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76
76
형들은 잘하잖아요
악수회는 개인 악수회, 단체 악수회와 유닛별 악수회로 나뉘어서 진행했다.
악수회도 팬과 가벼운 인사와 악수를 하면 바로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팬들은 행사장 바깥까지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안녕, 또 왔네요. 4번째인가?”
이안이 엄지를 접고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일본 팬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가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또 봐.”
“*고마워요.”
다음 회에 또 보겠군. 이안이 다음 순서로 들어오는 팬에게 인사했다.
이안은 이런 이벤트에 찾아오는 팬들이라면, 가수가 알아주는 것으로도 큰 보상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안은 와 주는 팬들이 실망하지 않게 진의 능력을 이용했는데, 예상보다 팬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이다. 이안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 사람은 처음이지? 아닌데, 얼굴이 익숙한데… 두 번째인가?’
[하이터치회 한 번 왔었어.]그렇다고 진의 능력에만 의지하는 게 아니라 그도 최대한 팬들의 얼굴을 외우려 노력했다.
“하이터치회 왔었죠?”
“헉! 어떻게 알았어? 대박!”
“와 줘서 고마워요.”
바다 건너 온 한국 팬은 옆으로 넘어가라는 스태프의 안내에도 미련이 철철 넘치는 표정으로 버티고 있었다. 결국 스태프가 살짝 밀치자 그녀는 이안의 손을 마지못해 놓았다.
“또 올게!”
그녀는 사실 비행기 시간으로 인해 다음 악수회까지 올 여건이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자신을 알아봐 주는 이안의 모습에 SNS를 열어 다음 악수회 티켓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비행기도 다음 시간으로 옮긴 그녀가 기분 좋게 웃었다.
* * *
“와 피곤하다.”
호텔 방으로 들어선 이안이 옷도 안 갈아입고 침대 위에 풀썩 누웠다.
“형 저 다리 부었어요.”
이안의 이번 룸메이트는 박서담이었다. 박서담은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의 종아리를 주물렀다.
“오래 서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
“근데 형은 팬들 진짜 잘 기억하더라. 어떻게 다 기억해요?”
이안이 멋쩍게 웃었다. 아직 진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 얼굴을 잘 외우는 편인가 봐.”
“형이 타고난 건가? 볼수록 신기하네.”
박서담이 부러운 눈으로 이안을 쳐다봤다.
“근데 아까 남팬 봤어요?”
“봤지.”
“그렇게 가까이 남팬을 본 건 처음이에요.”
“한국어 되게 잘하시더라.”
이안과 박서담이 동시에 하하 웃었다. 몸은 힘들어도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마음은 든든했다.
“형 먼저 씻어요.”
“그래.”
이안이 욕실로 들어가 씻는 동안 박서담은 핸드폰을 켰다. 능숙하게 자주 가던 커뮤니티를 살피는 박서담이 어떤 글을 보고
-애들 악수회 후기(+막내 위주)
나 서담이 팬이라서 서담이 위주 후기야!
사실 이시국이라 나도 가기 꺼려졌는데 애들 한국 활동 조금 하고 바로 월투하잖아ㅠㅠㅠ 여건상 팬싸고 월투고 내가 못 가는데 애들은 보고 싶고ㅠㅠ 그래서 최대한 거기서 돈 안쓰고 악수회만 하고 나와서 지금 공항이야!
서담이 오늘도 너무 귀엽고 상냥해ㅠㅠㅠ 서담이가 전에 분홍 니트모자 썼냐고 물어보는데 그거 나 맞아ㅠㅠㅠ 나 기억해주더라고ㅠㅠ
‘아 이분… 그분인가?’
타지에서 하는 팬 이벤트에 온 한국인은 기억에 더 잘 남았다. 박서담이 스크롤을 내렸다.
사실 아위가 라이징 아이돌로 급부상하게 되면서 박서담은 인터넷 반응 보기를 자제하고 있었다. 악플 봐서 기분 나쁘기 싫었고, 다른 멤버들보다 자신에 대한 언급이 적은 것을 보고 자격지심을 얻을까 봐 그랬다.
-사실 우리 애 기죽지 말라구 간 건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 서담이 일본에서 인기 많아! 줄 길게 선 거 보고 내가 다 으쓱해지더라! 향수 뭐 쓸까? 좋은 향도 났어!
└그래? 다행이다! 어디서 자꾸 막내 인기 없다고 티켓 미달일 거라고 긁어서 개스트레스였거든ㅠㅠㅠ
└까들이 어디서 발작버튼 눌렸는지 이유를 모르겠음
└열폭이지ㅇㅇ
└좋은 후기글에 좋은 소리만 하자ㅠㅠㅠ 후기 고마워! 나도 우리 애 보고싶어ㅠㅠㅠ
열 개의 좋은 말보다 한 개의 안 좋은 말이 더 기억에 남았던 박서담은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을 받았다.
‘생각해 보니 가수가 욕을 먹으면 팬들도 같이 욕먹는 기분이 들겠구나?’
법적인 잘못도, 도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유 없이 욕을 먹는 게 연예인이다. 당사자 외에도 이유 없이 욕하는 말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뭘 해야 하지?’
박서담은 제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자신을 보며 좋아하는 사람들, 황송하다는 듯 손을 잡고 정말 팬이라고 수줍게 말을 건네는 팬들의 그 온기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형 다 씻었다. 들어가.”
씻고 나온 이안을 본 박서담이 벌떡 일어났다.
“형 나 노래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어?”
이안이 머리의 물기를 털다 말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갑자기? 지금?”
“지금도 좋고… 형 편할 때요.”
“왜 노래를 배울 생각을 했는데?”
박서담이 머뭇거렸다.
“형들 졸업식 때 제가 형한테 그랬었잖아요. 재주는 형들이 부리고 난 그룹 활동으로 떨어지는 돈만 벌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랬다. 하지만 사실은 노력하기 싫어서 도망쳤던 게 아닐까?
박서담은 문득, 얼마 전에 회사를 옮긴 블랙러시의 김영현이 생각이 났다.
“근데 그 생각이 잘못된 거 같아요. 데뷔했다고 안심했는데 솔직히 데뷔가 끝인 게 아니잖아요.”
박서담은 이제 적당히 돈만 벌면 되는 가수가 아닌, 팬들에게 떳떳한 가수가 되고 싶었다.
“좀만 생각해 보면 형한테 말했던 게 대충한다는 거랑 다를 게 없는 거 같아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가수가 대충하게 되어 버린다면, 그 대충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팬들이 뭐가 되겠나. 이안이 일리 있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실 저는… 저는 영현이 형처럼 되기 싫어요. 영현이 형이 들으면 속상하겠지만….”
박서담은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 주길 바랐다. 능력 없는 자신을 탓하며 도망치듯 다른 회사로 옮기기 싫었고, 은퇴할 때까지 멤버들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안이 팔짱을 꼈다.
‘욕심이 생겼구나?’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다. 이안이 흐뭇하게 웃었다.
“근데 나한테 배울 게 아니라 어차피 회사에 보컬 트레이너 쌤도 있잖아.”
“형은 잘 부르잖아요.”
“잘 부른다고 잘 가르치는 건 아닌데…?”
“저보단 낫잖아요.”
묘하게 핀트가 엇나가는 대화에 이안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박서담은 갑자기 호텔 방 현관으로 향했다.
[뭐야, 쟤? 말하다 말고 어디가?]‘일단 따라가 보자.’
이안이 박서담의 뒤를 쫓았다. 저번 일이 있어서 그런지 복도에는 항상 경호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안이 경호원에게 인사하는 사이 박서담은 옆 숙소 방문을 노크했다.
“형형형! 형들! 문 열어 봐요!”
그 방은 김 현과 김주영의 방이었다. 김주영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문을 열었다.
“병병병! 저 쿵철인데요~ 뭐야? 뭔 일 있어?”
“형들 저 춤 좀 가르쳐주세요! 빡세게!”
“갑자기 무슨 소리래?”
김주영이 이안을 쳐다봤다.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각 보니까 태웅이한테는 연기 가르쳐 달라고 하겠고, 진혁이 형이랑 주혁이 형한테는 작곡 작사 가르쳐 달라고 하겠지?’
이안은 눈치 좋게 다른 멤버들을 불러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서담이가 중대 발표한대.”
졸지에 멤버 전원이 김주영과 김 현의 숙소 방에 모였다. 박진혁은 입을 쩌억 벌려 하품을 했다.
“뭔 일이야? 서담이 왜?”
“사실은요….”
박서담은 자신이 느낀 심정을 가감 없이 얘기했다. 김영현처럼 되기 싫다는 직설적인 말에는 모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근데 굳이 우리한테 배울 일이 있어? 회사에 트레이너 쌤들도 있고… 위에 요청하면 다 들어주실 거 같던데.”
“형들은 잘하잖아요.”
“그… 건 그렇긴 한데.”
조태웅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겸손이라곤 없는 모습에 멤버들이 낮게 웃었다. 자존감 없는 모습보다는 저게 낫긴 했다.
“우리 한국 가면 바로 활동 들어가고 월드 투어도 돌잖아요. 그럼 시간이 없을 거 같아서….”
[굳이 아마추어한테 배울 필요가 있나? 월투 돌면 자연스레 실력 늘잖아?]‘그렇다고 하더라고. 돌아 본 적 없어서 모르지만.’
누구는 월투 돌고 나서 득음을 했다느니 춤 실력이 늘었다느니 한다지만, 이안은 기초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버릇 잘못 들면 위험하긴 하지. 처음부터 잡아 줘야 하는데… 그건 보컬 쌤이 더 잘 알 거 같고, 근데 내가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왜? 너 짬 좀 있잖아. 배운 대로 가르치면 되겠네.]‘그게 좀 애매해.’
이안은 망설였다. 김용민 시절 합치면 그도 레슨 받은 짬밥이 상당했지만, 누굴 가르친다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진의 말처럼 그가 배운 대로 가르친다고 쳐도, 그게 박서담에게 맞는 방식일까? 하면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형들 귀찮으면 할 수 없고요….”
박서담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지자 이주혁이 손사래를 쳤다.
“아냐 아냐 귀찮은 게 아니라…내 주제에 누굴 각 잡고 가르칠 만한 실력이 되냐 이거지.”
“주혁이 형 말이 맞아 나도 그래.”
이안도 덧붙였지만, 조태웅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아닌데?”
“이야 죠탱 저거 뻔뻔한 거 보소.”
김주영이 클렌징 티슈를 뭉쳐 조태웅에게 날렸다. 조태웅이 반격에 들어갔다.
“우리가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지 않아?”
휴지가 날아다니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이주혁과 박진혁은 서로 심각하게 말했다.
박서담의 간절한 눈빛이 쉽게 포기할 거 같지 않아 보였다. 이주혁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소리를 쳤다.
“우리 그거 하면 되겠네!”
“뭐요?”
“스터디 그룹.”
“오!”
멤버들이 박수를 쳤다.
“그거 좋은데? 기초는 쌤들한테 빡세게 배우고 우리끼리 복습하고.”
“가끔 스터디 하는 거 Y앱 방송으로 보여 드리면 컨텐츠도 뽑고.”
“스터디 그룹 과제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이튜브에 영상 올리기 이런 거도 좋겠다.”
“동수 형도 좋다고 허락해 줄걸?”
멤버들이 신나서 떠들었다.
“좋아, 다들 뭐 할래? 나랑 진혁이는 작곡 작사겠고, 주영이랑 현이는 댄스 2인조… 태웅이는 연기. 이안이는 보컬, 서담이는….”
“저도요?”
“그럼 너도 해야지 스터디 그룹이잖아. 우리 노하우만 쏙 빼먹으려고 했어?”
“어…? 아뇨? 그건 아닌데….”
박서담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형들을 가르칠 만한 게 뭐가 있지?
“서담이는 당연히 진행이지. 잘하잖아.”
“서담이한테 배우면 우리도 음방 엠씨 따낼 수 있나?”
“나 사실 엠씨 해 보고 싶었어.”
이안과 조태웅, 김주영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박서담이 환하게 웃었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래?”
“내일부터 하자 의욕 떨어지기 전에.”
“좋아요.”
이주혁은 노트북을 가져와 시간표를 만들었다. 점점 판이 커지고 있었다.
* * *
“스터디 그룹? 그래서 그거 때문에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네, 시끄러워요 형?”
“아니. 좋은 생각인데?”
“Y앱에서 팬분들 보라고 방송도 할 거예요.”
신나서 계획을 읊는 멤버들을 보며 박동수가 허허 웃었다.
알아서 콘텐츠도 뽑아 주고 팀워크도 향상시켜 준다는 데 매니저 입장에서야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싸우는 거보다는 사이가 돈독한 게 박동수가 맡기 편했기 때문이다.
‘얘네들 맡길 잘했네.’
심지어 자기들이 알아서 자기 계발을 하겠다는 데 말릴 리가 있겠나.
애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어른이라고 손가락 빨고 있을 수는 없지. 박동수는 핸드폰 메모장을 켜 ‘회사에 애들 트레이너 더 붙여 달라고 할 것’이라고 적었다.
“좋다! 진행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