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89)
195화. 흑천뇌왕 맹철극 (1)
사패련, 대연무장.
정오의 햇살이 내리쬐는 아래 수백여 명의 무인들이 중앙의 비무대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장강 이남을 아우르는 사파무림 전역에서 모여든 각 세력들의 대표들이었다.
허나.
그만한 인파들이 모여 있음에도 장내에는 잡담 한 마디 오고 가지 않았으며,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공기는 무거웠으며.
칼날 같은 긴장이 흘렀다.
까닭은 물론, 오늘이야말로 패왕가에 의해 호령되던 전후 오십 년 사파무림이 마침내 완전히 끝을 맺는 순간이며.
동시에 흑천방에 의한 새로운 사파무림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시대의 끝과 시작은 언제나 혼란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것은 위기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걱정과 우려, 혹은 기대감.
여름 햇살에 달궈진 군웅들의 얼굴 위로 각양각색이 감정이 번들거렸다.
“때가 되었군요.”
묵룡당주 맹종수가 말했다.
비무대와 가장 가까운 자리.
차양을 두른 상석에는 맹종수를 포함한 몇 명의 인원들이 일렬로 자리하고 있었다.
앞서 혁군악을 쓰러뜨리고 사패련을 점령한 흑천방은 련내 핵심 행정기관인 묵룡당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그것은 물론.
묵룡당주 맹종수가 본래부터 흑천방 출신의 무인이었기에 퍽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슬슬 개파식을 거행할까 합니다만… 대협들께선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의견이 무슨 상관이겠소? 그저 가만히 앉아있다 떡이나 얻어먹으면 그만인 입장인 것을.”
맹종수가 묻자 옆에 앉은 중년 사내가 즉답했다. 해남검파의 대표 파한철이었다.
“뭐, 어느 누군가는 세상을 뜰 준비를 해야겠지만 말이오. 그래도 애송이치고는 퍽 사내다운 최후로군.”
흘끗, 파한철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의 눈길이 닿은 상석의 맨 끝에는 비룡대주 이벽과 언미희가 짐짓 태연하게 앉아있었다.
“…하아.”
파한철의 옆에 앉은 사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암영각의 대표, 서촌장 천소진이었다.
허나 그때였다.
“그야 파 대협 말씀대로 누군가가 죽기는 하겠지만… 누가 죽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 아니겠소?”
말을 받은 것은 천소진의 옆에 앉은 또 한 명의 사내였다. 훅, 맹종수와 파한철의 시선이 사내에게로 향했다.
거구의 사내는 천소진과 마찬가지로 암영각의 대표로서 파견된 동촌장 목일령이었다.
덥석.
천소진이 그의 팔을 붙들었다.
“…목가 아저씨, 제발 부탁이니 입 좀 닥쳐요. 이 마당이 되어서 아직까지도 그딴 소릴 하고 있어요?”
“뭐, 내가 틀린 말을 했소?”
목일령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을 무시하며 이벽을 향했다.
“비룡대주, 그간 잘 지내셨소?”
“……!”
소리 없는 동요가 흘렀다.
그것은 이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흘 전 사패련에 도착한 이래, 어느 누구도 이벽을 찾아오거나 하물며 눈을 맞추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촌장. 덕분에 잘 지냈소. 촌장께서도 무탈하셨소?”
“크핫, 그야 물론이지! 나야 촌구석에 틀어박혀 단약이나 만지작대고 있으니 무탈하지 않을 일이 뭐가 있겠소?”
목일령이 호쾌하게 웃었다.
“허나 소협께선 그간 정사무림을 오가며 퍽 많은 일을 겪으신 것 같더군 그래. 그간 소협의 무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내 퍽 기대가 되오.”
“…부디 실망시켜 드리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두 사람은 작게 웃었다.
“하아아. 지미럴.”
그리고 천소진이 이마를 짚으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비룡대주, ‘마음의 준비’는 되셨습니까?”
그리고 마침내 묵룡당주 맹종수가 이벽을 향해 말했다.
“칼끝에 생사를 거는 것이야 무인의 일상이니 새삼 준비하고 말게 뭐가 있겠소? 헌데 내 목을 치겠다던 맹철극이 오히려 안 보이는 것 같소만.”
“…련주께서는 개파식을 위해 준비하실 일이 많으셔서 말입니다. 이제 곧 존체를 뵐 수 있을 테니 걱정은 마시길.”
“뭐, 그야 그렇겠지. 어찌 되었건 간에 부디 김빠지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면 하오.”
이벽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흘렀다.
“…허, 애송이가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하기사 뭐, 곧 죽을 놈이 무슨 소린들 못 하겠냐만은.”
파한철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허나 이벽은 흘려듣지 않았다.
“뭐, 그럴지도 모르겠소만. 적어도 이 자리에는 내게 훈계를 내릴 만한 자격이 있는 이는 없는 것 같군.”
“…….”
탕, 타앙.
“크하핫! 거 시원하구먼!”
목일령이 발을 구르며 웃었다.
핫, 맹종수는 코웃음을 쳤다.
파한철의 말대로 곧 끝나버릴 목숨을 두고서 입씨름을 한들 아무 의미도 없다.
훅.
맹종수가 몸을 날렸다.
단걸음에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웅성웅성.
이내 서서히 침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런 좌중의 면면을 확인하듯 맹종수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후욱, 호흡을 들이켰다. 그리고.
“안녕들하십니까—!”
목소리가 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 * *
“이 몸은! 미욱하나마 본 련의 묵룡당주를 맡고 있는 맹종수라 합니다! 우선!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자리를 빛내주신 동도분들께 하해와 같은 감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목소리에 담긴 내력은 웅혼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묵룡당주 맹종수는 지난 십수 년 간 사패련의 행정 일을 도맡아 왔으나.
본래는 벽력일검이란 별호를 지닌 절정의 무인임과 동시에, 흑천방의 이인자로 손꼽히던 강자이기 때문이었다.
“동도 여러분! 본격적인 식을 거행함에 앞서 이 맹 모가 한 가지 묻겠습니다! 마교와의 전쟁 이후 오십 년, 그간의 우리 사파는 어떠했습니까?!”
그리고 맹종수의 말이 이어졌다.
“정파로부터 우리의 영역을 지켜낸 패왕가주 혁군악은 분명 위대한 무인이었으며! 패왕가 역시 훌륭한 무가였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술렁.
일순 작은 동요가 일었다.
맹종수의 입에서 패왕가를 긍정하는 말이 나올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물론, 맹종수의 말이 거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사패련주로서의 혁군악은, 그리고 우리 사파는… 대체 어땠습니까?! 아니, 그 이전에 과연 정말로 ‘사파’이기는 했습니까?!”
쿠웅.
잔잔한 충격이 흘렀다.
그리고 맹종수의 말이 이어졌다.
모름지기 사도란, 강함을 추구하고 또 강자를 숭상하는 단순한 이치에 그 뿌리를 둔다.
그렇기에 더 강한 자가 더 많은 것을 손에 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허나.
혁군악은 달랐다.
사적인 갈등이나 싸움을 암묵적으로 금지했으며, 강자가 약자를 짓누르고 모든 것을 약탈할 수 없도록 질서를 강요했다.
허나 그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반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물론, 그가 최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패왕이었다. 허나.
더 이상 그는 없다. 그리고.
“자 이제, 우리 흑천의 하늘을 맞이할 동도 여러분들께! 이 맹 모가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흑천방은! 어쭙잖게 정파 흉내나 내는 그런 처사를 더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맹종수가 열변을 토했다.
“동도 여러분! 단언컨대 강해지십시오! 그리고 마음껏 그 힘을 드러내십시오! 원하면 빼앗고! 필요하면 증명하십시오! 더는 누구도 그대들을 가로막을 자는 없습니다!”
웅성웅성.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맹종수의 열기가 마침내 군중에게로 전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쿠웅.
“그리고 우리는 오늘! 마침내 ‘진정한 사파’가 될 것입니다!”
종지부를 찍듯, 맹종수가 힘차게 땅을 굴렀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후욱.
“헉!”
“…허억?!”
삽시간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피부를 저릿하게 하는 기세가 장내 전체를 짓누른 것이다.
시선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리고 기세의 진원지를 향했다. 그곳은 사패련의 중심에 자리한 전각의 지붕 위쪽이었다.
“저기다!”
“흐, 흑천방주다!”
그리고 그곳에.
한 명의 인영이 서 있었다.
거리로 인해 정확한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려웠으나, 군중들은 그야말로 흑천뇌왕 맹철극임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물론, 이 정도의 기세를 지닌 이가 맹철극 외의 다른 사람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
모든 시선이 쏠렸다.
허나 맹철극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뒷짐을 진 채 잠자코 뭇 군중들을 내려다보며 서 있을 뿐이었다.
이내 일각여가 흘렀다.
슥.
마침내 맹철극이 뒷짐을 풀고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손에는 하나의 깃대가 들려있었다.
훅.
단호하게 휘두르자 이내 둘둘 말려있던 천이 펼쳐지며 거대한 깃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천(黑天).
붉은 천 위에 검은 글씨로 새겨진 것은 단 두 글자였다. 허나 그렇기에 오히려 뭇 군중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쿠웅.
그리고 다음 순간.
흑천의 깃대가 사패련의 가장 높은 곳의 지붕에 틀어박혔다. 깃대가 바람 속에서 펄럭이기 시작했다.
“우… 와아아아!!”
이내 함성이 터져나왔다.
달아오른 열기는 서서히 환호로 번져갔으며,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함성들이 터져 나왔다.
“흑천만세—!!”
“신 사패련 만세—!!”
* * *
목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강자에게 마땅히 찬사를 보낸다.
사방에서 경쟁하듯 울려 퍼지는 흑천방의 이름 속에서, 비무대에 선 맹종수가 마침내 뒤를 돌아보았다.
이벽을 향해 웃어 보였다.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
사면초가(四面楚歌). 허나.
아직까지도 이벽은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감이 타당한가에 대해 마침내 확인할 순간이 되었다.
슥, 이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자.”
그때 언미희가 말했다.
두 사람은 잠시 얼굴을 마주했다. 짧은 눈빛 속에서 많은 감정들이 스쳐 갔다.
“혹시… 박치기 필요한가요?”
이내 언미희가 말했다.
“…괜찮소.”
움찔, 이벽은 물러섰다.
“그렇군요. 그럼 다녀오세요.”
“다녀오겠소.”
다시 웃는 얼굴이 오고 갔다.
저벅, 이내 이벽은 걸음을 뗐다. 퍽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대연무장의 중앙을 향해 나아갔다.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때까지도 흑천방을 향한 함성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군중들은 이벽의 등장을 눈치조차 채지 못한 듯했다.
맹종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비무대 바깥으로 물러섰다. 이내 중앙에 혼자 남게 된 이벽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청강유엽공을 일으켰다. 그리고.
후우욱.
“…허억?!”
전력으로 기세를 발산했다.
그리고 일순 함성이 멎었다.
우우우웅.
뭇 군중들의 호흡이 답답해졌다.
보이지 않는 허공 저편에서, 찍어누르는 맹철극의 기세와 날아오르려 하는 이벽의 기세가 경합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대못처럼 맹철극에게 박혀있던 군중의 시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무대 위에 선 이벽을 향했다.
“비, 비룡대주…….”
“허어… 이게 무슨……!”
패왕의 사실상 후계자였던 비룡대주 이벽이 사패련을 되찾기 위해 제발로 찾아왔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소식이었다.
그러나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가 그것이 실제로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곤 믿지 않았다.
그저 자만한 일개 후기지수의 부질없는 몸부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이벽의 기세는 맹철극의 기세와 정면으로 충돌했고, 결코 짓이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패왕의 그림자가 스쳐 갔다.
그것은 물론 련의 정문에 매달린 비참한 목이 아니라, 과거 창 한 자루로 사파무림 전체를 발아래 두었던 거인의 그림자였다.
“…나는 이해하오.”
일각여가 흘렀다.
그리고 이벽이 말했다.
“이곳에 모여계신 모두가 흑천방의 뜻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모두가 죽어 없어져야 할 악적은 아님을 알고 있소.”
“…….”
“다만 이미 대세가 기울었기에 어쩔 수 없노라 생각하고 있겠지. 옳건 그르건, 질서에 거스르는 것은 자신과 친지들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니 말이오.”
이벽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허나 모든 이들의 귓속에 틀어박히기에는 충분했다.
“그 역시 잘못이라면 잘못이지만, 내 생각에는 퍽 안타까운 일이오. 그렇기 때문에.”
이내 이벽이 고개를 들었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것이 사파의 법칙이라면… 패왕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나의 힘으로써 그 무도함 자체를 짓밟겠소.”
“…….”
이벽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군중 속에서 이내 작은 열망으로 빛나기 시작하는 몇 쌍의 맑은 눈을 발견했다.
걔 중에는 남궁세가에서 신세를 졌던 호남무림의 채무근과 우진희, 전사욱의 얼굴 또한 있었다.
“무도한 이는 스스로 숨을 죽여야 하고, 무도하지 않은 이는 억지로 악인 흉내를 내지 않아도 되는 ‘질서’를 다시 돌려드리지.”
그 시선은 마침내.
전각 위의 인영을 향했다.
“이리 내려오시오, 맹철극.”
“…….”
“순서가 잘못되었지 않소? 그 깃대를 멋대로 꽂기 전에 당신은 먼저 나를 ‘청산’했어야 하오.”
우우우웅.
짓누르는 자와 날아오르는 자.
기세의 경합이 공기를 압박했다.
“허억……!”
“헉, 히익…….”
이내 절정 미만 무인들의 안색이 하나둘 파리해졌다. 그저 호흡을 계속 이어가는 것조차 힘겨워진 것이다.
스릉.
그때였다.
지붕 위에 선 맹철극이 마침내 도를 빼 들었으며, 그 즉시 도신 위로 검붉은 강기가 맺혔다.
“…….”
허나.
이벽이 자리한 비무대와의 거리는 무려 십여 장이나 떨어져 있었으므로 누구도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강기가 하늘을 향했다.
맹철극이 도를 번쩍 치켜올렸다.
후우우욱.
그리고.
도에 맺힌 강기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날아오르며 빠르게 하늘을 뒤덮는다.
쿠르릉, 쿠릉.
“……!”
그리고 하늘로 날아오른 연기가 이내 허공에 덩어리로 뭉치기 시작하며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되었다.
흑천(黑天)이 머리 위를 뒤덮었다.
파지직, 파직.
“…….”
먹구름이 성난 소리를 내었다.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공할 기운이었으며.
또한 놀라운 기예였다.
이벽 역시 서서히 목천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가진 검들을 빠르게 되새겼다. 그때였다.
번쩍.
콰르르릉!
벼락이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