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15)
118화. 분타 붕괴
쾅, 콰앙!! 콰앙!!
시신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벽과 일행들을 상대로 격한 싸움을 반복한 후에도 여전히 여력이 남아있는 듯, 손과 발끝에서는 강기가 줄기줄기 뻗었다.
쿠구구구구구!!
벽과 천장을 마구 파괴한다.
앞서 일권으로 출입구를 무너뜨렸듯, 이내 삽시간에 공간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빨리… 찾아요!”
그때, 공손수의 외침과 함께 일행들이 사방으로 산개했다.
틀어막힌 출입구를 대신할 통로를 찾아보려는 듯했다.
좌우간 붕괴는 시간문제다.
‘막아야 한다.’
타앗!
이벽은 시신의 뒤를 쫓았다.
허나 더 이상 이벽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시신은 이리저리 날뛰며 공간을 부수는 것에만 치중했다.
후두두둑. 쿠웅!!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졌다.
연쇄적으로 무언가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굉음과 함께 실내에 먼지가 들어찼다.
시야가 급격히 흐려졌다.
으득,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붕괴를 막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정면으로도 애를 먹었던 상대가 마음먹고 달아나는 것을 뒤쫓아 제압하는 것은 지금의 자신에게는 불가능하다.
‘…약하다.’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라다.
쩌적, 쿠구구궁!
그때였다.
마침내 천장에 거미줄 같은 금이 그어지며 파편들이 우수수 불거졌다. 붕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으갸아악!! 이젠 끝이야!!”
“입 닥쳐요, 파 소협! 주둥이 놀릴 시간에 빨리 벽이라도 아무 데나 두들겨보란 말이야!!”
“…나무아미타불. 흑흑.”
“소저도 하지 마요! 무당의 제자가 왜 염불을 읊고 지랄이야!!”
“이, 일단 모두들 이쪽으로—!! 내 어떻게든 막힌 출구를 뚫어보겠소, 대주! 대주는 어디 있소?!”
뿌연 먼지 속에서 일행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소, 지금 갈 테니 낙석을 주의하시오!”
이벽이 즉시 답했다.
그리고 동시에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한 명의 목소리가 빠져있었다.
또한 공손수 역시 그 사실을 깨우친 듯했다.
“아, 맞다. 언니… 두고 왔다.”
“…….”
치익.
이벽은 발을 멈추었다.
그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앞서 공손수에 의해 구해지고 점혈을 당했던 언미희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었다.
쩌저적, 쿠궁, 쿠웅!
그때, 또다시 굉음이 울렸다.
언미희가 누운 자리 역시 붕괴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으며, 때마침 바로 위에서 사람 크기만 한 파편이 불거지고 있다.
타앗.
깊이 생각할 틈조차 없다.
이벽은 즉시 뒤로 몸을 날렸다.
쿠구구궁!
그리고 파편이 추락을 시작한다.
“크—”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남은 내력을 힘껏 쥐어짜며 전력으로 신법을 펼쳤다.
타앙, 이벽의 몸이 쏘아졌다.
허나 직감했다. 추락하는 파편에 비하면 턱없이 느렸으며, 이대로는 언미희를 구할 수 없다.
으득.
이벽은 다시 이를 악물었다.
애초에 선우세가의 경신공은 그저 검로를 보완하는 무공일 뿐, 그 자체로 대단한 공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득 후회가 스쳤다.
경신공을 소홀히 해선 안 되었다.
그저 검의 날카로움만이 강함의 전부가 아니다. 발이 느리다는 것은 때로 약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그리고 약하다는 것은 소중한 이를 지킬 수 없다는 뜻이다.
충분히 빨랐다면 언미희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며, 애초에 시신의 난동을 멈추어 공간의 붕괴를 멈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
이벽은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고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쩌저저적.
그 순간 선천의 힘이 갈라졌고, 이내 이벽의 의식이 다시 한번 목천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세상이 느려진다.
추락하는 파편들도, 이벽과 언미희를 찾는 일행들의 목소리도 서서히 느려졌다.
동시에 스스로 체감하는 경공의 속도 역시 함께 느려졌다.
뿌드드득.
이벽은 육신을 다그쳤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압박을 받은 허벅지가 팽팽히 부풀어 오르며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었다.
속도는 조금 빨라졌다. 허나.
‘…아직 모자라다.’
이벽은 손을 뻗었다.
이제 언미희는 불과 일 장 너머에 있었다. 허나 파편의 그림자가 이미 그녀의 위를 드리웠다.
쿠구궁!
이벽은 불현듯 두려워졌다.
—…그래도 제가 ‘할 일’이 있는 한 공자의 곁을 떠나진 않을 거예요. 이미 약속했잖아요?
이런 식으로 언미희를 잃을 수는 없다. 이벽은 그녀가 마음속에 퍽 깊숙이 자리했음을 깨달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벽은 속도를 갈구했다.
그러자 문득 목천의 영역으로 달아오른 이벽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잔영이 스쳤다.
—허헛, 허허헛!
그것은… 철면개의 스승이자 개방주이기도 한 늙은 거지 취풍신개의 헛헛한 뒷모습이었다.
천하십대고수임과 동시에 경신공으로는 견줄 자조차 거의 없다던 그 발걸음은… 과연 대단했다.
움직임은 허깨비와 같았고.
발걸음에는 소리조차 없었다.
다가섰다 싶으면 어느새 서너 장을 멀어져 있던 그 걸음은 마치 땅이 살아서 스스로 취풍신개의 몸을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허나 뿐만이 아니었다.
혜공선사의 암자가 위치한 절벽 아래에 도달했을 때, 늙은 거지는 마치 평지를 걷듯 절벽을 걸어오르기 시작했다.
용천혈을 비우고.
발바닥을 절벽에 흡착시킨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이벽으로 하여금 목천의 경지를 깨닫게 해준 단초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초절정이니 뭐니 해도 결국 자네와 내가 펼치는 무공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거든.
“……!”
다시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흡착’과 ‘밀어내기’ 역시 본질적으로는 같은 무학의 이론이 아닐까?
쿠구구궁!
생각은 거기에서 멈추었다.
목천의 영역으로 가속화된 생각 속에서도 더 이상의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후욱.
찰나의 순간, 이벽은 용천혈을 비웠다. 흡착을 일으키는 방식은 이미 한 번 따라해 본 경험이 있다.
터억.
이벽의 발이 그 즉시 멈추었다.
흡사 발바닥이 땅에 달라붙은 듯 단단한 흡착력이 느껴졌다. 이벽은 한계까지 흡착력을 바짝 조였다.
그리고.
터어엉!
일거에 해방했다.
쐐애애액!
“……!”
그 순간 이벽의 몸이 쏜살처럼 튕겨졌다. 그것은 앞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속도의 영역이었다.
콰아아앙—!!
이윽고 파편이 땅을 두드렸다.
“허억!”
등 뒤로 그 진동을 고스란히 느끼며 이벽은 숨을 들이켰다. 품 안에는 언미희가 안겨있었다.
다행히도 구해냈다. 하지만.
찌이잉.
일순 눈앞이 깜깜해졌다.
상단전이 통째로 경련하는 듯한 현기증이 일었다. 목천의 영역이 풀려나며 후유증을 일으킨다.
위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으, 으아악!! 오라버니이이—!!”
그때 저만치에서 공손수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퍼뜩, 이벽은 멀어지려던 의식을 붙들었다.
“…이쪽은 무사하다! 금방 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출구 확보에 집중해라!”
이벽은 힘껏 외쳤다.
쿠궁, 쿠구궁!
허나 괜찮지는 않았다.
두 발로 일어서자 어김없이 균형이 흔들렸다. 하물며 언미희의 무게 역시 함께 지탱해야 한다.
“허억, 헉!”
단내가 일어났다.
이벽은 숨을 몰아쉬었다.
검을 거둔 채 축 늘어진 언미희를 두 팔로 껴안았다. 먼지로 뒤덮인 시야 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걸음걸음이 천근과 같다.
크고 작은 파편이 사방에서 쏟아지며 온몸을 두들겼다. 이벽은 몸으로 언미희를 감쌌다.
그러나 전부 막아줄 수는 없다.
좌우간 빨리 일행에 합류—
후욱, 쿠구궁—!!
그때, 다시 굉음이 울렸다.
이벽은 고개를 들었다. 정수리 위에서 조금 전보다도 더 큰 파편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확인했다.
“…….”
—알겠지, 이벽? 첫 번째도 보신, 두 번째도 보신. 죽어라고 몸 사려라.
제갈소미는 그렇게 말했다.
따라서 쉽게 죽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경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벽은 언미희의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우우웅.
이벽은 내력을 끌어모았다.
이내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을 방향을 향해 언미희를 집어던지려던 그때였다.
콰아아앙!!!
머리 위에서 굉음이 터졌다.
떨어지던 파편이 산산조각으로 으깨어진 것이다. 자잘하게 쪼개진 작은 파편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
파편이 저절로 부서질 리는 없다.
그리고 흐릿한 시야 너머로 이벽은 엿볼 수 있었다. 머리 위로 예의 시신이 스쳐 지나갔다.
시신이 파편을 부수었다.
그것은… 마치 이벽과 언미희의 목숨을 살려 보내주는 듯한 행동이었다.
허나 이 붕괴를 일으킨 것이 그 자신임을 생각하면 퍽 모순적인 일이다.
물론, 이미 죽은 이에게 그러한 의식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그저 난동 중에 벌어진 우연이었을 테다.
후두둑, 후둑!
그때였다.
먼지 속에서 검 하나가 나타났다. 검끝이 태극을 그리자 이벽에게로 쏟아지던 먼지와 파편들이 일거에 쓸려 나갔다.
송영영의 모습이 나타났다.
덥석.
“이리 줘요! 무사는 개뿔!”
곧이어 나타난 공손수가 언미희를 빼앗듯이 넘겨받았다. 그리고 말없이 다가온 송영영이 이벽을 부축했다.
콰앙, 콰아앙!!
“커헉!, 크, 흐아아악!!”
“끼요오오오오오오오옷!!”
이내 출구 쪽으로 다가서자 철면개와 파진성이 괴성을 내지르며 막혀버린 출구를 파헤치고 있었다.
피를 토하는 철면개의 몽둥이가 사정없이 파편을 으깨고, 그 으깨어진 파편을 파진성의 검이 삽처럼 파헤친다.
허나.
쾅, 콰콰쾅!!
붕괴는 이미 걷잡을 수 없다.
천만다행으로 출구 쪽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지만, 결국은 시간문제일 뿐 끝끝내 안전할 리는 없다.
“…좀 늦은 것 같군.”
“아, 진짜. 오라버니까지 그런 말 하면 어떡해요. 다들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구만.”
공손수가 피식 웃었다.
“…네 말이 맞다.”
이벽은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설령 진짜로 출구를 파헤치기엔 늦어버렸다고 해도, 아직 살아있는 이상 마지막까지 그런 말을 해선 안 된다.
자신이 비룡대주이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발버둥이라도 치지 않으면… 사형제와 스승과 동생들을 볼 낯이 없다.
이벽은 다시 검을 꺼내 들었다. 철면개와 파진성의 작업에 합류하려 했던 때였다.
콰아앙—!!!
불현듯 막힌 출구가 터져나가며 뻥 뚫린 길을 드러냈다. 철면개와 파진성의 동작이 멈추었다.
공간의 바깥쪽에서 누군가가 막힌 파편들을 일거에 밀어낸 것이다. 어마어마한 공력이 아닐 수 없다.
“이보게들—!! 살아 계신가?!!”
늙수구레한 목소리가 외쳤다.
낯선 목소리였으나 철면개에게는 아닌 듯했다. 창백한 얼굴에 일순 화색이 돌았다.
“자… 장로! 누명개 장로님!”
탁, 타악! 탁!
그리고 뚫린 출구 바깥쪽에서 몇 명의 인영이 뛰어 들어왔다. 모두가 거지꼴을 한 사내들이었다.
“집의당주! 원 세상에, 내 늦어서 미안하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빠져나가세, 얼른!!”
타앗.
일행은 그 즉시 출구를 나섰다.
“…업혀 있어.”
이벽은 계속해서 송영영에 의해 부축되었으며, 언미희는 개방의 거지 하나가 받아들었다.
타다다닷!
일행은 빠르게 통로를 거슬렀다.
쿠구구구구.
붕괴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통로 역시 이미 무너진 것을 공력으로 뚫어낸 것일 뿐, 금세 재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타앙, 탕!
“핫, 차핫!!”
그나마 다행이라면, 몸도 마음도 누더기가 된 일행들을 대신하여 거지들이 앞장서서 파편을 쳐내고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이내 저만치에 통로의 끝이 보였고, 일행들이 처음 들어섰던 낡은 계단이 나타났다.
타아앙!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튀어 올랐다. 이내 일행은 지하에서 벗어났고, 바깥과 이어져 있던 예의 판잣집에 돌아왔다.
덜컹덜컹.
허나 그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일행은 문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으아, 눈부시다.”
공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동쪽 하늘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어느덧 밤이 지나고 땅 위로 양기가 충만한 시간이었다.
풀썩, 와르르르.
그리고 판잣집이 무너졌다.
“…….”
일행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생존의 실감은 서서히 찾아왔다.
털썩, 털썩.
그리고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땅 위에 무너져내렸다.
“살았다, 흑흑. 아미타불.”
주저앉은 송영영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