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315
315
[외전] 고작 해외 인기에 만족했을까?
“용민 씨, 잘 봤습니다.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용민이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오디션 현장을 빠져나갔다.
“연기 괜찮네. 몸도 잘 쓰고.”
“이미지가 딱 맞긴 해요.”
“아까 생활 연기 하는 거 봤어?”
“봤죠. 자연스럽던데.”
그가 나가자마자 감독과 작가는 김용민의 연기에 긍정적인 평가를 주고받았다.
“근데 쟤 그거잖아. 국밥.”
하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감독, 이상아의 말에 작가인 원강민이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찌푸리고는 되물었다.
“감독님은 그런 징크스 같은 거 믿으세요?”
“원 작가, 출연작 봐라. 다 주옥같다.”
이상아가 원강민의 앞에 펼쳐진 김용민의 이력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원강민은 그 목록을 읽어 내려가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 작품이 많았는데, 그가 모를 정도면 정말 처참하다는 뜻이었고, 알아도 망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뿐이었다.
“와… 들어가도 다 이런 걸 들어가네.”
“작품 보는 눈이 더럽게 없거나 운이 더럽게 없는 거지. 이쯤이면 과학이야.”
“작품 보는 눈이 없으면 우리 드라마는….”
“아냐, 원 작가 대본 좋아. 김용민은 국밥 이미지 때문에 가릴 처지가 아니거든. 지금도 아마 바로 오디션 보러 갔을걸?”
이상아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앞서 오디션을 봤던 다른 배우들의 프로필을 뒤적였다. 원강민은 아쉬운 듯 김용민의 프로필을 만지작거렸다. 김용민은 그가 대본을 쓰면서 상상했던 이미지와 딱 맞았다.
“그러면 우리가 그 수식어 깨 버리는 것도 그림 좋지 않아요?”
“김용민이 마음에 들었나 봐? 그런데 망하면 어떡하려고?”
“제 각본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상아가 오올, 추임새를 넣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그래도 쟤는 안 돼. 얘로 하자.”
“엄지환이요? 그래도 연기는 김용민이 제일 낫지 않아요? 배역에도 가장 잘 어울리던데.”
“그렇긴 한데….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는 거야.”
“그건 저도 아는데….”
“첫방 시청률이 생각보다 낮게 나와서 국밥이 국밥 했다고 낙인찍히면 어떡해. 그러면 뒷이야기를 누가 보겠어?”
국밥과 비슷한 수식어로, 믿고 안 보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박힌 김용민이다. 원강민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상아의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가 아는 이상아 감독은 시작도 안 했는데 저렇게 자신 없는 얘기를 꺼낼 사람이 아니었다.
‘엄지환이 그렇게 잘하지는 않던데…?’
생각해 보면 이상아는 오디션 참여자 중에 유독 엄지환에게만 극찬하고, 그들이 다른 참여자의 평가를 하는 순간에도 엄지환이 괜찮다고 은근히 흘리기까지 했다.
‘아 이미 제작사랑 얘기가 된 사항이구나….’
떡값 한 번 두둑이 받았나 보지? 이럴 거면 왜 오디션을 보자 한 거야? 원강민은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름 중박작 두 작품을 연달아 내놓았는데도 캐스팅 권한에서는 아직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웠다.
“감독님 마음대로 하세요.”
“좋아.”
원강민은 양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한숨을 쉬었다.
* * *
“죄송하지만 저희는 신선한 마스크를 찾고 있거든요.”
“신인 배우를 찾고 계신 건가요?”
“비슷해요. 그리고 너무 이미지가 굳어진 분은 섭외하지 않기로 감독님과 얘기가 끝난 상태였거든요.”
“그럼….”
“죄송합니다. 안 될 거 같아요.”
“하… 네 알겠습니다.”
현장 불합격 통보였다. 김용민은 결국 제대로 된 연기를 펼치지 못하고 일찍 나와야 했다.
이럴 거면 프로필 보냈을 때 오디션 오라고 하지나 말지. 이번엔 될 거라는 희망을 억지로 주입해 왔는데 우울함만 얻었다.
‘엿 같네….’
김용민이 하늘을 쳐다봤다. 그의 심정도 모르고 하늘은 미세먼지 없이 청량했다.
애매하게 인지도 있는 것이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지금 김용민의 상황이 그랬다. 그리고 안 좋은 이미지일수록 더 기피한다.
‘프로젝트 아이돌’ 이후 그래도 연기 쪽으로 잘 풀리려나 싶었다. 그때는 이렇게 발품 팔지 않아도 쌓여 있는 대본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그게 왜 다 망하냐고.’
소속사와 상의 끝에 들어간 작품이 줄줄이 망했다. 이쯤 되면 작품 보는 눈이 없는 건가 싶다가도 그가 눈여겨봤던 작품은 하나같이 잘나갔다.
‘그냥 남들이 반대해도 밀어붙일걸.’
휩쓸리다가 보니 결국 국밥, 믿고 안 보는 배우, 소수점 시청률의 마법사 같은 별명만 얻어 버렸다. 세상이 김용민 망하라고 저주하는 느낌이었다.
“여보세요.”
(형, 뭐 해?)
“어, 도현아. 나 오디션 보고 나왔어.”
(잘 봤어? 시간 되면 술이나 먹자. 내가 살게.)
상대는 ‘프로젝트 아이돌’에서 만났던, 최종 2위에 올라 아이원으로 데뷔했고 지금은 솔로 가수와 배우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곽도현이었다.
마침 생활도 쪼들리고 있었는데, 공짜 술과 밥은 환영이었다. 김용민은 곽도현이 있을 가게로 향했다.
“…하나는 현장에서 불합격 통보받았어.”
“헐. 너무하네.”
곽도현이 울상을 지으며 김용민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줬다. 김용민은 그걸 한 모금 마셨다.
“너무 상심하지 마. 형 연기 좋으니까 더 좋은 기회 있겠지.”
“그런가…. 너 우리 같이 합숙했던 거 기억나?”
“아직도 프.아 추억팔이 하는 거야?”
“아니, 생각나는 게 있어서.”
곽도현의 위로에도 김용민은 덤덤했다. 술로 목을 축였는데도 건조한 목소리가 나왔다.
“1차 평가 끝나고 니가 그랬잖아. 난 형처럼 되기 싫다고. 꼭 데뷔해야 한다고.”
“…그랬지. 그때는 내가 생각이 없었지. 잊어. 내가 못 할 말 했다.”
“아냐, 맞는 말이야.”
김용민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술잔에 남은 술을 전부 들이켰다.
“넌 나처럼 되지 마라.”
* * *
3차까지 술자리를 달린 김용민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레도 오디션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서 죽은 듯 자고, 다시 대본을 살펴봐야 했다.
잠시 담배를 태우러 간 곽도현에게 인사를 하려고 가게 옆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그는 누군가와 통화하는 곽도현을 발견했다.
“불쌍하잖아.”
그 말을 듣자마자 김용민은 숨었다. 마치 자신을 향해 평하는 것 같았다.
“주기적으로 만나야 기분이 좋거든.”
기분이 왜 좋은데? 너랑은 다른 시궁창 인생이라서?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 김용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디 목격담이라도 떠서 ‘요즘도 만나는 의리의 프로젝트 아이돌 용곽즈’ 같은 거로 이슈되면 좋고.”
벽에 담배를 비벼 끈 곽도현이 침을 퉤 뱉었다. 알딸딸했던 정신이 순식간에 깨진 김용민은 숨을 삼켰다.
“아, 뭐라고 했냐고? ‘넌 나처럼 살지 마라’라고 하더라. 당연한 소리를 왜 하는지…. 이미 난 잘되고 있는데?”
그 순간, 김용민의 손에 든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크게 울렸다.
[참여하신 오디션에 불합격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김용민은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술기운이 남아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도 쉴 새 없이 달렸다.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크게 소리쳤던 것도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뛰다가 멈춰서 숨을 몰아쉬었다. 손으로 무릎을 짚고 고개를 숙인 그가 중얼거렸다.
“이제 뭐 하지….”
영화? 드라마보다 영화가 더 뚫기 어렵다. 티켓 파워도 없는 그를 써 줄 작품이 있을까?
그럼 뭘 해야 하나…. 뮤지컬? 말도 안 되는 소리. 뮤지컬은 연기와 노래 그리고 춤까지 잘해야 했다. 그럼 연극…? 근데….
‘누가 날 써 주지?’
김용민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찾으면 많을 거다. 출연료를 깎고, 무명부터 시작하는 거다.
굳이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어디든 누가 볼 수 있다면. 상영관에 걸리지 않는 B급 영화나 시상식 출품용으로 내놓은 독립 영화도 괜찮을 거 같다. 근데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유명해질 수 있을까?
“어?”
어떻게든 연예계에서 살 방도를 찾아내던 김용민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용민 씨, 여기서 뭐 해요?”
“…집 근처라서요.”
오전에 오디션을 봤던 의 원강민 작가였다. 그는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길바닥에 털썩 앉았다.
“결과… 받으셨구나?”
“네.”
김용민도 그 앞에 앉고서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 부끄러웠지만, 원 작가 정도라면 오디션 떨어져서 우는 사람도 심심찮게 만났을 것이다.
“제가 왜 떨어졌는지 알 수 있을까요? 연기가 부족했나요?”
“아뇨, 용민 씨 연기는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상상했던 이미지랑도 딱 들어맞았고.”
“근데 왜….”
“솔직히 말할까요? 그게 덜 비참하겠죠?”
김용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내정자가 있더라고요. 제작사에서 꽂은.”
“…아.”
“거기에 작가인 내 의사는 한 톨도 들어가지 않았죠. 어이없네, 이럴 거면 오디션 왜 본 거야?”
원강민이 구시렁거리면서 편의점 봉투에서 초코 우유를 꺼내 김용민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용민 씨 보내고 아까워서 마이튜브에서 용민 씨가 했던 연기를 봤어요.”
“어땠나요?”
“좋던데? 얼굴도 적당히 깔끔하고 평범해서 어느 배역에도 잘 어울리고. 아, 이건 칭찬인 거 알죠?”
아마 제대로 된 작품만 만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원강민은 김용민의 연예계를 정리한 위키도 봤다. 편집해 놓은 누군가가 농담조로 써 놓은 말이 딱 맞았다. ‘운이 지지리도 없는 인생’이라고.
“근데 왜 잘 안 풀릴까요.”
김용민이 깊은 한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이제 두 번 만난 작가에게 털어놓을 말은 아니었다. 반쯤은 술기운 때문이었다. 제정신이었다면 하지 못했을 푸념.
“…좀만 더 버텨요.”
그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줄 수 없다. 아마 신만이 알지 않을까. 원강민은 그저 김용민의 어깨를 짚었다.
“내가 어떻게든 대박 작가 돼서 용민 씨 주연으로 꽂아 줄게.”
김용민이 허, 웃었다. 비웃는 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소리를 들어서 웃는 것이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진짜라니까요? 나 타율 좋은 거 알죠?”
“알죠. 작가님 드라마 재밌게 봤습니다.”
원강민이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고서는 벌떡 일어났다. 김용민도 따라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김용민은 원강민의 얼굴을 잠시 응시했다. 원 작가는 이러는 이유가 뭘까. 고작 오디션 현장에서 잠깐 본 게 다인데. 그런 생각을 읽은 원강민이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남 일 같지 않아서 그래요. 나도 그랬으니까….”
* * *
‘맞아. 원 작가.’
생각에 잠겼던 이안이 정신을 차렸다. 원강민 작가의 그 말은 당시 김용민에게 큰 위로가 됐었다.
‘지금은 뭐 하고 계시려나?’
그 이후 김용민은 오디션을 봤고, 몇 작품에 출연해 또 말아먹었다.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다. 어차피 드라마 아니면 딱히 길도 없었으니까.
가끔 희망이 보이지 않아 힘들 때, 언젠가 원 작가가 자신을 주연으로 써 주길 실없이 기대하곤 했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드라마계에서 붙어 있었고, 그 영향이 최이안에게 남아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라마는 OTT나 해외 수출로 본전이라도 뽑을 수 있지, 영화는 망하면 더 타격이 크니까.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될 수도….’
또 말아먹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도 기저에 깔려 있었다.
이안은 피식 웃었다. 지금은 김용민과는 상황이 다르니 영화도 언제든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김용민 시절의 아위는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국내 인지도는 없어도 적당히 해외에서 인기 있는 아이돌로 벌이는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했을까?
이안은 고개를 돌려 주방 쪽을 바라봤다. 이주혁이 케이크 때문에 고삐가 풀려 라면에 물을 올리려는 멤버들을 말리고 있었다.
‘내가 아는 멤버들은 향상심도 있고 야망도 엄청 큰데….’
고작 해외 인기에 만족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