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98
98
쟤 너 남팬이잖아.
데뷔조에 든 연습생들은 무대 위 계단을 올라갔고 그 꼭대기에 위치한 왕좌같이 꾸며진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탈락자들은 계단 밑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었다.
몇 걸음이면 닿을 거리지만, 한없이 멀다.
멘토석에 앉아 그 현장을 지켜보던 이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신경 쓰여서.’
방청객이 공연장을 빠져나가고, 무대 위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무대 쪽으로 가도 되죠?”
“*네. 무슨 일로…?”
“*그냥… 위로요.”
이안은 제작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습생들 앞으로 갔다. 이안을 전담하는 동시통역사와 VJ가 그의 뒤를 따랐다.
이안이 가까이 다가오자, 연습생들이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우선, 최종 9인에 든 연습생분들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충분히 데뷔할 자격이 있어요.”
먼저 9인의 데뷔조를 훑어본 이안이 그녀들을 격려했다.
“*밀려드는 스케줄에 기쁘기도 하겠지만, 앞으로 힘들고 지친 일이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라면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어요. 자신을 가지세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쯔쉬에는 최종 데뷔조 9인 사이에서 거의 통곡하듯이 울었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연습생 생활만 5년, 그리고 데뷔했지만 무명과 같았던 긴 시절 끝에 마침내 노력에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안은 고개를 돌려 데뷔조에 들지 못한 탈락자들을 바라봤다.
“*안타깝게 데뷔조에 들지 못했지만,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실망하지 말아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기회는 얼마든지 찾아올 거예요.”
프.아가 끝나고 이십 대 후반이었던 김용민 때와는 달리, 나이대도 어려서 다시 아이돌을 도전할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운도 실력이라 생각하는 요즘 사회에서 운이 나빴다고 치부하기엔 억울한 생각도 들 것이고,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그때 왜 나는 실력이 없었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지나간 과거에 후회하고 자책하는 나날들도 있을 테죠.”
동시통역사가 바쁘게 이안의 말을 전했다.
“*그 생각들은 여러분들의 성장을 방해할 겁니다. 그리고 그걸 이겨 내냐 마느냐는 여러분 마음 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
“*이 프로그램을 발판 삼아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저는 여러분들이 충분히 노력한 것을 알고 있어요. 그동안 열심히 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
“*그리고 저도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던 여러분들과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이안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진심으로 전하는 위로에 연습생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양자링이 다가와 안아 달라며 양팔을 벌렸지만, 좁아지는 거리에 이안이 무심코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댔다.
‘아차….’
애써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수습했지만, 그 때문에 다른 연습생들을 막지 못했다.
순식간에 그의 곁으로 몰려온 연습생들, 심지어 최종 데뷔조에 오른 연습생들까지 쪼르르 그의 곁으로 다가와 눈을 반짝 빛냈다.
‘에라 모르겠다. 프리허그 하는 셈 치자.’
이안은 다가오는 연습생들 한 명 한 명씩 가볍게 위로의 포옹을 했다.
다른 멘토들도 무대에 올라와 위로를 건네고, 연습생들과 악수를, 포옹을 했다.
-지금 중국에서 난리난 우상유니 비하인드
(링크) 연습생들 위로하는거 감동이라고 현지에서 반응 좋대
└ㄹㅇ?
└와 근데 진짜 잘생겼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잘됐어?
└└저거 연습생 투표수 억대로 넘어감;; 게다가 전체 표수가 아님;;;
└궁금해서 가봤는데 실검에 계속 박제되고있음
-아위 최이안 우상유니 유교맨 정리.jpg
(사진) 연습생이 포옹해달라고 다가오는데 이마 잡는거봐ㅋㅋㅋ자기도 놀라서 머리 쓰다듬는거로 수습함ㅋㅋㅋㅋ
(사진) 근데 다같이 달려들어서 무용지물됨ㅋㅋㅋㅋㅋㅋ
(사진) 그도 어쩔수없는 한국 아이돌이었습니다ㅋㅋㅋ
└뭐지? 결계인가?
└필사적으로 막는 거 봐라ㅋㅋㅋㅋㅋ
└표정봐ㅋㅋㅋㅈ됐다라는 표정인데?ㅋㅋㅋㅋㅋㅋㅋㅋ
└아씨 개웃기네ㅋㅋㅋㅋㅋ
└얼마나 팬들 눈치를 보면 저러냐?
└└갑분 팬덤 회초리질 무엇?
└근데 어쨌든 다들 안아주긴 함ㅋㅋㅋㅋ키차이 덩치차이봐 개설렌다 존나스윗ㅠㅠ
* * *
중국 스케줄을 마친 이안은 곧바로 한국으로 귀국했다. 출국장을 나와 도로로 나오니, 로드매니저 김명진이 밴을 운전해 이안의 앞에 정차했다.
“잘 왔다. 피곤하지?”
“괜찮아요. 바로 연습도 들어가야 하고… 형도 잘 지냈어요? 우리 멤버들 연습실에 있죠?”
“응, 회사에 내려 주고 오는 길이었거든.”
조수석에 탄 박동수가 김명진에게 물었다.
“별일은 없었어?”
“네, 여기서도 이안이 반응 좋던데요?”
잠시 눈을 붙이려던 이안이 벌떡 일어났다.
“그래요?”
“어, 새벽에 아위 팬 사이트도 터졌어. 커뮤니티 반응도 좋고… 이사님이 앨범 선주문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으시던데?”
“진짜요?”
이안이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연습생들을 가르치는 동안 앨범 준비에 소홀할 수도 없어서 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이다.
‘다음 앨범에는 좀 기대해 봐도 되려나?’
이안이 희미하게 웃었다.
* * *
회사에 도착한 이안은 곧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멤버들은 이미 한바탕 연습을 끝냈는지 저마다 연습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 왔어.”
이안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 그를 반겼다.
“최 선생! 최 선생이다!”
“최 멘토! 기념품은 사 왔겠지!”
좀비처럼 기어서 이안에게 온 멤버들을 보며 이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씨 깜짝이야. 기념품은 없어, 까먹었어.”
“왜!”
“오지게 바빠서 챙길 시간이 없었어.”
‘사실 코로나 때문에 찝찝해서 안 사 온 거지만….’
이안의 대답에 조태웅이 능청스럽게 제 양팔을 감쌌다.
“사랑이 식었어….”
사랑이라니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는거지? 이안은 토하는 시늉을 하며 조태웅을 밀어냈다.
“이안이 왔으니 한번 맞춰 볼까?”
이주혁이 벌떡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다. 며칠 뒤에는 바다차트 어워즈가 있었다. 게다가 새 앨범 준비까지…. 짧은 시간 안에 시간 차 안무를 맞춰 봐야 해야 했다.
“너 동선은 알지?”
“대충은, 근데 내 역할 했던 애 누구야? 잘 추던데.”
“우리 연습생 중에 잘하는 애로 뽑았어. 어차피 걔네가 우리 백업 댄서 할 거기도 하고….”
김 현의 대답에 김주영이 이어서 말했다.
“너 연습하라고 보낼 영상 찍는다니까 다들 저요저요! 하면서 자원하더라? 애들 너 되게 좋아해. 우상유니 인터넷에 떠돌던 영상도 다 봤대.”
“그래? 연습이나 하지 그걸 왜 다 챙겨 보냐….”
그러면서도 쑥쓰러워서 볼을 긁적였다.
동선에 맞춰 자리를 찾아간 멤버들이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안무를 맞췄다.
“아, 좀 어긋났다. 다시 하자.”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고 역시 안무가 미묘하게 어긋났다. 심지어는 동선이 꼬여서 중간에 부딪친 적도 있었다.
“다시.”
이주혁이 고개를 기우뚱 하더니 다시 음악을 틀었다. 그 뒤로 네 번을 연속으로 춤을 추던 멤버들이 힘들어서 숨을 헥헥 내뱉었다. 이안은 괜히 미안해져서 바닥에 엎드렸다.
“미안, 나 때문인가 봐.”
“아냐 사실 우리도 너 없다고 대충 하긴 했어.”
“진짜 미안 내가 점심이라도 살게.”
“일단 한 번만 더 해보자.”
이주혁이 다시 음악을 틀었다. 이안이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 보며 춤을 췄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맞아떨어지는 안무에 이안의 표정이 밝아졌다. 음악이 끝나고, 이안이 양팔을 벌려 하늘로 쭈욱 뻗었다.
“됐다!”
“좋아. 이대로만 하면 되겠다.”
“한 번만 더 하고 진짜로 밥 먹자.”
“그래서 뭐 사 주실 겁니까 최 선생?”
순간의 우연일까 봐 이어서 다시 음악을 틀었다. 결과물은 완벽했다. 순식간에 표정이 풀어진 멤버들이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좋아 이제 밥 때리러 가자.”
“뭐 드쉴?”
“제육?”
후련한 얼굴로 연습실을 나서자, 누군가가 선망의 시선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바로 이 회사의 연습생들이었다.
“어, 안녕.”
이제는 익숙하게 연습생들의 인사를 받은 아위는 계단으로 향했다. 두 명의 연습생이 쪼르르 그들을 따라왔다.
“무슨 할 말 있어?”
“사실 이안이 형한테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
맨 앞에서 계단을 올라가던 이안이 뒤를 돌아 그들을 쳐다봤다. 연습생들이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려던 그때, 이안이 선수를 쳤다.
“설마 보컬 레슨을 해 달라는 건 아니겠지?”
“네, 그거요!”
“저희 좀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그 연습생들은 이번 정기 평가에서 보컬 쪽으로 혹평을 받은 연습생들이었다. 이안은 짧게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건 좀 안 될 것 같다.”
“왜요?”
연습생들이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이안을 쳐다봤다.
“우리 컴백도 얼마 안 남아서 시간도 없고, 내가 가르치면 너희들 보컬 선생님이 뭐가 되겠어?”
“그치만….”
“나보다는 보컬 선생님한테 집중적으로 봐 달라고 하는 게 나을 거야.”
강아지들 같은 모양새에 이안이 한숨을 푹 쉬었다. 우상유니는 아예 멘토로 섭외가 된 것이었지만, 그는 이 회사에 아티스트로 있는 것이지 보컬 레슨 선생님으로 있는 게 아니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얘들아 열심히 해.”
멀찍이서 지켜보던 이주혁이 이안의 등을 밀었다. 지상으로 나간 아위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두 명의 연습생들이 인상을 팍 썼다.
“아 뭐야 착하다면서.”
“존나 싸가지 없네.”
“우상유니는 뭐야 그럼?”
“걔넨 여자들이잖아. 여자 존나 밝히나 보지.”
“아 존나 더럽다.”
굽신거렸던 방금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두 명의 연습생들이 웃으면서 이안의 뒷담화를 까는 가운데, 그 상황을 몰래 엿보고 있었던 다른 연습생이 불쑥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 하냐 너네?”
“뭐… 뭐야 임노을, 여기서 뭘….”
“너… 너 다 들었냐?”
이안에게 보컬 레슨을 부탁했던 두 명은,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인성이 별로라고 소문이 난 요주의 인물이었다.
“까였다고 신나서 뒷담 까는 거 봐라 존나 어이가 없네?”
“뭐.”
“어쩌라고.”
순간 쫄았던 두 명의 연습생들은 인상을 팍 쓰고 임노을을 노려 보았다.
안 그래도 연습생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임노을은 온갖 연습생 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질투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 다 들었거든?”
“…니가 들었으면 어쩔건데.”
임노을이라 불린 연습생이 피식 웃고는 핸드폰을 흔들었다.
“그리고 영상도 찍었거든? 새끼들아.”
“야… 야! 임노을!”
“이거 들고 바로 팀장님한테 간다. 우리 회사 인성 보는 거 알지? 연생 짤릴 준비나 해라.”
핸드폰을 뺏으려 달려드는 연습생들을 가볍게 넘긴 임노을이 엘레베이터에 타고는 닫힘 버튼을 연타했다.
“야! 잠깐… 잠깐만!”
닫히는 엘레베이터 문 사이로 중지 손가락을 선사한 임노을이 씩씩거렸다.
* * *
그리고 혹시 몰라 진을 통해 그 장소의 상황을 보던 이안이 작게 인상을 썼다.
‘인성이 덜된 놈들은 어디에나 있지.’
이안은 진의 화면 너머 자신의 뒷담 현장을 발견한 것처럼 씩씩대는 임노을을 바라보았다.
‘얘는 왜 이래? 대변인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기분은 좋았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이안의 연습용 안무 영상을 찍는데 이안의 역할을 했었던 바로 그 연습생이었다.
[쟤가 여기는 왜 있대?]‘뭐야? 아는 애야?’
[쟤 너 남팬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