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52)
360화. 여섯 명 (2)
“소저, 이게 무슨 짓이오? 내 분명히 비무에 나서는 것은 허락할 수 없노라 이야기했소만.”
황보준이 말했다.
비무대로 올라섬과 동시에, 맞은편의 송영영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등 뒤의 제갈소미를 향해 고개를 돌린 것이다.
“죄송해요, 소협.”
제갈소미가 어깨를 으쓱했다.
“설령 이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역시 여인이 아닌 무인으로서 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싶네요.”
“…….”
“소협께서 모자란 소녀를 다시금 받아주신 것은 퍽 황송한 일이지만… 애당초 이 비무회가 없었더라면 이제 와 세가로 돌아올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황보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핫.”
허나 이내 곧 미소가 번졌다.
“정말이지 소저는… 예나 지금이나 사내를 애태우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려.”
그리고 퍽 온화한 목소리를 내었다. 허나 기실 황보준의 마음속으로는 조금 다른 생각이 스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미 한 번 자신과의 정혼을 거부하고 세가로부터 달아난 괘씸한 계집이기도 했다.
분에 넘치는 은을 베풀었음에도.
아직까지 자신이 누구의 소유물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기회에 일찌감치 주제를 깨닫게 하는 편이 좋다.
팔이나 다리가 하나쯤 없어도.
씨를 받아내는 것에 문제는 없다.
“그래, 어찌 되었건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알아서 잘 싸워보시오. 나 역시―,”
후우우우웅, 파지지직!
허나 그때였다.
한켠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돌연 혁대웅의 창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뇌기로 엮여있던 맹우강의 도를 단번에 떨쳐낸 것이다.
타앙, 후우욱.
그리고 그 즉시.
혁대웅의 몸이 허공을 점했다.
훙훙훙훙.
구척장신의 무게와 회전의 힘을 실은 창끝이 정확히 황보준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핫! 그래, 패왕의 후예! 물론 기억하고 있네. 자네와도 청산할 게 조금 남아있긴 하지. 헌데 뭘 그리 서두르나?”
허나 황보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후우우욱.
이내 황보준의 오른손에 바람이 서리기 시작했고, 힘껏 당겨진 질풍의 일권이 창을 향해 마주 뻗어졌다.
퍼어억,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창과 주먹이 충돌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번져나갔고, 흩어진 바람이 비무대에 선 이들의 옷자락을 날카롭게 펄럭였다.
힘의 균형은 백중세였다.
아니, 잠깐은 그런 듯 보였다.
“…크윽!”
허나 다음 순간, 여유롭던 황보준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파아앗, 파앗.
그리고 그 순간.
황보준의 뻗어진 주먹 아래로 소매가 갈가리 찢겨지며 팔뚝 위로 붉은 실선들이 그어졌다.
“하핫! 그래요. 맨주먹으로 내 창을 막고도 그 정도면 한 수는 있네. 꼴에 소가주라고 아주 허당은 아니시구나?”
반면 혁대웅은 미소를 지었다.
꿈틀, 황보준의 눈썹이 흔들렸다.
“혁대웅, 섭섭하군. 아무리 그래도 모처럼의 재회인데 이렇게 면박을 줘서야 쓰나?”
“……!”
타아앙.
허나 다시 그때였다.
등 뒤에서 맹우강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혁대웅이 재차 땅을 박차며 솟구쳐올랐다.
콰르르릉!
이내 머리 위로 벼락이 추락했다.
훙훙훙훙훙.
그러나 그때, 혁대웅의 창대는 이미 머리 위를 가로막으며 회전을 그리고 있었다.
파지지지직.
맹우강의 벼락은 전륜패왕창, 집륜의 초식의 절대방어를 뚫지 못하고 흩어졌다.
파직.
“…아야야.”
허나.
그것은 송영영의 태극과는 달리 순수한 강 대 강의 대치였으므로, 혁대웅의 기혈에도 약간의 뇌기가 스며들었다.
물론, 혁대웅에게는 잠깐의 따가움에 불과할 뿐 충격이라 할 만한 것조차 아니었다. 허나.
후우욱, 우우우우웅.
맹우강의 벼락을 막아낸 바로 그 순간, 이번에는 황보준이 다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핫, 비겁하다 생각지는 말게나! 겁도 없이 맹 아우와 나를 번갈아서 치고 들어온 건 자네가 아닌가?!”
퍼어어어어어엉.
질풍의 일권이 쏘아져 왔다.
“…흥.”
허나 그 바람은.
구태여 막을 필요조차 없었다.
애당초 혁대웅 또한 아무 생각도 없이 두 사람을 동시에 공격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후욱.
사라락, 사락.
그리고 예상대로.
황보준의 강맹한 권강은 혁대웅에게 도달할 즈음에는 말 그대로 ‘산들바람’이 되어있었다.
찰나의 순간.
비무대 위로 날아든 한 장의 나뭇잎이 권풍을 스치며 그 기세를 산산이 흩어놓은 것이다.
탓.
그리고 마침내.
나뭇잎을 닮은 또 하나의 인영이 비무대 위로 내려앉았다. 혁대웅을 등진 채, 맹우강을 마주했다.
“벽아, 부탁 좀 할게. 이 황보 뭐시기 만큼은 내 손으로 때려 부수고 싶으니까… 맹우강 쪽을 맡아주겠니?”
곧이어 혁대웅이 말했다.
“물론 문제없다. 보아하니 상대측도 그편을 더 바라는 것 같군.”
이벽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 * *
마침내.
이벽이 비무대로 올라섰다.
혁대웅의 말마따나 이 대 이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아니, 한켠의 송영영과 제갈소미를 고려한다면 삼 대 삼의 상황이었다.
여섯 사람의 사이로.
서늘한 정적이 스쳤다.
“…이벽.”
이내 맹우강이 침묵을 깼다. 그리고 이벽과 맹우강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부딪혔다.
“맹우강, 안타깝군.”
이벽 또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가?”
“모처럼 해치지 않고 살려둔 목숨인데… 나에 대한 원한으로 마교도가 되어버렸다면 결국 그때의 내 선택은 말짱 도루묵이 되었단 뜻이 아닌가?”
“…하핫. 원한이라.”
맹우강이 낮게 읊조렸다.
“조금 다르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던 시기도 분명 있었지만… 이제 와서는 그런 게 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다. 과거, 나의 사문이었던 흑천방은 혈교에 잡아먹혔고 나는 내 의붓아버지가 ‘다른 이’로 바꿔치기 된 것조차 알지 못했었다.”
“…….”
과거, 사파에 암약하던 혈마는.
흑천뇌왕 맹철극을 죽인 채 그의 시신을 강시로 이용했고 본인이 맹철극의 행세를 하고 있었노라 하였다.
“그리고 이벽, 너는 그런 흑천방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지. 그렇다면 내 원수는 누구인가? 혈교? 아니면 너? 그것도 아니면 진작에 몰락한 패왕가?”
맹우강이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에게 원한을 갚으려고 한들… 거기서부터 이미 답이 명확하지 않은 문제가 아닌가?”
그것은.
이벽에게 있어서도 퍽 의외의 이야기였다. 물론 이제 와서는 큰 의미가 없는 이야기이기는 했으나, 조금은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조금 전부터 왜 그리도 나를 이 비무대 위로 끄집어내려 안달을 했나?”
“핫, 글쎄. 왜일까?”
맹우강이 어깨를 으쓱했다.
“다만… 과거의 네가 날 쓰러뜨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 또한 없었겠지. 그저 보잘것없는 혈교의 꼭두각시로 살다가 비명횡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
“또한 내가 새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얻은 만큼, 너는 그사이 어엿한 절대자가 되어 ‘도전할 가치가 있는 적’으로 남아주었다. 그 점에 대해선 외려 감사하고 있다.”
“…모처럼 혈교에서 벗어난 후 도로 마교에 투신한 녀석에게 그런 소릴 들어도 별로 뿌듯하지는 않군.”
“하핫. 좋을 대로 생각해라.”
후우욱, 콰아아아아아앙.
그때 이벽의 등 뒤에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물론 돌아보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있었다.
“하핫! 겨우 그거야? 힘 좀 더 써보시지! 여유 부리다 반병신한테 맞아 죽으면 억울해서 눈도 못 감지 않겠어요?!”
“핫! 자네야말로… 패왕의 후예치고는 품행이 과하게 경박하군! 뭐, 몰락한 집안의 핏줄이란 결국 그런 법이지!”
혁대웅과 황보준이 본격적인 공방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딱히 걱정할 것 따윈 없었다.
황보준이 어떠한 힘을 감추고 있건 혁대웅이 진심을 다한다면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닐 터였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다만 지금.
혁대웅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송영영과 제갈소미가 ‘할 일’을 방해받지 않도록 나머지 두 사람을 적당히 상대하는 일일 뿐이므로.
전력을 다하지는 않는 것이다.
“…….”
외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혁대웅이 아닌 자신 쪽이었다.
맹우강을 마주한 현재, 오고 간 대화는 몇 마디에 불과했으나 그 속에서 이벽은 깨달음의 깊이를 어렴풋이 가늠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이쯤 하지.”
다시 맹우강이 말했다.
후욱, 파지지지직.
이내 다음 순간, 공기가 답답해졌다. 당연하다는 듯 맹우강의 ‘등천의 영역’이 발현된 것이다.
허나 그것은 과거, 흑천방주 맹철극과는 달리 먹구름과 같은 뚜렷한 형상을 이루지는 않았다.
파지지지직.
그 뇌기는 외려.
공기처럼 투명하되, 찰나의 순간 기세를 떨치며 이미 이벽의 주변까지 전부 감싸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군.”
자만하지 않는 적은.
상대하기 쉽지 않다.
이벽은 다시 맹우강의 힘을 직감했다. 어쩌면 자신의 경우, 퍽 진지하게 싸워야 하는 적일지도 모른다.
사라락.
파직, 파지지직.
허나 물론 말 그대로.
‘약간의 문제’에 불과하다.
이내 이벽은 나뭇잎을 일으켰다.
영역과 영역이 충돌하며, 이벽의 나뭇잎이 주변의 뇌기를 빠르게 밀쳐내기 시작했다.
훗, 맹우강이 웃었다.
“그럼 시작하겠다. 물론 이쪽이 도전하는 입장이니 선공을 취하는 것에 불만은 없겠지?”
“좋을 대로 해라.”
콰르르르릉!
그 순간, 곧장 벼락이 내리쳤다.
등천의 영역이 발휘된 이후 맹우강은 더는 손가락을 튕길 필요조차 없는 듯했다.
타앙, 쐐애애액.
이벽은 즉시 자리를 피했다.
콰르르릉, 콰르릉!
나뭇잎을 밟고 쾌속하게 쏘아지는 이벽의 신형을 따라 벼락이 계속해서 내리쳤다.
콰르르르르릉!
물론 맹우강 또한 뒤를 따랐다.
하늘을 가르며 벼락을 토해냈다.
“이벽, 왜 도망만 치는 거지? 설마 이 정도도 대처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
타아앙.
이벽은 잠자코 땅을 박찼다.
어쨌건 비무대는 충분히 넓었다.
그것은 마치 ‘다수와 다수 간의 비무’가 동시에 펼쳐질 것을 미리 예견하고 지어진 듯했다.
콰르르르릉!
쐐애애애액.
고로 이벽은 뇌기가 다른 쪽의 싸움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비무대의 중심에서 일부러 약간의 거리를 벌린 것이다.
“…분명 놀랄 만한 속도이기는 하다만 부디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후우욱.
그때 맹우강이 도를 내리그었다.
콰르르르르릉!
그와 동시에, 이벽의 머리 위뿐 아니라 전후좌우 모든 방위에서 뇌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
솟아날 구멍 따윈 없다.
훅, 파지지지지지지직!
마침내 이벽의 발걸음이 제자리에 멈추었다. 그리고 벼락이 이벽의 온몸을 두드렸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래 보였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만월무변곡검(滿月無變曲劍).
허나 그 직전의 순간.
이벽의 검은 원을 그었고, 동시에 주변의 나뭇잎들 또한 함께 원을 그리며 이미 이벽의 주변을 메꾸고 있었다.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그리고 만월무변의 원들은.
쏘아지는 뇌기들을 흡수했다.
우우우우웅.
다음 순간, 뇌기를 품은 십수 개의 원들이 은은한 빛을 내며 달과 같은 형상을 띄었다.
흠칫.
맹우강의 표정이 작게 흔들렸다.
물론 그와 같은 현상은 앞서 이벽이 흑천방주 맹철극을 상대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과거, 이벽은 원 안에 축적한 뇌기를 다시 되돌려보냄으로써 맹철극의 시신을 파괴 직전까지 몰아넣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 또한 다를 이유는 없다.
후욱.
그 즉시 이벽이 검을 뻗었다.
그 끝은 물론 맹우강을 향했다.
푸욱, 파아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모든 원의 정중앙에 바늘과 같은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을 따라 섬광과 같은 뇌기가 쏘아졌다.
파지지지지지직.
“…큭!”
극한으로 압축된 힘은 곧 극한의 속도로 쏘아졌고, 맹우강은 되쏘아지는 뇌기를 피하지 못했다.
파지지지지지지직.
이후 눈부신 빛이 번뜩였으며, 또한 그 빛에 둘러싸인 맹우강의 신형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
허나 다음 순간.
이번에는 이벽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뇌기에 적중당하고도 맹우강의 몸이 경련하지 않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스윽.
심지어 다음 순간, 뇌기에 둘러싸인 맹우강의 신형이 천천히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훅. 콰르르르릉.
‘…위험!’
이벽은 그 즉시 검을 거두었다.
만월무변곡검을 해제한 뒤, 검신에 나뭇잎을 둘러 방어를 준비했다. 그리고 적절한 판단이었다.
파지지지지지직!
다음 순간, 되쏘아 보낸 뇌기가.
다시금 이벽에게로 되쏘아졌다.
이벽의 검신을 맹렬히 두드렸다.
부르르르, 파지지지지직!
또한 충분히 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뭇잎이 부스러지며 뇌기가 몸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화영변검(花影變劍).
후우욱.
허나 그 순간 이벽은 또 다른 기예를 펼쳤다. 그 즉시 뇌기는 푸른 꽃잎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
그리고 이벽은 저만치에 선 맹우강을 다시금 확인했다. 역시 별다른 충격을 입지 않은 듯했다.
“이벽, 사패련에서 내 아버지가 네게 쓰러지던 모습을 설마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겠나?”
“…그렇군.”
이내 이벽은 이해했다.
과거의 맹철극과 달리.
맹우강은 성난 짐승과 같은 뇌기를 거의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른 모양이었다.
즉.
뇌기를 되돌려보내는 것만으론 별다른 충격을 입힐 수 없는 것이다.
훅, 이벽은 검을 털었다.
말인즉슨, 눈앞의 맹우강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과거와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 내야만 한다.
허나 그것은 여전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