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35
35
전설과 함께. (1)
“수고하셨습니다!”
리딩이 끝나고,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안이 일어나 조연출과 얘기하고 있는 감독에게 다가갔다.
“저… 감독님.”
“네, 이안 씨.”
최 감독이 웃으며 맞이했다.
“이 씬이요, 이때 저도 촬영 봐도 될까요?”
이안이 대본을 펴 감독에게 내밀었다. 감독의 의외라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요즘 바쁘다고 들었는데, 괜찮겠어요?”
“바빠도 이 씬은 직접 봐야 될 것 같아서요.”
연기력이 검증된 중견 배우와 천재 수식어가 붙을 아역 배우의 연기 현장을 직접 보는 것만 해도 많은 공부가 될 것이다.
감독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매니저분 통해 연락드리면 되겠죠?”
감독이 조연출을 힐끔 보고 대답했다. 조연출도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어서 들어가 봐요.”
이안이 허리를 꾸벅 숙이곤 리딩 현장을 나왔다.
‘아 가기 싫다.’
이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가자마자 바로 춤 연습에 새벽에는 녹음까지 있었다.
이안이 박동수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눈에 안 띄는 곳을 물색했다.
[뭐해?]‘뭔가 촉이 안 좋아.’
갑자기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면서 마음속 어딘가가 경고음을 날린다.
이안은 지금 무조건 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 언니~”
이안이 주차장 기둥 뒤에 숨었을 때, 이서현이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나왔다.
“찾아봤는데 없어. 벌써 갔나 봐.”
이서현이 차를 뺀 매니저에게 손짓을 했다.
“걔가 그렇게 좋아? 하긴, 잘생겼더라고. 걔 주변만 반짝반짝한 게.”
그녀가 눈앞에 정차한 차의 문을 열고 탔다.
이안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차가 주차장 밖으로 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나를 왜 찾아?’
이안이 진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김승훈이랑 이희진이 누구 소개로 사귀었을 거라 생각해?]‘…아 설마.’
김승훈이랑 이희진은 올해 팩트픽스의 주인공이었다.
‘그럼 쟤가 뚜쟁이, 마담뚜 뭐 그런 거야?’
남을 엮어 주는 걸 즐기는 사람이 있다. 스포츠계에 유명한 사람 있듯이 연예계에도 있다.
[쟤랑 몇 명 더 있어.]‘할 일도 더럽게 없다. 그래서 얻는 게 뭔데?’
[그냥 밥 몇 번 얻어먹고 남들 설레는 거 보면서 대리 만족?]허. 이안이 헛웃음을 짓곤 차에 올라탔다.
[특히 막 데뷔한 아이돌들이 쟤네 소개로 사귀다가 연애 걸려서 팬덤 이탈의 주범이 되지.]‘소개시켜 준다고 좋다고 넘어간 게 잘못이지.’
[여튼 알 만한 팬들은 쟤네랑 엮이는 거 싫어해.]김용민 때처럼 희망 고문만 당하다가 뜨지도 못하고 내리막길 걸어야 정신 차리지.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승훈 이희진도 돌아선 사생이 찍은 거거든.]‘뭐? 기자가 찍은 거 아냐?’
[아냐. 사생이 ‘오빠’ 연애 소식에 빙글 돌아 버려서 한 달 잠복해서 찍은 거야.]‘개무섭네.’
역시 사생한테는 처음부터 먹이 금지가 답이다.
이안은 다른 멤버들에게도 단단히 얘기해 둬야겠다 생각했다.
[그 사진 갖고 소속사에 딜을 먼저 넣었는데, MI엔터에서 얼마 불렀는지 알아? 오백만 원.]‘MI엔터인데 고작 그거? 대형 존심 다 죽었네.’
[그러니까. 그래서 팩트픽스 갖고 갔더니 거긴 오천만 원 불러서 냉큼 팔아 버리고 탈덕한 거야.]‘미친.’
[그리고 다른 가수한테 붙었는데, 붙은 게 플루토라는 게 코미디지.]플루토는 김승훈이 속한 루어의 직속 후배 그룹이다.
[지금쯤인가? 플루토 멤버랑 핑키레이디 멤버끼리 사귀거든.]‘걔네 벌써 연애해?’
이안이 한숨을 쉬었다. 절대 본인이 연애를 못 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아무튼 그렇다.
소속사에 도착한 이안이 차에서 내렸다.
복도 자판기에서 무작위로 음료를 뽑아간 이안이 연습실의 문을 열었다.
“와 남자 냄새 진동하는 것 봐.”
누구는 풋풋하고 설레는 연애를 한다는데 여긴 빡연습의 열기로 꿉꿉한 공기가 맴돌았다.
“몰골 봐. 이래서 여자들이 번호나 따겠냐?”
“너 왜 갑자기 뼈 때리냐?”
“음료수 사 옴.”
“감사합니다.”
이안이 조태웅을 발로 툭 쳤다. 다른 멤버들도 비척비척 일어나 음료수를 골랐다.
김주영이 초록색 캔을 집어 확인하더니, 확 던져 버렸다.
“아 솔잎차 맛알못 새끼야.”
“그거 내 껀데?”
“와 대환장 진짜 취존 못 하겠다.”
여섯명의 멤버가 질색을 하며 이안과 떨어졌다. 이안은 굴러간 캔을 잡았다.
“왜? 맛있는데.”
이안이 캔을 따 호록 마시자 옆에 있던 진이 한마디 내뱉었다.
[진짜 상종을 못 하겠다.]“이 맛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들이 불쌍하다.”
“웃기고 있네!”
이안은 멤버들의 야유를 무시하고 음료를 다 마셨다.
* * *
이안이 컴백 준비와 드라마, 경연 준비를 바쁘게 하고 보니 드디어 ‘전설과 함께’ 녹화 당일이었다.
“우리 완전 특별대우 아니에요?”
김희상과 아위는 와일드카드로 등장할 예정이기 때문에 리허설도 전날 따로 준비했다. 대기실도 따로 쓰는데, 가장 넓은 방을 배정받았다.
“역시 김희상빨이 무섭다.”
“우리도 이런데 쓸 날이 올까?”
“선생님은 언제 오시려나?”
멤버들이 푹신한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들은 몰래 숨었다가 서프라이즈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어제 마이킷 1위 했다더라?”
“리얼?”
“어, 아까 동수형한테 들었어.”
이주혁의 말에 모두가 부러운 얼굴을 했다.
“와 폰 받겠네. 부럽다.”
“근데 이제 폰 없는 거 익숙해지지 않았냐?”
미리 준비한 무대 의상을 갈아입으며 김 현이 말했다.
“우리도 1위 할 수 있겠지?”
“글쎄… 못 할걸?”
이안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 마이디어랑 겹쳐.”
“진짜? 어디서 들었냐? 패드도 뺏겼잖아.”
옆에 둥둥 떠다니는 카메라가 알려 줬지. 이안이 허탈하게 웃었다.
이미 올라갈 대로 올라갔던 마이디어가 한 번 더 지붕 킥을 하게 되는 시기가 올해였다.
그들은 이미 오리콘을 점령했고, 빌보드까지 1위를 거머쥐게 된다.
“조졌네.”
그렇기에 초동부터 백만 단위는 가볍게 넘긴다. 아직 초동 십만도 못 넘은 아위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다들 포기한 듯 흐흐 웃었다.
아위는 가죽옷을 입고 그 위에 두루마기를 걸쳤다. 격한 춤을 춰야 했기 때문에, 김희상의 정장과는 다른 의상이었다.
“우리 좀 멋있는 듯.”
박진혁의 말에 모두가 거울 앞에서 온갖 멋있는 포즈를 취했다.
안 입던 옷을 입어서 그런가 더 새삼스러워 보였다.
“먼저 와 있었구먼.”
그때, 김희상이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완전 멋지세요.”
아위는 머쓱해져서 괜히 흠흠 헛기침을 했다.
그들이 미리 비워 놓은 자리로 김희상을 안내했다.
“이제 슬슬 시작이죠?”
이주혁이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말했다.
마침 김희상과 함께 들어온 스태프가 미리 설치된 모니터를 켰다.
스튜디오에서는 ‘전설과 함께’ 진행자들이 출연진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분들 요즘 핫하죠!)
(데뷔하자마자 1위라는 기록을 세우신 분들입니다. 플루토!)
플루토가 스튜디오로 입장했다. 그들은 MI엔터 6인조 보이그룹이었다.
(그리고 이분들과 함께하는 전설! 박성수 선생님이십니다!)
“오.”
김희상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박성수는 김희상과 동시대에 활동했었던 가수였다. 그는 플루토를 양옆에 끼고 앉아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오늘 어떤 무대 준비하셨습니까?)
(오늘은 이 친구들과 상큼한 컨셉으로 무대를 준비했습니다.)
(상큼한 컨셉이요? 당장 보고 싶네요.)
(자세한 건 무대 할 때 보시죠.)
‘박성수가 상큼한 컨셉이라니 진짜 파격적이긴 하다.’
박성수는 전성기 시절 강력한 남성미를 뽐내는 컨셉으로 여심을 저격한 가수였다.
진행자들은 그들과 몇 마디 주고받고는 다음 가수를 소개했다.
(다음은 7명의 보석! 핑키레이디입니다!)
이안이 괜히 움찔해 진을 쳐다봤다.
듣기로는 플루토 멤버 3명과 핑키레이디 멤버 3명이 서로 사귀는 사이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당신의 비타민! 핑키레이디입니다!)
핑키레이디가 등장하자 플루토의 몇 멤버가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허이고, 좋을 때다.’
[다 티 나네 티나. 이래서 신인이란, 쯧.](그리고 이분들과 팀을 이룬 전설! 이춘자 선생님!)
이춘자는 지금도 활발히 음원 활동을 이어 가는 트로트 가수였다.
(저희는 오늘 섹시한 컨셉으로 준비해 봤어요.)
‘여기도 충격적인데?’
[역시 경연은 이런 맛이지.]이안이 슬쩍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그들도 긴장하고 있는지 괜히 손을 매만지고 있었다.
지금 이 대기실 상황도 카메라에 다 찍히고 있기 때문에, 이안이 김희상에게 말을 걸었다.
“다들 엄청나시네요.”
“그러게 말이다. 특히 박성수, 저 친구가 상큼한 컨셉이라니 상상이 잘 안 되는군.”
“저희가 밀리진 않겠죠?”
“우리가?”
김희상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아위가 미리 준비해 둔 춤을 완벽하게 따라 했었다.
아위도 그의 춤 실력과 익히는 속도에 꽤나 놀랐었다.
“걱정하지 말게, 나는 자네들을 믿어.”
아위가 고개를 돌려 김희상을 바라봤다.
“남들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무대를 어떻게 완벽하게 할지, 그것만 생각해.”
“…선생님!”
조태웅이 흡 숨을 삼키며 김희상에게 기댔다.
김희상은 껄껄 웃으면서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김희상은 아위와 함께하면서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음악에 대한 가치관에 그들을 손자처럼 대했다. 요즘 애들답지 않은 예의 바르고 진지한 청년들이었다.
(네! 다음으로 파워풀한 13인조 보이그룹! 엠오엠입니다!)
엠오엠이 우르르 들어가자 스튜디오가 꽉 차는 느낌이었다.
(엠오엠과 함께하는 전설! 이성호 선생님입니다!)
이성호는 부드러운 남성미를 컨셉으로 박성수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던 가수였다.
[다들 쎈데?]지금으로 따지면 박성수와 이성호는 팬덤형 가수였고, 김희상은 음원에 치중된 대중형 가수였다.
(그리고, 3인조 발라드그룹 트리플맨!)
“이쪽은 가창력 쪽인가 보다.”
이주혁의 말에 이어 모니터에선 전설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가왕! 김정순 선생님입니다!)
“와….”
“장난 아니네요.”
“피디님은 저분들을 어떻게 섭외하신거지?”
씨디 씹어 먹는 가창력으로도 유명한 김정순은 아직도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 OST를 부르며 건재함을 알리고 있었다.
“슬슬 스튜디오 앞으로 가실게요.”
스태프의 말에 모두가 일어났다.
다들 저 네 팀이 끝인 줄 알고 서로의 근황이나 무대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아위와 김희상이 난입할 예정이었다.
“와 떨린다.”
김희상은 같이했던 시간이 있어서 괜찮았는데, 다른 전설들 앞에 설 생각하니 손이 살짝 떨렸다.
아위와 김희상은 스튜디오 옆쪽의 검은 암막 커튼 앞에 자리 잡았다.
“사실 이분들이 끝이 아닙니다!”
“저희가 끝이 아니라고요?”
진행자 뒤의 커튼이 확 젖혀지면서 아위와 김희상이 앉을 자리를 카메라가 클로즈업했다.
“함께 할 다른 한 팀이 있습니다. 일단, 요즘 대세죠? 7인조 보이그룹 아위입니다!”
이주혁을 필두로 아위가 우르르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모든 출연자들이 박수로 맞이했지만 표정에는 얼떨떨함이 가득했다.
“안녕하십니까! 언제나 당신 곁에! 아위입니다!”
아위의 인사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13인조 엠오엠보다도 더 큰 소리였다.
아위가 진행자의 안내 끝에 자리에 착석하자 진행자들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이어서 아위와 함께하는 전설입니다!”
“전설이라 하면 이분을 빠질 수 없죠!”
“오랜만의 복귀를 드디어 저희 프로그램에서! 먼저! 선보이십니다!”
그들의 호들갑에 출연진들이 웅성거렸다.
“전설! 김희상 선생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