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83)
289화. 적파직검
콰아아아아앙!
“…커헉!”
찰나의 순간, 허를 찌르는 남궁천승의 일격에 밀려난 이벽의 신형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카가가가가각!
허나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아래로 밀려나는 순간, 유의 묘리로 검을 회수하며 남궁천승의 깃털을 일부 깎아내었다.
기어코 빈틈을 벌렸다. 그리고.
쩌저저저저적.
이내 적파도결을 일으켰다.
‘…아니, 적파도결이 아니다.’
허나 이벽은 고개를 저었다.
후우우욱.
고양된 의식 속에서, 적잖은 충격을 입고 아래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이벽은 깨달음에 대한 단초를 놓치지 않았다.
적파심공은.
‘직의 묘리’라는 접점을 통해 청강유엽공의 흐름 안에서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적파심공에 근거하는 도살지도나 적파도결 또한, 청강유엽검식의 일부로서 능히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의미로는.
‘이미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쩌저저저적.
이벽은 적파도결을 바라보았다.
지금과 같이 청강유엽공의 내력으로 적파도결의 기예를 펼치고 있다는 것은 즉, 그 자체만으로 이미.
청강유엽검식의 일부로서.
‘하나의 초식’이 된 것이다.
단지… 서로 다른 무공이었던 ‘어색한 흔적’이 심신에 남아, 제 위력을 십할 끌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이름을 합쳐버려야겠군.’
이벽은 마침내 결론에 이르렀고.
적파도결의 ‘새 이름’을 떠올렸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적파직검(赤派直劍).
훅,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접전 중에 수없이 반복되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붉은 검들이 재차 남궁천승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크하핫! 원, 여기까지가 자네의 한계인가 보군! 이런 잡스러운 기술에 언제까지 집착을―!”
달라진 것은 그저.
‘기예의 이름’ 뿐이었다. 허나.
서걱.
“크으… 허억!”
다음 순간, 남궁천승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허리가 굽혀지며 거친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이벽은.
적파직검이 파고든 날개 안쪽으로 남궁천승의 옆구리가 붉게 물든 것을 확인했다.
마침내 날개의 수비를 뚫고.
육신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핫.”
이벽은 작게 웃었다.
이름이란 글자에 불과하다. 허나.
본디 글자는 생각을 움직이고, 생각은 마음을 움직이며, 마음은 무공을 움직인다.
기실 그렇기 때문에.
무공이나 초식의 이름은 결코 함부로 붙여지는 법이 없으며, 그 자체로 창시자의 깨달음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선우세가의 무공들이 모두 ‘청강유엽’이라는 이름 하에 통일되어 있었던 것 역시.
물줄기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강을 이루듯, ‘창공비검’이라는 하나의 묘리를 완성하기 위한 검치 선우명의 안배였다.
그리고 지금.
그에 속하는 여섯 개의 묘리 중 하나인 직의 묘리는… 적파심공을 흡수하여 이내 ‘적파직검’으로 거듭났다.
또한 그것은.
더는 검치 선우명의 유산이라 할 수 없는, 오로지 이벽만의 청강유엽검식이기도 했다.
무공과 무공의 접점에서.
목천의 기예를 가다듬고.
자신만의 길을 완성해 나간다.
그리고 그 길은.
‘하늘을 향해 열려있다.’
우뚝.
이내 추락하던 이벽의 몸이 허공에 멈춰 섰다. 자세를 추스른 뒤, 재차 남궁천승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지.”
“……!”
“덕분에 다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소. 가주께선… 지금의 내게 있어 마치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영약’과 같군.”
그 표정은 하늘을 비추는 호수처럼 담담했고, 남궁천승은 섣불리 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크하핫! 으하하핫!”
이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꽈악, 부르르르.
허나 웃음으로 본심을 감추려 애를 써본들 검을 움켜쥔 손이 떨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위기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여섯 장의 날개를 손에 넣어 애송이를 단숨에 처 죽이려 했다.
허나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눈앞의 애송이 역시 깨달음을 얻어 더욱 강해졌으며, 심지어는.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
으스스.
불현듯 등줄기에 오한이 스쳤다.
이내 남궁천승은 두려움을 느꼈다. 피가 흐르는 옆구리의 상처가 다시 욱신거렸다.
그것은 오래된 상처가 아니라.
지금 막 새로 새겨진 상처였다.
영문을 알 수 없으나… 조금 전까지 ‘버틸 만했던 공격’이 돌연 한순간에 버틸 수 없는 수준으로 날카로워졌고.
놈의 붉은 검이 몸에 남긴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즉, 더는 무턱대고 접근전을 펼칠 수 없게 되었다.
‘…허나 어떻게?’
이내 남궁천승은 초조해졌다.
타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후욱.
“그럼 계속 가겠소.”
허나 그때였다.
이벽의 신형이 다시 날아올랐다.
“큭……!”
펄럭.
이벽이 다가오자 놀란 남궁천승이 반사적으로 날갯짓을 했다. 후욱, 신형이 더욱 위로 날아오르며 다시 거리를 벌렸다.
“…지금 내게서 달아나는 거요?”
그러자 이벽이 말했다.
움찔, 남궁천승이 흔들렸다.
“크… 하하핫! 달아난다고? 이 천중일검 남궁천승이 말인가?! 비룡대주께서는 참 재미있는 농담을 잘도 하시는군, 그래!”
버럭, 악을 내질렀다.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받아들이기에는, 남궁천승의 자존심의 벽은 높고 두터웠다.
하늘은.
남궁세가의 영역이다.
비룡 혹은 신룡, 혹은 그 무엇이 되었건… 남궁세가의 검이 이룩해낸 하늘의 제왕보다 높이 날 수는 없고, 감히 그래서도 안 된다.
‘건방진… 애송이가―!’
뿌드득.
남궁천승이 이를 갈았다.
“…….”
이벽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기실 그 이상의 대화를 나누고 있을 이유도 없었으므로, 재차 날아오르며 접전을 이어가려 했다.
쿠르르르릉.
허나 그때였다.
“……?”
하늘 저만치에서.
난데없는 굉음이 일었다.
일순 이벽의 시선이 남궁천승이 아닌 그 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맑았던 하늘에.
한 무리의 ‘먹구름’을 발견했다.
‘…저건?’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저런! 또 한눈을 파는 겐가―!!”
펄럭, 후두두두둑.
허나 그 틈을 타, 남궁천승의 날개가 일제히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수많은 깃털들이 쏘아졌다.
흠칫.
이벽이 다시 남궁천승을 향했다.
한 장 한 장이 모두 제왕의 무게를 담고 있는 예의 깃털들은 이미 조금 전, 적파도결을 마주 쏘아 보냄으로써 파훼해냈던 기예였다.
허나.
세 쌍으로 늘어난 날개에서 쏘아지는 깃털의 수는 당연하다는 듯 세 배 이상으로 많았으며.
섣불리 피해버렸다가는.
지상의 무인들을 향할 터였다.
“…….”
허나 이벽은 고개를 저었다.
몇 배가 되었건, 적파도결로 파훼했던 공격이라면… 적파직검으로 막아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한 확신이 스쳤다.
쩌저저저저적.
다음 순간, 이벽의 주위로 수십여 자루의 붉은 검들이 허공에 맺혀 들었다.
후욱, 콰콰콰콰콰콰쾅!
그리고 예상대로.
직의 묘리를 품은 붉은 검은.
세 배로 늘어난 깃털을 상대로도 전혀 밀려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경합을 넘어 삽시간에 깃털들을 ‘압도’해버렸다.
쐐애애애액.
“…허억!”
심지어는.
그러고도 남은 몇 자루의 검들이 남궁천승을 향해 날아들었다. 훅, 세 겹의 날개가 서둘러 몸을 감쌌다.
후두두둑,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적파직검이 그 위를 마구 두드렸다.
물론, 적파직검이라 한들 깃털이 아닌 날개 그 자체를 뚫어버릴 수는 없었다.
펄럭.
“…흐아아압―!!”
허나 남궁천승은 그 즉시 날개를 도로 펼쳤다. 칼날의 파편들을 멀찍이 밀쳐내었다.
그것은 행여 조금 전처럼, 이벽의 ‘영역’에 눌려 힘 싸움에 말려들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
허나.
이내 남궁천승은 이벽이 전혀 거리를 좁히지 않은 채 저만치 아래에 그대로 머물러 있음을 확인했다.
그 눈은.
또다시 자신이 아니라 다른 쪽의 머나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자신 따위는 더 이상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었다.
‘…대체 하늘에 뭐가 있기에?’
허나 남궁천승은.
위를 올려다볼 수 없었다.
그것은 한순간이라도 놈에게서 눈을 돌렸다간, 삽시간에 날개를 잘린 채 추락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몇 번의 호흡이 지나간 후에서야 다시 이벽의 시선이 움직였고, 남궁천승을 향했다.
움찔.
다시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
남궁천승의 어깨가 흔들렸다.
“대단하오, 가주. 과연… 천하제일검가의 이름에 걸맞은 ‘단단함’이오. 견고하기로는 천하의 적수가 없을 것 같군.”
그리고 이벽이 말했다.
“헌데… 그렇게 자꾸 날개 안에 몸을 숨기고 웅크려대서야 새가 아니라 마치 거북이와 같군. 그렇지 않소?”
“…뭐, 뭐라?”
“솔직히 조금은 실망이오. 날개의 형태를 한 것 치고는… 제대로 된 ‘하늘의 일검’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 것 같소.”
이벽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대로 끝내는 것은 퍽 간단하지만… 내 기꺼이 가주께 기회를 드릴 테니, 어디 한 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검을 펼쳐보는 게 어떻소?”
“……!”
와락.
그리고 남궁천승의 인상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승패의 우열은 뚜렷해졌고, 마침내 놈은 자신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남궁천승은 다시금 옆구리에서 찢어지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시종일관 어떻게든 지키고 있던 얼굴의 웃음마저 사라졌다.
“이… 한낱 버러지 같은… 천박한 애송이가 감히… 대 남궁세가의 검을… 창공의 제왕을 모독하려 하느냐―!!”
남궁천승은 격노했다.
남아있던 한 줄의 이성이 흔들렸고, 그 즉시 날개가 펄럭였다.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한 뒤, 머리를 아래로 하여 칼끝을 기울였다.
후우우욱, 펄럭.
그리고 다음 순간, 세 쌍의 날개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하늘을 온통 뒤덮기 시작했다.
부르르르.
“크윽… 으으으으―!!”
그리고 남궁천승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상단전의 심력을 쥐어짜며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그래… 위세 한번 대단하구나―! 내 네놈을 기꺼이 인정하마! 허나 제왕 앞에서는… 한낱 먹잇감에 불과하다! 어디… 이 한 수를 네놈이 받아낼 수 있는지… 두고 보자꾸나!”
그리고 남궁천승이 외쳤다.
지금 이 순간, 남궁천승은 펼칠 수 있는 가장 강한 일검을 떠올렸다. 그것은 물론, 창궁무애검법의 절초였다.
더는 뒤를 생각하지 않았다.
저 아래에 있는 세가의 부하들, 그리고 의혈맹 소속 무인들의 안위를 지워버렸다.
심지어는 이 초식을 펼친 이후의 자기 자신조차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놈을 해치우지 못한다면… 설령 살아남는다 한들 ‘하늘의 제왕’이라는 천하제일검가의 자부심이 꺾여버리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자! 비룡대주, 원한다면 얼마든지 받아 보거라! 이것이… 바로 오늘의 남궁을 있게 한 제왕의 일검이다―!!”
후우우우욱.
그리고 다음 순간.
하늘을 뒤덮은 여섯 장의 날개와 남궁천승의 신형 위로 한 마리 매의 형상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오.
검명(劍鳴)이 일었다.
마치 매의 울부짖음과 같았다.
쐐애애애애액.
그리고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추락하는 남궁천승의 주변으로 회잿빛 깃털들이 흩날렸다. 그 한 장 한 장이 모두 제왕의 무게를 품은 깃털이었다.
깃털이 모여 날개가 되고.
다시 그런 날개를 여섯 장이나 지닌 거대한 매의 무게가 오롯이 남궁천승의 일검에 집중되었다.
그 검끝은.
매의 부리와 같았다.
“크아아아아아압―!!”
휘오오오오오.
그 거대한 위용에서는 마치 하늘 그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압박감이 감돌았다. 허나.
물론 이벽에게는 이미.
그에 맞설 초식이 정해져 있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창공비검(蒼空飛劍).
후욱.
이벽의 몸이 솟구쳤다.
날아오르는 주변으로 무수한 나뭇잎들이 춤을 추며 투명한 흐름을 이루었다.
설령 정말로 하늘이 무너진다 한들, 허공을 노니는 한 장의 나뭇잎에게서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다.
그리고 마침내.
매의 부리와 맞닿았다.
후욱, 콰아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