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9
9
저승사자의 경고가 이거였구나.
그런 사람이 있다. 자기주장 못하고 휩쓸리는 사람이. 김주영이 그랬다.
‘우리 주영이는 춤을 너무 잘 춘다’
‘주영이 가수 해 볼래?’
그저 남들보다 조금 잘했을 뿐인데. 부모는 기대와 관심을 주영에게 쏟았다.
맹목적인 믿음은 아이를 망친다. 더 버릇이 나빠지거나, 속으로 앓거나. 주영은 후자였다.
‘엄마 저 근데….’
사실 하기 싫다고 말을 못 했다. 떠밀리듯 정해지는 진로. 당연히 김주영의 의사는 없었다.
부담이 어깨에 짓눌리면서도 댄스 대회에서 상 같은걸 타 오면 주는 칭찬에 기분은 좋았다. 주영은 칭찬받고 싶어서 발버둥 쳤다.
‘뭐? 데뷔를 안 시켜 줘? 다른 회사 가자. 짐 싸!’
걱정의 탈을 쓴 부모의 말이 주영을 점점 옥죄고,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삭히게 된다.
‘우리 애가 뭐가 아쉬워서 평가에서 탈락되냐고요!’
‘아이고, 어머님. 진정하시고요.’
전 회사 대표에게 따지는 부모, 그리고 그걸 수근거리면서 쳐다보는 연습생들. 주영은 쪽팔려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리고 이 회사로 왔다. 소수정예로 꾸려진다는 데뷔조. 이미 걸러질 사람들은 걸러지고 남은 사람들.
처음에는 욕을 달고 사는 기가 쎈 연습생과 여자 연습생들한테 집적거리며 관심받으려는 천박한 무리들이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
가장 나이 많은 이주혁은 착하고 상냥했고, 눈치 없지만 그만큼 우직한 박진혁과 춤에 관해서 말이 잘 통하는 김 현. 서글서글한 조태웅과 야무진 동생 박서담까지.
김주영은 그 이후 이 아이들이, 이 회사가 좋아졌다. 부모에 떠밀려 했었던 연습생 생활은 어느새 진심이 되었다.
‘안녕, 김주영이라고? 나이는 몇 살이야? 오 동갑이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친했던 건 김영준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 뒤, 김영준은 다른 회사로 날아가 버렸다. 이미 데뷔 확정에 컨셉 포토까지 다 찍어 놓은 상태였었고 김영준 때문에 데뷔는 또 미뤄졌다.
‘엄마가 보니까 20대 초반에 데뷔하는 애들도 있더라.’
‘또 옮길까 주영아? 엄마가 듣기로는 저기 P엔터가….’
‘그만 하세요 좀!’
김주영은 난생 처음으로 엄마에게 소리를 친다.
부모의 선택에 따라 규모 있던 회사만 전전해 온 터라. 수많은 연습생들 중에서 정말 친해진 사람은 몇 없었다.
하지만 여기 오게 된 이후 다 같은 숙소를 쓰면서, 같이 수업을 듣다 보니 정이 들었다. 어쩌면 부모보다도 자길 이해해 주는 아이들이였다. 진짜 가족 같은 연습생들을 떠나기 싫었다.
그리고 최이안이 입사한다.
처음에는 잘생긴 얼굴 믿고 마냥 건방질 줄 알았다. 여태껏 그를 걸쳐 온 반반한 연습생들이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안은 오히려 예의를 차리며 부족한 실력을 메우려 노력한다. 김주영은 김 현과 함께 그를 성심성의껏 도와줬다.
잘생긴 애가 잘 따라오기도 하고 모난 데 없이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게 되니까. 이제 데뷔가 코앞이라고 생각했다.
‘와 나는 저 동작 하려고 한달을 걸렸는데.’
근데 김주영의 마음에서 자꾸 최이안이 거슬린다.
‘연습 더 안 해?’
‘어, 나 바로 레슨 있어.’
최이안도 어느 정도 잘 따라오게 되자 주어진 레슨 시간은 채우지만, 바로 연기 연습을 하러 간다.
‘너는 다 쉽구나.’
태어나길 잘생기게 태어나서 성격도 좋고. 노래는 원래 잘했고, 춤도 가르쳐 보니 잘 따라오는데 이젠 연기까지 잘한대. 어떻게 보면 찌질한 열등감 폭발일 수도 있다.
레슨이 끝나도 대본을 보며 연습하는 얼굴에 기쁨이 한가득했다.
‘넌 우리 데뷔보다 연기가 소중하구나.’
최이안의 압도적인 외모에 열등감이 생길 수 있을까. 하지만 같이 부대끼며 살아가면 상대방의 사소한 단점이 크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김주영의 경우는 다른 것보다 연기에 열중하는 최이안이 그랬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최이안을 살살 긁는 말을 한다.
그리고 김주영이 처음으로 하는 반항에 잠잠했던 부모가 다시금 그를 압박한다.
‘영준이는 오디션 프로 나가서 데뷔도 하던데, 너네 회사는 뭐 했니? 너라도 내보낼 걸 그랬어.’
‘지금이라도 옮기는 게 낫지 않을까?’
김영준의 부모도 한 치맛바람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김주영의 부모와 연락하게 되면서 그의 데뷔 소식을 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너한테 열폭한 거 맞고 화풀이 한 거 맞아. 그건 진짜 사과할게. 미안하다.”
“그래 주영아 잘했어.”
“사과하려고 했었어. 그동안 찌질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잘해 보자고.”
김주영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근데 전에 연습실 문 열려 있어서 너 부르러 갔는데 니가 음악도 없이 동작 연습을 하고 있더라?”
“…그래서?”
“동작이 꼬이는지 몇 번 하다가 드러눕길래 도와주려고 들어가려는데 니가 혼잣말로 그랬잖아.”
“그건….”
이안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랬다. 그날따라 동작 연습이 잘 안 되길래 자포자기 심정으로 드러누웠었다. 그리고 그때 진이 말했었다.
[야 대충 따라가기만 해. 전체적인 그림만 안 망치면 돼.]‘그런가?’
[그래 어차피 아이돌은 거쳐 가는 거잖아. 데뷔하고 2년만 고생하면 돼.]그래, 그렇게 대답했었다.
“‘맞아. 안 되면 배우나 해야지.’라고.”
그게 이 싸움의 도화선이 된 것이었다.
“뭐? 그런 말을 했어? 최이안 이거 개쓰레기 아냐?”
“조태웅.”
이주혁이 싸늘하게 말했다. 조태웅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진지하게 내뱉은 말이 아닌, 허세가 섞인 다분히 가벼운 마음에 내뱉은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데뷔에 예민해진 김주영이나 다른 멤버들이 듣기엔 기분 나쁠 수 있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건….”
이안은 기분이 더러워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연습생 생활에 민폐 끼치지 않으려 적당히 따라가고 있었지 단 한 번도 이 그룹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미래엔 해외에서 잘나가게 된다니 얘들은 돈 걱정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해외 인기를 염두해 두고 데뷔하겠나. 당장 데뷔가, 국내 티브이에 한 장면이라도 나오는 게 소원인 애들인데.
같이 데뷔한다는 것에 기쁘기도 했지만, 기저에는 함께할 아이들을 무시하고 있었던 거나 다름없었다.
미래를 안다고 데뷔하지도 않은 소속 그룹의 한계를 미리 정해 버렸고. 같이 살아가려는 마음가짐 없이 혼자 살 길 찾는다고 미리 배우로 빠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도 데뷔가 간절했고, 데뷔 후에도 관심에 목말랐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걸 망각한 거다.
‘니들이 망한 건 니들 능력이 그것밖에 안 돼서 그래. 왜 내 탓을 하냐? 애초에 너네들이 잘했으면 회사가 이 지경까지 왔겠냐?’
이안은 다이아몬드 시절 소속사 사장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그 대표와 자신이 다른 점이 뭐가 있지?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야에 둥둥 떠다니는 카메라 하나가 보였다.
진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팝콘을 들고 흔들고 있었다. 붉은빛이 깜빡거리며 기묘한 아지랑이가 진을 감싸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진이 저 모습일 때마다 감정이 격해지는 기분이 들었었다. 진이 이안에게 무언가 영향을 준 게 분명했다.
물들지 말라던 저승사자의 경고가 진에게 물들지 말라는 뜻이었구나. 이안은 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었다.
“그건 내가 생각이 짧았어. 미안하다. 형들도요.”
이안이 하나하나 눈을 맞춰 가며 사과했다. 마지막 차례는 김주영이었다.
“진짜 미안하다.”
“…그래.”
“그거 속상했으면 당장 나한테 얘기를 하지. ‘너 뭐라고 했냐?’ 하고 때려도 인정이었는데.”
상정해 놓고 있었어야 했다.
“너 단역 출연하고 어땠는지 알아? 내가 여태껏 쎄하게 굴었는데도 좋다고 와서 거기가 어땠니 선배님이 그랬고. 감독님이 어쩌고.”
“아….”
“너가 우리들이랑 있을 때 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고.”
“그건….”
“내가 그 앞에서 어떻게 터놓고 말하냐? 분위기 이상해지잖아.”
다 터놓고 남자답게 얘기 한다는 건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여린 감수성은 생각 못 할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괜히 너 건드렸어. 변명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잘했다는 것도 아냐. 근데 그냥….”
김주영이 서러움에 다시 울먹거리자 이주혁이 분위기를 환기했다.
“주영아, 이안아. 이제 다 풀린 거지?”
“…네.”
종지에 뿌애앵 울어 버린다. 지뢰인 줄 알았는데 그냥 소화전이네 이거. 멋쩍음에 이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
이주혁은 김주영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을 이었다.
“일단 전부터 눈치 채긴 했었는데 내가 신경을 못 썼네. 나도 미안하다. 내가 중재 했어야 했어.”
“에이. 이제라도 풀렸으면 됐죠.”
박진혁의 말에 이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착잡한 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얘들아 이미 우린 팀이야. 데뷔도 얼마 안 남았는데 우리끼리 견제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우린 당장 쟤네 같은 애들을 신경 써야 한다고. 아씨 김영준! 서담아 티비 꺼라!”
“넵 형님!”
이주혁이 말하는 사이 김영준이 분위기를 못 읽고 티브이에서 튀어나왔다. 아이원의 화장품 광고였다. 부처같던 이주혁의 그라데이션 분노에 서담이 쫄아서 당장 티브이를 껐다.
“이안이도 그런 가벼운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물론 너 연기하는 거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게 아니야. 너라도 인지도 높이면 좋지. 그래도 그룹을 우선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지?”
“넵.”
이안이 넙죽 대답했다. 그도 반성하고 있었다. 데뷔도 안 했는데 배우병에 걸려 버렸다. 쪽팔리고 낯부끄러웠다.
“그래. 그리고 너네들도 조심해. 자꾸 이안이한테 다른 회사 안 갈거냐고 개소리하지 말고.”
“네엡… 근데 어쩔 수 없어요. 다 쟤가 잘생긴 탓.”
“태웅아.”
“헙, 네 알겠습니다.”
그들이 생각해도 잘한 행동은 아니었다. 최이안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외모인 덕에 생긴 단점이었다.
아무리 동종업계 사람들 중에 얼굴천재가 널렸다고 해도. 그들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지 같이 부대끼며 살면 느낌이 다르다. 그것도 특히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연예인이 될 사람들끼리는.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최이안은 우리랑 같은 부류가 아니다. 아예 다른 인종이다.’라고 생각하며 선을 그었던 것이다.
“맞아 내가 잘생긴 건 나도 아는데 그거 가지고 선 그으면 섭섭하지.”
“야 어쩔 수 없어 너는 얼굴이 설득력이란 말이야.”
이안이 분위기를 환기하려 자뻑했다. 조태웅이 맞장구쳤다.
“그리고 아무리 연습생 계약이래도, 계약이 장난이냐? 맘대로 파기하고 나가게?”
“그건 맞는 말이지.”
소속사 이사의 끝판왕 김 현이 다 식어 버린 치킨을 뒤적거렸다.
“아 근데 치킨 다 식었어요. 어떡해요, 주혁이 형? 전자레인지 아직 안 왔는데.”
“다시 시키죠, 형. 내가 쏜다.”
“돈이 어딨냐? 너 엄카 못 쓴다며.”
이안이 주머니에서 카드를 스윽 꺼냈다.
“구라지, 인마.”
“아. 최이안 저새끼, 아주 입만 벌리면 그짓말이여.”
“야 내가 언제 구라쳤어?”
이안이 조태웅의 목을 감싸 헤드록을 걸었다. 조태웅이 우스꽝스럽게 켁켁거렸다. 주변 아이들이 하하 웃었다. 울었던 김주영도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음음. 그래.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지.]조지라고 할 때는 언제고 펼쳐진 청춘 드라마의 현장에 진이 렌즈를 끄덕인다.
‘너 나한테 뭐 했냐?’
[어쨌든 잘 풀렸잖아.]이안은 진에게 할 말이 많았지만 꾹 참았다. 화를 내도 나만 열받고, 잡히질 않으니 때릴 수도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줄 잘 잡고 있어야지.
‘나 이제부터 진지하게 하려고.’
[뭐를?]화를 참은 이안이 조용히 다짐했다. 같이 할 아이들의 간절함을 무시하지 말자고. 안 된다고 미리 단정하지 말고 일단 노력해 보자고.
그가 합류하면서 이 그룹의 미래는 이미 달라졌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