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89)
295화. 송영영 (2)
어둠이 내려앉은 공터.
이벽은 마주하고 선 송영영을 바라보았다. 달빛을 반사하듯 투명한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랄 게 없었다.
“뭐해, 덤비라니까? 딸꾹.”
허나 목소리에는.
명백히 술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이런 짓은 그만두지.”
“군소리 말고 덤벼. 장난치는 거 아니니까. 딸꾹. 아니면 내가 무서워? 딸꾹.”
“…….”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딸꾹.”
훅, 송영영이 검을 겨누었다.
“서로 내공 없이. 그냥 내 검을 내 손에서 떨어뜨리기만 해도 돼. 너는 낙검신룡이잖아? 딸꾹.”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있지, 물론. 네가 만일 내 손에서 검을 떨어뜨린다면… 네 말대로 장문인에게 네 잘난 ‘동맹 의사’를 전달해줄게. 딸꾹.”
“……!”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겨누어진 검을 잠시 바라보았다.
“지금 한 말 진심인가? 나중에 가서 술김에 실언을 했느니… 그런 식으로 딴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만.”
“흥, 그런 치사한 짓은 안 해. 대주 너야말로 두들겨 맞고 나서 엉엉 울지나 마.”
“그렇군. 잘 알겠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진심이라면 외려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하물며 ‘내력 없이’라면.
그녀를 다치게 할 염려는 없었다.
철컥.
이내 이벽 또한 검을 잡았다.
내공 없이 검을 겨룬다는 것은, 지닌 힘의 정도를 떠나 순수하게 지니고 있는 무리를 겨루는 것이다.
허나 물론.
내력과 성취는 대개 비례한다.
지난 오 년간 그녀가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건, 이벽은 패배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허나.
이러한 제안을 해왔다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잠깐의 정적 속에서, 이벽은 송영영의 기척을 살폈다.
물론, 비무에 앞서 상대의 기세를 읽고 수를 가늠하는 것은 퍽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딸꾹.”
그 순간, 송영영이 딸꾹질했다.
그녀는 여전히 술에 취해있었으며, 내력을 이용해 술기운을 몰아낼 생각도 없는 듯했다.
비틀.
심지어는.
이벽의 기척을 살피기는커녕,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한 채 발끝의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해? 빨리 안 들어오고. 딸꾹. 내가 연상이니까 당연히 선공을 양보해야지. 딸꾹.”
“…후우.”
이벽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진지하게 임할 만한 승부가 될 것 같지는 않다.
훅.
이내 가볍게 검을 뻗었다.
허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뻗은 검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청강유엽검식, 직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후욱.
허나 그 순간.
송영영의 검이 원을 그렸다.
“……!”
타앙.
이벽은 그 즉시 검을 뺐다.
그리고 황급히 일 보 물러섰다.
“흥, 뭐하니? 딸꾹.”
“…….”
그리고.
한발 늦게 당혹감이 스쳤다.
송영영의 원 안으로 검이 파고든 순간, ‘그 이상 나아가선 안 된다’는 직감이 뇌리를 스친 것이다.
“나는 술에 취했지만. 딸꾹.”
그때 다시 송영영이 말했다.
“너는 힘에 취해있어, 대주. 네가 여전히 얼마나 보잘것없는 껍데기 나부랭이인지… 내가 알게 해줄게.”
이벽은 잠시 침묵했다.
송영영의 발걸음은 술에 취해 흔들리고 있으나, 눈빛만큼은 한 점 흔들림이 없다.
그 사실을 이제서야 깨우쳤다.
또한 불현듯, 송영영의 성취가 ‘자신의 예상’을 이미 넘어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돌이켜보면.
송영영은 단 한 순간이나마 등천의 영역에 해당하는 맹철극의 먹구름을 걷어내었고, 자신에게 ‘검로’를 열어주었다.
그것은 비록.
등천의 힘은 아닐지라도.
능히 목천의 끝에 이른 힘이었다.
‘조금 오만했었나.’
가벼운 성찰이 스쳤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그저 단전 깨진 폐인에 불과했던 자신은, 어느덧 절정을 넘고 초절정을 지나 마침내 절대지경에 이르렀다.
허나 그것은.
그만큼 스스로의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스승에게서 낙검진천신공이라는 전대미문의 신공절학을 전수받았고.
그 이후에도 기이할 정도로 많은 가르침과 인연이 닿은 덕분이었다.
“딸꾹.”
허나 송영영은.
일찍이 이벽이 만난 모든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가장 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기재이며, 또한 정도맹주의 직전제자이기도 했다.
재능이 가르침과 때를 만나면.
오 년이라는 세월은 꽃이 피어나기에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자신이 해낸 일을 그녀라고 해서 해내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실례했군. 제대로 가겠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봐. 딸꾹.”
철컥.
이벽을 검을 고쳐잡았다.
그녀를 ‘다치게 할 염려’ 따위를 머릿속에서 지우는 한편, 송영영의 검을 되새겨보았다.
그것은 물론, 무당의 태극이었다.
돌연 오 년 전, 태극검존 태허진인과 만났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담뱃대에서 펼쳐지는 태극을.
자신의 검은 뚫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내 서서히 호승심이 일었다. 그리고 무인으로서의 감각이 눈을 떴다.
슥.
이벽의 검이 재차 뻗어졌다.
“…흥, 건방져.”
그리고 송영영이 콧방귀를 뀌었다. 부드럽게 원을 그리는 이벽의 검로는 마치 송영영의 검을 ‘빼다박은 듯’했다.
청강유엽검식, 유의 묘리였다.
앞서 이벽은 청성제일검 공능자와 극쾌의 묘리를 겨루었고, 서천무존 정룡에게는 하늘에 이른 곡의 묘리를 맛보았다.
그렇다면.
현재, 유의 묘리가 무당의 태극을 상대로 얼마나 당해낼 수 있을지, 이벽은 새삼 알고 싶어졌다.
훅.
그리고 한발 늦게.
송영영의 검이 마주 뻗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이벽의 원 안을 파고들었다.
타아앙.
다음 순간, 원 안에서 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자라나기 시작한 송영영의 원이 이벽의 원과 안쪽에서 맞닿았다.
파사삭.
“……!”
그 순간.
이벽의 원이 으깨어졌다.
그리고 어깨를 짓이기는 듯한 압력이 이벽의 검으로 파고들었다. 내력 없이 맨몸으로 버텨낼 만한 힘이 아니었다.
허나.
바꿔 말하자면, 송영영은 그러한 힘을 ‘내력 없이’ 이끌어 낸 것이다.
‘아니. 이건… 오히려 내 힘인가.’
다음 순간 이벽은 깨달았다.
자신의 검은 단순히 파훼된 것이 아니라… 송영영의 원 안에 ‘흡수된 채’ 자신에게로 되돌아온 것이다.
훅, 타앙.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거둬들인 검을 한 바퀴 회전하여 힘의 방향을 돌린 뒤, 재차 송영영의 원 안으로 파고들었다.
타아앙.
그리고 다시 유의 묘리를 펼쳤다. 이번에는 이벽의 검이 송영영의 원 안에서 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벽의 어깨를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힘과 힘이 겹쳐지며 다시 송영영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타아아앙.
“흥.”
허나 다음 순간.
송영영의 검이 회수되었고.
다시 파고들며 원을 그렸다.
그렇게, 이벽이 애써 돌려보낸 힘은 허무하리만큼 간단히 다시 이벽에게로 돌아왔고.
우드득.
이내 이벽은 이 이상 억지로 버티려 했다간 어깨의 근골에 손상이 가해질 것임을 감지했다.
타앙, 탱그랑.
그 순간, 이벽은 망설임 없이 검에서 손을 놓았다. 이내 떨어진 검이 저만치로 날아갔다.
* * *
“훗.”
송영영이 웃었다.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대단하군. 한 수 배웠다.”
그리고 이벽이 말했다.
“…뭐야 그게?”
“뭐가 말인가?”
“자기보다 약한 사람한테 당해서 검까지 떨어뜨렸으면서… 대주는 분하지도 않아?”
“딱히… 적이 아닌 벗과의 비무에서 한 수 배웠다고 해서 길길이 날뛸 이유까지야 있겠나?”
이벽은 어깨를 으쓱했다.
불현듯 밤이면 밤마다 사형제들과 비무를 치르곤 했던 낙검문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가벼운 미소가 스쳤다.
“뭣보다 ‘내력을 쓰지 못하는 천재’들에게 호되게 당해본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다.”
“…흥. 재미없어. 딸꾹.”
송영영의 미소가 사라졌다.
휙, 그리고 그대로 돌아섰다.
“어딜가나, 송영영?”
허나 그때 이벽이 말했다. 그리고 송영영이 다시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사라락.
이벽이 오른손이 뻗어졌다. 그 끝에서 투명한 나뭇잎이 일어나며 저만치에 떨어진 검을 휘감았다.
둥실.
이내 검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벽의 손안으로 되돌아왔다.
“…뭐 하는 거야?”
“승부를 계속해야 하지 않나?”
“…….”
“너는 내게 ‘검을 떨어뜨려 보라’는 얘기를 했을 뿐, 딱히 ‘내 검이 땅에 떨어지지는 것이 나의 패배’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
송영영의 미간이 흔들렸다.
“내게서 패배를 인정하게 하고 싶다면… 나를 지쳐 쓰러지게 만들면 그만이다. 물론, 내력은 한 톨도 안 쓸 테니 걱정은 마라.”
“…치사해. 약았어.”
“뭐, 할 말은 없군.”
이벽은 다시 나아갔다.
가벼운 흥분이 스쳤다.
타앙, 타아아앙.
그리고.
달빛 아래 두 자루의 검에서 피어나는 두 개의 원이 피어나고 서로 겹쳐지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마치.
공을 주고받는 놀이와 같았다.
허나 오고 가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원 안에는 차곡차곡 힘이 쌓였으며, 그 안에 담긴 것은 공이 아니라 집채만 한 바위의 무게였다.
타아앙.
그리고 다시금 이벽의 검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훅,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송영영의 검이 뻗어졌다.
후욱, 채애앵.
허나 가볍게 날아오른 이벽의 몸이 허공에서 검을 도로 낚아채었다.
어깨를 찌르고 들어오는 송영영의 검을 쳐내며 착지했다. 그렇게 비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쳇.”
“핫. 아깝게 되었군.”
혀 차는 소리와 웃음이 교차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원이 뻗어졌다.
타아앙.
과연, 송영영의 검은.
유의 묘리를 압도했다.
과거, 이벽으로 하여금 수도 없는 위기를 넘기게 해주었던 유검이었으나, 태극 앞에서는 한낱 어설픈 모조품에 불과했다.
타아앙.
이를 반증하듯.
힘을 되돌려보낼 때마다 이벽의 몸에는 채 떨쳐내지 못한 충격이 남는 반면, 송영영의 안색은 태연하기만 했다.
바위와 같은 무게를.
깃털처럼 상대에게로 되돌린다.
‘빈 껍데기라.’
그리고 이벽은 이해했다. 확실히,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허나.
타아아앙.
우직할 만큼 같은 접전을 반복하며 이벽의 검은 더욱더 송영영의 검을 닮아가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고작 두 수만에 튕겨 나갔던 이벽의 검은 이내 십여 합 이상을 버텨내기 시작했다.
타아앙.
그리고 접전이 이어지며.
이벽은 송영영의 검이 지닌 현묘함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그녀가 그리는 원 너머로, 유의 묘리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보이는 듯했다.
태극의 원 안에는.
다시 무수한 태극이 모여있었다.
그 모든 크고 작은 원들이 모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맞물리며 정교한 조화를 이룬다.
그것은 마치.
전진하는 마차를 연상케 했다.
거칠게 내달리는 말의 힘을 이용해 차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듯, 적의 힘으로 나의 검을 나아가게 한다.
‘…그렇군.’
그에 비하면.
자신이 지닌 유의 묘리는… 고작해야 ‘바퀴 한 짝’에 불과했다. 어떻게든 굴러갈 수 있다 해도, 그 동선은 조악할 따름이다.
타아아앙.
불현듯 이벽의 눈이 아득해졌다.
자신도 모르는 새 송영영의 검로에 매혹되었고, 이내 조금씩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마치 손을 뻗으면.
현묘함이 잡힐 듯했다.
타아아앙.
“…큭!”
허나 그때였다.
이벽의 몸이 비틀거리며 다시 튕겨 나갔다. 돌연 송영영의 검이 대각선을 그으며 ‘원을 끊어버린’ 것이다.
타앗.
원 안에 몰려있던 힘이 일제히 불어닥쳤다. 번쩍 정신이 든 이벽은 땅을 박찼다.
발끝을 띄워 충격을 최소화했다.
욱신.
허나 그럼에도.
어깨에 아릿함이 스쳤다.
휘익.
“흥.”
그리고 송영영이 검을 털었다.
“미안하지만 더는 못 보여줘.”
“…….”
“그렇게 무당의 검이 가지고 싶어? 하지만 이미 늦었어. 오 년 전에 내 사제가 될 기회가 있었는데 네가 스스로 걷어찼잖아.”
“…그렇군.”
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까지 이렇게 ‘놀고 있을’ 셈이야? 계속 버텨봐도 결과가 뻔한 건 충분히 알고 있잖아?”
다시 송영영이 말했다.
확실히 이벽은 난처함을 느꼈다.
제아무리 유의 묘리로 맞선들 결국은 일방적으로 충격을 받고 있으므로, 이대로는 결국 어깨를 다치게 될 것이었다.
또한 유의 묘리가 아닌 다른 묘리를 꺼낸다고 해도, 내력을 쓰지 않는 이상 태극의 현묘함을 찍어누를 만한 자신이 없었다.
“…훗.”
허나.
이벽은 다시 웃었다.
“왜 또 웃어?”
“노는 게 즐거워서 그렇다.”
“……!”
“송영영, 너는 즐겁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