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54)
362화. 여섯 명 (4)
콰콰콰콰콰콰.
“……!”
혁대웅의 눈이 흔들렸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나 어느 방향을 향한들 그곳에는 이미 황톳빛 광풍의 벽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한순간.
비무대 위로 자라난 거대한 용권풍이 자신과 황보준을 통째로 휘감아버린 것이다.
펄럭펄럭펄럭.
옷자락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아니, 그러나 물론 바람에 휩쓸리고 있는 것은 비단옷뿐만이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콰.
몰아치는 광풍 속에서.
혁대웅은 온몸을 조여드는 압력을 느꼈다. 이내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이해했다.
“후우… 하핫! 그래. ‘위대한 힘’을 목도한 소감이 어떠한가? 이제는 좀 자네의 기대에 미치는 것 같나?”
다음 순간, 맞은편에 선 황보준이 마침내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내었다.
“물론,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네! 방종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 말일세! 하핫!”
“…뭐, 그러네요.”
혁대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나도 좀 할 맛이 나죠. 그러니까 절기가 있으면 진작에 꺼내라고 아까 전부터 얘기했잖아요?”
“…뭐라고?”
“다른 두 사람에 비해 나만 상대가 좀 처지는 것 같아서 영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래도 이걸 보니 좀 안심이 되네요. 하핫!”
혁대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핫, 하핫! 그래, 기백 하나는 참으로 일품이로구나! 그래, 그리 쉽게 겁을 집어먹어서야 패왕의 후예라 할 수 없지! 암!”
황보준 또한 마주 웃었다.
동시에 두 눈이 검게 번뜩였다.
기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번이고 눈앞의 애송이를 고깃덩어리로 짓뭉개버린 후였다.
우우우웅.
허나 생각과 달리.
황보준은 섣불리 달려들지는 않았다. 심호흡과 함께, 들끓는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물론, 패배 따윌 걱정하는 건 아니다. 허나 눈앞의 적은 분명히 약자가 아니었다.
하물며.
아버지 권왕이 보는 앞에서 이미 적잖은 추태를 보였고, 급기야는 위대한 힘까지 꺼내 들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더는 조금이라도 수세에 몰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되며, 또한 그저 ‘이기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황보가의 소가주이자 천마의 후계자로서,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압도적이고 처참한 죽음을 놈에게 안겨줘야만 하는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콰.
“…자,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한편 혁대웅은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싼 바람은 물론.
부정할 수 없는 등천의 힘이었다.
딱히 두려움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나, 조금 전과 같이 무턱대고 싸웠다간 허를 찔릴 가능성 또한 충분한 것이다.
고로 나름의 대처법을 생각해야―
“어딜 한눈을 팔고 있나?!”
훅, 타아앙.
허나 그때였다.
마침내 혁대웅에게서 빈틈을 발견한 황보준이 그 즉시 땅을 박찼다.
후우우욱. 콰아앙.
그와 동시에.
주변의 바람이 몰려들었다.
슈우욱.
이내 광풍 속에 녹아들며 스스로 한 줄기 바람이 된 황보준의 신형이 혁대웅의 지척까지 밀려들었다.
후우우욱.
또한 그 오른손에는.
어느새 용권풍이 휘감겨있었다.
우우우웅.
물론, 혁대웅 또한 가만히 당하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 즉시 창을 마주 내뻗었다.
극척의 초식이었다.
터어엉.
“……엇?”
허나 주먹과 창끝이 교차하는 순간, 조금 전과 같은 힘과 힘의 충돌은 일지 않았다.
창끝의 타점이.
엇나가버린 것이다.
허나 이내 혁대웅은 직감했다.
그것은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아니라, 몰아치는 바람이 창의 투로를 미미하게 휘어버린 탓이었다.
“…이야, 이게 이렇게 되네?”
“하핫! 그럼 조금 전과 똑같을 줄 알았나? 역시 자네, 지혜는 그 무를 따라가지 못하나 보군!”
터어엉, 스으으으윽.
그리고 다음 순간.
황보준의 손등이 창대를 어루만지듯 타고 올라왔다. 눈 깜짝할 새에 혁대웅의 수비 범위를 넘겨버렸다. 그리고.
훅, 퍼어어어어억!
주먹이 복부를 파고들었다.
허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뿌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앙.
주먹에 서린 용권풍이 한 번 더 복부를 파고들며, 혁대웅의 몸을 뒤흔들었다.
“…커억!”
비틀.
일순 혁대웅의 균형이 흔들렸다.
물론, 즉시 되찾으려 했다. 허나.
휘오오오오.
다음 순간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바람이 몰려들며 혁대웅을 마구 휘감았고, 무너진 균형을 더욱 뒤흔들어놓았다.
타아앙.
“하핫! 내 이제부터 자네에게 황보세가의 진짜 주먹을 듬뿍 맛보여주지! 기대해도 좋을 걸세!”
다시, 황보준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무너진 균형을 향해 파고들었다.
우우웅.
두 주먹이 잘게 울었다.
퍼버버버버버버벅!
그리고.
주먹세례가 혁대웅을 난타했다.
콰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심지어 그것은 단순한 주먹이 아니었다. 황보준의 주먹이 스치고 지나간 순간, 바람이 한 번 더 그곳을 파고들었다.
퍼버벅, 콰아아아아앙!
“크하하하핫! 으하핫! 맛이 어떤가?! 분전한 것 치고는 꽤 허무한 최후가 되어버렸군 그래!”
마구잡이로 주먹을 내뻗으며 황보준은 괴소를 터뜨렸다.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놈은 너무 쉽게 빈틈을 드러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황보세가의 태산십팔중권(太山十八重拳)은 일단 처음 일 권에 노출되고 나면 이후 점점 더 무게가 더해지며 끝끝내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휘오오오오오.
하물며 위대한 힘이 자신을 돕고 있다. 더는 패배의 가능성 따윈 터럭만큼조차 없는 것이다.
퍼버버버벅, 콰아아아앙.
뿌드드득, 뿌드득.
역시, 혁대웅은 몰아치는 공격에 저항은커녕 수비조차 하지 못했다. 황보준은 마침내 억누르고 있던 충동을 마구 풀어헤쳤다.
“으하하핫! 자, 마음 놓고 천천히 맛을 보게나! 그리 쉽게 죽여주지는 않을 테니 말일세!”
* * *
퍼버버버버벅.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이후 일방적인 난타가 이어졌다.
주먹에 와닿는 살과 뼈의 감각은 퍽 단단했다. 단련된 육신은 내기에 의해 보호되며 강기에 맞고도 쉬이 뭉개지지는 않는 것이다.
허나 그렇기에 오히려.
황보준은 더욱 만족스러웠다.
쉬이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즉 그만큼 오랫동안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와 같은 육신을 완성하기까지 어마어마한 노력을 쌓아왔을 상대의 지난 세월을 전부 짓밟아버리는 쾌감 또한 뒤를 따랐다.
퍼어어어어억. 퍽.
쿵, 콰아아앙, 퍼어어어억!
“……?”
허나.
태산십팔중권의 모든 초식을 두 번 정도 반복했을 즈음, 황보준은 서서히 위화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먹에 와닿는 감각이 물러지기는커녕 더욱 단단해졌기 때문이었다.
살과 뼈를 두드리는 감각이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바위를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급기야는.
철벽에 가까워졌다.
‘…기분 탓인가?’
처음, 황보준은 자신의 감각을 의심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설령 진짜 바위나 철벽이라고 해도 두부처럼 으깨고 찌그러뜨려 버리는 것이 대 황보세가의 주먹이다.
퍼어억, 콰아아아아아아앙.
허나 감각은 점점 분명해졌다.
나아가서는 주먹에 약간의 반탄력이 되돌아오기 시작했으며, 마구 흔들리던 혁대웅의 신형이 눈에 띄게 균형을 되찾았다.
우우우웅.
다시, 그 순간.
황보준은 무언가 거대한 형상이 혁대웅의 등뒤에서 환영처럼 자라나는 것을 목도했다.
이내 모양이 또렷해졌다.
그 형태는… ‘물레바퀴’였다.
‘…차, 착각이 아니다!’
그제서야 황보준은 눈치챘다.
허나 기실 조금 늦고 말았다.
후우우욱.
다음 순간.
혁대웅이 대뜸 머리를 앞으로 내뻗었다. 날아들던 황보준의 주먹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삐걱.
“크으윽!”
그와 동시에.
황보준의 어깨에 강렬한 충격이 스치며 태산십팔중권의 맥이 끊겨버렸다.
허나 그 말인즉슨, 산조차 으깨버릴 만큼의 공력이 담긴 주먹을 ‘이마’로 막아낸 것이다.
“마, 말도 안 되는……!”
“안 되긴 뭐가 안 돼요? 주먹이나 뚝배기나 어차피 살과 뼈로 이루어진 건 매한가지인데.”
훗, 혁대웅이 웃었다.
움찔.
눈이 마주친 순간 황보준의 어깨가 흔들렸다. 주춤,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황급히 주먹을 거둔 채.
혁대웅을 다시금 마주했다.
“…네놈.”
물론, 소나기와 같은 주먹에 노출된 혁대웅의 몰골은 퍽 엉망이었다. 허나.
그것은 그저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일 뿐, 미소를 띤 표정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그러나.
다시 황보준은 생각했다.
물론 허세임에 틀림없다.
자신의 주먹에 두들겨 맞은 것도 모자라 스스로 머리를 갖다 박고도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는 이가 감히 천하무림에 존재할 리 없기 때문이었다.
주륵.
다음 순간, 그와 같은 황보준의 생각을 증명하듯 혁대웅의 한쪽 콧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핫! 그게 무슨 추한 꼴인가?! 패왕의 후계란 이름에 부끄럽지도 않나? 어차피 죽을 목숨인 것을 왜 부질없는 허세를―”
“에이씨, 쪽팔리게.”
다음 순간, 반대쪽 콧구멍을 누른 혁대웅이 크흥, 콧김을 내뿜었다. 픽, 한 줌의 핏물이 쭉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것으로 출혈은 끝이었다.
“소협, 뭐라고 했어요 지금?”
“…….”
뚜두둑, 뚜두둑.
혁대웅이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아, 지금 거 꽤 좋았어요. 말마따나 제법 매콤하더라구요. 꿀밤 한 대 맞고 나니까… 마침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이 났지 뭐예요?”
휘리리릭. 척.
혁대웅의 창대가 회전했다. 부드러운 그 움직임에는 역시 중상의 기척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자, 다시 들어와 봐요, 소협.”
“…하핫! 구차하기 짝이 없군 그래. 두 발로 서 있는 게 고작이면서 얕은 잔꾀를 부려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아 뭐, 그러니까… 허세인지 아닌지 들어와서 직접 확인하시라니까요?”
혁대웅이 재차 어깨를 으쓱했다.
“아, 혹시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가 괜히 역으로 당할까 봐 그래요? 하긴, 뭔가 낌새가 좀 이상하긴 하다. 그쵸? 정 그러시다면야.”
스윽.
다음 순간, 혁대웅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물론 오른손에 쥐어진 창 또한 뒤로 젖혀졌다.
가슴과 복부가 훤히 드러났다.
“일단 처음 한 대는 확실하게 맞아드릴 테니까… 어서 들어와요. 조금 전처럼 연속기 같은 거 쓰면 되잖아요?”
“…이, 이이익!”
울컥.
황보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물론,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은 퍽 명백했으나 마침내 들끓는 분노가 신중함을 넘어서 버린 것이다.
타아아앙.
다시 황보준이 땅을 박찼다.
“참으로 어리석군!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 것을… 그깟 알량한 자존심으로 끝끝내 더 큰 고통을 자초하는구나!”
퍼어어어어어억.
후우욱, 뿌드드드득.
그리고.
바람과 함께 쇄도한 황보준의 질풍을 담은 주먹이 다시금 혁대웅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들썩.
혁대웅의 거구가 들어 올려졌다.
뿌리처럼 굳건하던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이내 혁대웅의 두 눈이 크게 치켜 떠졌다.
“크―”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내 입술이 벌어졌다.
“…꺼어억.”
허나.
그 입 밖으로 새어 나온 것은 고통에 찬 신음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한 목소리였다.
“와, 소협 덕분에 싸우기 전 마지막으로 먹은 밥이 이제야 좀 내려가네요. 긴장했더니 영 소화가 안 돼서…….”
다시, 혁대웅이 태연하게 말했다.
“…이, 이놈이!”
오싹.
그 순간, 황보준은 본능적인 위험을 직감했다. 이내 황급히 태산십팔중권을 이어가려 했다.
후우우웅.
허나 다음 순간.
공중으로 떠오른 혁대웅의 신형이 저만치로 훅 밀려났다. 물론, 그것은 황보준의 뜻이 아니었다.
후우우욱.
허나 어찌 되었건.
끈 떨어진 연마냥 날아가 버린 혁대웅은 이내 두 사람을 가두고 있는 용권풍의 장벽 속에 휩쓸려 들어갔다.
콰콰콰콰콰콰콰.
“…하, 하하! 으하하하하!”
다음 순간, 황보준이 웃었다.
“자네 설마… 그대로 바깥으로 달아날 속셈이었던 건가?! 으하하핫! 어처구니가 없군! 미안하네만 그렇게는 안 되네! 자, 어서 이리 돌아오게!”
훅.
황보준이 팔을 뻗었다.
콰콰콰콰콰콰.
이내 바람의 벽이 갈라지며 틈새가 벌어졌다. 물론, 용권풍은 황보준의 영역이므로 당연히 그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다.
“……?!”
허나.
그곳에 혁대웅은 없었다.
“아뇨, 딱히 튀려는 건 아닌데요.”
다음 순간.
황보준의 등 뒤에서 혁대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섬뜩한 기척이 파고들었다.
쐐애액.
“……!”
대경한 황보준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했다. 허나 뻗어진 창을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퍼어어억.
“…크으으!”
창끝이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빗맞히고 지나갔다. 타앙, 한발 물러선 황보준이 진각을 밟으며 서둘러 균형을 되찾았다.
“이, 이 노옴! 대체 무슨―!”
곧장 뒤를 향해 일갈했다. 허나.
그곳에도 이미 혁대웅은 없었다.
주륵.
또한 그 순간.
황보준의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
“에이, 황보세가의 소가주 씩이나 되는 분이 부끄럽게시리… 그게 무슨 추한 꼴이에요?”
그리고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잔상을 남기며, 혁대웅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