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312
312
[외전] 설날 집 순회. (5)
“야, 피곤하면 자도 돼.”
“아니 괜찮아!”
눈이 반쯤 감겨 있던 김주영이 몸을 움찔 떨었다. 뒷좌석에 앉은 박서담과 이주혁, 김 현은 이미 곯아떨어져서 고개만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차피 거의 다 도착한 거 아냐?”
“맞아.”
“어? 저거!”
“뭐가? 헐.”
이안은 김주영이 가리킨 곳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자던 멤버들을 깨웠다.
맨 위에 걸린 현수막은 멤버들도 이미 알고 있던 현수막이었다. 데뷔 몇 개월 뒤 인터넷에 뜬 사진을 보고 알았기 때문이었는데, 박진혁은 애써 뻔뻔한 척했지만, 남몰래 부끄러워했다는 그 현수막이었다. 데뷔 이후 철거하지 않고 쭉 걸려 있었는지 낡아 보였다.
하지만 그 밑에 걸린 현수막은 멤버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니 뭐야 이게!”
“아 미친!”
환영 문구는 그렇다 쳐도, 하필 데뷔 시절 사진을 가져다가 조잡한 디자인으로 만든 것에 소리 내 웃을 수밖에 없었다. 폰트는 또 진지한 궁서체였다.
“이거 진혁이 형도 아나?”
“알겠지. 마을 입구에 있잖아.”
“아니 이걸 우리가 올 때까지 숨기고 있었단 말이야?”
폭소하며 사진을 찍던 멤버들이 이주혁의 한마디에 몸을 밀착했다.
“모여 봐. 인증샷 먼저 찍자.”
“아 조태웅도 같이 왔어야 했는데.”
“찍어서 보내 보자.”
김 현과 김주영이 앞에서 무릎을 굽혔다. 제일 키가 큰 이안은 자연스레 맨 뒤에 섰다. 이미 이런 사진을 찍는 데 도가 텄다. 순식간에 다른 표정을 지어 가며 사진을 찍은 그들이 단체 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죠탱7) ㅋㅋㅋㅋㅋㅋㅋㅋ
(죠탱7) 아씨 나도 데려가지 뭐했냐 최이안
안 읽었다는 표시가 빠르게 사라지고 조태웅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 이안은 그 불만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길래 누가 제일 먼 곳에 있으래.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가니, 박진혁이 대문 앞에 나와 있었다.
“봤냐?”
차에서 내린 멤버들을 보며 박진혁이 씨익 웃었다. 김 현이 허, 숨을 뱉었다.
“이래서 꼭 오라고 한 거야? 우리가 안 오면 어쩌려고.”
“어쨌든 왔잖아.”
“현수막은 누가 해 주신 거야?”
“경로당에서. 우리 할머니한테 잘 얘기 좀 해 줘.”
“그거야 어렵지 않지.”
아이돌 짬밥 7년이면 립서비스는 도가 텄다. 멤버들은 두 손은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 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머! 어서 오세요!”
마침 현관 근처에 있던 박진혁의 누나, 박서현이 높은 목소리로 그들을 반겼다. 뒤이어 등장한 박진혁의 어머니에게 멤버들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밖에 현수막 봤어?”
“네.”
“우리만 한 사람들 없지? 누가 환영 현수막을 걸어 줘? 우리 집안밖에 없었을 거야.”
“와 저희 오다가 진짜 놀랐잖아요. 이거 사진 인터넷에 올려도 되나요?”
박진혁의 친척들은 박진혁과 비슷하게 활발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멤버들은 불편함 없이 자리에 앉았다.
“어? 어어!”
“윷 나왔다!”
“아 최이안 운빨 뭔데!”
식사를 마친 그들은 심지어 윷놀이까지 참여했다. 최근에 전자기기 없이 이렇게 놀아 본 적이 있었던가. 박진혁의 주도로 시끌벅적하게 논 그들이 거실 구석에 누웠다.
“우리 아직 세배 안 했지?”
“슬슬 치우고 세배하자.”
우리도 해야 하나? 눈치를 보던 이안과 멤버들은 누군가의 안내를 따라 식탁에 앉았다. 얼떨결에 박씨 일가의 세배 풍경을 지켜보게 된 그들은 박서현이 대뜸 박진혁의 앞에 서는 걸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뭐 하는 거지?
“아… 쓰읍.”
박서현은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는 게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눈을 꾸욱 감은 그녀가 숨을 후, 뱉더니 바닥에 무릎을 쾅, 찧고는 넙죽 절했다.
“우리 동생님! 새해 복 많이 받아!”
뒤에서 어른들이 깔깔 웃었다. 박진혁도 배를 잡고 뒤로 넘어갔다.
“아이고 누님!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올해도 돈길 걸으시고! 유병장수 하시고! 손대는 것마다 대박 터져서 이 누님 하나 먹여 살려 주시고!”
말에 함정이 있는데요? 하지만 역시 박진혁 친누나 아니랄까 봐 랩 하듯 속사포로 말하고 있어서 아무도 그 말에 딴지를 걸 수 없었다.
박서현이 고개를 홱 돌려 식탁에 앉아 있는 멤버들을 쳐다봤다. 이안의 옆에 앉았던 김주영이 몸을 움찔 떨었다.
“천재만재 아이돌 그룹 아위는 올해도 빌보드 씹어 먹고 아카데미 가서 상도 쓸어 오고!”
“누나 아카데미는 영화 쪽….”
“아무튼, 그 비슷한 곳에서 상 쓸어 와라!”
“어… 네. 덕담 감사합니다. 누나도 하는 일 잘되세요.”
어쨌든 덕담해 주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뭐해서 이안이 대표로 대답했다. 박서현은 만족한 듯 고개를 다시 돌렸다.
“너는 세뱃돈 내놔.”
“아 태세전환 너무 빨라서 감점 드립니다.”
“뭐야! 절? 절 더 할까?”
박서현이 냅다 엎드려 절했다. 이어서 벌떡 일어난 그녀가 반절까지 하는 것을 보며 이안이 헛웃음을 지었다. 두 번의 절과 반절까지, 고인에게 하는 인사였다.
이안은 박서현을 잘 모르지만 저건 일부러 그런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박진혁은 그 의미를 모르는지 히죽 웃고 있었다.
“우리 누님 정성이 아주 갸륵해요? 세뱃돈 얼마 필요하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진혁 어르신!”
지갑에서 오만 원권 몇 장을 꺼낸 박진혁의 손이 박서현을 향해 고양이 장난감 흔들듯 휘저었다. 박서현이 성큼성큼 다가가 그 돈을 빼앗듯 가져갔다.
“뭐야, 서현이 동생한테 세배하면서 돈 받니?”
“작은 엄마, 난 자존심 따위 없어요!”
구석에 간 박서현이 엄지손가락에 침을 묻히고 대놓고 돈을 세고 있었다.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박진혁의 사촌 어른들이 갑자기 거실 중앙으로 모였다.
“그럼 나도 해야지!”
“뭐야, 진혁이한테 세배하면 돈 줘?”
“나도! 나도!”
집안의 어른들이 박진혁의 앞으로 오더니 역세배를 했다. 박진혁은 당황하지 않고 장난스럽게 웃더니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빳빳한 새 돈이 두툼하게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니, 이 상황을 예상하고 미리 뽑아 온 게 분명했다.
“아니 돈을 미리 뽑아 왔다고?”
“저 형도 보통 도른자가 아니잖아. 저 봐, 입 찢어져서 즐기는 거.”
“와 나는 저렇게 뻔뻔하게 못 한다.”
이안과 멤버들이 쑥덕거렸다.
이런 상황이 일반적인 건가? 친척과 함께 명절을 지내 본 적이 없던 박서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조카님! 새해 복 많이 받아! 건강해!”
“형! 사랑해!”
“아들! 올해도 건강해!”
박진혁의 부모님과 사촌까지 합세해서 역세배를 하는 진풍경에 이안과 멤버들이 사과를 팝콘처럼 씹었다.
“할머니! 할머니는 할 필요 없어요!”
“왜, 나도 손자한테 용돈 받고 좋지!”
“할머니는 이런 거 안 해도 당연히 드려야지!”
“재밌어 보이잖아!”
결국, 박진혁의 할머니도 깔깔 웃으며 손자한테 세배했다. 분명 데뷔 초에만 해도 아이돌 생활을 무시하는 친척이 있다며 참교육을 한다니 뭐니 그러지 않았었나?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난, 난 이 분위기를 못 따라가겠어.”
“역시 진혁이 형 가족답다….”
김 현과 박서담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 * *
박진혁까지 설날 원정대에 합류하고 드디어 마지막 종착지인 조태웅의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이거 서담이 노래지?”
“어.”
조수석은 박진혁의 차지였다. 디제이가 된 그는 아위의 데모 곡을 무작위로 틀어 놨다. 그중에는 마스터링이 끝난 박서담의 솔로 곡도 있었다.
“노래 미쳤는데?”
“주혁이 형이 쓴 곡이잖아요. 안 좋을 수가 없지.”
“이야 우리 막내가 솔로를 다 하네.”
“진혁이 형 아저씨 같아요.”
박진혁은 그 말에도 기분이 좋은 듯 이중턱을 만들고 헤헤 웃었다.
“…근데 좀 걱정이에요.”
“왜?”
이안이 룸미러를 통해 박서담의 얼굴을 쳐다봤다.
“우리 무대 할 때는 제 파트 몆 마디 부르고 끝이잖아요. 근데 솔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곡해야 하는데.”
“AR의 힘을 좀 빌려 봐.”
“그래도 가수가 라이브는 해야죠.”
“그건 맞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완급조절해 가면서 해. 춤까지 출 거잖아. 그 정도는 괜찮지.”
“그런가?”
박서담이 흐음… 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BHL엔터는 블랙러시부터 실력파 아이돌을 키우기 위해 소속 가수의 립싱크를 금지했다. 숨소리도 녹음된다는 라이브 AR을 금기시하고 그나마 있던 코러스도 작게 줄였었다.
“안무도 빡센 건 없는데 잔 동작이 많아서…. 괜히 실수했다가 평가 안 좋으면 어떻게 해요.”
“야, 너 정도면 어디 가서 털릴 실력은 아니지.”
데뷔 때부터 익숙해진 라이브 고집 덕분에 실력도 나날이 증가했다. 덕분에 멤버들의 무대는 상향 평준화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안이 형은 앨범 낼 거죠?”
“음, 아마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이안의 대답에 뒷좌석에서 잠에 빠져들려던 이주혁과 김 현, 김주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야, 너 솔로 앨범 내게?”
“대본 고르고 있지 않았어?”
“아니 왜 우리는 처음 듣냐?”
박진혁도 고개를 홱 돌려 운전석의 이안을 응시했다.
“결정한 지 얼마 안 됐어. 괜찮은 작품 들어오면 검토는 좀 해 보겠지만, 일단 천천히 곡 준비부터 하게.”
“오, 그럼 서담이 다음으로 솔로는 최이안으로.”
물론 지금까지도 대본이 몇 권씩 들어오고 있었지만, 끌리는 게 없었다. 아니, 이미 마음이 솔로 앨범으로 기울어져서 괜찮은 것도 못 보고 지나친 것일 수도 있다. 이안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타이틀은 내 곡이다.”
“아니거든, 내 곡이지.”
“그럼 안무는 내가 짤래.”
“그거 가지고 경쟁하지 말아 줄래?”
서로 곡을 주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을 보니, 수록곡 걱정은 덜었다. 이렇게 서로 도와주려고 하다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안이 정도면 한 50만 장은 기본으로 넘겠지?”
“넘지, 차트 1위도 가볍게 넘겠지.”
“킹작권 벌써 달달하네.”
“아니, 나 좀 감동 먹을라고 했었는데….”
뒤따라오는 사족에 이안이 헛웃음을 지었다.
* * *
“왔어?”
“할머니 안녕하세요!”
멤버들이 우르르 달려가 조태웅의 할머니, 신순자 여사와 가볍게 포옹했다. 오랜만에 온 신순자 여사의 집은 군데군데 수리 새것이 보이긴 했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이안은 할머니의 뒤에서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태웅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야아, 뭐냐 그 표정?”
“나 빼고 잘 놀다 왔나 보지?”
“삐졌냐?”
“아씨, 현수막. 나도 거기서 사진 찍고 싶었는데.”
멤버들이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조태웅은 팬 커뮤니티에 올라온 인증 사진을 보며 손가락만 빨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숙소에서 이안이랑 같이 출발하는 건데, 후회하면서.
“편하게 놀다 가!”
“감사합니다! 할머니, 뭐 도와 드릴 건 없어요?”
“없어. 밥은 먹었고?”
“저희 배불러요.”
그렇게 마지막, 신순자 여사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나온 아위는 서울로 출발했다. 꿀 같은 휴가도 이제 끝났다. 이제 팬들을 위해 새 앨범을 준비할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