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05)
313화. 이 대 일
사아아아아.
혈마의 붉은 뱀이 울부짖었다.
능히 산 하나를 뒤덮고도 남을 거대한 형상과 더불어 심혼을 자극하는 그 기세는 분명 ‘인세에 내린 재앙’이었다.
사라락.
이벽의 나뭇잎이 거칠게 흔들렸다. 마침내 다시 마주하게 된 스승의 원수 앞에서 마음을 다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놈의 뒤를 쫓아 헤맨 결과.
마침내 놈이 제 발로 찾아왔다.
물론, 놈이 이 자리에 나타난 목적이 당가인지, 혹은 자신인지 알 수는 없었다.
허나 자신이 당가로 향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 리는 없다. 어쩌면 양쪽 모두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자리에서.
놈의 목을 벤다.
그것은 비록 당금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게 되었다.
허나 어찌 되었건, 자신의 손으로 끝을 맺어야 하는 의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저릿.
허나 그 순간, 통증이 밀려왔다.
조금 전, 뱀의 꼬리가 휘둘러지며 이벽의 몸을 땅에 처박았다. 나뭇잎으로도 그 충격을 전부 무마하지 못했다.
또한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벽은 마음을 차갑게 식혔다.
창공비검을 펼쳐 기습적으로 뱀의 허리를 찔렀음에도, 고작해야 비늘 몇 장을 긁어낸 것에 그쳤다.
충돌의 순간.
이벽은 그 힘을 절실히 체감했다.
과거, 스승 이진천 역시 혈마를 상대로 창공비검을 펼쳤으나 공격에 성공하고도 숨통을 끊어놓지는 못했다.
때문에 스승은.
예의 ‘낙검’을 꺼내야만 했다.
하물며 지금의 자신은 고작해야 ‘실마리’를 얻었을 뿐, 여전히 그날의 스승에는 미치지 못한다. 고로.
‘아직은… 역부족인가.’
스스스스스.
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이벽과 당평세를 동시에 마주한 채, 혈마 또한 나름대로 다음의 수를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허나 물론, 이와 같은 대치가 그리 길게 이어질 리는 없다. 즉, ‘먼저 수를 생각해내야만 한다’.
검을 쥔 손에 땀이 맺혔다.
일촉즉발의 긴장이 흘렀다.
“소협.”
그리고 그때였다.
“용케도… 독의 주박을 벗어났군 그래. 참으로 대단하네. 이 늙은이의 완패일세. 허나… 소협 역시 몸 안은 퍽 엉망진창일 테지?”
당평세가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뭐, 멀쩡하지는 않소.”
“상황이 상황이니 긴말은 안 하지. 내가 여기에 남아 시간을 벌겠네. 그러니… 우리 가주를 도와 내 식솔들을 데리고서 도망쳐주지 않겠나?”
“……!”
이벽이 당평세를 향했다.
“염치없는 부탁인 것은 알고 있네. 이제부터 당가는 자네의 뜻에 전적으로 따를 걸세. 그러니―”
“싫소.”
이벽이 즉답했다.
“…단호하군. 조금 상처받았네.”
“저자는… 내게 있어 이미 불공대천의 원수요. 하물며 이 자리에서 노야마저 목숨을 잃는다면 나는 그 원한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소.”
또한 그런 식으로.
권왕 황보혁에게 취풍신개가 당했고, 이진천 또한 목숨을 다하고 말았다.
더는 누군가를 두고서.
달아나는 입장이 되지 않는다.
“또한 역부족이라 한들 노야와 나, 둘이서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소?”
“…….”
독왕의 입가에 쓴웃음이 일었다.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이네만. 놈은 아무래도 조금 전, 내 무형지독을 집어삼키고 스스로 내성을 만들어낸 모양이네.”
“……!”
“그러니 함께 싸운다고 해도 나는… 제대로 된 도움이 되지 못할 걸세. 부디 냉정해지게 소협.”
“아니, 노야야말로 냉정해지시오.”
이벽이 당평세의 눈을 마주했다. 독공의 고수는 독이 파훼되었을 때 마음에 빈틈이 생긴다.
“이 상황에서 내가 노야의 식솔들을 데리고 달아난다고 한들… 저것으로부터 얼마나 멀리까지 도망칠 수 있겠소?”
“……!”
“하물며 적은 저것뿐만이 아닌 것 같군.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노야의 식솔들을 빼내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오.”
흘끗, 이벽이 무인들 쪽을 턱짓했다. 다시금 피아가 뒤섞인 채 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퇴각을 시도하다 자칫 진형이 무너지고 나면 그 과정에서 오히려 많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차라리 노야와 나, 둘 다 사지가 멀쩡하게 붙어있을 때 전력을 다해보는 편이 승산이 있을 터요.”
“…무모한 짓이네. 자네 역시 저것의 힘을 충분히 느끼고 있지 않나? 어쨌거나 지금은―”
“노야, 무형지독만이 노야가 지닌 것의 전부는 아니지 않소? 좌우간에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소. 그러니 노야, 부디 나를 도와주시오.”
저벅.
이벽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
일순 당평세의 눈이 흔들렸다.
불현듯 오래된 기억이 스쳤다.
―…위험하니 물러서 계시오.
오십여 년 전.
마교 우호법 풍마의 목을 베어내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사내의 등을 너무도 닮은 뒷모습이 지금, 자신에게 ‘도와달라’ 말하고 있었다.
그 사내의 등을 쫓아.
당평세는 자신의 길을 걸어왔고 어느덧 천하십대고수, 독왕이란 과분한 위명을 얻게 되었다.
허나 그 실상은.
그렇게 구원받은 목숨으로 다시 한번 ‘풍마의 피를 이은 사내’의 힘 앞에 굴복하고 말았던, 부끄럽기 그지없는 삶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토사구팽’의 대상이 되었다.
“…난처하게 하는군. 허헛!”
꾸욱, 부르르.
노인의 주먹이 소리 없이 떨었다.
사아아아아아.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뱀이 아가리를 뻗으며 울부짖었다. 그 즉시 혈마의 신형이 쇄도했고, 뱀의 똬리가 풀리며 거체가 훅 뻗어져 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이윽고 뱀의 머리가 두 사람이 서 있던 땅을 두드렸다. 지진과 같은 충격과 함께 가루가 된 땅이 흙먼지를 일으켰다.
타아앙.
허나 그때, 이벽과 당평세는 이미 왼쪽과 오른쪽으로 산개하며 날아오른 후였다.
스스스스.
훅, 뱀의 고개가 위로 꺾어졌다.
노란빛을 띤 두 눈이 각자의 방향으로 멀어지는 두 개의 인영을 쫓았다.
타아앙.
바로 다음 순간.
혈마 또한 날아올랐다.
그 신형은 망설임 없이 오른쪽을 향했다. 뱀의 머리가 다시금 당평세를 향해 쇄도했다.
슈슈슉.
“…큭!”
당평세의 소매에서 암기가 쏘아졌다. 그대로 뱀의 미간과 두 눈을 두드렸다.
콰콰콰콰아아앙.
허나 뱀은 아주 잠깐 주춤했을 뿐, 날아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쩌어억.
그리고 아가리를 벌렸다.
당평세를 씹어 삼키려 했다.
콰아아아아아앙.
허나 그때, 충격과 함께 뱀의 몸이 옆으로 밀려났다. 벌려진 아가리는 빈 허공을 깨무는 데에 그쳤다.
타아아앙, 콰아아아아앙.
다시금 이벽이 그 허리를 찌른 것이다. 허나 이번에는 한 번의 충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이벽은 창공비검의 여섯 묘리를 일검으로 압축시키지 않고 하나씩 풀어내며 뱀의 몸통 이곳저곳을 두드려보았다.
혹여 어딘가에 약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허나 그러한 희망은 빠르게 사라졌다.
온몸을 감싼 비늘의 견고함은.
중첩된 여러 겹의 날개를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던 천중일검 남궁천승의 기예마저도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으며.
청강유엽공의 어떤 무리로도.
그 빈틈을 파고들 수 없었다.
하물며 조금 전 창공비검으로 떨어뜨려 놓았던 몇 장의 비늘마저 이미 새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자신이 나뭇잎을 다루듯.
혈마에게 있어 부서진 비늘 몇 장을 다시 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조차 아닌 듯했다.
후우우우우우우.
“…큭!”
그때, 다시금 꼬리가 휘둘러졌다.
물론, 이미 겪어본 공격이므로 이벽 또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벽이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다.
사아아아아아.
그리고 추가적인 공격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벽을 털어낸 뱀의 신형은 다시 독왕을 향해 쏘아졌다.
쩌저저저적.
허나 당평세가 위기에 처한 순간, 이벽은 적파직검을 일으켜 쏘아 보냈다.
콰아아아아앙.
다시, 뱀의 머리가 빗나가게 하는 것에 성공했다. 허나 궁여지책에 불과했으며, 전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이후로도 뱀의 머리는 계속해서 당평세를 노렸고, 당평세는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가까스로 머리를 피해 날았다.
물론, 아무 의미 없는 도망은 아니었다. 스스로 혈마의 미끼가 되어 이벽에게 ‘마음껏 공격할 기회’를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벽 역시.
당평세의 생각을 모르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앙.
“헉… 허억!”
허나 이내 깨달았다.
서서히 거칠어지는 호흡 속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결국 무슨 짓을 한들 뱀의 몸통을 뚫고 혈마에게 닿을 수 없음을 이해했다.
혈마의 움직임은 지극히 단순했으며, 가벼운 몸동작만으로 뱀의 형상을 한 등천의 영역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것이 전부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허나 영역이 지닌 그 ‘순수한 힘’ 앞에 이벽의 기예들은 압도되었고,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극한으로 압축된 견고함.
그리고 천지를 잇는 거대함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뚫리지 않는 방패임과 동시에 모든 것을 짓이기는 철퇴이기도 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조금 전, 비늘에 손상을 입힌 창공비검뿐일 터였다. 허나 물론 무턱대고 두드려본들 무의미하게 심력을 소모할 뿐이다.
‘…어떻게 해야.’
훅, 사아아아아아.
“큭…! 비룡대주! 피하게!”
허나 그때였다.
당평세가 다급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 뒤를 쫓던 뱀의 머리가 돌연 방향을 틀며 이벽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사아아아아아.
벌어진 아가리가 쇄도했다.
“……!”
이내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허나 피하기에는 늦고 말았음을 직감했다. 꼬리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찰나에 허를 찔리고 만 것이다. 또한.
이벽은 뱀의 촘촘한 어금니를 바라보았다.
방어에 전력을 다한다 해도 일단 물리고 나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스윽.
위기의 순간.
이벽의 검은 자신도 모르게 원을 그었다. 유의 묘리가 펼쳐졌고, 그 안으로 뱀의 머리가 파고들었다.
우우우웅.
뱀의 머리가 원의 장막 안에 붙들렸다. 그리고 다가오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 순간, 이벽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맹철극의 벼락을 막아냈던 송영영의 태극이었다.
사아아아아아아.
허나 다음 순간, 뱀의 머리가 마구 날뛰었다. 아가리가 다물어지며 송곳니가 원을 물어뜯었다.
찌이이익.
“…커억!”
태극을 모방한 유의 묘리가 찢어발겨졌다. 충격을 입은 이벽의 몸이 저 아래로 처박히듯 추락했다.
* * *
“헉… 허억!”
당평세는 최후를 직감했다.
한계까지 심신을 혹사한 끝에 마침내 눈앞이 흐려졌고 귓가에 이명이 스치기 시작했다.
그저 도망치는 것만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쥐어 짜낸 힘조차…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사아아아아.
허나 뱀은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놈은 비룡대주의 공격 대부분을 그저 몸으로 받아넘기면서도 집요하게 자신의 꽁무니를 쫓아왔다.
그 희번득거리는 두 눈에는.
명백한 ‘탐욕’이 감돌고 있었다.
“…허헛, 그렇군.”
돌연, 독왕은 혈마의 생각을 짐작했다. 앞서 놈은 자신의 독을 집어삼키고서 내성을 키웠다.
허나 놈은.
‘그 이상’을 원하고 있다.
산채로 잡아먹히는 순간.
자신이 평생을 갈고닦은 무형지독이… 놈의 무기가 되어 뱀의 어금니에 감돌게 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예감이 스쳤다.
그리고 그것은.
말 그대로 천하의 재앙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된다.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언정, 결단코 놈의 먹이가 되어선 안 된다.
타아아앙.
허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흐린 시야 너머로, 당평세는 뱀의 허리에 온갖 공격을 시도하는 이벽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난처한 표정을 보건대 아직까지도 뱀의 비늘을 뚫고 놈의 본체를 공격할 방법을 찾지는 못한 듯했다.
허나 믿는 수밖에는 없다.
또한 그렇기에… 비룡대주가 그 ‘실마리’를 얻을 때까지, 미끼가 되어 버텨주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역할―
“……!”
허나 그때였다.
훅, 사아아아아아.
“큭…! 비룡대주! 피하게!”
당평세의 눈이 흔들렸다.
자신의 뒤를 쫓아오던 뱀의 고개가 지척에서 방향을 트는 것을 목도한 순간, 다급히 외쳤다.
번번이 자신을 쫓는 것에 실패하자, 놈은 교활하게도 비룡대주에게로 목표를 바꾼 것이다.
“……!”
허를 찔린 비룡대주의 눈이 흔들렸다. 허나 이내 검끝이 유의 묘리를 그리며 뱀의 머리를 막아내었다.
타아아아앙.
버틴 것은 잠깐에 불과했으나.
다행히 뱀의 아가리에 물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입은 듯 비룡대주의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사아아아아.
허나 위기는 끝난 게 아니었다. 뱀의 머리가 추락하는 이벽을 기어코 다시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이익!”
당평세는 이를 악물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이내 무형지독을 두른 당평세의 신형이 쏘아졌고, 그대로 뱀의 머리와 부딪쳤다.
사아아아아.
온몸을 던져.
머리를 밀쳐내는 데 성공했다.
타앙.
그리고 당평세는 땅에 착지했다.
울컥.
“커억… 헉!”
곧이어 한 움큼의 피를 토했다.
몇 대의 뼈가 으스러진 듯했다.
말인즉슨, 운신의 자유로움을 잃게 되었으므로 더는 도망을 다니기조차 어렵게 된 것이다.
“…노야.”
그때, 등 뒤에서 이벽이 말했다. 어쨌거나 비룡대주를 살리는 데에 성공했으므로, 당평세는 웃었다.
“소협, 잘 듣게. 눈치챘겠지만… 놈은 소협보다는 나를 더 먹고 싶어 한다네. 허헛!”
“…….”
“그러니 이렇게 함세. 내가 기꺼이 놈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 힘껏 벌려놓을 테니… 내 등 뒤로 자네가 지닌 절초를 때려 박게.”
“그게 무슨―”
“내 앞서 조금 싸워보니, 그나마 저 괴물의 약점이라고 할 만한 곳은 ‘입안’밖에 없는 것 같더군.”
“…….”
“할 수 있는 게 미끼밖에 없다면, 확실히 미끼가 되어주겠단 뜻이네. 나더러 도와달라고 말한 건 자네가 아닌가?”
허헛, 노인이 웃었다.
“부디 단호해지게. 이대로 놈에게 잡아먹히느니, 선우세가의 검에 쓰러지는 것이 내게는 천만 배는 나은 죽음일세.”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결단코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
사아아아아아.
허나 상황은 두 사람이 그 이상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가리를 벌린 뱀이 다시 짓쳐 들었다.
훅, 타아아앙.
“노오오옴―!!”
또한 뱀의 아가리를 향해.
당평세가 마주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