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72)
278화. 삼 대 삼 (1)
“아무래도… 우리 천중일검께서는 몇 년마다 주기적으로 ‘싸대기가 마려운’ 중병이라도 앓고 계신가 보군 그래?”
철면개가 말했다.
휘익.
그와 동시에.
남궁천승이 바람 소리를 내며 철면개를 향했다. 찰나의 순간, 그 얼굴 위로 흉신악살과 같은 표정이 스쳤다.
“…푸헐.”
허나 철면개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과거, 남궁세가주 남궁천승은.
남궁세가의 안방이라 할 수 있는 안경의 시내 한복판에서, 전대 개방주 취풍신개에 의해 의식을 잃을 때까지 양 뺨을 두드려 맞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 일은 물론,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남궁세가주의 자존심에 크나큰 흉터를 남겼을 터였다.
다시, 철면개과 남궁천승의 눈이 부딪혔다. 이내 안색을 회복한 남궁천승이 작게 웃었다.
“…그래, 새삼 안타깝게 되었소.”
“뭐가 말이오?”
“과거 이 몸을 모욕한 늙은 거지가… 이미 쓰러져 한 줌 흙이 되어버렸으니 말이오. 그 탓에 애꿎은 새끼 거지들만 죽어나게 생겼잖소?”
“…….”
이내 철면개의 얼굴 역시 서서히 시커멓게 물들었다. 허나 개방주 역시 분을 참아넘겼다.
“그래. 뭐 어쩌자는 거요, 가주?”
다시 철면개가 말했다.
남궁천승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전쟁하러 오긴 했소만… 우선은 항복을 권유하겠소. 굳이 흘리지 않아도 될 피를 흘릴 필요는 없지 않소?”
후비적.
철면개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허나 남궁천승은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보시오, 걸개. 본래 하나에서 갈라졌던 정파무림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것뿐이니… 딱히 어려울 것도 없잖소?”
“…….”
“아, 다만 사파의 수괴 비룡대주는 토해내셔야겠소. 놈이 이곳으로 향했음은 이미 알고 있으니…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마시오.”
“후~”
귀를 후비던 철면개가 이내 귀에서 손가락을 꺼냈다. 입김으로 귓밥을 날려 보낸 뒷말을 꺼냈다.
“정파무림이라… 잘도 지껄이는군 그래. 헌데 당금의 의혈맹이 정파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쓴 ‘사교집단’과 다를 게 대체 뭐요?”
“…….”
철면개의 말은.
퍽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내심 철면개로서는 남궁천승의 속을 떠보려는 의도가 있었으나 남궁천승의 표정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고맙소.”
외려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실은… 정말로 항복해버리면 어쩌나 싶었거든. 오늘은 꼭 무도한 이들의 피를 보고 싶었단 말이지.”
“…아, 그러쇼?”
이내.
양측 무인들 사이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허나 아직 ‘전면전’이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삼 대 삼, 어떻소?”
다시 남궁천승이 말했다.
또한 그것은 철면개와 공진으로서도 역시 익히 예상하고 있던 제안이기도 했다.
이기건 지건, 정면충돌은 서로에게 득 될 것이 없으므로 각 세력을 대표하는 무인들의 비무를 통해 승패를 갈음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는.
‘승복할 수밖에’ 없다.
설령 대부분의 전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해도, 세력을 대표하는 최정예고수가 이미 쓰러져버린 이상 항복 외에 달리 어쩔 도리도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세 명이라.’
철면개는 생각했다.
생각지 못한 경우는 아니지만, 비무를 치르고자 한다면 자신과 공진, 두 명이 나서는 것이 제일 모양새가 좋았다.
허나 남궁세가 측에서 세 명을 제시해왔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일 터였다.
승복, 혹은 불복.
잠깐의 고민이 스쳤다.
“대체 뭘 머뭇대고 있소, 방주? 이미 사전에 우리끼리 다 얘기가 되었지 않소?”
허나 그때였다.
등 뒤에 서 있던 비견개가 말했다.
“…형님.”
철면개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철면개보다 손위의 고수였으며, 철면개가 방주 자리에 앉은 이래, 개방의 ‘실질적 행동대’라 할 수 있는 집의당의 당주자리를 물려받은 이였다.
최소한.
절정에 머문 채 노화에 접어들기 시작한 소림과 개방의 여타 장로들보다는 일 대 일의 비무를 치르기에 가장 ‘적임자’였다.
“좋아. 그렇게 하지, 남궁 가주.”
이내 철면개가 승낙했다. 크흥, 그와 동시에 비견개가 콧김을 뿜으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자! 이 비견개 어르신께서 제일 먼저 상대해주지! 누구든 좋으니 어서 나와보시오! 조금 전 주둥이를 놀리던 위무제 조조께선 어디로 숨었나?!”
“……!”
이내 창검대주 남궁청이 즉시 뛰쳐나가려 했다. 허나 남궁천승의 팔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가주님?”
“청아, 너는 아직 젊다. 굳이 이런 자리에서 무리한 역할을 자처할 필요 있겠느냐?”
남궁천승이 인자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큭, 남궁청이 신음과 함께 이내 물러섰다.
“이 장로, 부탁드려도 되겠소?”
다시 남궁천승이 말했다.
“오호홋! 어련하시겠어요, 가주?”
휘익.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궁세가 측 인파 속에서 날렵한 인영 하나가 훅 날아올랐다. 타앗, 눈 깜짝할 새 남궁천승의 옆에 착지했다.
* * *
천리비연 남궁하연.
그녀는 여인의 몸으로 태어나 당당히 천하제일검가 남궁세가의 이 장로를 꿰찬 천하의 기재였다.
허나.
얼굴 한복판에는 기나긴 흉터가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있었으며, 그것은 그녀의 인상에 표독스러움을 더해주었다.
오 년 전.
그녀는 남궁세가를 침입한 비룡대주와 그를 따르는 사파무리에 맞서다 적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비록 눈앞에 선 거지는 그 당사자는 아니었으나… 그 또한 남궁세가를 욕보인 악적의 일원이었다.
“…흥, 정말 싫군요.”
이내 남궁하연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비견개를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냄새나는 사내놈들이고… 두 번째로 싫어하는 게 뒤룩뒤룩 살찌는 건데. 그쪽은 여러모로 최악이라 검으로 베기도 싫어지네요.”
“하! 헛소리 말고 덤비시오. 누군 좋아서 당신 같은 할망구와 뒤엉키는 줄 아남?”
대나무 몽둥이를 쥔 비견개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오호홋!”
남궁하연이 웃음을 흘렸다.
허나 가늘어진 눈빛 사이로 살기가 감돌았다. 채앵, 이내 그녀가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양측의 무인들이 한 발씩 물러서며, 이내 둘을 중심으로 삼 장 정도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고작해야 멧돼지를 상대로 길게 시간을 끌 것도 없지요. 순식간에 멱을 따드리죠!”
훅.
다음 순간, 남궁하연이 날아올랐다. 길게 늘어진 그녀의 양 소매가 흡사 나비의 날개처럼 펄럭였다.
쐐애액.
허나 활강하듯 비견개를 향해 쏘아지는 쾌속한 검끝은 마치 벌침과 같았다.
“헤엥!”
콰아아아아앙!
허나 비견개는 쉬이 당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대나무가 휘둘러졌으며, 이내 두 강기가 정확히 부딪히며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
남궁하연의 표정이 흔들렸다. 생긴 것과 달리, 비견개의 반응 속도는 전혀 느리지 않았다.
터엉.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충격으로 밀려난 비견개의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허나 그것은 ‘일부러’였다.
터어엉.
비견개의 두툼한 몸이 흡사 공처럼 땅에 부딪히며 다시 튀어 올랐다.
휘릭.
그리고 그대로 허공에서 몸을 허우적대며 방향을 바꾸었다. 그 모양새는 퍽 우스꽝스러웠다. 허나.
휘이익.
“크아아아압! 받아보시지!”
“…큭!”
남궁하연은 웃을 수 없었다
힘에만 의존해 둔해 빠질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비견개는 날렵하기 짝이 없었다.
후우우웅.
“흐랏차—!!”
대나무가 남궁하연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귓가에 이는 바람 소리에 남궁하연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한순간, 방향을 비틀지 않았더라면 당해버렸을 것이다.
터엉, 콰아아아앙!
허나 물론 끝이 아니었다.
비견개는 계속해서 추락과 튀어 오르기를 반복했고 기상천외한 방향에서 남궁하연을 노렸다.
“큭. 이 돼지가……!”
“크핫, 으하하하핫! 돼지한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기분이 어떻소?!”
기실 허공에서의 방향 전환을 통해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은 오히려 그녀의 장기였다.
그녀는 남궁세가 내에서 경신공으로는 따라올 자가 거의 없는 가볍고 날랜 검의 명수였다.
허나.
개방은 본래 경신공으로 유명한 집단이었고, 그중에서도 자신의 몸무게를 다루는 비견개의 실력은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터엉, 터엉.
비견개는 계속해서 몸을 튀겼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그리고 점점 더 날렵해지고, 방향은 예측불허가 되었으며 이내 남궁하연은 마냥 피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자연히 검과 대나무가 충돌을 빚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횟수는 점점 늘어났다.
물론, 강기와 강기의 충돌로 인해 각자의 몸에 누적되는 충격은 두 사람에게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가녀린 체구의 남궁하연과는 달리, 비견개의 비대한 몸집은 그 정도의 충격쯤 겹겹이 쌓인 살집들로 충분히 흡수하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체구의 차이는.
곧 내구력의 차이인 것이다.
콰아아앙!
“…큭!”
그렇게.
승패의 추가 기울어지는 듯했다.
철면개는 내심 걱정하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나 그때였다. 훗, 남궁하연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쩔 수 없죠! 냄새나는 거지 주제에 그렇게 이 몸과 부딪히고 싶으시다면야… 기꺼이 부딪혀드리지요!”
다음 순간.
콰아아아아앙!
검과 대나무가 정면으로 충돌했고, 남궁하연의 검이 그대로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
이번에는 비견개가 당황했다.
검수가 검을 손에서 놓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포자기와 같기 때문이었다.
허나 동요는 찰나였으며 이내 비견개는 맨손으로 파고드는 남궁하연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파라라락.
허나 그때였다.
팔랑거리며 ‘날개 역할’을 하던 남궁하연의 양 소매가 길게 풀어헤쳐졌다. 그리고.
훙훙훙, 덥석.
“…허엇?!”
흡사 붕대처럼 길게 늘어난 왼쪽 소매가 비견개의 대나무 몽둥이를 칭칭 휘감았다.
우우웅.
당황한 비견개가 몽둥이를 회수하려 했다. 물론, 강기의 힘 앞에 천 쪼가리 따윈 순식간에 찢어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허나.
우우우웅.
남궁하연의 소매는 찢어지지 않았으며, 이유 또한 명백했다. 마찬가지로 강기를 머금은 소매가 은은하게 빛났기 때문이었다.
“…허얼!”
찰나의 순간, 비견개는 몽둥이를 포기하고서라도 몸을 빼야 함을 깨달았다.
허나 이미 늦고 말았다.
휘리리릭.
다음 순간, 남궁하연의 나머지 오른쪽 소매가 비견개의 목을 칭칭 휘감았다.
“…커억!”
콰아아아악.
그리고 사정없이 조여들기 시작했다. 한순간 호흡이 틀어막힌 비견개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타아앙.
이내 두 사람의 신형이 땅 위로 내려섰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비견개가 이를 악물었다.
부르르르.
허나 몽둥이를 놓지는 않았다.
천과 몽둥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력의 경합이 멈추는 순간, 남궁하연의 힘은 전부 오른쪽 소매로 옮겨올 것이며.
그것은 즉, 그대로 자신의 목이 부러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부르르르.
콰드드드득.
“헉, 허억… 죽어요, 이 돼지!”
남궁하연 역시 양 소매를 동시에 다루는 것이 쉽지는 않은 듯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허나 이대로는.
비견개는 분명히 ‘죽고 만다’.
“…크윽!”
철면개는 이를 악물었다. 남궁천승의 얼굴에 서린 여유로운 미소를 바라보았다.
병장기는커녕 제대로 된 형체를 지니지도 않은 천 조각 따위에 강기를 주입하여 활용한다.
그것은 분명.
단순히 절정고수의 영역을 벗어난 ‘기예’였다. 남궁하연은… 이미 초절정의 초입에 접어든 고수였던 것이다.
부르르.
철면개의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물론 비견개를 이대로 죽게 놔둘 순 없다. 허나 일 대 일의 비무에 끼어든다면… 그것은 자칫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으며.
이것은 개방만의 일이 아니므로, 멋대로 끼어들기에는—
타앙.
“갈—!!”
허나 그때였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철면개의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이가 먼저 땅을 박찼다.
후욱.
소림의 공진이었다.
삽시간에 남궁하연과 비견개에게 다가선 공진이 허공에서 한바퀴를 회전했다.
서걱, 툭.
그리고 그 발끝은.
날카로운 칼날과 같았다.
비견개의 목을 조여들던 소매가 말끔하게 베어졌고, 이내 다시 평범한 천 조각이 되었다.
“그륵… 큭!”
툭, 쿠우우웅.
그리고 이내 의식을 잃은 비견개의 거구가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