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36
36
전설과 함께. (2)
김희상 효과는 무대순서 제비뽑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김희상과 아위 팀! 순서도 마지막입니다!”
김희상이 뽑은 공에서 숫자 5가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아위와 김희상이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껴안았다.
경연은 마지막 순서일수록 더 유리했다.
“너무하네….”
“이거 조작하신 것 아니죠?”
이춘자의 말에 제작진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다들 연예계 대선배님이라서, 제작진들도 아주 공손했다.
“안 그래도 희상 선배님이랑 붙는데, 첫 번째 순서라니….”
이춘자는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힘 있게 일어났다.
핑키레이디와 이춘자가 무대로 향하고, 스튜디오 카메라 불이 꺼졌다.
“형님! 같은 프로 나오신다고 얘길 해 주시지!”
“오랜만입니다!”
원로 가수들끼리 저마다 대화를 시작하자, 아위도 양옆의 가수들과 다시 인사했다.
이안의 옆에는 플루토가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플루토는 고개만 까딱이고는 이안과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 대꾸해 주지 마.”
“우린 아티스트라고.”
플루토는 서로를 툭 쳐 가며 속삭였다. 그래 봤자 다 들리는데, 이거 들리라고 하는 소리 백 퍼센트다. 이안이 허- 숨을 뱉었다.
내로라하는 선배 가수 앞에 두고 이게 무슨 말이지?
‘벌써 ‘그 병’이 걸렸어?’
[MI엔터잖아. 루어 직속 후배라는 자부심도 있었고… 김승훈이 연애로 나가리 되니까 다음엔 자기네들 차례인가 싶나 보지.]데뷔 1년도 안 지나서 연애하더니, 이젠 아티스트 병까지 아주 난리가 났다.
저래 봤자 자충수일 텐데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그러면 뭐 하나, MI엔터 대표 푸쉬분쇄기가 되는데.]푸쉬분쇄기, 회사에서 작정하고 밀어주는 데도 못 받아먹고 분쇄해 버린다는 뜻이다.
‘부디 그 싸가지 영원하길 빈다.’
기대만큼 수익이 안 나오면야 좋지. MI엔터가 망하면 이안이야말로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물론 그룹 하나 못 띄웠다고 망하진 않겠지만.
“자, 그럼 첫 번째 순서 핑키레이디와 이춘자 선생님의 팀입니다!”
“무대 보시죠!”
핑키레이디의 소식에 이름도 모를 플루토 세 명이 고개를 확 들었다.
이주혁은 멤버들을 한 번씩 훑어보며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지?’
‘알지.’
그와 눈을 마주치는 멤버들마다 작게 끄덕였다.
핑키레이디와 이춘자의 무대는 섹시한 컨셉이라고 했다.
이때, 무대를 보는 태도와 표정이 중요했다.
절대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 된다.
좋아서 환호성 지르고 광대 주체 못 해 변태처럼 웃게 되면 어느새 카메라에 찍히고 고스란히 방송이 될 것이다.
특히 팬들은 ‘아, 쟤네도 결국 남자네.’ 하고 환상이 깨질 것이다.
‘우린 심각한 표정을 해야 한다.’
이에 이주혁이 제시한 해답은 바로 이거였다.
‘웃지 말고, 무대를 너무 잘 꾸민 경쟁자에 대한 우려, 걱정, 긴장이 들어가야 해.’
‘너무 목석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러면 뭐 어때, 우린 신인이잖아.’
신인 방패는 이때 써먹는 것이다.
나중 가서 반응이 왜 그랬냐? 하면 너무 긴장해서 그랬다라고 하면 된다.
어두웠던 무대에 핀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무대를 은은하게 밝혔다.
[어우야.]핑키레이디는 딱 달라붙는 짧은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그녀들이 살랑살랑 춤을 추자 스튜디오를 비명 같은 탄성이 메웠다.
특히 옆자리에 앉은 플루토의 반응이 너무 뜨거웠다.
‘뮤지컬 같네.’
트롬본 소리와 드럼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핑키레이디가 발랄하게 양옆으로 빠지니 이춘자가 등장했다.
이춘자가 노래를 부르면 핑키레이디가 춤을 추면서 코러스를 넣는 식이었다.
‘좀… 심심한데.’
보여지는 건 섹시하긴 했다. 하지만 노래 편곡이나 구성이 정적이었다.
이춘자의 트로트 창법이 묘하게 안 어울리기도 했고.
[한 방은 없네.]첫 번째 무대가 끝나고 의무적으로 박수를 쳤다.
“우리 플루토! 반응이 아주 뜨거웠는데 첫 번째 무대 어땠어요?”
“어… 되게 좋았습니다.”
진행자는 몰랐지만, 질문을 건넨 멤버가 하필 연애 멤이였다. 질문을 받은 그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곤 대답했다.
그리고 이 떡밥을 놓칠 방송국 놈들이 아니다.
“어? 얼굴 완전 빨개지셨는데? 두 분 무슨 일 있었나요?”
플루토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진행자는 더 캐묻고 싶었지만, 신인에게 너무 곤란한 질문을 하는 것도 역효과였다. 게다가 팬들 유난스럽기로 유명한 MI엔터 소속이니….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는 아위한테로 타깃을 돌렸다.
“그에 반해 이쪽은 되게 심각하시던데!”
“저희가 너무 긴장해서요. 너무 무대를 잘하셔 가지고….”
이주혁이 냉큼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춘자 선생님의 팀이 우승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우승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주혁의 단호한 대답에 진행자가 오오 탄성을 질렀다.
신인의 패기에 원로 가수들이 박수를 쳤다. 김희상도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무대는 가창력으로 승부를 보는 트리플맨과 김정순이었다.
“와….”
“장난 아니다 진짜.”
김정순이 도입부를 부르자 여기저기서 감탄했다.
방송국 음향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어서, 스튜디오에서 듣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는데도 전율이 이는 목소리였다.
‘이건 좀 아쉽네.’
현장에서 들었으면 더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이안이 소름 돋는 팔을 문질렀다. 무대 방청객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좋은 건 빨리 지나간다고, 제대로 감상하려니까 무대가 끝나 버렸다.
이안은 아쉬움에 박수만 쳤다.
진행자가 스튜디오를 둘러보다가, 이안의 근처로 다가왔다.
“아위의 이안 씨! 무대를 정신없이 보던데, 어땠어요?”
“정말… 최고였습니다. 같이 노래 불러 보고 싶어요.”
이안의 말에 앞에 앉은 김희상이 그를 돌아보았다.
“이안아.”
“당연히 우리 선생님이 0순위입니다.”
이안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의 급격한 태세 전환에 스튜디오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세 번째 순서는 플루토와 박성수였다. 이쪽은 상큼한 컨셉이라고 했었지.
‘실력은 좋네.’
플루토는 파스텔 톤의 의상을 맞춰 입고, 살랑살랑 춤을 췄는데, 춤 선이 도드라지게 예쁘긴 했다.
개개인으로만 보기엔.
[재미없다.]진이 비아냥거렸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플루토의 안무는 묘하게 한 명씩 안 맞아떨어졌다. 연습 부족인가 싶을 정도로 튀었다.
‘내가 연습생 때 저랬는데… 쟤넨 아직도 연습생 같네.’
[MI엔터가 예전 같지 않지.]‘그래?’
하긴 일회성 무대에 누가 열심히 연습하겠나.
그래도 원로 가수와 함께하는 무대인데, 성의가 없었다.
[거기 이사가 나와서 차린 게 MJ엔터잖아. 거기가 빵 떴어.]‘MJ엔터라면….’
김영준이 통수 치고 들어간 회사였다.
별개로 박성수의 상큼 컨셉은 충격적이어서, 스튜디오 반응은 아주 좋았다.
김희상도 하하 웃으며 무대를 감상했다.
“핑키레이디! 무대 어떻게 보셨습니까?”
[한 건 물었네.]진행자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핑키레이디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박성수 선생님의 변신이 아주 대단하세요.”
“현직 아이돌 같으세요!”
핑키레이디가 꺄르륵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이쪽은 데뷔 2년 차인데다가 교육을 잘 받고 왔는지 얼굴에 동요 한 점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노련하게 박성수 쪽으로 화제를 돌리자, 진행자가 아쉬운 듯 고개를 돌렸다.
네 번째는 엠오엠과 이성호였다.
엠오엠은 격한 아크로바틱 안무로 유명한 13인조 보이그룹이었는데, 역시 인원수가 많으니 무대를 꽉 채웠다.
“여기가 우리랑 겹치겠네.”
박진혁이 중얼거렸다. 한 무대가 끝나면 세팅 시간이 있었는데, 스태프가 트램펄린을 나르고 있었다.
“오?”
“우와….”
노래가 시작되자, 한 멤버가 백덤블링을 하며 시선을 끌었다.
무대 뒤쪽에 설치된 트램펄린 이용해 확 뛰어오른 엠오엠의 남은 멤버들이 안무 대형을 갖춰갔다.
그들은 밀리터리 룩을 갖춰 입고는 화려한 군무를 선보였다.
군무를 열심히 춘 그들이 상체를 확 숙이자 그 가운데서 이성호가 등장했다.
“와아!”
“쎈데?”
“언제 저 안으로 가셨지?”
깜짝 등장에 이어서 이성호가 폭발적인 고음으로 기선을 제압하자 아위 멤버들이 입을 떡 벌렸다.
“와, 우승하시겠는데?”
이춘자가 허탈하게 말했다. 방청객 현장 반응이 너무 좋았다.
[근데 후배 가수들은 노래를 잘 안 하네?]앞선 무대도 그랬고 지금도, 노래는 전설들이 도맡아 하고 후배 가수들은 보조를 맞추는 역할이었다. 그나마 트리플맨이 노래 지분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가 화려한 무대를 선보여도 백댄서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아위는 김희상의 파트 분배로 완벽한 컬래버레이션을 준비했다.
그걸 이안만 깨달은 게 아닌지, 다른 멤버들도 심각하게 지켜보면서도 왠지 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이렇게 파워풀한 이성호와 엠오엠의 무대가 끝나면서! 현장 투표 전에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선생님, 아위. 무대로 가실게요.”
무대 현장을 진행하고 있는 진행자가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형님 무대 기대하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선배님!”
“얘들아 화이팅!”
원로 가수들의 격려를 받은 아위와 김희상이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무대로 향했다.
“전설이라 하면 이분을 빠뜨릴 수 없죠!”
백스테이지로 들어간 아위가 둥그렇게 섰다.
무대에 오르기 전 팀워크를 단단히 하기 위해 으레 하는 구호 시간, 이번에는 김희상도 포함된 대형이었다.
“선생님, 한 말씀 하시죠.”
“그럴까?”
이주혁의 말에 김희상이 고민하다가 말을 했다.
“너희들과 함께해서 영광이란다.”
“저희가 더 영광입니다!”
아위의 우렁찬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는지, 관객석에서 웅성거렸다. 멤버들이 헙 입을 다물었다.
김희상은 귀여운 손자를 보는 듯 인자하게 웃었다.
“후회 없는 무대 하러 가자, 이상.”
김희상이 말을 마친 가운데 조태웅이 중얼거렸다.
“근데 우리 구호 어떻게 하지? 팀명을 미리 만들 걸 그랬나?”
“어떻게 하긴, 선생님도 아위하시면 되지.”
괜찮으시죠? 이안이 물으니 김희상이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혁이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후회 없는 무대 하러 가 봅시다. We are who we are?”
“AWY!”
“상!”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린 조태웅이 김희상 이름의 뒷글자를 불렀다.
“아위상? 괜찮은데?”
“나쁘지 않아.”
아위와 김희상이 하하 웃고는 덧붙였다.
“그럼 마지막 무대! 신인 보이그룹 아위와 함께하는 전설! 이분을 위해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은데요!”
피디의 손짓에 무대 현장 진행자가 말을 이었다.
“바로 전설! 김희상입니다!”
“우와아악!”
그 말에 방청객에서 경악의 소리가 퍼져 나갔다.
김희상이 누구인가.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이다.
모든 사람이 가요계 전설을 꼽는다면 바로 이 사람을 지목할 것이다.
“와 미쳤다.”
“여기 신청하길 잘했다 진짜.”
방청객석이 웅성거렸다. 다들 하나같이 상기된 표정이었다.
최근 6년간 아무 소식이 없어서 은퇴하는 줄만 알았던 김희상이 예상치 못하게 나온 것이다.
“헉!”
무대가 어두워지자, 관객들이 숨을 삼켰다.
은은한 바람소리와 함께 백 라이트가 은은하게 사람의 실루엣을 비췄다.
도망가는 사람, 그리고 그걸 쫓는 경찰 모자를 쓴 사람이 결국 멈춰 서서 손을 들었다.
탕!
총 모양을 만든 손이 위로 들리고, 무대 효과음이 방청객들을 놀라게 했다.
도망치는 사람이 털썩 쓰러졌다. 총을 쏜 사람은 그걸 보다가 뒤를 돌아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갓 쓴 사람이 터덜터덜 걸어온다. 걸음걸이에서 가벼운 리듬감이 느껴졌다.
갓 쓴 사람은 쓰러진 사람 앞에서 멈춰 그를 바라보다가, 쭈그려 앉아 쓰러진 사람의 눈을 감겨 준다.
그리고 다시 무대가 어두워진다.
3초 뒤, 모든 조명 켜지면서 무대를 비췄다. 쓰러진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한 사람.
넓은 갓의 챙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누구야?”
“후배 가수 아닐까?”
리듬감이 느껴지는 걸음걸이로 보니, 방청객들은 그가 젊은 사람이라 짐작했다.
이윽고 갓 쓴 사람이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이자, 방청객이 비명을 질렀다.
갓 쓴 사람은 김희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