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88)
294화. 송영영 (1)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
소림의 산문을 떠난 송영영을 쫓아 어렵지 않게 뒤를 따라잡은 이벽은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 순간, 이벽은 그녀의 표정이 미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헛소리.”
철컥.
송영영이 검을 잡았다.
“자꾸 헛소리하면 죽일 거야.”
후욱.
송영영의 기세가 날카롭게 일어났다. 허나 이벽은 굳이 그에 맞서 기세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그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잠자코 눈을 마주했다.
이내 서서히 송영영의 눈이 흔들렸고, 그렇게 일각 정도의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후욱.
이내 눈이 녹듯.
기운이 사그라들었다.
“…아니, 그냥 허세부린 거야. 어차피 지금 일 대 일로 싸워봤자 당연히 내가 죽겠지.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이내 송영영의 기세가 꺾였다.
목소리에는 시무룩한 기색이 섞여들었다. 억지로 세워져 있던 벽에 충격을 가하자, 송영영은 급격하게 풀이 죽어버렸다.
이내 이벽은 자신의 직감대로 그녀가 그다지 ‘변하지 않았음’을 이해했다.
변한 것은 그저.
서로가 처한 입장일 뿐이다.
“송영영.”
“…왜.”
“지금은… 정도맹주의 제자가 아니라 비룡대원이었던 너와 대화를 나누고 싶군. 가능하겠나?”
“…….”
“우선은… 옛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군. 그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면목이 없다.”
흠칫.
다시 송영영의 표정이 흔들렸다.
과거, 이벽은 그녀에게 ‘벗으로서 자신을 초대한다면, 기꺼이 무당에 들르겠노라’는 약조를 했었다.
허나 지키지 못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합당한 이유를 늘어놓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허나 지금 중요한 것은.
이유가 아니라 마음일 터였다.
“…대주뿐만이 아냐.”
이내 송영영이 말을 이었다.
“밥은 많으니까 다들 무당에 와도 된다고 했는데… 한 명도 무당에 안 왔어.”
“…….”
과거, 남궁세가를 벗어난 이후.
취풍신개와 함께 권왕을 만나러 산동으로 떠나기 전, 이벽은 비룡대원들에게 ‘휴가’라는 이름의 해산을 이야기했고.
송영영은 즉시 떠나버렸다.
그 모습은 꼭 오늘과 같았다.
허나 어쩌면… 송영영은 그때에도 비룡대원들 중 누군가가 ‘뒤를 쫓아오길’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다들 나만 미워해.”
“…딱히 그런 건 아니다.”
다시 어색함이 감돌았다.
불현듯 이벽은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에는 이 자리가 그리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영영, 술은 먹나?”
“……!”
송영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것은 분명,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이벽이 그녀에게서 보았던 가장 급격한 ‘표정의 변화’였다.
“…괜찮으면 내가 한 잔 사지.”
“알았어, 얼른 가자.”
송영영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산을 내려갔다.
이내 산 아래에 자리한 불영촌에 접어들었다. 전투의 여파는 물론 불영촌에도 무거운 공기를 남겼으나.
행인들은 없지 않았고.
객잔의 문 또한 열려 있었다.
그것은 설령 무림인들 간에 어떠한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 여파가 자신들에게 미치지는 않을 거라는, ‘소림에 대한 신뢰’였다.
드륵.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몇 병의 술과 가벼운 음식을 시켰고, 이내 술상이 차려졌다.
벌컥.
“크으.”
“…….”
“잔 내놔, 대주. 왜 나만 마셔.”
그리고.
한동안 몇 마디의 무의미한 대화 속에서 술이 오고 갔다. 이벽은 서둘러 본론을 꺼내지는 않았다.
다만 술기운 속에서.
오 년의 거리감을 좁혔다.
“…왜 무당에 안 왔어?”
허나 두 병의 술이 동이 났을 즈음, 불현듯 송영영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도리도리.
송영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일순 그녀의 표정 위로 ‘슬픔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네 검은… 빈 껍데기 같아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고 내가 말했었잖아.”
“……!”
불현듯.
이벽은 과거의 대화를 떠올렸다.
오 년 전, 지금과 마찬가지로 흠뻑 술에 취했었던 그녀는 이벽을 상대로 돌연 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적이 있었다.
이벽의 청강유엽검식은.
각 도가문파가 내세우는 검공의 껍데기만을 가져다 억지로 엮어놓은 짜깁기에 불과하노라 말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따라 함께 무당으로 간다면… 그 껍데기를 ‘알맹이’로 채워줄 수 있노라 했다.
그리고 그 이후.
이벽은 선우세가의 시조, 검치 선우명이 실제로 그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청강유엽검식을 창안해냈음을 알게 되었다.
“대주. 지금의 넌 예전과 달리… 이제는 단순한 껍데기조차 아냐. 그 안에 ‘불순물’이 섞여버리고 말았어.”
다시, 눈앞의 송영영이 말했다.
그리고 이벽은 의미를 이해했다.
혜공의 도움에 힘입어 이벽은 청강유엽공과 적파심공, 만월무변심공을 하나의 흐름으로 합치는 것에 성공했고.
다시 남궁천승, 맹철극과의 싸움을 통해 그 깨달음을 정리함으로써 ‘적파직검’과 ‘만월무변곡검’을 완성했다.
허나 그것은 즉.
도가의 껍데기 안에 사파의 묘리를 채워 넣은 셈이므로, 그녀에게 있어서는 ‘불순물’이나 다름없는 모양이었다.
“…어쨌건 그 덕에 남궁천승이나 맹철극을 상대로 무사히 이기지 않았나?”
잠깐의 생각 끝에 이벽이 말했다.
혜공의 도움을 통해 세 심법을 하나로 합치지 못했더라면… 남궁천승까지는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었을지라도, 적지 않은 부상을 각오해야 했을 터였다.
하물며 생각조차 못했던 맹철극의 가세까지 고려한다면, 이벽은 선뜻 승리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검은 그저 검일 뿐이다. 사람을 죽이건 살리건, 검을 쥔 내 책임이지 검을 탓할 수는 없다.”
“…….”
또한 이벽은 생각했다.
붕괴하던 모가장의 지하공간에서, 적파도결을 쏘아 파편들을 파괴했고 양민들이 달아날 시간을 벌었다.
죽이기 위한 검으로.
많은 목숨들을 살렸다.
벌컥.
“…순진하기는.”
잔을 들이켠 송영영이 말했다.
“검은 사람을 물들여. 사파의 무공이 비록 마공은 아니라 해도… 대주가 아직 얼마 못 산 애송이 새싹이라 잘 몰라서 그래.”
“…갑자기 그게 뭔 소리인가?”
“나 너보다 나이 많아. 몰랐어?”
“…….”
이벽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딱히 신경을 쓴 적은 없었다.
허나 송영영은 예나 지금이나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찾기 힘들었고, 나이 또한 짐작하기 어려웠다.
“…몰랐다. 애당초 얘길 한 적이 없는데 그런 걸 내가 어찌 알겠나?”
“흥, 그래.”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술을 들이켰다.
다시 한 병이 바닥을 드러냈다.
두 사람 모두 내력을 일으키지 않았으므로 취기가 올랐고, 이야기는 종종 이상한 데로 튀었다.
“집으로 돌아가. 대주.”
다시 송영영이 말했다.
“그냥… 무림을 떠났으면 밭 갈고 낚시나 하면서 곱게 살면 되지, 왜 이상한 시기에 굳이 튀어나와서 피를 보려 하는데?”
“…….”
그것은.
조금 전, 소림에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눴을 때에도 이미 한 번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허나 어조는 퍽 달랐다.
불현듯,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녀가 본심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마교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은 이상, 피가 흐르는 것은 막을 수 없어. 아무리 대주라고 해도… 모든 목숨들을 구할 수는 없는 거야.”
그리고 다시.
본론이 꺼내어졌다.
“…그야 물론 알고 있다. 또한 공공의 적을 앞두고서 훼방을 놓을 만큼 멍청하지는 않다.”
“…….”
이벽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이벽과 자신이 ‘같은 편’이 되리라는 서천무존 정룡의 말을 떠올렸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힘이 닿는 한, 이벽은 의혈맹의 무인이라 하여 구태여 죽을 필요가 없는 이들을 살리고자 했으며.
또한 소림과 개방에 진 빚을 갚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순순히 항복이란 선택지를 고를 수는 없다.
“그러니.”
이내 말을 이었다.
“마찬가지로… 그쪽 또한 나를 훼방 놓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그게 무슨 소리야?”
“항복은 하지 않는다.”
알싸한 술기운 속에서.
이내 생각을 전개해나갔다.
“다만… ‘동맹’이 되고 싶다.”
“……!”
“각자의 방향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의혈맹을 상대하고 놈들의 전력을 깎아 서로에게 득이 되면 그만 아닌가?”
이벽은 독왕을 떠올렸다.
일전의 그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구실’이 필요하다며, 손녀 당려옥을 이벽에게 맡겼다.
그것은 마치.
의혈맹, 혹은 황보세가와의 관계에 있어 애를 먹는 당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했다.
쪼르륵.
이벽은 술병을 들었다.
송영영의 잔을 채워주었다.
“그쪽의 ‘행보’에 관해서는… 아무쪼록 무운을 빌도록 하지. 다만 그사이 ‘사천의 일’에 대해서는 내가 맡도록 하겠다.”
“……!”
산동에 황보세가가 있다면.
사천에는 당가가 있다. 물론, 송영영 역시 이벽이 말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벌컥.
“크으… 네가 그렇게 강해?”
잔을 들이켠 송영영이 말했다.
“기껏해야 다 쓰러져가는 무림맹의 잔당들을 데리고서 천하의 독왕과 당가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
물론.
말처럼 간단한 일일 리는 없다.
허나 이벽은 생각했다. 애당초 낙검문을 떠나 다시 무림으로 나온 것은 스승의 원수를 갚기 위함이었으며.
또한 나아가서는 그간의 관계와 빚, 모든 천하에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모든 목적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이제서야 조금 명료해지는 듯했다.
“딱히 다짜고짜 싸우겠다는 뜻은 아니다. 적의 전력을 깎아 먹는 방법이 꼭 죽이는 것만은 아니지 않나?”
“…….”
“독왕… 당 노야와는 적지 않은 인연이 있다. 최소한 이야기 정도는 해볼 수 있겠지.”
어쩌면.
당가를 설득할 수 있다면.
그를 통해 의혈맹 내부에서도 ‘적과 적이 아닌 이’를 분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놈의 대화.”
송영영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천존과 신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직접 보고도 그런 소리가 입에서 나와?”
“…….”
“대주, 놈들은 마교야.”
“…물론 알고 있다.”
“남궁세가주 남궁천승을 생각해 봐. 이십 년도 넘게 정체되어있던 무공이 근래에 들어 갑자기 그 경지에 이르렀어. 그리고 그건 비단 그자뿐만이 아냐.”
지난 오 년 사이.
의혈맹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갑자스레’ 터무니없이 강해진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하였다.
“그건 분명히 마공이야.”
“……!”
마공이란.
역천의 무공이다.
그것은 정파와 사파의 무공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기운을 통해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으나, 그렇기에 외려 더욱 위험했다.
그러한 가르침은.
본인조차 모르는 새에 전승자의 내면 속에서 힘에 대한 집착을 제외한 모든 ‘인간성’을 지워버린다고 알려져 있었다.
‘무인’을 ‘마인’으로 바꿔놓는다.
때문에 마공이며, 마교인 것이다.
“남궁세가가 마공에 물들었다면 당가라고 깨끗할 것 같아? 어떤 이유에서건 마교와 협력한 자는 삼족을 멸해야 해.”
“…….”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이 싸움을 준비해왔어. 그러니까… 어쭙잖은 마음가짐으로 방해하게 둘 수는 없어.”
“…방해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다만 나 역시 내 방식대로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
그리고.
이벽은 탁자 위로 다시금 벽이 세워지는 것을 느꼈다. 허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네게 확답을 바라는 게 아니다. 바라는 건 그저 내 뜻을 검존께 전달만 해줬으면 한다.”
“…….”
“결국에는… 내게 ‘책임질 힘’이 있음을 증명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타앙.
송영이 거칠게 잔을 내려놓았다.
드륵,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되겠다. 따라나와, 대주.”
“…무슨 뜻이지?”
“한 판 붙자. 딸꾹.”
“…뭐?”
타앗.
그리고 이벽이 뭐라 말을 잇기도 전이었다. 송영영이 땅을 박차며 객잔의 문밖으로 나서버렸다.
“…….”
이벽은 일순 황망해졌다.
허나 이내 술값을 치른 뒤, 이벽 또한 객잔을 나섰다. 그 즉시 송영영의 뒤를 쫓았다.
타앗, 탓.
어느새 송영영은 저만치 앞에서 날렵한 몸짓으로 지붕 사이를 노닐고 있었다.
이내 마을을 벗어났다.
타앗.
그리고 외곽의 공터에 착지했다. 또한 남궁세가와의 혈전이 펼쳐졌던 장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음습한 피 냄새와 더불어, 벼락에 불타 쓰러진 나무 따위가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다.
“딸꾹.”
송영영이 다시 딸꾹질을 했다.
철컥, 그리고 검을 뽑아 들었다.
“야, 대주.”
“…왜 부르나?”
“너 말이 안 통해. 덤벼, 딸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