청받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적당히 인사를 나눈 이안은 엠플릭스 단체 사진 때 마주친 적 있는 신예지의 옆에 섰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안 씨, 안녕하세요. 어우, 다행이다. 나 혼자 아는 사람 없어서 힘들었어.”
신예지는 밝은 얼굴로 이안에게 인사했다. 저명한 사회 인사들 사이에 껴서 그저 웃기만 하는 게 내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한눈을 판 사이 그녀가 까치발을 들고 이안에게 귓속말했다.
“근데 그분이 안 왔네요?”
“누구요?”
“그 있잖아요…. 청화 그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고, 사람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비서를 대동한 청화 그룹 이 회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기자들이 셔터를 눌러 댔다.
‘뭐지?’
사람들의 시선이 이 회장에게 몰렸고, 조용해진 분위기에 이안도 이 회장을 바라봤다. 순간, 이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착각인가? 이안은 영부인과 악수하는 이 회장을 응시했다.
* * *
“이쪽입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오찬장 안으로 이동한 이안은 그 자리에서 잠시 멈췄다. 자신의 오른쪽 자리에 이 회장이 앉아 있었다.
‘내 자리 진짜 여긴가?’
대기업 회장이 옆에 앉았다고 해서 긴장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오늘 아니면 마주칠 일도 없을 테고. 다만….
‘좀 찔리는데.’
양인준을 파헤치면서 청화 그룹 쪽도 적잖이 타격을 입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감정도 잠시, 이안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이 회장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안의 얼굴을 응시한 이 회장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아주 잘생긴 친구구먼, 이거 제가 너무 못나게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군요.”
“그럴 리가요.”
이안의 손을 잡아 악수한 이 회장이 영부인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영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회장님도 헌앙하십니다. 저랑 닮으신 거 같은데요.”
“그런가?”
이 회장은 이안의 농담에 껄껄 웃기까지 했다. 그에 바빠진 사람들은 바로 기자들이었다.
청화 그룹 이대철 회장·아위 이안, 재계 톱과 연예계 톱의 만남
같은 제목과 함께 실시간으로 기사가 올라오고 있을 것이다.
초청된 사람이 자리에 앉고, 영부인이 마이크를 들어 연설을 시작했다. 이안은 경청하는 얼굴을 한 채 딴생각에 잠겼다.
‘이 회장은 자식들을 시험하기 좋아했었지.’
이대문은 맘에 안 드는 장남이었다. 이안에게 스폰서 제안을 했던 청화 그룹 쪽 사람은 진의 메모리 카드를 읽어 보건대 장남인 이대문의 딸일 것이다.
‘미래에 이대문은 후계자가 되지 못해.’
이대문 대신 차남인 이대진이 회장에 오른다.
과거, 양인준은 이대문을 좋을 대로 이용하고는 바로 이대진으로 환승한다.
‘무서운 수완이야.’
하지만 현재, 진의 메모리 카드로 유추해 보건대 지금 양인준의 위치는 아슬아슬할 것이다.
이대문은 언론 쪽 일은 양인준에게 맡겼는데, 누군가에게 미루는 일을 좋아하고 사람을 쉽게 믿는 성향 때문에 그랬다. 이 회장이 딱 싫어하는 인간상. 양인준은 그걸 파악하고 빠르게 이대진 쪽으로 붙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 틀어지면 다신 보지 않는 단호함도 있었는데, 어쩌면 지금쯤 이대문이 먼저 양인준을 내쳤을지도 모른다. 양인준은 이안의 공격에 제대로 일 처리를 못 하고 있으니까.
영부인의 연설이 끝나고, 이안은 직원이 건네는 마이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그룹 아위의 이안입니다. 제게는 과분한 자리라 생각되지만, 이런 뜻깊은 행사에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영부인의 바로 다음 순서일 줄은 예상치 못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은 막힘 없이 인사 연설을 했다.
* * *
오찬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은 예상치 못한 사람의 부름에 몸을 돌렸다. 이 회장이었다. 나이를 많이 먹었음에도 두 다리로 꼿꼿이 서 있는 그가 말했다.
“자네, 시간 좀 있나?”
“저 말씀입니까?”
이 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뒤에 있던 비서가 이안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한 식당의 명함에는 시간이 적혀 있었다. 오늘 저녁 9시. 제법 늦은 시간이었다.
통보나 다름없는 요청이었지만, 이안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굳이 나만 따로 부른다라…. 설마.
“자네와 할 얘기가 참 많아.”
“…….”
“바빠도 시간을 만들어야 할 걸세. 투자하는 안목이 아주 뛰어나더군.”
이안의 귀에는 ‘감마 인베스트먼트의 진짜 오너가 누군지 알고 있다.’라는 뜻으로 들렸다.
역시 눈치채고 있었나. 청화 그룹을 건드린 이상 양인준이나 이대문과는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다. 대뜸 회장이 나올 줄은 몰랐지만.
이안은 군말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따가 뵙겠습니다.”
이 회장이 가장 먼저 오찬장을 빠져나갔다. 이안은 그 뒷모습을 멀뚱히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참….”
분위기로 보아하니 자신에게 호의적인 것 같기는 한데 아직 방심은 일렀다. 이만한 거물과 엮인 적이 없으니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양인준만 참교육시키고 싶은 거였는데….’
어쩌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 거지?
‘그나저나 멤버들한테는 뭐라 말하지?’
이따가 밤에 빠져나오려면 이유도 생각해 놔야 했다. 콘서트 준비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젠 모르겠다.’
이안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