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2)
22화. 검수 이벽 (1)
이벽이 연무장으로 나서자 그곳에 제갈소미가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잠깐 동안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눈을 꿈뻑거렸다.
“사저, 좋은 아침이다.”
이벽이 먼저 말을 꺼냈다.
침묵 속에서 이내 제갈소미의 입가에 서서히 웃음이 번졌다.
“꼬맹이. 잘 잤어?”
태연하게 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사실은 지난 가을 이벽이 쓰러진 이후, 근 3개월 만에 이뤄진 재회의 순간이기도 했다.
“아, 잠깐만 기다려, 꼬맹아.”
텅!
문득 제갈소미가 이고 있던 물동이를 땅에 내려놓았다.
저만치 벽으로 다가가 기대어진 빗자루를 집었다.
저벅저벅!
환한 미소로 이벽에게 돌아온다.
“사저, 빗자루는 왜—”
뻐억!
이벽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커헉.”
뻐억! 뻑, 뻐억!
거꾸로 쥐어진 빗자루가 이벽의 온몸을 사정없이 찜질하기 시작했다. 이벽은 뒤로 물러서려 했다.
덥석!
그러나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이벽을 붙들었다.
양어깨 안쪽에 팔을 집어넣고 단단히 어깨를 봉한다.
“때려 때려 사저. 아주 죽여버려.”
“오, 잘했다. 꽉 잡아라, 곰탱아.”
등 뒤에서 혁대웅이 말했다.
퉤퉤, 제갈소미가 양손에 침을 뱉었다. 섬뜩한 미소와 함께 빗자루를 단단히 부여잡았다.
“힘빼라, 꼬맹아. 뼈 나간다?”
“자, 잠깐, 도대체…….”
뻐억!
“좋은 아치이임~? 좋은 아치이이임~? 이 쥐방울만 한 자식이 너 때문에 온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쌩고생을 했는 줄 알아?!”
뻑, 뻐억! 뻑!
“나자빠진 건 그렇다 쳐! 깨어났으면 얌전히 누워서 죽이나 받아 처먹을 것이지 엄동설한에 폭포에는 왜 기어들어가? 돌았어?!”
뻐억! 뻑!
아프다.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이벽은 뼈마디에 파고드는 생생한 통증을 느꼈다.
“왜. 아파?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우리 영특한 막내, 연약한 사저 마음 아플까봐 아픈 척 연기를 다 하네~?”
“그래, 맞아, 벽아. 아둔한 우리와는 달리 너는 위기에 처하면 내력 쓸 수 있잖아? 내력 써, 내력. 호신강기 같은 거 써, 얼른.”
뻐억, 뻑! 뻐억!
속수무책의 구타가 이어졌다.
몸부림쳐본들 가뜩이나 여윈 몸으로 혁대웅의 완력을 이겨낼 수 있을 리 없다.
“자, 잠깐, 사저 잠깐!”
문득 이러다가는 진짜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 순간, 이벽은 외쳤다.
“왜? 할 말 있어?”
우뚝, 빗자루가 멈췄다.
찰나의 고요 속에서 이벽은 필사적으로 할 말을 생각해내었다.
“…지금 뼈 맞았다.”
“응, 노리고 때린 건데?”
“…….”
뻐억! 뻑, 뻐억!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자, 잘못했다. 이제 그만…….”
마침내 이벽의 입에서 애처로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우뚝, 빗자루가 멈췄다.
“꼬맹아, 지금 뭐라고?”
“…내가 다 잘못했다.”
“에이, 아까웠다. 진심이 아직 덜 담겼네? 그래도 사랑의 매가 효과가 있긴 있는 모양이야~”
뻐억! 뻑! 뻑! 뻑!
“잘, 잘못했— 아니, 했소이다!”
“옳지! 거의 다 왔다!”
뻐억, 뻑, 뻐억!
“컥! 자, 잘못했습니다, 사저!”
* * *
이후 세 사람은 식사를 했다.
식탁에 함께 둘러앉은 것도 퍽 오랜만의 일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벽에게 주어진 것은 허여멀건한 죽 한 그릇뿐이었다.
물론, 사실상 몇 개월씩이나 제대로 된 걸 먹지 못한 처지에 음식을 가지고서 불평할 수는 없다.
애초에 이진천의 신기에 달한 의약술이 아니었다면 살아있기도 버거웠을 테고, 설령 살아있어도 재활에만 한참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자, 이제 자초지종을 얘기해 봐.”
식사를 마친 후, 방 안에 둘러앉아 제갈소미가 말했다. 혁대웅도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다.
즉, 이벽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경위에서부터 깨어나자마자 폭포에 뛰어든 것까지의 설명을 원하는 것이다.
퍽 난처한 일이다.
결국 모든 것의 원인은 이벽의 지난 과거였고, 이야기를 하려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들을 자격이 있다.
“…죽으려던 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이벽은 입을 뗐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그때에는 나 자신을 한계에 밀어넣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란 생각밖에 없었다.”
“…….”
잠깐의 침묵.
제갈소미가 한숨을 쉬었다.
“야, 이벽.”
“…듣고 있다.”
“못난이 사제가 어디 가서 칼 맞아 죽을까 걱정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뛰어내려서 죽진 않을까,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 되니?”
“응응, 맞는 말이야.”
고개를 주억거리는 혁대웅.
“악으로 깡으로 목숨 걸고 살려놨더니 계곡에서 자살한 변사체로 발견되면 내 마음이 퍽이나 뿌듯하겠다. 그치?”
“응응, 배신이지, 그건.”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
이벽은 주변에 자리한 이들을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은 두 사람 역시 크게 다르지 것이다.
관계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그 한 명의 몫으로 끝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벽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안심해도 좋을 이유를 줘야 한다.
“…이제는 괜찮다.”
“괜찮긴 뭐가? 누구 맘대로? 너 혼자 결론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다야? 이게 아직 매를 덜—”
“깨달음이 있었다.”
이벽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낙검진천신공을 얻은 것 같다.”
“…뭐?”
또다시 침묵이 스쳤다.
짐짓 엄격하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두 사람의 표정이 서서히 복잡하게 변해간다.
“잠깐, 벽아, 그게 무슨 말이야? 너, 내공을 되찾았단 말이야? 일시적인 게 아니라 진짜로?”
훅, 혁대웅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엄밀히는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
이내 두 사람의 눈에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무얼 원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도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박찼고, 세 사람은 함께 연무장으로 나섰다.
이벽은 목검을 집어 들었다.
연무장 중앙에 선 뒤, 눈을 감고서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 자리한 한 줌의 힘을 가리켜 ‘선천’이라고 했다.
이내 선천의 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뭉쳐있던 스스로를 풀어내고 청강유엽공의 경로를 따라 혈을 감싸 안았다.
매듭을 엮고 순환을 이주었다.
한 호흡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몸 안에 가득 들어차는 충만함 속에서 이벽은 눈을 떴다.
우웅, 목검이 가볍게 진동했다.
명백한 내력의 기척이었다.
이벽은 시선을 돌려 사형제들을 돌아보았다. 혁대웅과 제갈소미의 표정에 경악이 떠올랐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동안의 침묵 속에서, 이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뭐야… 진짜로……?”
“…말도 안 돼, 이건.”
“끌끌끌, 안 되긴 뭐가 안 돼?”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저만치에서 이진천이 뒷짐을 진 채 한껏 잰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에헴! 가르침이 있었고 배움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지. 험! 그럼 내가 너희들 데려다가 여태껏 사기라도 치는 줄 알았더냐?”
“…….”
이벽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진천의 얼굴에 감도는 미소를 본 순간, 이벽은 저절로 함께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말로써 전달되지 않는 것이 눈빛으로 전달된다.
마음의 돌을 치우고 이제야 겨우 스승의 손가락이 아닌,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향하게 되었다.
이진천이 입을 열었다.
“야, 이게 되네.”
“…네?”
“아니, 솔직히 너희 셋에게 낙검진천신공을 전수하긴 했지만 말이다. 나도 나 이외에 다른 이가 성취해낸 걸 보는 건 처음이니까…….”
만지작만지작.
이진천의 손이 이벽을 더듬었다.
“거참, 보면 볼수록 신기하네. 어떻게 된 거지? 이렇게 빨리 터득하다니, 왠지 좀 무서운데…….”
“…….”
흠, 이진천이 헛기침을 했다.
생각에 잠긴 듯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이벽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이벽, 나랑 한 판 붙어볼까?”
* * *
꿀꺽, 이벽은 침을 삼켰다.
반면 이진천은 목검을 어깨에 얹은 채 태평한 자세로 고개를 까닥거릴 뿐이다.
“어디, 우리 막내 할 수 있는 거 다 해봐.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
긴장감 속에서 이벽은 희열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무인으로서의 호승심이 오랜만에 고개를 든다.
되찾은 힘… 아니, 새로이 얻은 이 힘이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일지 시험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진천, 문주님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절대강자이다.
꾸벅, 이벽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검에 기세를 불어넣었다.
우웅!
이내 정제된 기운이 목검 안에 스며들었다. 감각은 단전을 잃기 전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타앗, 이벽이 땅을 박찼다.
탕! 타앙!
청강검식이 허공을 수놓았다.
단숨에 수 합이 오고 간다. 내공을 싣지 않은 움직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누워있던 시간이 거짓말처럼 호흡은 안정되었으며, 목검은 날개를 단 듯 날렵했다.
일검일검에 담긴 내력이 줄기줄기 뻗쳐나갔다.
“오옷. 무서워라.”
이진천은 연신 뒤로 물러섰다.
이벽은 연엽보(蓮葉步)의 경로를 밟았다.
물러서는 이진천을 쫓아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이는 선우세가의 보법으로, 청강검식 특유의 발검과 회검의 순서제약이라는 약점을 거리조절을 통해 보완해주는 보법이다.
“…….”
이벽은 내심 놀랐다.
검공과 보법을 함께 사용하고서도 전혀 힘에 부치지 않는다.
선천의 힘은 스스로 움직였고, 움직일 때마다 내력이 그 뒤를 따랐다.
그저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것만으로 소모된 만큼의 힘이 다시 채워진다.
마치 무공을 펼치는 내내 몸 안에서 청강유엽공이 저절로 운용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탕, 타앙, 탕!
이벽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뻗었다.
맞받아치는 데에 치중하며 연달아 물러서는 이진천.
그러나 이벽은 느꼈다.
짐짓 자신이 이진천을 몰아붙이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청강검식의 여섯 개의 무리가 하나하나 상극의 무리로 완벽하게 상쇄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이진천이 히죽 웃는다. 마치 이벽의 검을 이벽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
물론, 지금의 이벽에게는 청강검식이 가진 것의 전부는 아니다.
내력의 상실과 함께 잃어버렸던 비전검식을, 낙검진천신공의 성취와 함께 다시 돌려받게 되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일식(拔劍第一式).
직검(直劍).
쐐액!
다음 순간, 이벽의 검이 점 하나를 향해 뻗어졌다. 파공성과 함께 최단의 경로를 파고들었다.
“오옷.”
이진천이 짐짓 놀란 얼굴로 한 발자국 더 물러섰다.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으나, 아주 약간의 틈이 벌어졌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벽이 다시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청강검식이 이어졌다.
애써 만든 빈틈이 닫히게 두어선 안 된다. 기회를 물고 늘어지며 이벽은 초식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이식(拔劍第二式).
쾌검(快劍).
타앙!
다시 한번 비전검술이 번뜩였다.
마침내 검 끝이 이진천의 수비를 넘어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니, 그러나 착각이었다.
투웅!
그저 가져다 대듯이 가볍게 움직인 이진천의 검에 이벽의 쾌검은 다시 튕겨나가고 말았다.
“…….”
이진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놀랍지만, 놀랄 새는 없다.
이벽은 한발 물러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실전이라면 이미 승패가 갈라지고도 남았다.
허나… 아직 끝내고 싶지 않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회검제이식(回劍第二式).
변검(變劍).
이벽은 달려들었다.
방어를 도외시하며 뻗어진 검을 끌어당겼다. 그 순간 이벽의 검 끝이 무수한 변화를 품기 시작했다.
갈래갈래 분화하며 이진천의 전방을 압박한다.
“하핫, 그렇구만. 대충 알겠다.”
스윽, 이진천이 일 획을 그었다.
아니, 그러나 단순한 검로가 아니다. 이벽은 직감했다.
그 검은 일 획이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이벽으로서는 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인지 감히 알아볼 수조차 없는 일검.
툭, 투둑!
그것만으로 이벽의 검이 그리던 모든 변화들이 맥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자, 여기까지.”
“…….”
복잡한 기분이 스쳤다.
본래 회심의 일격으로 쓰여야 할 청강유엽검식을 막무가내로 사용하자 내력의 절반 가까이가 뭉텅뭉텅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소모된 내력마저도 몸 안에서 실시간으로 눈에 띄게 다시 회복이 이뤄지고 있다.
이벽은 깨달았다.
자신은 명백히 과거보다 강해졌다.
선천의 힘, 낙검진천신공은 터무니없는 힘이다.
스스로 조절만 잘한다면 전투 중에 내력이 모자랄 일이 아예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그마저도 이진천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통하기는커녕 대체 어느 정도의 격차가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뭐, 나쁘지 않구나. 이제 어디 가서 후기지수 나부랭이한테 뚜들겨 맞고 다니진 않겠구만.”
탁탁, 이진천이 목검으로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나 이벽의 마음에는 아쉬움이 감돌았다.
아직, 전력을 쏟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체험해보고 싶다.
몸 안에 소모되지 않는 내력이 샘물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지만 활용할 수단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후욱!
이벽은 목검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가진 내력을 마구잡이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부르르, 이내 한계치까지 내력을 품은 목검이 잘게 경련했다. 손바닥에 강한 반탄력을 느꼈다.
이 이상 무리해서 기를 불어넣다간 그 자리에서 목검이 터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게 다인가?
이벽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물론 조바심을 낼 이유는 없다.
일찍이 가진 모든 걸 잃었던 이로서, 이 정도의 힘을 지니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해 마땅하다.
그러나 눈앞에 이진천이 서 있다.
힘을 되찾고 나서야 더더욱, 그 존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존재인가를 체감하게 되었다.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구름 위.
문주와 제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검수로서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부딪혀보고 싶다.
우웅!
그리고 그때, 의외의 존재에게서 대답이 들려왔다.
이벽의 마음 한켠에서 선천의 힘이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