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23)
126화. 일보 전진 (1)
챙, 채앵!
남궁세가와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서로 미친 듯이 엉켜 들었다.
객잔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사방에서 검과 검이 얽혀들며 불똥이 튀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일 각 정도가 흐르자 서서히 치열함이 가라앉았다.
양측 무인들의 머릿속에 서서히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이렇게까지 싸울 일이 아니었다.
헌데 한순간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고, 눈앞의 상대가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처럼 느껴졌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양측의 무인들은 서로의 눈빛으로부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읽어내었다.
허나 일단 싸움을 시작한 이상 먼저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후로도 한동안 관성에 의한 지지부진한 싸움이 이어졌다.
물론, 그러한 생각을 한 것은 양측의 우두머리인 남궁청과 모용삭 또한 마찬가지였다.
채앵!
“큭.”
모용삭의 강렬한 일초에 남궁청의 몸이 훌쩍 밀려났다. 허나 모용삭은 뒤를 추적하지 않았다.
일부러 거리를 벌리고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
두 무인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늘한 눈빛이 오고 갔으나, 이내 남궁청이 허리를 숙였다.
“모용 대협, 미안하게 되었소.”
“…흥.”
철컥.
콧방귀를 뀌면서도 모용삭은 검을 거두었다.
강기까지 끌어쓰면서 싸우느라 서서히 힘에 부치던 찰나였다.
어찌 되었건 자존심을 지켰다.
남궁세가가 먼저 고개를 숙였고, 더는 몰아붙인들 실익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두머리들이 싸움을 멈추자 양측의 무인들 역시 하나둘 검을 거두고 물러섰다.
객잔 안은 탈력감에 휩싸였다.
“이런 개잡놈들이 감히……!”
빠드득, 모용삭은 이를 갈았다.
그제서야 겨우 사파의 애송이들이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췄음을 확인한 것이다.
뭐가 어떻게 된 노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더러운 말장난과 사술에 놀아나고 말았다.
물론 남궁청 또한 비슷한 생각을 했다. 허나 우선은 당장의 뒷수습이 먼저다.
양측은 다친 인원들을 추슬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실력이 비등비등하여 양측 모두의 부상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망자는 없었으며 중상자 역시 한둘에 그쳤다.
즉, 남궁세가와 모용세가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지 않았다.
“우리 남궁세가는 이번 일에서 빠지겠소. 말마따나 우리 책임이 크고, 무엇보다 공자의 상처가 퍽 위중하니 더는 추적을 할 수도 없을 것 같군.”
문득 남궁청이 말했다.
“피차 결례가 많았소만, 이 이상 문제삼는 건 서로에게 좋을 게 없을 것 같소.”
“…….”
순간, 모용삭은 생각했다.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다.
공적인 문제를 떠나, 감히 자신을 농락한 그 건방진 애송이들을 이대로 보내줄 수는 없다.
모용삭은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다친 놈들, 그리고 한 놈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나를 따라라! 더러운 사도 놈들을 쫓는다!”
* * *
타앗, 탓.
일행은 부지런히 내달렸다.
현내의 지붕을 타고 넘었다.
남궁과 모용의 무인들이 이성을 되찾기 전에 충분히 거리를 벌려둬야 한다는 제갈성의 말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허나 대낮에는 보는 눈이 많다.
또한 저 정도의 인원이 마음먹고 추적을 하려 든다면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일 테다.
“현 외곽에 은신을 위한 진법을 설치해두었습니다. 따돌리기 위한 잠깐의 눈속임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앞장서며 제갈성이 말했다.
일행은 잠자코 뒤를 따랐다.
“…진법이라.”
달리는 한편, 공손수가 말했다.
“놀랐네요. 그러고 보니 일전에는 제갈 소협의 솜씨에 취해 저희 모두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었었죠?”
“…아하하.”
제갈성이 어색하게 웃었다.
앞서 정파무림에 갓 발을 들였던 비룡대 일행은 항구에서부터 시작된 팽가의 습격을 피해 개방의 은신처에서 한숨을 돌렸다.
허나 제갈성은 이미 그곳에서 진법을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벽을 제외한 모두가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어쩜, 단순히 재우거나 하는 수준을 넘어 사람의 마음까지 조종하다니. 과연 제갈세가의 공부는 하늘을 찌르는군요?”
“그,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공손수의 날카로운 시선이 거듭 자신에게로 향하자 제갈성은 퍽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저… 순간적인 충동이나 마음속에 숨겨둔 감정을 ‘증폭’시킬 뿐이지요. 애초에 소저께서 양측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저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을 겁니다.”
‘…감정의 증폭이라.’
문득 이벽은 생각했다.
앞서 제갈성의 진법 속에서 이벽이 본 것은 처참하게 죽은 일행들의 환영이었다.
그것은… 분명 본래부터 자신 안에 자리하고 있는 공포였을 테다.
다만 그때와는 달리, 객잔을 중심으로 급조한 진법은 환영이 아닌 그저 일시적인 자극을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제갈성은 말했다.
“에이 모르겠다. 제갈 소협, 이제 와서 묻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왜 우리를 돕는 거죠?”
다시 공손수가 말했다.
“혹시 이대로 뒤를 따랐더니 심란한 진법들과 더불어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빼곡하게 포진해있다거나……?”
농담처럼 물었으나 뼈가 있었다.
“그,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애초에 저희 세가에는 그럴 만한 인력도 없구요…….”
흘끗, 제갈성의 시선이 철면개를 향했다.
앞서 제갈성은 언미희에게 패대기질을 당했고, 철면개의 몽둥이에 찜질을 당했었다.
“그저… 비룡대주께는 목숨 빚을 졌으니까요. 두 번이나 죽을 짓을 하고 싶진 않군요. 그리고.”
후우, 제갈성이 숨을 들이켰다.
있는 힘껏 경공을 펼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제갈성에게는 슬슬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어차피 우리 제갈세가는 이미 황보세가의 눈 밖에 난 처지이니까요. 모용이나 남궁이 공을 세우게 하느니, 차라리 ‘아무도 공을 세우지 못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죠.”
“…흐응.”
공손수가 다시 콧소리를 흘렸다.
“뭐,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네요. 다만 우리가 함부로 믿을 사이는 아니잖아요?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등 뒤에서 푹찍해 버릴 테니 주의해주세요~”
“아, 아하하…….”
삐질, 제갈성이 땀을 흘렸다.
뭐라 변명을 하고 싶지만, 기실 숨이 차올라서 더는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타닷, 탓.
“자, 이제 어쩔까요, 오라버니?”
반면 공손수의 목소리는 태연했다.
“솔직히 좀 꼽지 않아요?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하면 진짜로 이 이상 이 동네에 남아있을 이유가 있나 싶네요.”
“…그렇군.”
이벽은 답했다.
당초 소림을 나섰을 때의 생각과는 달리, 정도맹과 구 무림맹 세력의 비호를 받고도 의혈맹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오대세가까지 나타났다.
이쯤 되면 혈교의 추적을 계속 이어간다 해도, 굳이 무리해서 정파무림에 남아있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케케, 차라리 흑천방이 낫지 원. 산적토벌하려다 우리가 토벌당하게 생겼잖아?”
“누가 아니래요~ 송 소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파무림 분위기 대체 왜 이러냐구요?”
“…엮지 마.”
“아니, 그렇잖아요? 개방도들은 산적들을 쫓느라 바쁘니 이해는 해요. 하지만 의혈맹이 저렇게까지 안하무인으로 구는데, 이쯤 되면 정도맹이 한마디라도 거들어주면 어디 덧나냐구요?”
“…….”
일순 말문이 막힌 듯, 송영영의 표정이 퍽 복잡해졌다.
“…미안.”
“아니, 사과받자는 건 아니고요.”
“하지만 방법은 있어.”
“…네? 그건 무슨?”
훅, 송영영이 이벽을 향했다.
“대주, 이대로 무당으로 가자.”
“…….”
“가서 도호를 받고 내 사제가 되는 거야. 그러면 그 즉시 말코들이 떼거지로 일어나서 도와줄 거야. 감히 무당의 제자를 해치려 한 죄를 물어—”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는 건 참아줬으면 좋겠군.”
“쳇.”
송영영이 혀를 찼다.
그리고 이후로도 한동안 일행들 사이에서는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기 어려운 말들이 오고 갔다.
‘…이 분위기는 대체.’
제갈성은 내심 당황했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비룡대의 일행들 사이에서는 위기감이랄 게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뿐만이 아니다.
자신은 그저 달리고 있는 것만으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건만, 일행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즉, 내력의 차이는 명백했다.
‘전원이 이 정도라고?’
철면개와 비룡대주를 제외하면 그래봤자 후기지수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헌데…….
아니, 그러나 곧 생각을 털어냈다. 지금 당장 고려해야 할 문제는 그게 아니다.
마침내 일행은 현을 벗어났다.
목책의 문을 나서자 이내 제갈성의 눈앞 저만치에 익숙한 지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법을 준비해둔 지점이다.
“여, 여러분! 헉, 거, 거의 다 왔습니다. 저 앞에—”
탓, 타앗.
허나 그때였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일행이 문 바깥으로 나섬과 동시에, 목책을 뛰어넘은 일련의 무인들이 하나둘 땅 위로 착지한 것이다.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나?”
일행은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선봉에서 말을 꺼낸 것은 모용삭이었으며, 뒤를 따르는 것은 물론 모용세가의 무인들이었다.
큭, 제갈성이 침음을 삼켰다.
‘너무 빨랐다.’
어차피 따라잡힐 것은 예상했지만… 진법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모용세가와는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자신이 비룡대를 도왔음이 의혈맹 측에 알려져선 곤란했다.
“미안해요. 제갈 소협.”
그때, 공손수가 말했다.
“사실은요, 우리가 일부러 추적이 쉽게 오는 길에 발자국을 좀 남겼거든요~”
“그, 그게 무슨……?”
“뭐, 우리가 무턱대고 서로 믿을 사이는 아니잖아요? 기왕이면 탁 트인 곳에서 상황을 한 번 파악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요.”
“…….”
제갈성은 말문이 막혔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허나 공손수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다행이에요. 실은 진짜로 매복이 숨어있으면 골치 아플 뻔했는데, 소협께선 진심으로 우릴 도와주려 했던 거네요?”
“…….”
저벅.
그때, 모용삭을 비롯한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더러운 개잡놈의 사파들 같으니.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내 그 간악한—”
“아, 죄송한데요.”
공손수가 줄기줄기 섬뜩한 기세를 내뿜는 모용삭의 말을 끊었다.
“왜 여러분들밖에 없어요? 남궁세가는요?”
“…….”
꿈틀, 모용삭의 광대가 흔들렸다.
“…아무래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 같군. 왜, 아직도 우리가 네년의 세 치 혓바닥에 놀아나 줄 것 같나?”
“아뇨, 제 생각에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 대협 같은데요. 뭐지, 바본가?”
공손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모용삭을 포함해 모용세가의 고수는 모두 열 한 명이었으며, 걔 중에서도 절정을 넘어선 것은 모용삭 한 명뿐이다.
즉, 더는 열세가 아니게 되었다.
“어째 상황을 보니 굳이 따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 오히려 찜찜한데요. 남궁세가는 어디 간 거지?”
“…돌아가 보는 편이 낫겠군.”
“케헤헤. 그럼 됐네!”
파진성이 입술을 핥았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다.
일행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각자의 병장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제, 제정신입니까?”
한발 늦게 그 의미를 이해한 제갈성이 황급히 말을 꺼냈다.
“싸, 싸우려고요? 미쳤습니까? 상대는 모용세가의 정예입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강하다고 해도—”
“하지만 머릿수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심지어 지쳐 보이잖아요? 소협 덕분에 남궁세가랑 한 판하고 오느라 너덜너덜해 보이는데.”
“…….”
“뭐, 소협께 도우라고는 안 할 테니 걱정 마세요. 저희도 질 것 같은 싸움이면 굳이 안 하거든요.”
“그—”
제갈성은 말문이 막혔다.
“…웃음도 안 나오는군.”
그리고 모용삭이 말했다.
“도망치지 않는 기개만은 인정해주지. 허나 함부로 혀를 놀린 대가는 치러야 할 것이다. 계집이라고 해서 손속에 사정을 둘 시기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으니.”
“아, 네~”
“…….”
이벽은 모용삭을 바라보았다.
오대세가를 대표하는 고수라면 최소한 팽무옥보다는 강할 것이며, 독에 의존적이던 당청과도 비교할 수는 없을 테다.
하지만.
‘전혀 긴장되지 않는군.’
이벽은 내력을 일으켰다.
개방 분타에서의 일전을 돌이켜보면, ‘칼로써 벨 수 있는 상대’라는 것만으로 어쩐지 마음이 편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때마침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던 찰나에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철컥, 철컥.
이내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하나둘 검을 집는 순간, 이벽은 목천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새 이벽의 시간만이 느려졌고, 이벽은 빠르게 용천혈을 비웠다.
꾸욱.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벽은 흡사 발바닥이 땅 위로 달라붙는 듯한 감각이 휩싸였다.
‘나쁘지 않다.’
타앙!
다음 순간, 이벽은 땅을 박찼다.
“…허억!”
이벽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모용삭은 황급히 몸을 틀었다. 가히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얕았군.”
그리고 이벽이 말했다.
모용삭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벽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무, 무슨?”
푸우욱.
그때였다. 모용삭의 왼쪽 옆구리에서 한 박자 늦게 출혈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