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49)
153화. 절체절명
타앗.
그때, 이벽의 눈에 비친 저만치의 인파들 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불쑥 위로 솟구쳤다.
훅, 신속하게 날아든다.
“……!”
신법의 모양새는 퍽 익숙했다.
이벽은 상대의 정체를 알아챘다.
“핫, 어딜 한눈을 파느냐—!”
원로 한 명이 의기양양하게 이벽을 향해 검을 뻗었다. 허나 그 검이 이벽에게 닿기도 전이었다.
카앙!
“커윽, 조, 조심하시게!”
날아든 인영 중 하나가 노인을 몽둥이로 내려찍었다. 다른 노인이 가까스로 검을 뻗어 막았으나 충격은 가볍지 않은 듯했다.
“비룡대주! 내가 왔소!”
“…걸개!”
연엽보로 물러서며 이벽은 상대를 확인했다. 시커먼 얼굴을 한 거지는 물론 철면개였다.
챙, 채앵!
“클클, 어째 분위기를 보니 우리가 딱 맞춰 온 모양이구만, 그래!”
철면개와 함께 날아든 중년인 역시 영락없는 거지였다. 퍽 비대한 몸집을 하고 있었으나 움직임은 거짓말처럼 날랬다.
“개, 개방도?!”
“어… 어째서 이쪽을 치는가!”
“핫, 그럼 누굴 치겠냐, 이 노망난 늙은이들아! 애초에 비룡대주를 정파무림으로 부른 게 우리란 말이다!”
“뭐, 뭣?!”
콰앙, 쾅!
어느새 몽둥이 위로 강기를 씌운 두 거지가 마구잡이로 노인들의 머리 위를 내려찍었다.
“하핫, 어디 한 번 계속 막아보시지! 어디 노친네들 칼이 먼저 부러지나 척추가 먼저 부러지나 두고 봅시다!”
“크으—!”
“이… 이 비렁뱅이들이 감히!”
삽시간에 두 명의 고수가 합류했으므로 부담감이 사라진 이벽은 그 즉시 반대편을 돌아보았다.
채앵.
호남의 세 고수는 장로들을 상대로 악전고투를 펼치고 있었다. 허나 확연히 위태롭다.
전사욱도, 우진희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전면에서 공격을 감당하는 채무근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이벽은 철면개와 시선을 교환했고, 철면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즉시 저쪽으로 합류하려 했다.
허나 그때였다.
카앙!
“핫, 정신 차려라, 채무근. 덩치 값도 못 하고 벌써부터 빌빌거려야 쓰나?”
날카로운 검이 빈틈을 찌르고 들어오며 남궁세가 장로의 검을 쳐내었다.
“…뉘, 뉘신지는 모르겠으나 도와주셔서 감사—!”
허나 다음 순간, 자신을 도운 이의 정체를 확인한 채무근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크아악! 정검문주! 양가놈, 이 빌어먹을 개자식아! 네놈이 왜 여기 있느냐! 옳거니, 보복을 위해 남궁세가와 붙어먹었—”
채앵!
양호명이 칼을 찔러넣었다.
“채무근, 눈치 좀 챙겨라! 내가 지금 네놈 비루한 몸뚱이를 살려주고 있지 않느냐?!”
“…어엉?”
“정신 차리고 싸우란 말이다!”
양호명이 일갈했다.
생각지도 못한 이의 합류로 인해 호남 고수들의 얼굴에 잠시 의아한 기색이 스쳤으나 이내 당장의 싸움을 계속했다.
챙, 채앵!
“큭, 또 어디서 굴러나온—!”
“실례, 점창의 양호명이오.”
“뭐… 뭣?!”
“얌전히 이 동네를 떠나려고 했는데 그쪽 동료가 내보내 주질 않아서 이렇게 됐으니 양해해주시오. 핫!”
‘충분히 버틸 수 있겠군.’
이벽은 판단을 재고했다.
팽팽한 가운데 마침내 분위기가 서서히 넘어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머릿수를 줄이면 적들은 우수수 무너질 것이다.
훅, 채앵.
이벽은 다시 걸개와 노인들의 싸움에 합류했다. 원로들을 몰아붙였다.
“컥, 이, 이놈드을……!”
아슬아슬하게나마 이벽 혼자서도 어떻게든 감당하던 노인들이다. 두 거지와 함께 싸우자 마침내 전황은 빠르게 기울었다.
서걱.
“커헉……!”
“오, 오장로—!!”
그리고 십 초가 흘렀다.
마침내 이벽의 검에 노인 한 명이 베여 쓰러졌다. 그 즉시 노인들의 손발이 엉켜 들기 시작했다.
퍼억!
“핫! 남 신경 쓰실 때가 아니지!”
“꺼억!”
다음 순간, 철면개의 몽둥이에 옆구리를 맞은 또 한 명의 노인이 비척비척 주저앉았다.
“이… 이익!”
허나 그때였다.
훅, 퍼억.
“……!”
하늘에서 인영 하나가 추락했다.
깊게 베인 복부를 움켜쥔 채 숨을 몰아쉬지만, 좀처럼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공손욱이었다.
탓.
“헐헐, 제법 애먹었구만!”
곧이어 전대 대장로 남궁한철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벽과 걸개, 노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 * *
공손욱이 쓰러졌다.
이는 즉, 간신히 넘어오기 시작하던 무게추가 다시 저쪽으로 넘어가 버렸음을 의미했다.
돌이킬 수 없이 완벽하게.
“자, 이쯤 했으면 되지 않나?”
그리고 남궁한철이 말했다.
“이제는 그만 포기하고 무기들을 버리게나. 결국은 죗값을 치러야 할 텐데 이 이상 계속 죄를 늘려서 어찌하려고 그러는감?”
말소리는 나지막했다.
허나 그 안에 담긴 내력의 존재감은 치열한 접전을 펼치던 무인들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모든 시선들이 일제히 쏠렸다.
“큰형님! 덕분에 살았소!”
“크윽……!”
그리고 희비가 엇갈렸다.
남궁한철 역시 상처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상은 아니었으며, 태연한 얼굴에서는 충분한 여력이 남아 보였다.
반면, 쓰러진 공손욱은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지만, 그뿐이다.
“큭, 이런 늙다리 새끼가 감히—!”
휙, 슈슈슉.
그때, 좌측에서 남궁한철을 향해 암기 몇 자루가 날아들었다. 천소연이었다.
채앵.
“푸헐! 암기를 말해주고 던지다니 요새 사파는 참 친절하기 짝이 없구먼!”
훅.
남궁천승이 칼을 뻗자 암기는 일제히 추락했다. 검신이 닿을 것도 없이 검풍만으로 암기를 날려버린 것이다.
훅, 터엉.
“…반면 정파는 안 친절하구먼.”
허나 그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우측에서 몽둥이가 휘둘러졌다. 철면개와 함께 날아들었던 비대한 몸집의 거지, 비견개였다.
“……!”
비견개의 볼살이 흔들렸다.
찰나의 순간, 천소연과 시선을 교환했고 일부러 암기를 쳐내는 빈틈을 노렸다.
허나 남궁한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검신을 회수하기도 전에 칼자루의 반대편 끝으로 몽둥이를 막아선 것이다.
퍼어억.
“…커억!”
실패를 직감한 순간 비견개는 황급히 물러서려 했다.
허나 다음 순간, 칼자루의 끝이 그대로 비견개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텅, 터엉.
비대한 몸집이 공처럼 튕겨 날아갔다. 그리고 저만치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혀, 형님!”
“끄으, 끄르륵……!”
철면개가 외쳤다.
허나 쓰러진 비견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 역시 엄연한 절정고수였으나, 격차는 엄중했다.
“쯧, 개방도라니 함부로 죽이기도 그렇고 꽤 성가시구먼. 좌우간 우리 늙은 아우들, 다친 아우들 데리고 물러서게!”
“예, 예… 큰형님!”
“아고고, 이 씹어먹을 애송이들!”
이벽과 거지들의 합공에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하던 원로들이 부랴부랴 물러났다.
“…….”
이벽은 침음했다.
머릿수의 차이는 어떻게든 메꾼다고 해도 근본적인 경지의 차이는 메꾸기 어렵다.
강기를 강기로 상대할 수밖에 없듯, 목천의 영역을 넘나드는 초절정의 고수는 같은 고수가 아니고서는 상대할 수 없는 것이다.
허나 공손욱이 쓰러졌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은 더 이상 그 힘을 이끌어 낼 수 없었다.
한 번쯤은 어떻게든 해낸다 해도 그대로 탈진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 우선은.”
남궁한철이 이벽을 향했다.
저벅저벅,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린 아해야.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느냐? 재능이 아까워서라도 그 정도는 기억해주마.”
탓.
그때였다.
철면개가 앞을 가로막았다.
“핫! 유언은 네가 남겨야지 새파랗게 어린 소협한테 그게 무슨 망발이냐 이 늙은이야!”
“…자네는?”
쭈욱, 철면개가 배를 내밀었다.
“배 째! 어디 죽일 테면 나부터 죽여봐라! 나는 개방의 오결제자이자 개방주 취풍신개의 직전제자 철면개다! 날 죽이면 네놈이 과연 멀쩡할 것 같으냐!”
흠칫, 남궁한철이 흔들렸다.
스윽.
그 틈을 타 또 다른 인영 하나가 좌측의 무인들을 헤치고 철면개의 옆으로 다가섰다.
“난 검존의 제자야. 나도 배 째.”
“…….”
송영영이었다.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이 이벽을 보호하듯 가로막고 섰다. 무력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면, 가진 배후를 내세운다.
최후의 수단이었다. 허나.
“…푸헐헐! 푸헐헐헐!”
남궁한철이 다시 웃음을 흘렸다.
“거 가소롭기 짝이 없구만! 그럼 내가 못 죽일 것 같은가? 참으로 요새 것들은 아주 입만 살았다니까? 대체 이놈의 무림이 어떻게 되려고, 에잉!”
“…….”
저벅, 남궁한철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움찔, 이번에는 철면개와 송영영의 어깨가 흔들렸다.
“이보게 젊은이들, 잘 듣게. 자고로 천 리 바깥에 있는 일만의 병력보다 가까이 있는 칼 한 자루가 더 무서운 법일세. 또한.”
슥, 칼을 뻗었다.
그 끝이 이벽을 향했다.
“마음만 먹으면 자네들을 격하여 저 아해의 목만을 쳐내는 것도 내게는 불가능하지 않지.”
“……!”
“하지만 그렇군. 확실히 성가시긴 하구만. 내가 그 어르신네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쯧, 남궁한철이 혀를 찼다.
“거기 아해야, 이건 어떤가? 자네가 이 자리에서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내 나머지 일행들은 멀쩡히 살려 보내주겠—”
“숙부님. 미안하지만 그 아이의 처분은 제게 양보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물러난 원로들 사이로 중년인이 다가섰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새끼 가주가 아닌가? 퍽 오랜만이구려. 푸헐헐!”
“…이제는 그냥 가주입니다만.”
남궁천승이 쓰게 웃었다.
고개를 돌려 이벽을 향했다.
“좌우간 저 녀석은 본래 황보세가에 가져다주기로 약조한 아이라서 말입니다. 함부로 목을 베는 건 조금 곤란하군요.”
“아니, 새끼 가주! 그게 대체 무슨 물러터진 소리요?! 본가 앞마당이 짓밟힌 이런 상황에서—”
“하지만.”
씩, 남궁천승이 웃었다.
“저도 칼을 몇 방 맞았더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뭐, 생포에 실패해 죽이고 말았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헐헐! 암, 그렇고말고!”
그제야 남궁한철이 흡족한 듯 웃었다. 철컥, 검을 거두었다. 남궁천승의 어깨를 두드린 뒤 한켠으로 물러섰다.
“내가 노파심이 지나쳤구만, 그래. 우리 새끼 가주… 아니지, 가주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실 일이지!”
“…….”
설상가상(雪上加霜).
이벽은 참담함을 느꼈다.
마침내 가주 남궁천승마저 다시 나타나고 말았다. 부상을 입혔음에도… 거동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거 실례했군. 자네가 내 옆구리에 제법 깊은 상처를 내어준 덕에 지혈을 하느라 좀 늦었다네.”
저벅, 남궁천승이 다가섰다.
“그럼 어디… 조금 전 못다 한 비무를 계속할까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딱히 의미는 없는 것 같군.”
이벽은 더는 어쩔 도리조차 없음을 직감했다. 무력으로 해결할 시기는 지나버렸다. 허나.
“아니, 그건 자네가 결정할 사항이 아닐세.”
남궁천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철컥, 그리고 검을 꺼내 들었다. 우우웅, 검신이 진동하며 제왕검형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한 번 더 해보게. 그 꽃 말일세.”
“…….”
“궁금해서 잠자코 의방에 누워있을 수가 있어야지. 뭐, 잘하면 자네가 이길 수도 있지 않은가? 핫핫핫!”
“옘~병,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아주 가까이에서 들린 목소리였으나 그것은 이벽도, 철면개도, 송영영도 아니었다.
“아이고~ 내가 웬만하면 지켜보기만 하고 안 끼어들라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네!”
“……?!”
* * *
작은 체구의 노인이었다.
아무 소리도 없이, 갑자기 공간을 점하듯 나타난 노인은 철면개와 송영영의 앞에 서 있었다.
“스, 스스… 스, 스승님……?”
그때 철면개가 말했다.
퍽 넋이 나간 목소리였다.
취풍신개가 뒤를 돌아보았다.
“에잉, 이 못난 놈아! 이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왜 네 멋대로 나서고 지랄이더냐?”
“그, 그게… 제가 이렇게 대형 사고를 치면… 당연히 노발대발 화를 내실 거라 생각해서…….”
“그야 화내지, 안 내겠느냐? 내 얼굴을 흙탕물에 처박아도 유분수지. 비룡대주에게 부탁을 맡긴 건 이 몸이거늘 산적도 아니고 같은 정파입네 하는 놈들한테 해를 입으면 과연 내 입장이 어찌될 뻔했느냐?”
“…….”
정적이 흘렀다.
흘흘, 취풍신개가 웃으며 다시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남궁천승을 마주한다.
“남궁 가주, 오랜만이군.”
“…신개 어르신을 뵙습니다.”
꾸벅, 남궁천승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허나 그리 공손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천하십대고수, 취풍신개.
그 무명이나 배분은 분명 자신보다 위에 있다. 허나 남궁세가주와 개방주로서의 입장을 따지자면 그리 꿀릴 것은 없다.
또한.
‘…해볼 만하다.’
남궁천승과 남궁한철이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제아무리 천하십대고수라고 한들.
“흘흘흘!”
허나 취풍신개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래, 검왕께선 잘 계시나?”
“…부친께선 몇 년 전, 가주직을 제게 맡기신 뒤 멀리 수행을 떠나셨습니다.”
“그렇군, 헐헐! 그 나이에도 여전히 용맹정진을 멈추는 법이 없구만. 참 훌륭한 무인이지, 암, 암!”
취풍신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훅, 짜악—!
“……?!”
허나 다음 순간, 남궁천승의 고개가 한쪽으로 훽 꺾여 들었다. 공간을 점한 취풍신개의 손바닥이 그 뺨을 냅다 후려친 것이다.
“근데 그렇게 훌륭한 니 애비가 널 그렇게 가르치디? 아님 뭐, 가정교육을 제왕검형으로 받았냐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