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306
306
[외전] 설날에 우리 집 오는 거죠?
“1월 한 달간은 휴가다.”
“진짜요?”
“그럼 가짜겠냐?”
김명진의 대답에 멤버들이 우아악! 소리를 질렀다.
“고생 많았다. 푹 쉬어.”
쉴 새 없이 달려오긴 했다. 월드 투어를 돌기 전에는 광고와 화보 촬영 일정이 빼곡히 차 있었고, 중간중간 팬들을 위한 자체 컨텐츠 촬영도 있었다. 틈틈이 새 앨범 준비까지 했다.
며칠 정도는 휴식 시간이 있었지만, 한 달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좋겠다….”
“이번 주는 좀 쉬지 그러냐?”
박서담은 예외였다. 그는 부러운 눈으로 멤버들을 바라봤다. 3월 초에 솔로 활동이 예정된 박서담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뇨, 연습해야죠.”
박진혁의 말에도 고개를 저으며 전의를 불태웠다. 박진혁은 그런 박서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는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한 달 동안 뭐 하지? 너넨 뭐 할 거냐?”
“집 가야지.”
“야, 이안아 너는 집 가냐? 설날 있잖아.”
“글쎄? 투어 때 이미 봬서… 상황 보고.”
“개쿨하네.”
멤버들이 휴가 계획을 세우는 동안, 박서담은 이안을 흘끗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뒤처지지 말아야지.”
* * *
박서담은 작년, 동생의 중학교 졸업식에 참여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위는 인기 아이돌 그룹이고, 멤버 개개인의 인지도도 높았다.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개인 인기 순위로 깊게 파고들면 당연히 격차가 벌어진다.
차가 막혀서 졸업식이 시작할 무렵에 도착한 박서담은 체육관으로 급히 향하는 길에서 한 학생들을 지나쳐 갔다.
“오늘 아위 온다고? 왜?”
“아위 동생 있잖아.”
“아위 누구 동생?”
“박서담.”
아위가 온다는 소식에 얼굴이 밝아졌던 한 학생은 박서담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실망감에 물들었다.
“아아… 걔?”
“다른 오빠들은 안 오겠지?”
“안 오겠지.”
박서담은 체육관으로 들어가면서 학생들의 반응에 충격받기보다는 이해가 됐다. 아위는 좋아하지만, 자신을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팬사인회에서도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다른 멤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확연한 온도 차를 느낄 수 있었고.
“허억.”
“아위? 아위 맞죠?”
조용히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를 알아본 학생들과 졸업생 가족들이 술렁거렸다. 결국, 소란으로 번져서 단상에 올라간 한 선생이 아직 식이 안 끝났으니 조용히 해 달라며 당부할 정도였다.
‘아아… 걔?’
동생은 형이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사진을 찍어 달라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박서담은 아까 실망감이 가득 담긴 한 학생의 음성이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 * *
“와, 이안이 곡 아직 차트에 있네?”
“노래 좋잖아.”
콘서트에서 선공개되었던 이안의 솔로곡은 차트 상위권에서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콘서트에서만 공개하고 음원도 내지 않으려 했던 곡이 음방 활동도 하지 않고 이 정도 순위라니.
‘내가 제일 뒤처지는 느낌인데?’
그 뒤를 이어 솔로 활동을 하게 될 박서담은 질투보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작곡 쪽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주혁과 박진혁 그리고 김주영.
이안과 조태웅은 연기라는 확실한 길이 있었다.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각자 필모그래피도 잘 쌓고 있었으니까.
김 현은 안무 창작과 더불어 공연 연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공부하고 있었다. 이번 월드 투어에서도 김 현의 제안으로 꾸며진 무대 구성이 많았다.
‘나는 뭐가 있지?’
박서담은 음악 방송 진행과 라디오 디제이를 맡은 적이 있었지만 바쁜 그룹 스케줄 때문에 오래 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언어 쪽으로 두각을 나타내 일본 활동에서는 대표로 마이크를 잡긴 했지만 아위는 이제 일본을 넘어 미국으로 활동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멤버 전원이 영어는 어느 정도 할 줄 알았다.
‘나도 더 잘하고 싶은데.’
특유의 저음을 발견한 뒤 음악 관계자들의 극찬을 받았지만, 대체로 평론가들이 좋은 점수를 주는 것들은 대중 취향에서 멀어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내 욕심인가?’
박서담이 한숨을 쉬었다. 가끔은 아위의 막내 박서담이 아니라 그냥 박서담으로도 불리고 싶었다. 이안처럼.
“아직도 연습하고 있어?”
상념에 빠진 그를 깨운 건 이안이었다. 그는 연습실 옆에 마련된 소파에 털썩 앉았다.
“형, 언제 왔어요?”
“방금.”
방금 왔다고 했지만, 이안의 손에는 대본 세 권이 들려져 있었다. 아마 개인 연습실에서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 보고 있었겠지. 박서담이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형 우리 휴가인 거 알죠? 다른 형들은 실컷 노는데 손에 그게 뭐야?”
“그러는 지는.”
이안은 미니 냉장고에서 음료 캔을 꺼내 박서담에게 던졌다. 그걸 한 번에 받아 낸 박서담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음료 캔을 쳐다봤다. 이 형이 웬일로 정상적인 음료를. 박서담은 냉큼 캔을 따고 음료를 들이켰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아직 시간 여유 있지 않아?”
“그건 그런데….”
박서담은 괜히 이안의 대본을 건드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배역은 뭐뭐 들어왔어요?”
“젊은 CEO, 실장님, 재벌 아들.”
“와, 딱 형 같은 사람이 하면 어울릴 역할이네요.”
“나 같은 사람?”
“잘생기고 깔끔해 보이는? 뭔가 고급스럽고 정장이 잘 어울리는 듯한 배역이요.”
이안은 제 볼을 긁적였다.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박히는 게 손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좀 고민돼.”
“왜요?”
이안도 드라마계에서 입지를 다져 가고 있었고, ‘너를 알고 싶어’ 이후로 주연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전부 박서담이 열거했던 정장이 잘 어울리는 배역뿐이었다.
‘블랙 아웃’ 때나 ‘당신의 소리를 듣고 싶어’ 때는 단역에다가 단편 드라마여서 비중이 크지 않았는데, 차라리 이때 들어오는 제안이 신선한 배역이 많았다.
‘굳이 주연을 안 맡아도 상관없긴 해. 근데….’
박서담의 솔로 활동이 끝나면 아위도 활동을 시작한다. 다가오는 앨범 활동 전에 한 작품은 끝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고작 비중 없는 역할로 갈증을 채울 순 없었다.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은데 대부분 이런 역할밖에 안 들어오거든.”
‘너를 알고 싶어’ 이후로 굳어진 이미지 때문일까. 많이 들어오는 대본 중 추려서 세 권이다.
작품 자체는 좋은 작품이다. 후에 준수한 시청률을 올리기도 하고. 하지만 계속 이런 배역만 맡기는 싫었다. 시원하게 망가지거나 험악하고 사나운 배역도 해 보고 싶었다.
“아하,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너무 ‘아이돌’스러운 건 안 하고 싶다는 거죠?”
“대충 비슷해. 얼굴 때문인가?”
듣는 사람에 따라서 재수 없다고 평하겠지만, 고민하는 이안의 얼굴을 마주치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긴, 그 얼굴로 막 무너지는 역할은 안 어울리긴 하겠다. 그럼 형 저 다음에 솔로 해요. 아예 앨범까지 내죠?”
새로운 제안에 이안은 제 턱을 쓸어내렸다. 솔로 앨범을 내는 건 아직 먼 얘기 같았다.
“그래서, 넌 뭐가 걸리는데?”
역시 이 형은 속일 수가 없다. 박서담이 곤란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중얼거렸다.
“그냥요. 저도 좀 잘하고 싶어서요.”
“뭘 잘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아니, 그런 거 말고 저도 형만큼 좀, 어? 그런 거 있잖아요.”
차마 말로는 ‘형처럼 개인 인기도 많이 챙기고 싶다’라고 말할 수 없었던 박서담이 대충 얼버무렸다.
“나만큼 뭐?”
이안은 멋쩍어하는 박서담을 보며 히죽 웃었다. 비웃는 게 아니라 대견해서 그랬다. 언제는 형이 더 유명해져서 재주는 형들이 부리고 자기는 그룹 활동에 만족하겠다고 했으면서.
그룹의 인기가 많아질수록 묻어 가기보다는 개인의 욕심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연차에 번아웃에 빠지는 것보다 경쟁력을 키우려 노력하는 게 좋은 일이고. 이안은 박서담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헝클었다.
“아, 하지 마요.”
“글쎄… 나만큼 되려면 일단 다시 태어나야지.”
“형 가끔 짜증 나는 거 알죠?”
“왜, 너도 나 잘생겼다며.”
“아니이….”
박서담이 말끝을 늘어뜨렸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형 근데 설에 미국 가요?”
“아마 안 갈 거 같아. 투어 때 며칠 묵었으면 됐지.”
“진짜요? 천조국 되게 쿨하다.”
“원래 우리 가족 성향이 원래 그래.”
가족 간에 그리움과 애틋함은 있지만, 이안의 가족들이 원래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었다. 이안도 딱히 불만은 없었고.
“형 그럼 설날에 우리 집 오는 거죠?”
“어?”
“우리 할머니가 형 보고 싶어 하시던데….”
아 맞다. 그거 아직도 유효한 거였나. 이안은 눈동자를 굴렸다. 어차피 갈 데도 없으니 신세 좀 질까….
“다른 형들 집 말고 우리 집부터 와야 해요.”
“그 다른 형들도 나를 데려가려 하지 않을까?”
“그 형들은 알 바 아니고, 선점은 내가 먼저 했음.”
* * *
“와씨, 깜짝이야.”
방에서 나온 조태웅은 이안을 보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코트까지 걸치고 머리는 숍에서 만진 것처럼 반은 깐 머리였다.
“어디 가냐?”
“결혼식.”
“아 그랬지.”
누구는 까치집 머리에 배 벅벅 긁으면서 나왔는데 얘는 아침부터 영화를 찍고 앉아 있다. 조태웅이 하품을 쩌억 했다.
“올 때 맛있는 거 사 와.”
“응 꺼져.”
이안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뒤에 대고 중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저어기 앞에 빵집 생겼더라. 난 딸기 생크림이 좋아!”
“응, 안 돼.”
조태웅은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외쳤다. 말은 저렇게 해도 못 이긴 척 사 올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안은 ‘Z-Day’에서 극본을 맡았던 이주희 작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청담의 예식장을 찾았다. 상대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주희 작가의 꿈을 응원해 온 사람이라고 했다.
“감독님, 민재 형.”
“어, 왔어?”
이안은 투어를 돌기 전, ‘Z-Day’의 시즌 2 촬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제 공개를 앞두고 있었다.
“시즌 3도 확정됐다면서? 아, 괜히 안 한다고 했나?”
“부러우면 작가님한테 부탁해서 다시 살려 달라고 할까?”
“에이, 또 부활하면 그건 무리수지.”
김민재의 표정이 유난히 밝았다. 그는 ‘Z-Day’로 인해 해외 인기를 갈퀴로 쓸어 담고 있었다. 그 덕에 해외 유통으로 제작비 회수도 가능해져서 몸값도 덩달아 많이 뛰었다고 한다.
“신부 대기실은 어디야?”
“저쪽. 우린 이미 인사 다 했어. 와 작가님 아닌 줄 알았잖아.”
윤미숙 작가의 보조 작가 출신에다가 요즘 인기 작가답게 근처에 낯이 익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안은 그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지나갔다. 언제든 업계에서 마주칠 사람들이었다.
“어머 주희야! 너무 예쁘다!”
신부 대기실 앞으로 가니, 이주희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이미 안에서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이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문가에 기대섰는데, 친구들과 사진을 찍던 이주희가 이안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이안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안이 옅게 미소 지었다. 뒤를 돌아 그를 쳐다본 이주희의 친구들이 입을 멍하니 벌렸다.
“헉.”
“대박….”
이주희의 친구들이 숨을 삼켰고,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런 반응도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닌 이안은 그들에게 웃으며 인사하고는 붙임성 있게 말을 걸었다.
“아직 인사 안 끝나셨으면 밖에 좀 있다 올까요?”
“아뇨아뇨! 저희 인사 다 했어요!”
“주희 결혼 축하하고.”
그들이 황급히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와 씨, 나 욕 나올 뻔했잖아.”
“나도. 진짜 잘생겼다.”
“주희 부럽다….”
밖으로 나온 그들은 이안의 뒷모습을 흘끔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이러다가 하객들이 너만 쳐다보는 거 아냐?”
“너무 과장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안이 웃으며 이주희 작가에게로 다가갔다. 시즌 2 촬영을 하면서 말을 편하게 놓게 된 그녀가 사진을 찍자며 사진사에게 손짓했다.
“아니 진짜로. 신부보다 예쁘면 어떡해?”
“제가요? 작가님만 하겠어요? 와, 아까 민재 형이 못 알아볼 뻔했다고 했는데 진짜네요.”
빈말이 아니었다. 항상 움직이기 편한 옷만 입으며 화장도 안 하고 떡진 머리도 대충 볼펜으로 틀어 올렸던 그녀는 오늘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이안은 이주희 작가의 뒤에 서서 카메라를 향해 웃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와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