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48)
356화. 파도와 그림자 (7)
“어쩜, 아깝게 됐네요~”
파진성의 사력을 다한 일검은 이내 집채와 같은 파도가 되어 비무대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남궁환을 비롯한 적들이 경직에 휩싸인 한순간, 공손수는 잔상을 남기며 포위망을 벗어났다.
훅.
“크으윽―!”
공손수의 잔상을 베어낸 남궁환이 고개를 짓쳐 들었다. 이내 저만치 위로 솟구쳐오르는 공손수의 신형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머리 위를 뒤덮은 채 쏟아져 내리는 강기의 파도를 향해 공손수는 스스로 몸을 날린 것이다.
허나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게 아닌 바에야 무언가 ‘빠져나갈 방법’이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찰나의 순간.
다시금 공손수의 뒤를 쫓을지, 아니면 이대로 파도를 피해 몸을 빼낼지 남궁환은 갈등에 빠졌다.
으득.
‘저 계집만은 기필코―!’
허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목을 베기는커녕 두 사람을 상대로 승기를 끌어 오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우우웅.
남궁환은 기를 긁어모았다.
후두두두둑.
다시금 쏟아지는 칼날의 파도를 바라보았다. 허나 남궁세가는 하늘의 제왕이며, 파도 따위에 굴하지 않는다.
빠드득.
이를 악물며 날아오르려 했다.
“가, 가가…….”
허나 그때였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한 가느다란 목소리가 남궁환의 귓가에 와닿았다.
멈칫.
남궁환의 발이 멈추었다.
휘청.
그리고 모용양의 신형이 뒤로 기울었다. 남궁환의 왼손이 반사적으로 그 몸을 받아들었다.
질척.
그러자 손 위로.
흥건한 피가 묻어났다.
기실 모용양의 등줄기에는 회수되지 않은 공손수의 비수가 여전히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뭘… 하고 있어요? 대 남궁세가의 용이… 이대로 멍청하게 서 있다가 그냥 죽을 거예요?”
“……!”
“날 놓고 달아나라구요… 어서.”
자신의 품에 기댄 모용양과 눈이 마주한 순간, 남궁환의 표정이 작게 흔들렸다.
모용양의 얼굴에는.
창백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명백한 회광반조의 기색이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순 남궁환의 눈이 흔들렸다.
후두두두두둑.
한편, 날아오르던 공손수는 이내 머리 위 지척까지 다가선 파도의 강기를 바라보았다.
“훗, 파 소협. 제법이잖아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파진성이 펼쳐낸 강기라고 해서, 저절로 자신의 몸을 피해가지는 않을 터였다.
허나 두려워할 이유 따윈 없다.
그것은 분명 기존의 파진성이 지니고 있던 경지를 초월한 기예였으나.
동시에 그 파도를 이루고 있는 강기의 형태는 청해십이검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은.
공손수에게 있어서는 지난 오 년여간 합격술을 연마하며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 검로이기도 했다.
훅.
이내 공손수의 신형이 한 줄기 그림자가 되었다. 망설임 없이 파도의 강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후우우욱.
강기의 결을 따라 움직이며.
파도를 타듯 거슬러 올라갔다.
훅, 후욱.
급기야는.
그림자조차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암영각주 천막심의 절기, 무영환위보가 펼쳐진 것이다.
기실 공손수가 무영환위보를 펼칠 수 있게 된 것 자체는 이미 퍽 오래전의 일이었다.
다만.
두 발에서 펼쳐지는 그 속도는 지나치게 쾌속하여 외려 자신의 눈과 귀가 그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고.
그러한 감각의 괴리에 의해.
보법을 펼치는 도중 번번이 몸의 균형을 잃어버리곤 했으므로, 결국에는 실전에서 꺼내쓰기에는 크나큰 제약이 따르는 힘이었다.
허나 더는 아니다.
우우웅.
한껏 고양된 의식 속에서.
마침내 공손수는 스스로 무영환위보를 ‘온전히 다룰 수 있는 시간’ 속에 접어들었음을 깨달았다.
후욱.
몰아치는 파도의 칼날 속에서.
공손수는 느긋하게 춤을 추었다.
타아앙.
그리고 다음 순간.
마침내 공손수의 신형이 파도 위로 솟구쳐 올랐다. 강기의 다발 속을 헤쳐왔음에도, 상처는커녕 옷자락조차 베어지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예의 일검을 쏟아낸 뒤 가벼운 탈진에 빠져 추락을 시작하던 파진성과 눈이 마주쳤다.
“허억, 헉…! 케헤! 내가 뭐랬냐? 나랑 있으면 절대로 안 죽는다고 했지? 앙?!”
파진성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뭐래, 다짜고짜 이딴 걸 쏟아부었다가 나까지 못 빠져나오고 휩쓸렸으면 대체 어쩔 뻔했어요?”
“…어.”
파진성의 말문이 막혔다.
훗, 공손수가 다시 웃었다.
“농담이에요, 파 소협. 고마워요. 덕분에 거의 안 다치고 끝났네요. 뭐, 어쨌든 순순히 죽어줄 생각은 없었지만요~”
어깨를 으쓱한 뒤 다시 아래를 향했다. 무수한 칼날 아래, 비무대 위로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모용양과 남궁환이 있었다.
“…….”
찰나의 순간, 공손수의 얼굴에 일말의 씁쓸한 표정이 스쳤다. 허나 말 그대로 찰나에 불과했다.
철썩, 콰콰콰콰콰콰.
마침내 파도가 땅에 부딪혔다.
* * *
철썩, 콰콰콰콰콰콰.
파도가 무너져내렸다.
비무대 위로 부딪힌 순간, 산산이 부서짐과 동시에 물줄기가 사방으로 비산했고.
파도가 내려치는 중심을 피해 이리저리 산개해 있던 의혈맹 측 후기지수들을 덮쳤다.
서걱, 서걱, 퍼어어억.
“커어억!”
“큭… 으아악―!”
허나 물론.
물줄기는 물이 아닌 강기였으므로, 후기지수들의 살과 뼈를 갈라놓기에 충분했다.
삽시간에 몇 개의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갔고, 쓰러진 몸들이 비무대 위를 뒹굴었다.
“끄으윽, 끄윽……!”
그것은 그저.
파도가 내려치는 지점에서만 벗어나면 그만일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부른 참사였다.
허나 그마저도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걔 중에는 비산하는 강기에 몸이 사선으로 베어진 채 즉사한 이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썩, 후두두두두둑.
허나 어쨌건.
마침내 성난 파도는 비무대를 파헤치며 종적을 감추었고, 이내 무거운 정적이 비무대 위를 덮쳤다.
“…….”
파도가 내려친 한가운데.
남궁환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주저앉아 있었으나, 여타 후기지수들에 비한다면 놀랄 만큼 가벼운 상처였다.
우우우웅.
또한 그 이유는 퍽 명백했다.
어느덧, 남궁환의 등 뒤로 자라난 한 쌍의 흐릿한 ‘날개’가 쏟아지는 강기를 어떻게든 막아낸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날개가 지켜낸 것은 남궁환 본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품 안에는 모용양이 안겨 있었다.
“…쿨럭.”
모용양이 피를 토했다.
동공의 빛이 흐릿해졌다.
“흥, 제 주제도 모르는 천박한 년이… 감히 누가 누굴 걱정해?”
남궁환이 콧방귀를 뀌었다.
기실 공손수의 비수에 관통당해 이미 죽음이 드리운 그녀를 파도로부터 지켜낸 것은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
모용양의 입가가 작은 미소를 그었다. 허나 더는 말을 꺼낼 힘조차 없는 듯했다.
부르르르.
이내 모용양의 몸이 경련했다. 의식이 가라앉으며 본격적인 죽음의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외려 베풀 수 있는 최선의 자비임을 남궁환은 알고 있었다.
허나.
어째서인지 남궁환은 모용양을 선뜻 죽일 수 없었다. 그것은 퍽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궁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망쳐버린 이 계집을 찢어 죽이고자 했던 것이다.
우우웅.
“……!”
허나 그때였다.
여전히 모용양의 몸에 틀어박혀 있던 공손수의 비수가 희미한 빛과 함께 잘게 흔들렸다.
퍼어어어어어엉.
미처 대처할 새도 없이.
모용양의 몸 안에서 폭발했다.
암영각의 암기술인 폭철사였다.
조금 전, 파진성의 일검이 몰아치기에 앞서 어떻게든 스스로 살길을 열기 위해 공손수가 심어둔 한 수가 뒤늦게 발동한 것이다.
“아, 안 돼―!!”
남궁환이 절규했다.
스륵, 탱그랑.
허나 다음 순간, 이내 모용양의 손에서 검이 흘러내렸다. 몸 안이 진탕되며 숨이 끊어진 것이다.
덜덜덜, 남궁환의 손이 떨렸다.
‘왜?’
허나 여전히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탓, 그때 두 개의 기척이 지척에 내려앉았다.
“…….”
물론, 파진성과 공손수였다.
슥, 남궁환이 고개를 들었다.
섬뜩한 살기가 두 눈을 스쳤다.
“왜 그렇게 노려봐요? 내가 죽인 게 아니라… 남궁 소협께서 직접 고기방패로 써먹은 거잖아요?”
“…….”
물론, 할 말은 없었다.
비수를 박아넣은 것은 공손수였으나 죽게 만든 것은 분명 바로 남궁환 자신이었다.
분노가 치솟았으나, 그 분노는 딱히 갈 곳이 없었다. 그리곤 이내 허망함이 분노를 짓눌렀다.
“핫, 크하하핫―!”
남궁환은 웃었다.
불현듯 모든 문제는 모용양이나 다른 누군가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기 자신에게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훅,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저만치의 이벽을 돌아보았다.
놈에게 패배하고, 검을 떨어뜨린 그 날부터 줄곧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네 살 무렵 처음으로 검을 익히기 시작했을 때부터, 쥐는 법이 근본적으로 글러 먹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잘못된 것을 깨닫는다 해도 너무 멀리 와버린 후에는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
탱그랑.
이내 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스르륵.
그와 동시에 남궁환의 등 뒤에 맺힌 날개가 와해 되었고 몇 장의 깃털이 땅으로 떨어졌다.
“뭐해? 안 싸우냐?”
“…….”
파진성이 물었다.
허나 남궁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의혈맹 측을 향했고, 이 판국에 이르러서도 검왕 남궁한일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 모용양을 내려다보았다.
“됐다. 그냥 죽여, 이 개새끼야.”
“알았다. 가라, 그럼. 잘 싸웠다.”
서걱.
파진성의 검이 번뜩였다.
툭, 남궁환의 목이 떨어졌다.
* * *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중상자와 몇 구의 시신이 늘어진 비무대 위에는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분함도 없었다.
다만 피비린내와 적막만이 스쳤다. 물론, 이 ‘친선비무회’는 근본적으로 전쟁의 서막에 불과함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타앙.
잠시 후, 의혈맹 측에서 몇몇 무인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고 제각각 간신히 살아있거나 혹은 시신이 된 혈육들을 회수해갔다.
번뜩.
원독에 찬 눈빛들이 파진성과 공손수를 스쳤다. 허나 뭐라 입을 열지는 않았다.
“케헤헤, 살벌하구만?”
파진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허나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남궁환의 시신을 거두어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남궁세가의 무인은.
더는 없는 모양이었다.
퍼억.
외려 모용세가의 무인은 남궁환의 시신을 발로 밀쳐낸 뒤 모용양의 시신만을 거두어 내려갔다.
“쯧.”
파진성이 혀를 찼다.
저벅.
무심코 남궁환에게로 다가섰다.
어찌 되었건 자신이 죽인 적이 계속해서 비무대 위에 남아있도록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번쩍. 콰아아아아아앙.
허나 그때였다.
“…헉!”
파진성이 숨을 들이켰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 눈앞에서 섬광이 번쩍였고 내뻗으려던 발 앞이 시커멓게 파헤쳐졌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요, 파 소협?! 전쟁터에서 뭘 의기양양하게 넋을 놓고 있어요? 죽으려고 환장했어?”
아니, 그러나.
기실 등 뒤에서 공손수가 냉큼 옷자락을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벼락은 파진성의 정수리 위로 내려꽂혔을지도 모른다.
“…케헤.”
파진성이 머쓱하게 웃었다.
저벅.
그리고 그때, 의혈맹 측에서 사내 한 명이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느긋한 걸음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놀랐나? 미안하군. 그저 걸음을 멈추려 했을 뿐, 공격할 의도는 없었다.”
“……!”
그리고 파진성과 공손수의 시선이 흔들렸다. 때마침 올라선 사내의 얼굴과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매, 맹우강…? 너 맹우강이냐?”
훗, 사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잠깐만 기다려주겠나? 이 녀석의 시신은 내가 거두지. 어찌 되었건 몰락한 제 집안의 부흥을 위해 싸우다 죽은 녀석이니… 남 얘기 같지는 않군.”
“…….”
사내의 정체는.
과거, 광서 흑천방주 맹철극의 양아들이자 후계자였던 맹우강이었다.
아니, 그러나.
공손수는 침음했다.
그 생김새는 분명 그들이 알고 있는 맹우강이 맞았으나, 풍기는 분위기는… 어째서인지 전혀 다른 사람과 같았다.
물론, 오 년이란 세월은 사람을 비롯해 많은 것을 바꿔놓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허나.
“…네, 그러시죠. 얼마든지요.”
교묘한 위화감 속에서.
이내 공손수가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