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마음의 돌
“흐아암~.”
이진천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낚싯대는 계곡을 향해 완만하게 기울어져 있다.
앉은 자리 옆의 바구니 안에는 물고기 몇 마리가 파닥거렸다.
줄곧 지켜보고 있었지만, 언제 낚았는지도 모르게 물고기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뭐라고? 내공을 썼다고?”
“…잘 모르겠습니다.”
이벽은 답했다.
보름 남짓이 흘렀다.
혁대웅은 시간을 끌기 위해 범과 단독으로 맞섰고, 이벽은 촌장과 장석두를 마을 사람들에게 인계한 뒤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혁대웅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목도한 순간, 이벽에게서는 경신법, 그리고 청강유엽검식이 터져 나왔다.
말 그대로 ‘터져 나왔다’.
그것은 이벽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 순간, 이벽은 마치 내공의 상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고 몸은 당연하다는 듯이 초식을 펼쳤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잠깐에 불과했다.
이어지는 세 번의 초식.
그것만으로 이벽의 기혈은 메마르고 말았으며, 그 대가로 지난 보름간을 반쯤 앓아누워야 했다.
어쩌면 이진천의 의술이 아니었다면 이렇듯 털고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
“쓰면 쓴 거고, 아니면 아닌 게지 나에게 무얼 바라느냐? 칭찬이라도 해주랴? 잘했다, 막내야. 성취가 남다르구나~”
쏴아아아!
폭포가 떨어져 내렸다.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어, 낙룡폭포의 물줄기와 함께 부서지는 햇살에는 양기가 충만하다.
산천은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이벽은 여전히 어둠 속을 더듬는 듯한 기분이었다.
“벽아, 무엇이 그렇게 절박하냐? 응? 누가 널 당장 잡아죽인 대냐? 아니면 부모의 원수라도 갚아야 하냐?”
문득 이진천이 목소리를 조금 달리했다.
“설령 내력을 썼다 한들,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를 밟은 격에 불과하다. 그 경험에 지나치게 매몰되다가는 본질을 놓치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
“하아. 어렵구나, 어려워.”
이벽의 표정에 흐르는 절박함을 본 이진천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벽, 내공심법이 왜 내공심법인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느냐?”
“…그게 무슨?”
퍽 갑작스럽게 화두가 던져졌다. 얼마 전 그에게서 추궁과혈을 전수 받았던 때와 마찬가지였다.
“운기니 내공수련이니 하는 건 말이다. 결국은 마음의 문제다. 어떤 신공절학이건 마음으로 기를 움직이기 때문에 이름에 마음 심(心)자가 들어가는 게 아니겠냐?”
콕.
손가락이 이벽의 가슴을 찔렀다.
“앞으로의 성취는 네 마음에 달렸다고 나는 말했다. 그런 네 마음에 돌멩이가 박혀있는데 어찌 강물이 제대로 흐를 수 있겠느냐?”
“…….”
돌멩이.
이벽은 말문이 막혔다.
“나는 가르쳐줄 게 아무것도 없다. 아니, 사실은 이것저것 꽤 많지만, 지금의 너에겐 아무 의미도 없지.”
팽! 문득 낚싯대가 팽팽해졌다.
이진천의 시선이 다시 계곡으로 향했다.
촤악, 낚싯대가 쉬이 끌어 올려졌고 바구니에 물고기가 한 마리 늘어났다.
“물속은 읽어도 사람 속은 결코 알 수가 없다. 평생을 자기 마음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 인생일진데 어찌 남의 마음을 알겠느냐?”
후욱, 바늘이 다시 던져졌다.
“그러니 네 마음의 돌을 찾아내는 것도, 그 돌을 건져내는 것도 네가 아니면 아무도 해줄 수 없다.”
“…감사합니다.”
꾸벅, 이벽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이놈아. 먹고, 자고, 일하고, 놀거라. 정진하되 너무 고되지도 말고. 적당히 노닥거리기도 하고.”
씨익, 이진천이 웃음을 보였다.
이벽은 잠시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고수의 풍모, 도인의 현기, 그러나 대체로 시정잡배같이 경박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말마따나 그 속을 헤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사람을 따른 것이 결코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고 이벽은 생각했다.
“그래도 잘했다. 제법이더구나.”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이진천이 다시 말을 꺼냈다.
“…어떤 말씀이신지?”
“대웅이 말이다. 물론 어떻게든 죽게 놔둘 리는 없지만, 그래도 네 덕에 크게 다치지 않고 끝났구나.”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암, 제법이지. 수련과제라고 하나 내려준 것도 제대로 안 하면서 맡겨둔 내공 내놓으라는 되먹지 못한 제자 주제에 말이다.”
과제라고?
의아해진 이벽이 눈을 끔뻑거리자 이진천이 계곡의 하류 쪽으로 가볍게 턱짓했다.
이벽의 시선이 움직였다.
촤앗!
“앗! 차거! 윽! 잠깐!”
“꺄하하하! 죽어라, 이 자식!”
계곡의 하류에서는 낙검문의 어린 속가제자들이 물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문득 물가에 앉아있던 왕수련과 시선이 마주쳤다.
황급히 시선을 피하는 왕수련. 나란히 앉은 제갈소미에게 무어라 말을 꺼낸다.
“내 분명 너에게 속가제자들을 지도하라 했다. 그런데 고작 한 명이라니. 내 말이 장난 같더냐?”
“허, 허나 아이들이 원치 않아…….”
“쯔쯧! 아이들은 누구보다 마음에 정직하지. 너는 저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느냐?”
“…….”
일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에잉, 둔한 녀석 같으니. 잘 들어라! 대웅이나 소미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긴 하지만, 벌써 2년째라서 가르치는 내용에 슬슬 한계가 있다.”
훅, 이진천의 얼굴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게 무슨 뜻인지 아냐? 가르칠 게 떨어지면, 우리는 더 이상 관비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네 옷과 밥, 하다못해 목검까지 모든 게 거기에 걸려있단 말이다!”
“…….”
“검도도 좋고 무공도 좋다! 근데 밥 굶어보았느냐? 응? 칼밥 먹겠다는 놈이 어딜 고상하게 고객을 고르고 있냐?! 먼저 다가가서! 고개 숙이고! 모실 줄을 알아야지!”
대답할 말이 있을 리 없다.
그것은 과거 세가의 소가주였던 선우벽이라면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벽은 느끼고 있었다.
살아간다는 건 그 자체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는지, 날마다 새로이 놀랄 지경이었다.
“가라, 이벽. 도가 저기 있다.”
문득 이진천이 도를 말했다.
더없이 진지한 눈빛. 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벅저벅,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앞서 비무를 통해 장석두를 쓰러뜨린 이후, 이벽은 아이들로부터 줄곧 경원시 되고 있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서는.
“아, 아하하, 벽이 오빠!”
“잠시.”
왕수련이 말을 걸어왔으나 이벽은 손바닥을 보였다. 그리고 그녀를 지나쳤다.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파다다닷!
“으악!! 얘들아 저기 봐!!”
“으아아악!! 검괴가 다가온다!!”
“도망쳐!! 잡히면 죽는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아이들은 이벽을 본 순간, 일제히 물살을 헤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탁, 첨벙!
소년 하나가 발이 꼬여 넘어졌다.
이벽은 훅 다가가서 손을 뻗었다.
“으, 으으, 으아아……!”
“아이야, 검도를 아느냐?”
“사, 살려……!”
“하체가 부실하군. 스스로를 단련하고 싶지 않나? 이런 기회는 쉬이 오지 않는다. 만에 하나 자질이 있다면 기를 다룰 수도—”
“으아아아앙!”
휘익! 따악!
조약돌이 이벽의 뒤통수를 쳤다.
“야, 이 사이비 말코 같은 놈아! 잘 놀던 애들한테 왜 갑자기 영업질을 하고 지랄이야?!”
“그게, 문주님께서…….”
“문주가 뭐?!”
휙!
제갈소미의 시선이 위를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이진천은 없었다. 낚싯대도, 바구니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
이벽의 마음에 슬픔이 일었다.
* * *
휘익! 휙!
“죽어라, 이 검괴!”
돌멩이며 나뭇가지가 날아들었다.
물론 맞아줄 이유는 없으므로 이벽은 피하거나 쳐냈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계곡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
줄곧 이벽을 꺼려 하던 아이들이지만, 이벽에게서 반격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적극적인 배척이 시작된 것이다.
“그만해!! 이 나쁜 놈들아!!”
왕수련이 나섰다.
“보자 보자하니까! 야! 왕일상! 왕이강! 너희들 이따 집에 가서 아빠한테 다 이를 줄 알아!”
“메롱~! 어쩌라고~!”
“꼬우면 때려보든가~!”
아이들 중에서도 유독 집요하게 돌을 던지던 소년 둘이 다람쥐처럼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벽이 오빠. 정말 미안해요.”
꾸벅, 왕수련이 허리를 숙였다.
“제 동생들인데… 어렸을 때부터 석두랑 친형제처럼 지내서. 거기다 저 때문에 오빠한테 더 못되게 구나봐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도요. 혹시 안 다쳤어요?”
안절부절못하는 왕수련을 보자 오히려 이벽도 조금 난처한 기분이 되었다.
“오, 오빠. 제가 더 열심히 배울게요. 그니까 저런 녀석들한테 검술 가르쳐주지 마요!”
불끈, 주먹을 쥐어보인다.
씁쓸한 위화감이 이벽을 스쳤다.
하지만… 마음이란 섬세한 것이다. 이벽은 왕수련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동정심이건, 배려심이건.
“고맙다, 수련.”
“…아, 아뇨! 무슨 그런! 에헤헤!”
휘익!
다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이벽이 아니라 왕수련을 향해.
이벽은 얼른 팔을 들어막았다.
철퍽!
그러나 그것은 진흙 덩어리였다.
이벽의 팔뚝에 부딪힌 진흙이 뭉개지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찰싹, 왕수련의 뺨에 달라붙었다.
“우우우~ 흙돼지~”
“흙돼지가 수줍어한다~”
왕수련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저 시건방진 개— 앗.”
합, 손으로 입을 막는 왕수련.
“오빠, 그게, 저 잠깐 볼일이 생각나서… 먼저 내려가 있을게요! 문파에서 봐요!”
마지막으로 밝은 미소를 보이며 왕수련이 돌아섰다.
다다닷, 그리고 전력 질주로 산을 뛰쳐 내려갔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으아아악! 흙돼지가 쫓아온다!”
왕씨 일가의 아이들이 산 아래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러고 나자 산길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벽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주동하던 왕씨 형제들이 사라지자 더 이상 돌멩이 따위가 날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태도는 여전히 둘 중 하나였다. 이벽을 두려워하거나, 혹은 적의를 드러내거나.
“쯔쯧! 애쓴다, 애써.”
제갈소미가 다가왔다.
“뭐,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석두는 마을 애들 사이에서 가장 큰형이었으니까. 다짜고짜 나타나서 두들겨 팬 외지인이 악적이 아니면 뭐겠니?”
“…….”
“억울하니? 목숨 바쳐 구해주기까지 했는데? 하지만 어쩌니, 네가 석두의 목숨을 구해준 걸 아무도 못 봤는데.”
이후, 촌장과 장석두는 마을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고 들었다.
절벽에서 떨어진 목숨마저 살려내는 약장수가 왕진하고 있으니 크게 염려할 건 없겠지만.
“애들한텐 애들 나름의 관계가 있거든. 석두를 두들겨 팰 때야 즐거웠겠지만, 너는 그 관계를 흙발로 짓밟고 들어온 거야.”
마음, 그리고 관계.
과거의 선우벽은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갈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검을 휘두르고, 강해지고, 눈앞의 상대를 꺾었다. 그렇게 세가의 중심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그저 평범하게 어울리지도 못하는 인간이었나.
이벽은 웃었다. 쓴웃음이 늘어만 간다.
일행은 마을로 돌아왔다.
끼익, 낙검문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타닥, 탁!
“어, 이제 오냐, 얘들아?”
그곳에 이진천이 있었다.
태연한 얼굴로 연무장 한가운데에 또 장작불을 피우고 있었다.
꼬챙이에 꿰인 생선들이 구워지고 있다.
“이리 와. 간식 먹자.”
“와! 문주님 최고!”
아이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연무장 안쪽으로부터 느닷없이 흙먼지가 일어나며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타다다닷!
“흙돼지는!! 어떻게 우나요?!”
“흙돼지는!! 흙흙 하고 운다!!”
“헉, 야!! 허억! 거기 안 서?!”
저편에서 왕씨 형제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왕수련이 목검을 휘두르며 뒤를 쫓고 있다.
“이제 누나한테 안 잡히지롱~”
“우리가 아직도 앤 줄 알어?!”
“헉, 허억! 헉! 잡히기만 해봐! 아주 그냥 다리몽댕이를—!”
달려오던 형제가 아이들을 발견했다.
자칫 부딪힐 뻔한 순간, 민첩한 몸놀림으로 슥슥 피해서 빠져나갔다. 그러나.
끼익!
“으앗!!”
왕수련은 파악이 늦었다.
황급히 속도를 줄여 제자리에서 멈춰 서지만,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기울어졌다.
이벽이 앞으로 나섰다.
탁, 넘어지는 왕수련을 붙들었다.
“괜찮나?”
“헉! 누구?! 앗! 벼, 벽이 오빠!”
껴안는 모양새. 뿌리치려던 왕수련의 몸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연무장에 잠깐의 정적이 감돌았다.
끼익.
그리고 정적 속에서 다시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저벅, 인영 하나가 들어섰다.
“…아! 석두 형!”
“형!! 이제 몸은 괜찮아?!”
왕씨 형제가 다가섰다.
그러나 대문 안으로 들어선 장석두는 입을 떼지 않았다.
시선은 이벽, 그리고 왕수련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타오르는 듯한 눈빛.
저벅저벅, 똑바로 다가왔다.
“…….”
다리 한쪽을 조금 절뚝거린다.
하지만 그 외에 큰 상처는 없는 모양. 그리고 이벽보다 큰 덩치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
“서, 석두야. 너 몸은 괜찮—?”
털썩!
왕수련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장석두의 신형이 빠르게 허물어졌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넙죽 땅 위에 엎드렸다.
“제 목숨이랑… 저희 아버지까지도요! 진심입니다. 주제도 모르고 못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쿵! 쿵! 쿵!
이마를 찧기 시작했다.
“…어? 석두 형?”
“왜? 이 개똥 같은 자식한테…….”
“뭐? 개똥?!”
휙, 장석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왕씨 형제들에게 눈을 부라렸다.
“뒤지고 싶냐 이 새끼들아?”
“…힉.”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로 슬금슬금 멀어지는 형제들. 장석두의 시선이 다시 이벽에게로 향했다.
쿵! 쿵! 쿵!
“아니, 장석두 일어나! 이게 무슨 짓이야! 너 몸도 아직 안 나았잖아!”
“…이러지는 마라.”
“아뇨! 아직입니다!”
쿵! 쿵! 쿵!
장석두는 막무가내였다.
이마를 부딪치며 외쳤다.
“구해주신 거!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움찔.
이벽의 표정이 흔들렸다.
—형님.
그리고 이벽의 몸이 자기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끌끌.”
이진천이 낮게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