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07)
315화. 용과 범 (1)
콰아아아아아앙.
이벽의 검이 혈마를 파고들었다.
사아아아아.
허나 바로 다음 순간, 혈마는 이미 세 보 이상의 바깥으로 물러나 있었다.
“…….”
흩뿌려진 피는.
고작해야 몇 방울에 불과했다.
만월무변곡검의 기예로 말미암아 허를 찔렀음에도, 검이 파고드는 속도보다 물러서는 혈마의 속도가 더욱 빨랐고, 상처는 가벼웠다.
쾌속함은 바람과 같았으며.
몸을 두른 비늘은 철갑과 같았다.
사아아아.
“킥, 키킥!”
혈마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재차 땅을 박찼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이후.
이벽과 혈마의 접전이 반복해서 펼쳐졌다. 치고 빠지는 것은 주로 혈마의 역할이었으며, 이벽은 제자리를 사수했다.
서걱, 핏.
삽시간에 수십여 합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벽의 몸 곳곳에 피가 솟구쳤고, 혈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허나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승리를 쉬이 점칠 수 없었다.
앞서, 화영변검의 기예로 말미암아 혈마의 거대한 뱀을 꽃잎으로 승화시켰고, 적에게서 ‘압도적인 힘’을 빼앗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은 물론.
이벽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공능이었다. 화영변검의 기예는 마치 ‘혈기의 상극’과 같았다.
허나.
콰아아아아앙!
반복되는 접전 속에서, 그것이 혈마가 ‘무력화되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임을 이벽은 이해했다.
사아아아아아.
압도적인 힘이 사라지자.
혈마는 최소한의 비늘만을 자신의 몸에 둘렀고, 이내 네 발 달린 도마뱀과 같은 형상이 되었다. 그리고.
타아아아앙.
‘가벼워진 몸’으로 사방팔방을 점하며 이벽을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혈마는.
지닌 기예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말미암아 굳이 기예를 펼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허나 그러한 힘이 사라지자, 마침내 숨기고 있던 기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준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타아앙, 타앙, 콰아아아아앙!
또한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것은.
힘의 응축과 해방을 통해 극쾌에 이르는 쾌보의 묘리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그 쾌속함이었다.
허나 고작해야 두 발의 용천혈을 이용할 뿐인 자신과는 달리, 비늘에 쌓인 혈마는 마치 네 발을 포함한 온몸 전체가 ‘혈’과 같았다.
사아아아.
마치 도마뱀이 벽을 타듯 혈마는 허공에 달라붙었고, 다음 순간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스스로를 쏘아 보냈다.
타아앙, 쐐애애액.
고로 그 움직임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후욱.
이벽은 계속해서 만월무변곡검을 펼쳤다. 나뭇잎을 통해 허공에 원을 형성하고 흡입력을 일으켰다.
우우우웅.
곳곳에서 원이 형성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혈마의 움직임에 훼방을 놓았고, 또한 이벽의 검을 휘어지게 했다.
예측불허의 움직임을.
예측불허의 왜곡으로 맞선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렇게 ‘간신히’ 평수를 이루었다.
허나 그 균형조차도 위태로웠다.
조금 전, 화영변검을 적중시킨 순간 이벽은 대부분의 힘을 잃어버린 혈마가 달아날 것을 걱정했다.
허나 달아나기는커녕.
만월무변곡검의 기예가 없었더라면… 이벽은 이미 역으로 당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콰아아아아앙.
“…헉, 허억.”
이내 이벽의 호흡이 흔들렸다.
당평세와의 일전, 그리고 그 심독을 극복해낸 뒤 뱀을 상대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심력의 소모는 말할 것도 없이 극심했다. 혈마에게서 ‘그만큼의 힘’을 앗아가고도, 여전히 소모전에서 불리한 것은 자신이었다.
우우우웅.
이벽은 생각을 거듭했다.
승리의 열쇠는 화영변검뿐이다.
어떻게든 예의 기예를 다시 한번 적에게 적중시킬 수만 있다면 능히 쓰러뜨릴 수 있을 터였다.
허나.
상대의 기운을 꽃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에게 검으로써 ‘뿌리’를 박아넣어야 한다.
그리고.
혈마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결단코 한 자리에 멈춰 서지 않았다.
타아아앙, 타아앙.
다만 치고 빠지기를 고수했다.
“키킥… 키키킥!”
그리고 그러한 소모전 속에.
이벽의 체력은 고갈되어갔다.
“…….”
이벽은 남은 변수를 헤아렸다.
허나 당평세는 이미 모든 힘을 소모했고, 고로 사실상 더는 외부로부터의 도움을 바랄 수 없었다.
따라서 남은 수단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다.
콰아아아앙.
“…크!”
일순 이벽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게나 찾고자 했던 스승의 원수를 맞닥뜨리고도 힘이 모자라 당하고만 있는 스스로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허나 이내 생각을 달리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상대는 무림의 오래된 재앙이었고, 자신은 등천의 영역에 손에 넣은 지 채 이 개월이 못 되는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여태까지도 그래왔듯이.
궁지에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느긋하게 깨달음을 추구할 여유가 없었기에, 이벽은 늘 강적 앞에 스스로를 던지고 다시 스스로를 구해내며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적파직검과 만월무변곡검, 그리고 화영변검을 얻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야만 한다.
극한의 위기 속에서.
이벽은 상념에 골몰했다.
훅.
허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이번만큼은 실수였다.
타앙, 쐐애애애액.
다음 순간, 쇄도해오는 혈마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달라졌으나 이벽은 그 차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투우우우웅.
“……!”
그리고 이벽의 검과 혈마의 손이 부딪힌 순간, 혈마의 몸이 위를 향해 훅 밀려났다.
그제서야 이벽은 당황했다.
충돌의 순간, 검에 전해지는 감각이 지나치게 가벼웠다. 그것은 즉, ‘일부러 밀려나기 위해’ 부딪혔다는 의미가 된다.
훅, 쐐애애액.
그리고 다음 순간, 밀려난 혈마의 몸이 또다시 허공에서 방향을 틀며 이벽을 지나쳤다.
등뒤를 향해 쏘아졌다.
훅, 타앙.
“노야! 조심하시오―!!”
대경한 이벽이 외쳤다.
또한 그 즉시 몸을 돌렸다.
쐐애애애액.
나뭇잎을 밟고서 쾌보를 펼쳤다.
애당초 이 싸움이 시작된 순간부터, 혈마의 뱀은 줄곧 자신보다는 당평세를 우선적으로 노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당평세를 잡아먹는 것’이 혈마가 오늘 이 자리에 찾아온 가장 주요한 목적인 듯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눈치챈 당평세는 스스로 미끼를 자처했고, 이내 이벽으로 하여금 화영변검을 적중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허나.
“…크윽!”
그 결과 당평세는.
‘겨우 서 있을’ 뿐, 극쾌의 속도로 쇄도하는 혈마로부터 달아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쐐애애애액.
허나 당평세를 향해 쏘아지는 혈마와 그 뒤를 쫓는 이벽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혈마와 이벽의 쾌보는 ‘같은 원리의 기예’였다. 때문에 그 속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우욱.
찰나의 순간.
당평세는 다시금 힘을 쥐어짰다. 도망칠 수 없음을 알기에 어떻게든 ‘한 수’라도 버텨보려 했다.
허나.
“키킥!”
쩌어어어억.
이내 지척까지 이른 순간, 혈마의 몸을 두른 도마뱀 형태의 영역이 모양을 바꾸며, 다시 거대한 뱀을 형성했다.
물론, 조금 전과는 달리 나타난 것은 쩍 벌어진 아가리뿐이었으나 그것만으로 ‘먹이’를 잡아먹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허헛!”
그 순간.
이번에야말로 당평세는 피할 수 없는 최후를 직감했다. 허나 물론, 먹이가 되어줄 생각은 없다.
잠시, 이벽과 눈을 마주했다.
우우웅.
그리고 오른손에 긁어모은 마지막 공력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목을 그으려던 찰나였다.
후우우우웅.
움찔.
당평세의 손이 멈추었다.
찰나의 순간, 하늘 저편에서 무언가 정체불명의 ‘터무니없는 것’이 날아들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동요가 스쳤고, 그로 인해.
목숨을 끊을 기회를 잃고 말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허나 이내.
목숨을 끊어야 할 이유 또한 사라졌다. 날아들던 그 무언가는 유성과 같은 기세로 당평세의 코앞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 말은 즉.
당평세를 집어삼키려던 혈마의 머리 위를 ‘내리찍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
이벽과 당평세의 눈이 흔들렸다.
쿠구구구구구궁.
허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치 설화 속의 여의봉이 땅을 내려친 듯 일대가 온통 뒤흔들렸고, 파문과 같은 여진이 퍼져나갔다.
후욱.
그리고 피어오른 먼지 너머로, 이벽과 당평세는 마침내 날아든 물건의 정체를 확인했다.
물론, 여의봉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은 창대에서 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금속으로 이뤄진 거대한 창이었다.
다시 말해.
고작해야 창 한 자루였다. 허나.
“크… 카아아아아아악―!!”
혈마가 울부짖었다.
천하의 재앙은 예의 창살에 허리를 관통당한 채, 흡사 사냥당한 짐승처럼 땅에 꿰어있었다.
* * *
먼 하늘에서 난데없이 창 한 자루가 날아들었고, 그대로 혈마의 허리를 관통했다. 물론, 창은 살아있지 않으므로 누군가가 창을 집어던진 것이다.
허나 말할 것도 없이.
혈마의 비늘을 뚫고서 충격을 입힌다는 것은, 등천의 영역에 해당하는 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 순간, 이벽과 당평세의 눈에는 보이고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힘이 혈마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창 위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한 절대지경의 힘이었다.
두근.
이벽의 마음이 흔들렸다.
얼이 나갈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또한 창의 형태, 그리고 그 안에서 감도는 정직하되 ‘패도적인 기운’은… 더할 나위 없이 친숙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다음 순간, 거구의 인영이 다시 하늘에서 내리꽂혔다. 그대로 창대 위를 발끝으로 딛고 섰다.
푸우우우우우욱.
충격이 재차 퍼져나갔고.
창대가 더욱 깊숙이 박혀 들었다.
버둥버둥.
“카아아아아악―!!”
혈마가 몸부림을 쳤다. 그 허리를 관통한 창대의 반절 이상이 그대로 땅속을 파고들었다.
후우우우욱.
다시, 먼지가 일고 가라앉았다.
마침내 창대 위에 선 구척장신의 인영과 이벽은 서로의 눈을 마주했고,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
이벽의 눈이 거칠게 동요했다.
허나 그것은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내 서서히 인영의 얼굴에 그리운 미소가 번졌다.
“…벽아.”
“…….”
“그게… 잘 지냈니?”
“…혁대웅.”
이내 이벽이 답했다.
그는 낙검문주 이진천의 두 번째 제자이자, 이벽의 사형제이며, 사패련주 철탑패왕 혁군악의 외아들인 혁대웅이었다.
앞서.
낙검문주 이진천의 사후, 대사저인 제갈소미는 제일 먼저 화정촌을 떠났고, 이내 혁대웅 또한 그 뒤를 따라 무림으로 나섰다.
그리고 지금.
혁대웅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구태여 말할 것도 없이, 절대지경의 영역이자 천하십대고수, 패왕의 뒤를 잇는 힘이었다.
“…그럭저럭 잘 지냈다.”
“그렇구나, 나도 그래. …아니, 사실은 잘 못 지냈어. 밀린 가전무공을 빡세게 배우느라고 아버지한테 말 그대로 압사당할 뻔했거든. 아하하…….”
“…….”
어색한 웃음이 흘렀다.
하아, 혁대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벽아, 근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너까지 문파를 비워버리면 어떡해? 뭣보다… 문주님의 원수는 내가 갚겠다고 말했잖아. 왜 새치기를 하고 있냐고?”
“…….”
이벽은 할 말을 고민했다.
허나 그때, 작은 기척을 느꼈다.
서걱.
황급히 정신을 차린 이벽이 그대로 검을 내리찍었다. 허나 손에 전해지는 감각은 또다시 얄팍했다.
크, 이벽이 침음성을 흘렸다.
“벽아? 지금 뭐 하는―”
“놈은 아직 죽지 않았다.”
“……?!”
후욱, 사사사삭.
다음 순간, 먼지 속에서 무언가가 벌레처럼 땅을 기었다.
또한 혁대웅의 창끝 아래에는 어느새 사람의 형상을 한 ‘껍데기’만이 남아있었다.
혈마는 또다시.
허물을 벗고서 달아난 것이다.
사아아아아아아.
이내 저만치로 거리를 벌린, 피투성이의 괴물이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그래, 역시 그때 그 괴물이 맞구나. 하긴, 스승님의 원수가 이리 쉽게 죽어줄 리 없겠지.”
탕.
혁대웅이 창 위에서 뛰어내렸다.
덥석, 쿠구구궁!
그리고 곰과 같은 손이 창대를 움켜쥐었다. 마치 감자 줄기를 캐내듯, 땅속에 꽂혀버린 철창을 손쉽게 뽑아내었다.
“좋아, 그쯤은 되어야지. 그래야 그 지옥 같은 고생을 해서 여기까지 다다른 보람이 있겠지.”
후우우웅.
철창이 한 바퀴 회전했다.
주변의 공기가 함께 회전했다.
카아아앙.
그리고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이내 혁대웅은 과거 이벽이 수도 없이 목도했던 바로 그 자세를 취했다.
사파제일가, 패왕가의 비전.
전륜패왕창의 기수식이었다.
“비켜 벽아. 내가 끝낼게.”
“…아니, 끝내는 건 내가 하겠다. 다만 네가 나를 도와준다면―”
허나 그럼에도 물론.
이벽이 지금껏 상대해온 혈마는 결코 쉬이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차라리 혈마의 전투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자신이 나서는 것이 훨씬 더―
“…하아.”
그때, 혁대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말을 대체 몇 번이나 해야 되는지 모르겠네. 벽아. 너랑 나, 둘 중 누가 사형이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