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86
86
우리가 왜 은인이야?
소속사와의 소송 끝에 계약을 해지한 김용민은 군을 전역하고 계약할 소속사를 물색하던 와중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난 뭐 때문에 이렇게 연예계에 집착했지?’
그를 잡고 있던 하나의 끈이 툭 끊겨 진 느낌이었다.
이미 아이돌로는 재데뷔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고, 틈틈이 배웠었던 작곡이나 연기로 다시 도전을 하려 해 봐도 시간만 걸릴 뿐 소득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 엄마. 나 다시 내려갈게요….”
긴 연습생 기간이 아깝지 않다면 거짓이었다. 하지만 연예계에는 그보다 잘생기고 능력이 많은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 이제 와 다시 꿈꿔봤자 이거로 먹고살 만한 확신이 없었다.
“그냥… 이제 안 하려고요.”
김용민은 이제 그만 쉬고 싶었다. 남들 눈치 보면서 살기도 싫었고 늘 오던 팬이 날 떠나지 않았으면 생각하며 전전긍긍하기 싫었다. 무관심 속에서 어쩌다 댓글이 달려서 보면 ‘이건 무슨 듣보냐?’라는 댓글도 보기 싫었다.
“그냥… 난 연예인 하면 안 됐었나 봐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김용민이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 * *
3일간의 서울 콘서트가 끝나고, 텅 빈 무대 위에 사람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바로 공연 스태프들과 소속사 관계자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은 아위가 허리 숙여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위는 쉴 새도 없이 내일 바로 일본으로 출국한다. 멤버들은 텅 빈 공연장을 둘러보았다.
“되게… 허무하지 않냐?”
김주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함성 소리 들리는 거 같아.”
이주혁이 무대 위에 걸터앉자, 다른 멤버들도 그 옆에 앉았다.
“그런 거 있잖아. 명절에 큰 집 가서 다 같이 사촌들이랑 신나게 놀다가 집에 돌아갈 때 아쉬운 거. 딱 그 느낌이지 않아?”
조태웅의 말에 멤버들이 하하 웃었다.
“알지 알지.”
“비유 오졌다.”
박진혁이 바닥에 흩어진 종이 꽃가루를 한 움큼 쥐어 허공에 뿌렸다.
“그래도 재밌었어.”
“계속 오늘 같으면 좋겠다.”
꽃가루를 보자마자 팬들의 이벤트가 생각난 이안이 미소를 지었다. 팬들은 첫날과는 다른 슬로건 디자인과 문구로 남은 이틀간 깜짝 슬로건 이벤트를 했었다.
“…다음엔 더 큰 공연장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욕심일까요 형들?”
“고척! 잠실!”
“그 정도 되려면 마이디어급은 되어야 하지 않겠냐?”
“그 정도 클라쓰로 올라가면 되는 거 아니야?”
조태웅의 말을 마지막으로 멤버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 정도로 올라간다면 기분이 어떨까? 올라갈 수 있을까?
‘우리 그룹이 운이 좋긴 했지.’
‘프로젝트 아이돌’을 통해 데뷔한 아이원이 아이돌판을 휩쓸어 버리는 가운데 데뷔했지만, 우연히 입소문을 타고 유명 프로듀서의 곡을 받으면서 음원 1위까지 단기간에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첫 콘서트에 하루 약 7천 석이다. 3일 공연까지 합산하면 2만 석. 달마다 데뷔하는 그룹은 늘어만 가는데 개중에서 이 정도 규모의 공연을 하기까지 과연 ‘운이 좋았다’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할까?
이안은 왠지 이 이상도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할 수 있어.”
이안이 다시 말문을 트자, 다른 멤버들도 두 팔을 하늘로 뻗고서 외쳤다.
“할 수 있다!”
그 훈훈한 모습에 로드매니저, 김명진이 멤버들의 뒷모습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아위 공식 SNS에 올라갔다.
* * *
아위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바로 다음 날 일본으로 출국했다. 그들은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을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롱패딩 광고요?”
“어, P사 광고. 지면이 아니라 티비 광고야.”
바로 아위에게 교복 외에 다른 광고가 계약됐기 때문이다. 아이원이 연말에 해체를 하게 되면서 아이원과 계약 만료가 되는 광고 업체가 다른 광고모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걔네는 팬 장사로 매출 달달하게 뽑았을걸?]그리고 롱패딩뿐만 아닌 대부분의 업체가 아위의 소속사로 섭외 문의를 넣었는데, 아위는 월드 투어 중간중간 다시 한국으로 입국해 광고 촬영을 진행해야 했다.
“치킨 광고도 있어.”
“치킨!”
그렇게 바라던 치킨 광고도 할 수 있게 됐다. 그 때문에 아위의 비행기 일정을 다시 짜야 했지만, 소속사로서는 행복한 고민이었다.
“우리 인기 실화냐?”
“진짜 고척 가는 거 아냐?”
멤버들이 합리적 김칫국을 마시며 키득거렸다.
아위는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리허설에 돌입했는데, 이안은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속으로 감탄했다.
‘와… 여기 음향 좋다.’
[일본이 원래 음향 좋기로는 유명하지. 관객 호응은 한국보다는 별로지만.]리허설을 마친 멤버들이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여기 음향 쩔더라.”
“주혁이 형도 느꼈어요?”
점점 늘어 가는 실력에 자신감이 붙은 조태웅과 박서담이 핸드 마이크를 만지작거렸다.
“노래 할 맛 나겠는데?”
“기대된다.”
“아예 인이어 한쪽 뺄까 봐.”
다른 건 음향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에는 돌출 무대와 연결된 계단을 통해 2층의 팬들과 가까이 갈 수 있었는데 일본은 다른 시스템이 있었다.
“이게 움직여요?”
“오 신기하다.”
일본에서는 토롯코라고 불리는 바퀴 달린 간이 무대 같은 게 있었다. 이걸 타고 공연장을 돌면서 2층의 팬들과 가까이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래 부르다가 볼 던지면 된대.”
“아 그래서 사인하라고 했구나.”
“진심을 다해 던지지 말고. 살짝 던져라.”
“에이 설마 내가 그러겠어?”
너라면 그럴 거 같은데. 이주혁이 눈을 가늘게 떠 박진혁을 바라봤다. 그들은 토롯코를 타고 다니며 플라스틱 사인 볼을 던질 예정이었다.
“엠오엠 민후 형한테 들었는데, 무빙 스테이지라는 것도 있대.”
“그게 뭐야?”
박진혁이 본 무대 쪽을 가리켰다.
“저기 무대가 위로 떠서 스탠딩 관객석 위를 지나간다던데? 그래서 이 앞쪽으로 온대.”
“그건 좀 무서운데.”
갑자기 무대 무너지면 어떡해? 김주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근데 한번 위에 서 보고 싶긴 하다.”
“그런 거 있는 공연장은 규모가 크겠지?”
“도쿄돔…?”
점점 공연 욕심이 솟아나는 멤버들이었다.
* * *
일본 팬들은 개인 제작 슬로건보다 멤버들의 얼굴이나 이름이 박혀 있는 원형 부채를 더 많이 들고 있었다.
‘신기하다….’
이안은 바다 건너온 외국의 아이돌도 이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아직도 생소했다. 악수회나 하이터치회로 일본 팬들을 만났었지만, 그때는 면대면으로 만나 숫자가 잘 체감되지 않았다.
이렇게 한데 모아서 한눈에 보게 되니 한국 콘서트 때와 마찬가지로 꿈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은하수 같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응원봉의 불빛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았다.
* * *
도쿄 공연과 오사카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아위는 광고 촬영차 다시 한국으로 입국했다.
“얘들아!”
“여기 봐 주세요!”
어디서 입국 일정이 풀렸는지, 기자들과 팬들이 공항에 대기하고 있었다. 아위는 그들에게 손을 살짝 흔들어 보이며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지나쳤다.
“은인이네?!”
마침 어떤 연예인이 왔나 살피던 구경꾼들 중에 어떤 사람이 크게 외쳤다.
“은인이여?”
“맞네! 은인!”
주변에 서성거리던 어르신들이 자리에 멈춰 아위를, 특히 이안과 조태웅의 얼굴을 살폈다. 고개를 쭉 빼서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고, 심지어는 검지로 손가락질을 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왜 은인이야?”
“몰라?”
밴에 탄 이안과 조태웅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 * *
“얘들아 너넨 어쩜… 운이 이렇게 좋니? 잘했어.”
서수련이 기특하다는 얼굴로 이안과 조태웅을 바라보았다. 이안은 내심 기쁘지만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저희가 잘한 게 뭐가 있어요? 결국 그 선배님이 잘한 거지.”
조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아이돌로 만든 선배님인데 그 정돈 해 줘야죠.”
은인 사건은 이랬다. ‘트로트의 남자’에서 임태우가 결국 TOP3 자리를 거머쥔 것이다. 이안은 서수련이 보여 준 동영상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사실 제가 트로트를 시작한 계기는 따로 있어요.)
(어떤 이유였나요?)
(저는 아이돌로 데뷔는 했었지만 잘 안 됐어요. 인기도 별로 없었고…. 그때 있었던 소속사도 망하게 되면서 갈 곳이 없어졌었거든요. 도망치듯 군대에 갔었어요. 전역하고 나오니 변변찮은 재주는 없고 먹고는 살아야 했고…. 그래서 행사 바람잡이 MC로 생계를 이어 갔었죠.)
(그 시절 영상이 있습니다. 잠시 보시죠!)
임태우의 자료화면이 화면에 잠시 나오고, 그가 말을 이었다.
(행사 관계자에게 돈을 떼이고 좀 지친 날이었어요. 행사에 공연 왔던 아이돌 멤버가 저한테 다가오더라고요. 오더니 제가 다이아몬드 시절 뛰었던 행사를 보고 아이돌을 꿈꿨다고. 정말 팬이라고 하는 거예요. 눈물이 나오려고 했는데 꾹 참았죠.)
(그 아이돌 그룹이 누군가요?)
(아위요.)
아위의 무대 영상이 짤막하게 지나갔다.
(아 그분들 요즘 인기 장난 아니죠.)
(저를 보고 팬이라고 한 멤버가 태웅 씨예요. 아역으로 잘 나가던 친구가 나를 보고 아이돌을 꿈꾸다니 생소하고 기분도 좋고… 용기도 났었죠.)
그때를 떠올린 임태우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촉촉해졌다.
(그럼 예전 팬을 보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은 건가요?)
(아뇨. 그 뒤에 태웅 씨를 데리러 온 이안 씨가 저보고 노래 잘하시는데 트로트 해 보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권유를 하더라고요. 난 이제 선배님도 아닌데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부르면서….)
(그 친구들이 예의 바르기로 소문이 났어요.)
조태웅과 이안의 사진이 자료화면으로 나가고, 예능을 진행하던 진행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평소에 인사를 잘하면 이렇게 좋은 소리가 들려오는 법이다.
(제가 그 친구들한테 다음에 또 보자는 얘기를 못 했었거든요. 잘나가는 아이돌 후배랑 제가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싶어서…. 근데 이안 씨가 먼저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이러는데….)
임태우는 결국 눈물 한 방울을 얼굴에 흘려보냈다.
(진짜 드라마 같은 일이네요.)
(그래서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TOP3까지 올라서게 된 것도 그 친구들 덕분이에요. 어떻게 보면 은인이나 다름없죠.)
(그럼 이 기회를 빌어 아위에게 한마디 하시죠.)
(그럴까요? 어… 다음에 또 뵙겠다는 그 말 제가 지킬 수 있을 거 같네요. 꼭 봤으면 좋겠어요.)
이뿐만 아니었다. 임태우는 갑자기 인기가 급상승해 정신없는 와중에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빠짐없이 아위에게 영상 편지를 남긴 것이다.
(같이 예능 하고 싶은 연예인이요? 저는 아위요.)
(아위의 태웅 씨랑 이안 씨 꼭 보고 싶습니다.)
(같이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 역시 아위죠. 제 은인들.)
아위덤은 아위를 향한 임태우의 러브콜 영상을 모아 마이튜브에 올렸다. 댓글들 대부분이 어르신들이 작성한 향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준수한 얼굴과 실력에 중장년층의 인기를 쓸어 담고 있는 임태우가 꾸준히 은인이라며 아위를 언급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대중들의 관심도 아위에게 쏠린 것이다.
“지금 같이 예능 하자고, 광고 찍자고 난리야.”
서수련을 비롯한 직원들의 얼굴에서 기쁨이 가시지 않았다. 물론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임태우, 결국 해냈구나….’
진짜 성공해서 만날 수 있게 됐네. 이안이 기분 좋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