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19)
327화. 화정봉의 시험 (5)
슥, 서걱.
소리 없이 날아든 공손수의 비수가 공능자의 허벅지를 스쳤고, 이벽의 검 또한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커억!”
이내 공능자의 옆구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고통에 찬 표정이 서서히 번져나갔다.
“…서, 설마 똑같은 부위를 자네한테 세 번이나 연속으로 베이게 될 줄은.”
“…….”
털썩.
이내 공능자가 쓰러졌다.
타앙.
“허억… 헉!”
그리고 공손수가 이벽 앞에 착지했다. 허나 이내 거친 호흡을 토하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공손수! 괜찮―”
“…오라버니, 잘 들어요. 허억!”
공손수의 안색은 창백했다.
송영영을 교란하고 공능자를 요격하기 위해, 공손수는 암영각주에게서 전수받은 절기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사용만으로.
단전에서 뻐근함이 전해져왔다.
검선의 말마따나… 이 천고의 절진 안에서는 무슨 짓을 한들 소모된 내력이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 진법… 이상해요. 저들이 영향을 안 받는 건 그렇다 쳐도… 오라버니, 그리고 대주님을 비롯한 우리들에게도 뭔가가 다르게 작용하고 있어요.”
“……!”
“애당초 이 진법… 대체 ‘무슨 수로 적과 아군을 구분’해서 오로지 적에게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약을 가하는 걸까요?”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허억, 제 생각에는―”
말을 이을수록 호흡이 가빠져 왔으나 공손수는 멈추지 않고 할 말을 이었다. 허나.
덥석, 휙.
다음 순간, 돌연 이벽의 왼팔이 공손수의 어깨를 감쌌다. 대뜸 좌측으로 밀쳐내는 한편 스스로 한 발 나서며 앞을 가로막았다.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검과 검이 얽혀들었다.
“흥. 잔머리하고는.”
“…….”
어느새 다가선 송영영이 공손수의 등 뒤로 검을 뻗어왔던 것이다.
부르르르.
두 자루의 검이 잠시 경합을 이루었다. 이벽은 그대로 송영영을 힘으로 떨쳐내려 했다.
스윽.
허나 그때, 송영영의 검이 스스로 밀려났다. 물결처럼 휘어지며, 좌측 하단으로 뻗어졌다.
“…잠깐, 송영영―!”
대경한 이벽이 그 검을 쫓으려 했다. 허나 애당초 ‘자신을 노린 공격’이 아니었기에, 반 박자 늦고 말았다.
서걱, 카앙.
“…윽.”
다음 순간.
공손수가 답답한 신음을 토해내었다.
송영영의 검은 이벽의 검에 쳐내어지기 직전, 기어코 공손수의 복부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오, 오라버니… 내력을―”
스윽. 털썩.
이내 공손수가 쓰러졌다.
그 아래로 피가 고여 들었다.
일순 이벽의 시선이 흔들렸다.
“…송영영. 너―”
“난 분명히 경고했어. 움직이지 말라고. 그럼 내가 몇 번이고 못 본 척 넘어가 줄 거라 생각했어?”
“…….”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제야 일행에게 생각이 미쳤다.
이내 저만치에서 공손수와 마찬가지로 피를 흘린 채 축 늘어져 있는 파진성을 발견했다.
“…허억, 케헤헥!”
호흡을 몰아쉬고 있다.
고로 죽지는 않았다. 다만.
“걱정 마. 일부러 죽이진 않았어. 허나 이대로 진법 속에서 말라 죽어버린다 해도 어쩔 수 없어. 천하의 안위가 걸린 일니까.”
“…그렇군. 잘 알겠다.”
카아아아앙.
다음 순간, 이벽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시 두 자루의 검이 얽혀들기 시작했다.
비룡대원들이 당했다. 그리고.
상처를 입은 채로 이와 같은 진법 안에 계속해서 갇혀있는 것은 위험하다.
고로 어떻게든 송영영을 빠르게 쓰러뜨려야만 한다.
카아아아앙, 콰아아앙!
이벽은 침착하게 청강유엽검식을 펼쳤다. 그에 맞서는 송영영의 검은 전에 없이 공격적이었다.
태극의 막을 펼치지 않은 채, 다만 물결과 같은 검로가 이벽을 쉴 새 없이 마구 몰아붙였다.
슥, 서걱.
허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뿌리에 해당하는 태극의 묘리가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다.
충돌 사이사이로 허초들이 섞여들었고, 이벽의 검을 스치듯 깎아내며 그대로 파고들었다.
사락.
이벽은 나뭇잎을 일으켰다.
그 또한 진법의 영향으로 인해 적의 강기를 막아내기는커녕 외려 힘없이 베어지는 나뭇잎이었으나.
물론 맨몸으로 검에 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서걱.
그렇게 이벽은 어떻게든 중상을 피했다. 진법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얼추 대등한 싸움을 이어나갔다.
‘…피아의 구분.’
한편, 이벽은 생각에 잠겼다.
공손수의 말마따나 자신과 나머지 일행들 사이에는 진법의 영향을 받는 정도에 있어 뭔가 ‘이상한 차이점’이 있는 듯했다.
공손수도, 파진성도.
하물며 혁대웅마저도 소모된 내력을 조금도 회복하지 못한 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다.
허나 자신의 경우, 평소에는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내력이 계속해서 몸의 안팎을 순환하고 있었다.
카아아아앙.
조금 전, 검존은.
진법은 오로지 적에게만 영향을 미칠 뿐, ‘아군’의 경우에는 아무 제약 없이 평소의 힘을 쓸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신은… 마치 ‘아군도 적군도 아닌’ 애매한 입장에 놓였다는 의미가 된다.
예컨대 이 천고의 진법이…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카아아앙, 슥, 카아앙.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진법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황보세가 일대에 펼쳐진다면.
천하 각지에서 모여든 그 많은 무인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적과 아군으로 구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일 리 없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무언가 명확한 ‘판단 기준’이―
후욱.
그때, 송영영의 검이 원을 그었다. 마침내 태극의 원이 허공에 맺히며 이벽의 검이 반쯤 빨려들었다.
“……!”
이벽은 황급히 검을 거둬들였다.
서걱.
허나 결국은 그 빈틈의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이벽의 왼쪽 어깨에 기나긴 검상이 그어졌다.
“미리 말하는데. 저번과 같은 짓은 시도할 생각도 하지 마.”
“…….”
앞서 소림에서.
두 사람은 내력을 사용하지 않는 비무를 나눴고, 이벽은 고전 끝에 송영영의 원 안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그녀의 ‘망설임’을 이용했다.
“끝끝내 네가 ‘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대주라고 해도, 친구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허나 오늘의 송영영은.
정말로 베어버릴 심산인 듯했다.
카아아아아앙.
‘…도?’
그러나 그때였다.
그 순간, 한 가지 직감이 스쳤다.
―검은 사람을 물들여. 사파의 무공이 비록 마공은 아니라 해도… 대주가 아직 얼마 못 산 애송이 새싹이라 잘 몰라서 그래.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날의 술자리에서 송영영이 스치듯 내뱉었던 목소리가 머리를 스쳤다.
“…도가의 무공.”
마침내 이벽은 깨달았다.
* * *
훅, 카아아아앙.
다음 순간, 송영영의 검이 튕겨 나갔다. 아니, 튕겨 나가기 직전 ‘스스로’ 황급히 검을 빼내었다.
“…그렇군.”
이벽이 말했다.
마침내 직감은 확신이 되었다.
청강유엽검식, 유검을 펼친 순간 이벽은 잠깐이나마 내력의 움직임이 평상시에 가까워짐을 체감했다.
그리고 이벽의 유검은.
앞선 비무에서 송영영의 태극을 상대하며 그 현묘함을 적잖이 ‘모방한’ 기예였다.
“이 진법 안에서는… 오로지 도가의 가르침에 속한 내력과 초식만이 제힘을 내는 모양이군.”
“…….”
또한 송영영은.
정도맹의 사자로서 의혈맹을 적대하는 것은 물론, 구 무림맹에게조차 ‘항복만이 살길’이라는 의사를 전해왔다.
즉, 정도가 아니면.
모든 것은 사도에 해당한다.
그러한 정도맹의 입장에서 ‘적과 아군’이란… 애써 힘겹게 구분할 필요조차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도가의 무공이 경지에 이른 자라면 그게 누가 되었건 믿을 수 있다는 의미인가?”
검은 사람을 물들인다.
고로 ‘정도’의 힘을 익힌 자라면.
정도맹의 흐름을 거스를 리 없다.
“…흥, 이제야 깨달았어?”
이내 송영영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쩔 건데? 대주, 네 무공은 껍데기인데다 이제 불순물까지 끼었잖아?”
“…….”
껍데기, 그리고 불순물.
불현듯 이벽은 검존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환야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며, 그는 ‘검치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큰 의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말마따나 검치 선우명은.
본래부터 무당의 속가 출신이었으며, 각지의 도문의 검공을 긁어모아 청강유엽공을 창시했다.
즉, 청강유엽공은.
껍데기이나마 도가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그렇기에 이벽은 혁대웅과 달리 불완전하게나마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달라지는 건 없어. 그 조잡한 검은 무당의 검을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렇군.”
말마따나.
유검은 태극을 모방한 검이기에 진법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허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태극을 넘어설 수는 없다.
타앙.
허나 이벽은 망설이지 않았다. 일행의 상태가 촌각을 다투고 있었으로 지체할 시간은 없다.
훅, 후욱.
“…흥.”
그리고.
이내 이벽이 유검을 펼치자 송영영 또한 태극의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후욱, 파아아앙.
그리고 일전의 비무와 같은 양상이 펼쳐졌다.
두 자루의 검 끝에서 두 개의 원이 피어나며 서로를 잡아먹고, 상대에게로 힘을 돌려보내기를 반복했다.
허나 물론.
그때와는 달리 두 사람은 내력을 끌어다 쓰고 있었으므로, 검 안에는 삽시간에 일대 전체를 짓이길만한 무게가 몰려들었다.
파아아아앙.
또한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예상대로 검을 쥔 어깨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
허나 이것은 시간 끌기일 뿐, ‘도가의 무공’이란 단서를 얻은 이상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수를 이어가면 그만이다.
이내 이벽은 기예를 되새겼다.
적파직검과 만월무변곡검은 명백한 사파의 무공이며, 송영영의 말을 빌리자면, 틀림없는 ‘불순물’이었다.
허나.
화영변검의 경우에는 애매했다.
월향의 죽적에서 펼쳐지는 화영지정의 경우, 그 내력의 뿌리는 어쩌면 사파에 근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적을 해치지 않고, 적의 힘과 나의 힘을 모두 꽃으로 승화해버리는 그 기예는.
본질적으로, 도가에 적을 둔 사내의 등을 좇았던 여인의 한결같은 마음과 세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그것을 ‘도’라고 할 수 있을지.
물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허나.
부르르르.
그즈음 이벽은 한계를 느꼈다.
검을 쥔 어깨가 잘게 경련했다.
훅.
그리고 그 순간, 마지막 유검을 통해 송영영에게로 힘을 돌려보낸 이벽이 태극의 원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확신이 없다 해도.
망설임 또한 없었다.
움찔.
“…내가 그거 시도하지 말랬지?”
송영영의 미간이 흔들렸다.
허나 태극의 초식을 멈추지는 않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원 안의 힘이 이벽을 짓이겨버리려 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화영변검(花影變劍).
그 순간.
이벽의 검 주변으로 몇 장의 나뭇잎이 떠올랐고, 이내 붉은 빛을 띤 꽃잎이 되었다.
우우우웅.
태극의 원 안으로 스며들었다. 허나 그것은 혈마의 뱀을 날려버릴 때처럼 극적인 공능을 발휘하지는 않았다.
태극 안을 맴도는 몇 송이의 꽃잎은 마치 찻잔 속의 태풍처럼 한없이 무력해 보였다. 허나.
후우욱.
기어코 태극의 힘을 무마했다. 찻잔을 부순 꽃잎이 주변으로 흩날리며 잘게 흩어졌다.
“……!”
송영영의 눈이 흔들렸다.
이벽은 그대로 검을 뻗었다.
후욱.
허나 송영영은 빈틈을 보이지 않았고, 그 즉시 안색을 회복했다. 파훼된 태극을 넘어 검이 마주 뻗어져 왔다.
흠칫.
허나 다음 순간.
송영영의 검이 방향을 틀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측면으로 날아든 무쇠의 창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헉… 허억!”
물론, 혁대웅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줄곧 비무를 지켜보고 있던 그는, 송영영이 빈틈을 보인 순간 최후의 내력을 모두 쥐어 짜낸 것이다.
후우웅.
그리고 그 저력은 무시무시했다.
막아냈음에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송영영의 몸이 옆으로 밀려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파.”
심지어는 일순 마비가 온 듯, 그녀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이벽의 검이 다시 그 뒤를 쫓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송영영의 눈빛이 작게 흔들렸다.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허나 망설일 틈은 없다.
그대로 송영영을 베어내려 했다.
“……!”
그러나 그때.
송영영의 어깨 너머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퍼어억, 탱그랑.
다음 순간, 송영영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이벽의 검이 손목을 쳐서 검을 떨어뜨린 것이다.
스윽.
“…케헤, 여기까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느새 송영영의 등 뒤로 다가선 파진성의 검신이 가녀린 목에 들이밀어졌다.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은.
혁대웅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파진성. 몸은 괜찮나?”
이벽이 물었다.
파진성의 안색은 창백했으며, 상의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조금 전, 이벽은 그가 쓰러져있던 것을 확인했다.
“케헤, 걱정 말라고. 그냥 긁힌 상처니까. 이렇게까지 뼈나 장기가 안 다치게끔 거죽만 베고 지나가는 것도 재주다 재주!”
“…….”
송영영이 침묵했다.
“…우연히 빗나간 거야. 네가 미꾸라지처럼 버둥거리니까.”
“아, 그러셔? 케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