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62)
268화. 은원의 덫 (6)
“퉷!”
정연화가 만해환을 뱉어내었다.
그것은 당려옥이 그녀에게 내어주었던 해독약으로, 입에 머금고만 있어도 웬만한 독기를 버틸 수 있도록 하는 당가의 비약이라 하였다.
슥.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이럴 거면 애초에 나한테 이걸 왜 줬냐고! 자기 목숨이 무슨 서너 개쯤 되는 것도 아니고……!”
정연화가 당려옥의 입을 벌렸다.
쿡, 쿡.
단약을 넣은 뒤 손끝으로 아문혈 곳곳을 두드리자 이내 단약이 당려옥의 목 너머로 삼켜졌다.
“…하아.”
당려옥의 호흡이 트였다.
이내 안색이 조금 편안해졌다.
어쨌거나 당가의 절독을 해독하는 데에 있어 당가의 비약만 한 게 없음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허나 물론 안심할 수는 없다.
다시 이벽과 정연화의 시선이 부딪혔다. 자결을 위해 준비되어있던 독이 그리 쉽게 해독될 리 없었다.
어떻게든 목숨은 건진다 해도,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이 남을 수도 있다.
슥.
이벽은 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당려옥의 상체를 일으켜 앉힌 뒤 그녀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내기를 통해 혈로를 어루만지고 당려옥의 몸 안에서 해약이 흡수되는 것을 도울 생각이었다.
덜컥.
허나 그때였다.
덜컥, 덜커덩, 덜컥!
사방의 벽 안쪽, 그리고 머리 위에서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가 연달아 이어졌다. 그리고.
후두두두둑.
삐걱, 콰아아아아아앙!
“……!”
별안간 다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던 남은 화탄들이 폭발을 시작한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구!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내 공간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벽은 직감했다. 그것은… 명백한 ‘붕괴의 징조’였다.
“핫… 아하핫! 아하하하핫!”
저만치에서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훅, 이벽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모란이 쓰러져있던 자리에 핏자국만이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핏자국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저만치 등 뒤의 벽 한켠에 기대어 앉은 그녀를 발견했다.
어깨가 통째로 뜯겨나가고도.
그녀는 독심으로 의식을 부여잡은 채 ‘무언가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하하핫! 결국은… 결국은 이렇게 되었군요! 그래요, 약자는 강자의 먹잇감이 되는 게 세상 이치이니 어쩔 수 없죠!”
출혈로 인해 창백하게 질린 모란의 얼굴 위로 광기가 번들거렸다.
또한 그녀의 하나뿐인 손에는.
알 수 없는 ‘동아줄’이 쥐어져 있었다. 벽의 안쪽에 감추어져 있던 모양이었다.
‘…기관진식.’
불현듯 이벽은 이해했다. 모란은 ‘오로지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아왔노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이 모가장은… 처음부터 ‘붕괴될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덫’이었던 것이다.
쿠구구구구궁.
다시 공간이 굉음을 내었다.
쩍, 쩌저적!
사방에 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헉, 이 모가장을 통째로 무너뜨린다 해도… 하악, 당신을 죽일 수는 없겠지만요……!”
쿠궁, 쿠구구궁!
“당신은… 누구도 구할 수 없어요! 당신으로 인해… 당신 때문에! 죄 없는 양민들이… 모조리 짓이겨지는 거예요! 핫, 꺄하하하하핫!”
모란은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렸다. 풀썩, 이내 탈진한 듯 고개가 꺾어졌다.
쿠구구구구궁!
“끄… 으으으, 이, 이게 뭐야?”
그리고.
때마침 종인욱의 사술에 의해 조종당하던 양민들이 여기저기에서 기척을 일으켰다.
건물이 무너지는 굉음과 진동 속에서 이제야 하나둘 의식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쿠쿵, 구구구구궁!
허나 그런 양민들의 머리 위로 벽과 건물의 잔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아아아악!”
“내, 내 다리! 사, 살려줘—!”
훅.
이벽의 검이 쏘아졌다.
서걱, 서걱.
이기어검이 양민들의 머리 위로 무너는 잔해들을 추격했다. 거듭 베어내기를 반복하며 자갈과 먼지로 으스러뜨렸다. 허나.
‘…어떻게?’
이다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벽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구해야 할 목숨들은 수십이나 되었다.
허나 가진 그 어떤 힘으로도 머리 위에서 붕괴하기 시작한 건물을 통째로 으깨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으, 은공! 저 안에! 저쪽에도 납치된 여인들이 있어요……!”
그때 사색이 된 정연화가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나타났던 우측 벽의 비밀 문 너머에도 구해야 할 목숨들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잠깐!’
훅, 이벽은 문을 바라보았다.
붕괴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유독 문이 자리한 우측 벽면만큼은 아무런 균열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돌이켜보면.
조금 전, 벽을 뚫기 위해 무려 이기어검을 사용했으나 터무니없이 둔탁한 무언가에 가로막혀 실패했었다.
애당초.
무너질 것을 전제로 설계된 건물이라면… 최후의 순간 본인들을 위해 ‘무너지지 않게끔 설계된 공간’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쿠구구구구구!
“…소저! 벽 너머로 돌아가시오!”
“네, 네?!”
“안쪽의 벽면에 붙어있으면 붕괴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오! 어서!”
“……!”
정연화의 눈이 흔들렸다.
탓, 허나 이내 그 즉시 자리를 박찼다. 당려옥을 안아 든 채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후두둑, 쾅쾅!
쿠구구구구구.
“으, 으아아아아—!!”
한편, 붕괴 속에서 양민들은 공포에 질린 채 아비규환이 되어가고 있었다.
후우웅.
“정신들 차리시오—!!”
허나 그때 이벽이 외쳤다.
내력이 담긴 쩌렁한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지자 흠칫, 양민들이 어깨를 떨며 일제히 이벽을 향했다.
“살 수 있소! 그러니 어서… 저 문 안쪽으로 넘어가시오! 떨어지는 잔해는 내가 막을 터이니 어서 달리란 말이오!”
“……!”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있었다.
타다다닷.
이내 정신을 차린 양민들 몇몇이 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으며, 곧 나머지도 본능적으로 그 뒤를 따랐다.
이내 다수의 양민들이 붕괴하는 공간을 벗어났다. 허나.
우르르르, 콰앙!
“으, 으아아악—!! 도, 도와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민들 중에는 뼈가 부러졌거나 부상이 심하여 스스로 거동할 수 없는 이들이 적잖이 남아있었다.
땅을 기다시피 버둥거리며 어떻게든 문을 향해 나아가려 애를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크!”
콰아앙, 콰아아아앙!
이기어검이 공간을 날았다.
사방팔방을 누비며 잔해와 파편들을 으스러뜨렸으나 붕괴는 슬슬 한 자루의 검으로 막아설 수 있는 한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이기어검을 펼치는 한편, 거동할 수 없는 이들을 문 안쪽으로 운반해야만 한다. 즉.
몸과 검의 운용을 동시에 한다.
탓, 이벽은 땅을 박찼다. 경신법을 펼치려 들자 그와 동시에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등천의 영역에 눈을 뜬 상단전으로도 이 이상 기예를 마구잡이로 남발하는 것은 슬슬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훅.
허나 그때였다.
인영 하나가 이벽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저만치에 널브러져 있는 양민을 향해 다가섰다.
버둥버둥.
“힉, 히이이익! 사, 살려—!”
“진정하시고 절 붙잡으세요!”
정연화였다.
당려옥을 문 안쪽에 기대어놓은 뒤, 남은 양민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이벽과 눈이 부딪혔다.
정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이벽은 조금 안도했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정연화가 남은 양민들을 모두 구해낼 만큼의 시간을 벌면 그만인 일이다.
설령 자신이 파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물론 혼자서라면 충분히 빠져나올 자신이 있었다.
쾅, 콰콰콰앙—!
다시 이기어검이 빗발쳤다.
여전히 중과부적이었으나 실낱같은 마음의 여유 속에서, 불현듯 새로운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한 자루의 검으로 막아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여러 자루’를 사용하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기어검이 아닌.
상황에 걸맞은 ‘좀 더 효율적인 기예’를 사용한다.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훅, 덥석.
판단을 마친 순간, 검이 도로 이벽에게 날아들었다. 검을 회수한 뒤 이벽은 청강유엽공을 거둬들였다.
우웅, 콰콰콰콰.
그리고 그 즉시, 몸 안에서 적파심공의 혼탁한 기운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벽은 얼마 전, 회택의 천향루에서 재회했던 고 노야와의 일전을 떠올렸다.
노인의 도 끝에서.
적파심공의 강기는 도신을 벗어나 스스로 한 자루의 도가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개수는 늘어만 갔다.
기예의 이름을 가리켜.
‘적파도결’이라 하였다.
우우우우웅.
이내 이벽의 검에 붉은 빛깔의 강기가 서렸다. 끓어오르는 혈기는 당장이라도 으깨어질 듯했다.
허나 이벽은 차가운 마음으로 그 혈기를 바라보았다. 이내 검을 내리그었다.
후욱.
그리고.
붉은 획이 허공에 새겨졌다. 검신을 벗어난 강기가 스스로 검이 된 것이다.
기실 한 자루의 적파도결을 이끌어 내는 것은 등천의 영역에 눈을 뜨기 이전에도 이미 성공해낸 바 있었다.
훅, 후욱.
허나 이벽은 계속해서 검을 그었다. 그리고 그 모든 획은 다시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우우웅.
이내 열 자루의 검신이 생겼다.
쿠구구구구구!
훅, 다음 순간 이벽이 검을 휘두르자 열 개의 붉은 검들이 저마다의 방향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앙!
추락하는 파편과 부딪힌 순간.
째애앵.
강기는 허공에서 으깨어졌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그리고 거듭해서 파편과 충돌하기를 반복했고, 이내 자갈과 먼지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콰아아아앙!
같은 방식으로.
열 자루의 적파도결이 각자의 방향에서 크고 작은 파편들을 요격하여 으스러뜨렸다.
쿠구구구구궁!
허나 물론, 붕괴는 계속되었다.
서서히 본격적으로 무너지며 아래로 추락하는 파편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훅, 후욱. 콰아아아앙!
어쨌거나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해한 이벽은 계속해서 검을 그었다.
쐐애액.
그때마다 적파도결이 쏘아졌다.
쿠구구구구구궁, 콰아앙!
비록 이기어검처럼 하나하나의 방향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수십, 수백 개의 검을 마구잡이로 쏘아 보내자 딱히 그럴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콰아아앙, 파스스스.
파편들이 사방에서 으깨어졌고 모래와 먼지가 마구 쏟아지며 이내 시야마저 흐릿해졌다.
불현듯 팔이 뻐근해졌다.
신체적 한계를 느끼는 것 또한 퍽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렇게 이벽은 무아지경 속에서 적파도결을 난사했다.
일찍이.
적파심공, 그리고 도살지도는 이벽이 익혔던 청강유엽공의 한계를 벗어나 ‘죽이기 위한’ 용도로서 익혔던 검이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죽이기 위한 검은 오히려 양민들을 살리기 위해 쓰이고 있었다.
불현듯.
이상한 감각이 스쳤다.
썩 나쁘지 않은 감각이었다.
“…은공, 이제 됐어요! 모두를 구했으니 은공께서도 어서 이리로 오세요!”
그즈음이었다.
등 뒤에서 정연화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굉음을 뚫고 귓가를 파고들었다.
이내 이벽은 모든 양민들이 장내를 벗어났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러한 와중에도 정연화와 다른 모든 이들이 달아난 벽 너머의 공간은 붕괴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음을 확인했다.
훅, 콰아아아아앙.
“사… 살려…….”
다만 그때였다.
잔해와 먼지로 탁해진 공기 너머에서 흐느끼듯 미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려…주세요. 흑, 누구라도…! 여, 역시… 죽고 싶지 않아요… 으흑, 아, 아버지……!”
“…….”
그것은 모란의 목소리였다.
찰나의 순간, 이벽은 판단했다.
애당초 팔 하나만을 베고 숨통을 끊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서 캐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궁!
다시 그때였다.
마침내 공간 위에 세워져 있던 건물 전체가 일거에 벼락처럼 쏟아져 내렸다.
타앗.
이벽은 판단을 마쳤다. 그리고 돌아서는 대신 정면의 먼지를 뚫고서 앞으로 몸을 날렸다.
“으, 은공?!”
“…걱정할 거 없으니 어서 문을 닫고 안쪽 벽에 붙어서 기다리시오!”
콰콰콰콰콰쾅!
이벽은 청강유엽공을 일으켰다.
몰아치는 잔해들을 갈대처럼 베어낸 뒤 쾌보를 밟았다. 다음 순간, 이벽은 이미 모란의 지척까지 다가서 있었다.
오른팔을 잃은 채.
백의를 피로 적신 여인은 가냘픈 숨을 내쉬며 몸을 떨고 있었다. 목숨은 이미 경각에 달했다.
“…….”
그녀를 벤 것을.
이벽은 후회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어찌할 도리도 없는 악인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어찌 되었건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나 이벽이오.”
“…흑, 으흑! 흑!”
“그래도 살고 싶소? 추후 묻는 바에 순순히 대답할 생각이 있다면 살려드리겠소.”
“…네, 사, 살려주세요! 제발요!”
덥석.
모란의 하나뿐인 팔이 이벽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이벽은 즉시 모란을 안아 들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창공비검(蒼空飛劍).
콰아아아앙!
이벽의 몸이 솟구쳐올랐다.
과거, 칠독문의 전각을 일도양단했던 그 날처럼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를 정면으로 관통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