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66)
374화. 예상 밖의 정체 (2)
“자네가 말하는 ‘그자’들이 정말로 우리 편이라면… 이 판국에 이르러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건 이상하지 않나?”
“……!”
다시 혁대웅의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 순간, 맹우강이 말하는 바는 퍽 명확했다.
즉, 자신들 마교 혹은 의혈맹은… ‘혈마’의 세력과는 일절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나.
“…괜한 헛소리하지 말아요. 혈마와 그 똘마니들이 분명 당신네 소속의 세가들 사이에 섞여 있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혁대웅은 당가의 일을 떠올렸다.
그날, 당가를 포위하고 공격했던 것은 본래 당가를 따르던 중원 남서쪽 무림세가 소속의 무인들이었으며.
예의 두 번째 혈마 또한.
그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그건 조금 다르네.”
맹우강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애당초 맹의 소속이라곤 해도… 사천 부근의 무림세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황보가가 아닌 당가를 중심으로 뭉쳐있던 이들이지 않나?”
“아니, 난 그런 것까진 잘 모르겠고요.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당가가 주춤한 사이 ‘누군가’가 그들을 회유했을지도 모르지. 허나 분명한 것은, 당가를 친 건 우리 맹주님의 뜻이 아니었네.”
맹우강이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퍽 단호했다.
“또한 내 의붓아버지… 흑천방주님의 소실된 유해가 소림에서 다시 나타났다는 이야기 역시 들어서 알고는 있었네.”
“……!”
물론 혁대웅 또한.
이벽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천하를 위한 대의라곤 해도, 내가 정녕 내 아버지의 시신을 욕보이는 이들과 뜻을 함께할 거라 생각하나?”
“…….”
“하물며… 그로 인해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건 소림이나 개방이 아니라 외려 남궁세가 쪽이었지. 그렇지 않나?”
말마따나.
흑천방주 맹철극의 시신이 전장 한복판에 나타났고, 그 손끝에서 쏟아지는 벼락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은 남궁세가를 비롯한 의혈맹 측의 무인들이었다.
“어쨌거나 그 저주받은 사술을 다루는 ‘술자’가 우리 쪽 사람이었다면… 그런 얼간이 같은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네만.”
“…그, 그건.”
혁대웅은 반박하려 했다.
허나 여전히 할 말이 궁색했다.
물론, 그 당시 아군 측의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은 이벽과 송영영의 존재 덕분이었으나.
현장에 직접 존재하고 있지 않던 혁대웅으로서는 당연하게도 마땅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래,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 머지않은 곳에 몸을 숨긴 채 우리가 ‘서로 싸워 약해지는 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지도 모르지. 바로 지금처럼 말일세.”
그리고 맹우강이 말을 맺었다.
쿠웅.
둔탁한 충격이 혁대웅을 스쳤다.
‘혈마가… 마교도가 아니라고?’
이내 혁대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물론, 맹우강의 말을 섣불리 사실로 받아들일 이유 또한 없었다.
허나 어쩌면 정말로.
뭔가를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지. 어차피 놈들 따위가 무슨 음모를 꾸미건, 맹주님을 당해낼 순 없는 노릇이니.”
잠깐의 침묵 끝에.
다시 맹우강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항복하게, 혁대웅.”
“…….”
“다시 말하지만 맹주님께서는 ‘재능이 있는 핏줄’을 무척 아끼시네. 또한 자네가 살아남아야 자네를 따르는 이들도 무사할 수 있지.”
“…그렇군요.”
이내 혁대웅은 고개를 저었다. 복잡한 생각을 얼추 털어낸 뒤, 저편의 비무대를 향했다.
여전히 안개에 쌓여 있었으며.
물론 안을 들여다볼 순 없었다.
콰아아아앙.
다만 먼 산에서 울려 퍼지듯 아득한 충돌음이 연신 끊이지 않고서 들려오고 있었다.
진법 내부의 싸움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분명, 도가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적들이라면 지금쯤 이미 목숨을 잃었어야 했다.
무언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잘 알겠어요, 맹 형. 생사도 불분명한 적의 행방보다야 ‘당장 중요한 일’은 따로 있긴 하죠.”
스윽.
이내 혁대웅이 두 손을 어깨 위로 선선히 들어 올렸다. 항복을 받아들이는 듯한 모양새였다.
“핫, 그래. 역시 현명한 판단이네. 맹주님의 자세한 의향이야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벽 또한 목숨을 잃지는 않을―”
뿌드드드득.
허나 바로 그때였다.
혁대웅의 허리가 활처럼 팽팽하게 당겨지며, 어깨 위로 올라간 오른손 또한 한껏 뒤로 젖혀졌다.
후우우욱. 타아앙.
그리고 다음 순간.
앞을 향해 힘껏 뻗어졌다.
“……?”
그 모습은 분명.
영락없는 ‘투창의 자세’였다.
허나 혁대웅의 창은 좀 전부터 줄곧 등에 메어있었으며, 뻗어진 오른손에는 물론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살랑.
그러나 그 순간.
한 줄기 바람과 함께, 섬뜩한 예감이 맹우강의 등줄기를 스쳤다. 그 즉시 전면을 향해 뇌기를 분출했다.
파지지지지직.
후욱, 콰아아아아아앙!
“커어억―!”
다음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창’이 뇌기를 분쇄하며 맹우강의 전신을 파고들었다.
* * *
타앙, 후우우우욱.
혁대웅이 허공을 박찼다.
신형이 맹우강을 향해 쏘아졌다.
‘지금 중요한 것’이란 물론, 당장 눈앞에 있는 적을 쓰러뜨리는 일 이외의 무엇도 아닌 것이다.
애당초.
전면전을 발아래에 둔 채 대화에 응한 것 또한 ‘숙달되지 않은 기예’를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전륜패왕창.
무륜(無輪)의 기예.
그것은 스스로 물레바퀴와 온전히 하나가 됨으로써, 부동(不動) 상태의 호흡만으로 패왕의 힘을 이끌어 내는 지고의 경지였다.
또한 사패련주이자 혁대웅의 부친인 철탑패왕 혁군악조차 말년에 접어들어 간신히 터득한 경지이기도 했다.
허나 근래의 혁대웅은.
이벽의 청강유엽공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뭇잎으로 쪼개어진 ‘여러 개의 물레바퀴’를 다루는 다륜(多輪)의 경지에 접어들었고.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무륜의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후우우욱.
‘…제길!’
허나 허공을 가르는 혁대웅의 표정은 편치 않았다. 손에 와 닿는 감각이 지나치게 둔탁했던 탓이었다.
후우욱.
무형창에 적중당한 맹우강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저만치로 계속해서 밀려 날아가고 있었다. 허나.
혁대웅이 뜻한 바는 아니었다.
일격으로 가슴을 꿰뚫어 숨통을 끊으려 했으나, 창이 무뎠던 탓에 위력이 반감되고 말았던 것이다.
타아아앙, 철컥.
계속해서 맹우강을 뒤쫓는 한편 혁대웅은 다시 등에서 창을 꺼냈다.
무륜의 기예는.
몸 안에서 기의 운용과 물레바퀴의 회전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기에 상상 이상의 심력을 요한다.
하물며.
그와 같은 기예를 경신법과 함께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이내 거리가 좁혀지며 혁대웅이 창을 뻗으려던 찰나였다.
타앙.
“커헉, 헉……!”
허나 맹우강이 한발 빨랐다.
파지지지직.
이내 균형을 회복한 맹우강이 두 팔을 뻗었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한껏 뇌기를 방전했다.
“하핫… 유감이군 그래! 나 하나 죽인다고 해서… 헉, 딱히 달라질 것도 없는데 말야!”
콰르르릉!
후욱, 파지지지지직!
다시 벼락이 떨어졌다.
허공에 흩어진 도의 파편들이 다시금 뇌기의 그물을 뻗으며 혁대웅의 발목을 붙들었다.
“큭, 빌어먹을!”
후욱.
그리고 그 틈을 타 맹우강이 위로 날아올랐다. 일 장가량 고도를 높인 뒤 혁대웅을 내려다보았다.
“가능한 태평성대를 이루기에 앞서 치뤄야 할 희생을 줄이고 싶었네만… 쿨럭, 이 또한 나의 업보겠지!”
콰르르르르릉!
핫, 피에 젖은 입가가 창백한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이내 벼락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르릉, 콰르르르르르릉!
훙훙훙훙훙.
그 즉시 혁대웅이 머리 위로 창대를 회전시켰다. 집륜의 초식이 펼쳐지며 벼락을 흩어내었다.
파지지지지직!
허나 한 자루의 창만으로는 물론, 일대에 자리한 아군 진영의 머리 위를 모두 뒤덮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라락.
다음 순간, 나뭇잎이 흩날렸다.
한 장 한 장이 모두 물레바퀴가 되어 허공을 회전하며 패왕의 힘을 끌어모았고, 창의 그림자를 빚어내었다.
훙훙훙훙훙.
콰르르르르르릉!
사방으로 퍼진 그림자가 마찬가지로 집륜의 초식을 펼치며 벼락을 상쇄시켰다.
이내 어떻게든, 혁대웅은 맹우강의 벼락과 지상의 아군들을 분리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으득.
허나 그것은.
말 그대로 ‘어떻게든’이었다.
결국은 우려하던 상황이 되고 말았으며, 이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 또한 심력의 소모가 적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맹우강은 이미 이벽에 의해 중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또한 무형창의 일격으로 인해 더욱 엉망이 되었다.
이와 같은 공격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을 터였다.
결국은 지구력의 싸움인 셈―
―소협, 내가 돕겠소.
허나 그때였다.
“……!”
돌연 청아한 목소리가.
혁대웅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또한 그것은 분명 비무회가 시작되기 전에도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훅.
혁대웅의 고개가 아래를 향했다.
시선이 향한 곳은 격전이 펼쳐지고 있는 발아래의 중심과는 퍽 거리가 떨어진 곳이었다.
저만치의 비무대 외곽.
진법의 안팎을 가르는 희미한 경계 부근을 향했다. 허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르륵.
그러나 다음 순간.
마치 ‘투명한 담요’가 벗겨지듯.
인영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죽립을 쓰고 도포를 두른 그 작은 체구의 뒷모습을 확인한 순간, 혁대웅은 그 즉시 정체를 이해했다.
‘…환야!’
인영의 정체는.
바로 진법의 주인이었다.
―진법이 안정에 접어들었으니… 소협께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잠깐이나마 벼락을 막아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소.
“……!”
스윽.
다음 순간, 환야가 주저앉아 땅을 짚었다. 그러자 혁대웅의 발아래로 희미한 물안개의 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허나 물론.
진법에 아무런 조예가 없는 혁대웅으로서도 그것이 ‘단순한 안개’가 아님은 직감할 수 있었다.
‘…좋았어!’
훙훙훙훙훙, 파지지직!
다음 순간 혁대웅의 창이 회전을 멈추었다. 후욱, 그리고 신형이 맹우강을 향해 솟구쳤다.
“……?!”
맹우강의 미간이 흔들렸다. 설마 혁대웅이 ‘수비’를 거두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콰르르르르릉!
허나 쏟아지는 벼락들은 물안개에 닿은 순간 이내 자잘하게 쪼개지며 흩어져버렸다.
후우우웅.
“하아압―!!”
그리고 다음 순간.
혁대웅의 등 뒤로 물레바퀴의 형상이 자라나며, 창끝이 맹우강을 향해 뻗어졌다.
또한.
온힘을 짜내어 벼락을 떨구고 있던 맹우강은 혁대웅의 공격을 눈으로 보았음에도 천뢰지망의 기예를 펼치지 못했다.
훅, 콰르르르르릉!
쏟아지는 벼락을 황급히 혁대웅의 머리 위로 집중시켰으나, 한발 늦고 말았다.
파지지직, 퍼어어어어어억.
“커어억―!”
쏟아지는 벼락을 가르며.
혁대웅의 창끝이 솟구쳤다.
충돌의 순간, 맹우강은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즉사를 피했다. 허나.
“…이런.”
다음 순간 맹우강은.
자신의 오른팔이 텅 비어버린 것을 확인했다. 단순히 잘려 나간 것이 아니라.
형체조차 없이.
짓이겨지고 만 것이다.
비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작에 이미 한계에 접어든 몸이 마침내 허공답보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아래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허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맹우강은 추락하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차가운 눈빛과 마주했다.
물론 혁대웅이었다.
“잘 가요 맹 형. 자비는 없어요.”
“…그래. 이번엔 진짜로 죽는가 보군. 뭐, 자네가 끝끝내 투항할 생각이 없다면야 곧 저승에서 만나게 되겠지.”
이내 맹우강이 쓴웃음을 지었다.
우우우우웅.
그리고 다시.
창끝 위로 패왕의 힘이 어른거렸다. 혁대웅이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
돌연 혁대웅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저만치 발아래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목격한 탓이었다.
진법의 경계 부근.
물론,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체구의 인영은 조금 전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며 혁대웅을 도왔던 환야였다. 다만.
타아아앗.
돌연 ‘또 한 명의 누군가’가.
치열한 전장에서 몸을 빼낸 채 환야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순간.
혁대웅은 갈등했다.
허나 무언가가 이상했다. 무엇보다 환야를 향해 다가서는 인영의 속도는 이상할 만큼 쾌속했다.
그리고 혁대웅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이내 맹우강이 아닌 ‘정체불명의 인영’을 향해 창을 내뻗었다.
후우우우우욱.
콰아아아아아아앙!
패왕의 힘이 쏘아졌다.
정체불명의 인영이 환야의 지척까지 다가선 순간, 일대의 땅을 두드렸다.
타앗, 쐐애애액.
허나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인영은 너무 쉽게 일격을 피했다.
타아앙.
일 보가량 물러선 뒤 착지했다.
휙.
다음 순간, ‘네 발’로 땅에 달라붙은 인영의 고개가 기이하게 꺾어졌다. 그리고 혁대웅과 눈을 마주했다.
“…키킥!”
인영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스르륵, 뱀과 같이 갈라진 혀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