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80)
388화. 낙검, 그리고
바스락.
나뭇잎이 메마른 소리를 내었다.
이벽의 신형이 추락을 시작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낙검(落劍).
그리고.
그밖에는 어떠한 소리도 일지 않았다. 다만 고요함 속에서, 칠흑 같은 검이 하강하는 동선을 따라 긴 궤적을 남겼다.
그것은 마치.
허공에 상흔을 남기는 듯했다.
스윽.
마침내 송영영의 영역에 닿은 순간, 얇은 천을 베고 지나가듯 너무 쉽게 태극의 벽을 뚫고 지나가 버렸다.
화아아아악.
허나 그와 동시에.
영역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검은 불꽃이 세차게 용솟음쳤다. 불청객을 용납지 않겠다는 듯, 그 즉시 이벽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스윽.
허나 낙검의 궤적에 닿자.
불길마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
다소 우려했던 게 우스워질 만큼, 검은 불꽃은 너무 쉽게 기세를 잃고 연기처럼 사그라들었다.
여섯의 기예가 하나로 모여.
‘공간 그 자체’를 베어버린다.
그렇기에 소리조차 일지 않으며.
형체가 있건 없건, 낙검의 기예로써 ‘베지 못할 것’은 천하에 존재하지 않는다.
고요함 속에서 이벽은 마침내 자신이 완성한 기예의 본질을 이해했다.
그것은 어쩌면, 관점에 따라서는 감히 ‘검의 완성’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이벽은 그날, 혈마를 베어내었던 스승 이진천의 낙검조차 ‘미완성의 기예’였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아마도.
스승의 심신 안에 송영영과 같은 마기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일 터였다.
허나 스승과는 달리.
자신은 마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으므로, 기예는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으며 검 또한 안정을 이루었다.
손에 쥔 검에서는.
더는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스으윽.
고요함 속에서.
이벽은 계속해서 아래를 향했고, 불꽃은 이벽의 털끝 하나 태우지 못한 채 썰물처럼 갈라졌다.
후우욱.
외려 급기야는.
이벽을 피해 달아나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벽은 송영영을 마주했다. 허나 텅빈 회잿빛 눈을 확인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송영영, 살아있나?”
이내 이벽이 물었다.
눈앞의 여인이 ‘아직’ 송영영이 맞는지를 확인해야만 한다는 직감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허나 어쩌면.
조금 늦어버렸을 수도―
“아니.”
그 순간 송영영이 답했다.
“이미 죽었어. 흑흑.”
“…주둥이는 살아있는 모양이군.”
이벽은 안도했다.
그 즉시 왼손을 뻗었다.
화아아악.
그러자 다시 송영영의 온몸에서 검은 불꽃이 일어나며 이벽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스윽.
허나 낙검이 횡을 긋자.
불길은 허망하게 소멸했다.
“…….”
송영영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대주, 나를 도와줘.”
“그야 물론이다. 그럼 뭘 하기 위해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나?”
“그런 게 아니야.”
송영영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멍청했어. ‘천마’를 너무 가벼이 생각했어.”
“…….”
“나는 곧… 잡아먹히고 말 거야. 하지만 그래선 안 돼. 마(魔)는 남김없이 뿌리뽑혀야만 해.”
말이 이어질수록.
송영영의 목소리는 잘게 흔들렸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쉽지 않은 듯했다.
“…송영영.”
물론, 이벽 또한.
‘잡아먹힌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기실 겉으로 드러나는 불꽃은 그저 ‘흘러넘친 부분’에 불과할 뿐.
근본에 해당하는 불씨는.
내면을 좀 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송영영이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는 순간, 월향의 말마다나 그녀는 ‘천마’가 되어버리고 말 터였다.
철컥.
그 순간, 송영영이 다시 검을 움켜쥐었다. 허나 그 방향은 이벽을 향하지 않았다.
외려 그 끝은.
자기 자신의 가슴을 향했다.
“지금, 천마를 벨 거야.”
“잠깐! 송영영―”
이벽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허나 송영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숨이 끊어지는 순간, 그릇을 잃은 마기가 폭주할 거고 일대 전부가 마기에 오염될 거야.”
“……!”
“그러니까… 윽, 네 검으로 그 폭주를 막아줘. 그렇지 않으면… 마(魔)는 끝끝내 절멸되지 않아. 으윽.”
그렇게.
송영영은 힘겹게 할 말을 마쳤다. 스으으, 그리고 또다시 불꽃이 어깨 위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말인즉슨 지금껏 송영영은.
‘최후의 마인’인 자기 자신을 스스로 멸하려 하면서도 동시에 그 후환마저 막아내기 위해.
태극과 역태극으로 말미암아.
주변을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끝끝내 태극은 불꽃을 다스릴 수 없었고, 고로 송영영은 쉬이 죽을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이벽의 낙검이 너무도 쉽게 불꽃을 베어내는 모습을 목도했다. 고로 이벽이라면 후환마저 능히 ‘통제할 수 있음’을 확신했다.
“…싫다.”
그러나 이벽은 고개를 저었다.
“…왜?”
“나는 널 살리기 위해 왔다. 그러니 다른 방법이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봐라.”
“…….”
송영영의 미간이 흔들렸다.
“하지만… 날 미워하잖아?”
“…내가 널 왜 미워하나?”
“내가… 네 스승을 죽였으니까.”
“…그건 문주님의 선택이었고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
그 당시.
스승 이진천은 지금의 송영영과 마찬가지로 검은 불꽃에 휩싸인 채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었으며.
송영영이 그 등을 찌르지 않았다고 한들, 결국 스승의 최후를 피할 방법 따윈 없었음을 알고 있었다.
외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당시의 ‘폭발’은 고작 그 정도의 규모로 끝나지 않았을 터이며, 자신과 혁대웅 또한 이미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훅.
다시 낙검이 휘둘러졌다.
잘려 나간 불꽃이 소멸했다.
“…….”
허나 그와 동시에 이벽은.
낙검의 한계 또한 직감했다.
무엇이건 베지 못할 것이 없으나, 또한 그렇기에 송영영을 해치지 않은 채 몸 안에 있는 불씨만을 베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면… 지금처럼 네 안의 마기를 전부 내보내라. 전부 바닥날 때까지 몇 번이고 베어주겠다.”
“…불가능해, 그런 건.”
“해보지 않고선 모르지 않나?”
스으윽.
말마따나.
연신 불꽃을 베어내면서도 그 검의 고요한 모양새와 마찬가지로 이벽은 심신에 아무런 한계를 느끼지 않았다.
외려 검을 휘두를수록.
일전의 싸움 속에서 소모한 힘과 상처가 도로 ‘회복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대주, 잘 들어. 나는― 윽.”
스륵.
허나 그때였다. 송영영의 손아귀에서 검이 흘러내렸고 저 아래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움찔.
“아아, 아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송영영의 허리가 휘어지며 두 손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화아악, 삽시간에 불꽃이 온몸을 휘감았다.
훅.
이벽이 지체 없이 파고들었다.
물론, 송영영의 몸을 상하게 하지 않은 채 다시금 불꽃만을 벗겨낼 셈이었다.
덥석.
“……!”
허나 다시 그때.
송영영의 팔이 이벽의 손목을 낚아채었고, 이벽의 검로가 봉쇄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다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허나 송영영의 검은 눈빛 안에서 이벽은 마침내 그녀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감지했다.
움찔.
그리고 현기증이 스쳤다.
“…크!”
이벽은 손목을 뿌리치려 했다.
화아아아아악.
허나 그보다 먼저.
검은 불꽃이 손목을 타고 이벽에게로 옮겨붙었다. 그리고 삽시간에 온몸을 휘감았다.
* * *
화아아아아악.
이벽은 불길에 휩싸였다. 허나.
의외로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가 이벽의 귓가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
그 순간, 이벽은 직감했다.
지금, 송영영의 몸 안에 있는 또 한 명의 ‘누군가’가 자신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방식은.
퍽 익숙한 감각이었다.
‘…진법.’
말인즉슨.
주변을 감싼 불꽃이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마냥 모종의 진법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여전히 마음만 먹는다면, 그러한 불꽃 따윈 낙검을 통해 얼마든지 걷어낼 수 있을 터였다.
허나 이벽은 예의 목소리에서 그다지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찰나의 순간.
갈등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대체 어느 누가 있어 송영영의 몸 안에 똬리를 튼 채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그 목소리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벽은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어쩌면.
검은 불꽃을 수족처럼 다루는 이 유령과 같은 존재야말로… 월향의 배후에 있는 진짜 ‘흑막’이라는 직감이 스쳤다.
“…….”
다음 순간.
이내 이벽은 결심했다.
상대의 정체가 무엇이건, 결국 송영영을 구하기 위해서는 ‘안에 있는 이’와 직접 마주하는 것이 정답일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제 와서는.
진법이건 환술이건, 끝끝내 그 무엇도 자신을 묶어둘 수는 없으리란 확신이 스쳤다.
후욱.
이내 이벽은 진법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진법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찰나의 현기증이 스쳤고, 이벽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벽은 주변의 공기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아득한 새소리와 함께 다시 눈을 떴다.
어느새.
전장의 소음이나 혈향 따윈 온데간데없어졌으며, 머리 위로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이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스스로가 널따란 바위 위에 올라 앉아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사방으로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의 절경이 펼쳐져 있었으며, 좌측에는 아담한 암자 한 채가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이 풍경은.
분명 기억에 남아있는 장소였다.
스윽.
“그래. 그 먼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여기까지 당도하셨구려.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소?”
그 순간.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말했다.
그 즉시 이벽은 맞은편을 향했다.
조금 전까지 아무도 없었던 곳에는 당연하다는 듯 노인이 마주 앉아있었다.
“…선사.”
또한 노인은 역시.
‘이 장소의 주인’이기도 했다.
이내 이벽은 진법 속에 펼쳐진 이 장소가 숭산, 소림의 어느 외진 봉우리에 위치한 암자이며.
또한 맞은편의 노인은 암자의 주인이자 소림의 최고 배분인 외팔의 학승 혜공선사임을 떠올렸다.
쪼르륵.
“아무것도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는 뭐하니… 우선은 차라도 한 잔 내어드리겠소.”
끌끌, 혜공이 웃었다.
혜공이 찻잔에 차를 따랐다.
쪼르륵.
이벽은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노인이 그저 단순히 자신의 기억에서 끄집어내어진 환영의 껍데기에 불과한지, 혹은 ‘진짜 본인’인지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 식기 전에 드시오.”
차가 내어졌다.
이벽은 찻잔을 들어 올렸다.
“…선사께서는 환영입니까?”
“뭐, 육신을 잃었으니 지금은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아니, 그전에도 어떤 의미로는 이미 허깨비에 불과했지만 말이오.”
끌끌, 혜공이 다시 웃었다.
“…….”
그리고 이벽은.
이내 서서히 눈앞의 혜공이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 따위가 아님을 이해했다.
눈앞의 혜공선사는.
명백한 ‘진법의 주체’였다.
이벽은 잠시 마음을 다스렸다.
혈마의 정체는 전(前) 개방주 취풍신개였으며, 하오문주 월향은 그러한 혈마를 줄곧 자신의 곁에 숨겨두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이미.
취풍신개의 가까운 벗이었던 혜공선사의 정체가 무엇이었다고 한들, 일일이 당황하고 있는 것조차 시간의 낭비일 터였다.
철컥.
다만 이벽은 검을 잡았다.
“잠깐, 진정하시오, 소협. 마음은 이해하오만 나는 소협과 싸우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오. 소협도 알고 있지 않소?”
혜공이 다급히 손을 뻗었다. 말마따나, 불꽃 속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에는 적의가 실려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설명해주시지요. 어째서 선사께서 송영영의 몸 안에 깃들어있으며, 또한 선사는 누구입니까?”
“…내가 어째서 여기 있나?”
후루룩.
혜공이 차를 들이켰다.
“이유는 다음과 같소. 조금 전 내 육신은 태극무봉에 의해 숨을 거두었고, 가까스로 정신이 이 안에 깃들었기 때문이오.”
끌끌, 노승이 버릇처럼 웃었다.
“실은… 나는 소림의 혜공임과 동시에 모산파의 진전을 이은 환야이기도 하오. 나름대로 몸을 사리며 열심히 진법을 펼치고 있었는데… 등을 당해버렸지 뭐요?”//
노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
그리고 이벽은 그제서야.
‘환야가 송영영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던 혁대웅의 말을 다시금 상기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그러한 사실에 대해 미처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허나.
권왕이나 혈마 뿐 아니라.
환야마저 송영영의 검에 의해 목숨을 거두었다면… 물론 그럴 만한 이유는 하나뿐일 터였다.
“그래, 송구한 일이오만… 사실은 이 늙은이 역시 천마의 씨앗이 심어진 몸이었다오.”
“…….”
“오늘날까지 각각 정체를 숨기고 있던 다른 ‘네 명의 경쟁자’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지.”
터어어엉.
그 순간, 혜공의 등 뒤로.
네 개의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