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98
298
솔직히 못 믿겠어요.
밤늦게 이유도 없이 오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박동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처음 들어 보는 이주혁의 싸늘한 목소리에 뭔가 일이 나도 단단히 난 거라 짐작하면서 숙소 벨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
박동수는 혼자 오지 않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사, 서수련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문을 연 박서담과 김주영을 쳐다봤다.
“이사님도 오셨네요.”
“주혁이 목소리가 심각해 보여서.”
“일단 들어오세요.”
박서담과 김주영이 몸을 옆으로 비켰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거실로 향하면서 서수련이 혼잣말을 했다. 박서담과 김주영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머, 지환 씨.”
“…….”
“지환 씨도 애들 연락받고 온 거예요? 무슨 큰일이길래?”
박지환은 죄인처럼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원래라면 오셨냐며 시끄럽게 맞이했을 멤버들이 조용했다. 게다가 매니저가 박지환밖에 없는 게 이상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서수련과 박동수가 눈빛 교환을 했다.
“밴에서 녹음기 나왔어요.”
“뭐?”
이안의 말에 박동수와 서수련이 입을 쩌억 벌렸다.
“근데 범인이 지환이 형이에요.”
“뭐?!”
이주혁의 확인 사살에는 크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진짜야 지환 씨?”
“…….”
“진짜냐고.”
박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동수와 서수련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박진혁은 그들에게 주차장에서 있었던 동영상을 보여 줬다.
(형, 우리 이미 일주일 전부터 알고 있었어.)
(…….)
(이게 녹음기가 맞고, 우리 대화 도청하려는 거 맞죠?)
(…그래, 맞아.)
박동수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옆에 서수련이 없었더라면 아마 박지환을 향해 고함을 쳤을지도 모른다.
“이걸 너희들이 어떻게… 아니, 아니다. 일단 너네는 일찍 자.”
“그래. 내일 리허설도 있는데. 나머지는 회사가 알아서 할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던 박동수와 서수련이 멤버들의 안색을 살폈다. 굳은 얼굴로 한숨만 연거푸 쉬고 있었다. 박동수가 가까이 있는 박진혁의 어깨를 토닥였다.
‘젠장….’
차라리 이번에 새로 뽑은 신입 매니저였더라면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하필 멤버들과 오래 붙어 다니면서 친해진 박지환이라니. 멤버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더 컸을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 됐는데요.”
“이 상태에서 잠이 오겠어요?”
김 현과 조태웅이 항의하듯 쏘아붙였다.
“솔직히 말씀드려 볼까요?”
이안이 박지환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박지환이 몸을 흠칫 떨었다.
“이사님들을 못 믿는 건 아닌데요…. 회사가 알아서 한다는 말은 솔직히 못 믿겠어요.”
“그건….”
서수련이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바로 윗선에 연락하지 않고 직접 범인을 잡을 정도면 못 믿는 것도 이해가 갔다. 직원 관리를 못 한 회사 책임이 제일 크기도 했고.
“알아서 한다고 하면서 내일 당장 퇴사시키고 ‘그 사람은 퇴사했으니 됐지? 녹음은 했지만, 아직 어디에 터뜨리진 않았으니까.’ 하고 얼렁뚱땅 무마시키려는 건 싫어요. 다들 그렇지?”
“맞아.”
“왜 이랬어야 했는지, 정확히 어떻게 처리할 건지 진행 상황을 알아야겠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피해자잖아요. 이대로 다른 매니저 형들 계속 의심하는 건 싫고.”
“맞아요.”
이안의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박동수와 서수련을 바라봤다. 아까보다 눈에 생기가 돌아 있었다.
잠시 말이 없던 서수련이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까 잠이 안 와도 억지로 자. 너네 잠실 그렇게 가고 싶어 했잖아. 리허설도 중요하니까.”
“이사님.”
“들어 봐. 우리도 대표님한테 알리고 어떻게 할지 상의할 시간이 필요해.”
그녀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해서 항의하려던 이안을 손바닥을 들어 제지했다.
“리허설 진행하고, 끝나고 바로 회사로 와. 명진 씨한테는 말해 둘 테니까. 다음 날 좀 피곤해도 괜찮지?”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도 모셔서 같이 얘기를 하자.”
“…….”
“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너희들 의견을 우선으로 할게. 진짜로.”
“네.”
확답을 받아 낸 아위 멤버들이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좋아. 잘 자라.”
“…네, 형.”
“지환 씨는 따라와.”
서수련과 박동수가 박지환을 데리고 숙소 밖을 나섰다.
거실에 남겨진 멤버들이 말없이 허공을 바라봤다. 조용해지니까 생각이 더 많아졌다.
“그래, 일단 자러 가자.”
“어어….”
이주혁의 말을 끝으로 멤버들이 일어나서 혼이 빠진 듯 비척비척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 *
“왜 그랬어요?”
“…….”
박지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서수련은 제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고서는 깊은숨을 뱉었다.
“아니다. 이유는 대표님 앞에서 설명하세요. 내일 꼭 회사로 나오시고.”
“도망치면 상황 더 안 좋아지는 거 알지? 지금 당장 경찰 안 부른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알겠습니다.”
박동수는 이렇게 보내도 되나? 싶었지만 박지환이 모습을 보아하니, 도망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게 후회할 짓을 왜 해서.’
박동수가 혀를 쯧, 차고는 서수련을 조수석에 태우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들이 떠나고, 홀로 남은 박지환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요새 벌이가 시원찮죠? 경기도 안 좋고.]박지환에게 접근해 자신을 ‘진’이라 소개한 한 남자. 가끔 있는 혼술 자리에 말동무가 필요했던 박지환은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뭐? 엔터사에서 일해? 와 거기 박봉인데 힘들지 않아?]처음에는 일상적인 대화로 교류했었다. 하지만 박지환이 아이돌 매니저라는 걸 안 순간 화제가 점점 연예인으로 번졌다.
[어이가 없지, 나는 쌔빠지게 일해도 한강뷰는커녕 저어기 깡촌에 집이 있을까 말까인데.] [걔네들은 운 좋게 성공해서 다 누리고 살잖아? 걔네가 상사한테 쪼인트 까여 봤어? 뭘 했어? 주변에 우쭈쭈해 주는 애들밖에 없겠지.]박지환은 아위의 스케줄을 함께 다니면서 초라한 자신과 아위를 비교하는 일이 잦았다. 당연한 듯이 누리는 아위의 삶이 부럽고 그들과 자신의 삶을 비교할수록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신흥 귀족이나 다름없어. 연예인이 벼슬이냐? 좀만 뜨면 노력 안 해도 잘 먹고 잘살잖아. 그깟 비난 여론 좀 있다고 징징거리는 것도 우습고.] [내가 꽤 쓸 만한 정보를 알고 있는데, 같이해 볼 생각 없어?]진, 양인준은 그런 박지환의 마음을 교묘히 파고들어 불을 지폈다.
[이런, 다 잃었다고요? 빚만 남아서 어째.] [지환 씨, 그럼 나랑 일 하나 할래?] [아이돌 매니저라며? 쓸 만한 정보 주면 내가 값은 잘 쳐 줄게.] [특히, ‘최이안’급의 정보라면 두 배 이상 줄 수 있어.]마침 그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큰 손해를 봤던 박지환은 결국 진과 손을 잡게 된다.
[자잘한 정보도 좋아. 이런 여론전은 말이야, 무조건 선빵이야.] [꼬투리 잡을 거만 잘 낚아 와. 양념은 내가 친다. 엔터 업계 일한 지 꽤 됐으니 내가 뭘 말하는지 알겠지?] [선금 입금했으니까 확인해.]박지환은 인터넷에서 녹음기를 구매하면서도 ‘내가 잘하는 짓인가?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하지만 결국 몰래 녹음기를 붙였고, 이젠 돌이킬 수 없어졌다.
‘내가 왜 그랬을까.’
* * *
“둘, 셋.”
“안녕하세요, 아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리허설 무대 위로 올라온 아위는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했다. 스태프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이야, 쟤네 성공할 줄 알았다. 내가 쟤네 데뷔 쇼케 만져 줬잖아.”
아위의 데뷔 쇼케이스를 담당했던 한 음향 엔지니어가 유독 크게 손뼉을 쳤다. 많아 봐야 2천 석 규모의 데뷔 쇼케이스에서, 이제는 회당 약 5만 석 규모의 콘서트를 주도하는 그룹이 됐다. 감회가 새로웠다.
“진짜 크다. 여길 꽉 채운다고?”
“어떡해요. 저 심장 개떨려요.”
“나도. 와씨, 눈 감았다 뜨면 콘서트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멤버들도 지금 이게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싶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박지환의 일로 심란했던 멤버들은 콘서트를 채울 관객 생각에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오늘은 세트 리스트 스포가 될 수 있으니까 타이틀 곡으로만 1분 정도 부를 거예요.”
“네.”
“대신 동선 체크는 세트 리스트대로 진행할게요.”
그리고 일하러 와서도 계속 죽상일 수는 없다. 그들은 프로니까.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스태프의 안내를 따라 돌출 무대로 이동하면서 이안은 하늘을 바라봤다. 지붕이 뚫려 있는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건 또 처음이었다.
(얘들은 어떤 거 같아?)
“리허설에 집중하고 있어요. 다들 공연장 보고 기분이 나아졌나 봐요.”
(그렇겠지. 애들 공연하는 거 좋아하니까.)
수화기 너머 박동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박지환이 사고를 쳤다는 것은 매니저 중에서 김명진에게만 알렸다.
아침에 일어난 김명진은 박진혁이 찍은 범인 검거 영상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박지환이 일도 빠릿빠릿하게 잘하고 팬심도 잘 알고 있는 거 같아서 이제 믿고 맡길 수 있다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그래서, 걔는 회사에 왔어요?”
(제일 먼저 왔더라. 일단 자세한 이유는 애들 다 모이고 듣기로 했어.)
“허, 어이없네.”
김명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못 해 줘서 배신당하면 억울하지는 않지. 잘해 줬는데 배신당하면 더 마음에 상처가 큰 법이다.
“녹음은 뭐가 됐어요?”
(녹음된 것도 절묘했어. 이거 밝혀지면 발칵 뒤집어졌을 거다. 아마 애들이 범인을 직접 잡으려고 함정을 판 거 같은데.)
“아… 어쩐지 요새 여자 얘기 많이 하더라고요. 식겁해서 애들한테 들키지만 말라고 했는데….”
그것도 내가 지금 잘 말하고 있는가? 내가 너무 통제하는 게 아닌가? 몇 시간을 고심한 끝에 용기 내 말 한 거였는데. 그게 다 박지환에게 던진 미끼였나. 김명진은 허탈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의 말을 들은 박동수가 작게 웃었다.
(그랬었어?)
“매니저가 여친 사귀지 말라고 금지할 수는 없잖아요. 애들도 한창때고 연차도 찼는데.”
데뷔 초에나 그럴 수 있지, 이제 간섭하는 것도 우스웠다. 인기가 하늘 같아진 아위는 마음껏 갑질을 부려도 됐다.
“그래서, 박지환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애들 선택에 맡겨야지.)
“그러다가 애들이 처벌 원한다고 경찰서 보내 버리자고 하면 어떡해요.”
팬들은 별별 스태프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다. 어디 숍의 누구 실장님이라든가, 이사는 누구고 영상팀 누구 피디님이 자체 콘텐츠 기획을 잘 짠다, 같은 자잘한 정보도 꿰고 있다.
특히 매니저는 얼굴까지 박제돼서 알아보는 사람이 생긴다. 기자라면 더더욱. 박지환이 경찰서에 드나들어 언론에 노출된다면 회사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이다.
(그래도 별수 있나. 우리가 그런 직원 뽑은 게 잘못인데.)
“우리가 무조건 잘못 있나? 그냥 박지환이 개노답이라서 그래요.”
(애들 말에 물들기는….)
김명진이 무대 위 아위를 흘끔 쳐다봤다. 조명을 잠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쉬는 시간이 생겼는데, 저들끼리 무슨 내기를 했는지 박진혁과 김주영이 무대 위를 고라니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투어는 내가 따라가기로 했어.)
“오랜만에 현장 매니저 복귀네요.”
(그래, 이런 일로 복귀하고 싶진 않았는데.)
박동수가 에효, 한숨을 쉬었다. 그가 바랐던 건 일손이 너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현장을 뛰는 그림이었지, 누구 한 명이 대형 사고를 쳐서 대타를 뛰러 오는 그림은 아니었다.
(그럼 이따 보자고.)
“네.”
통화를 끊은 김명진이 크게 외쳤다.
“얘들아 뛰지 마라! 다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