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82)
390화. 다섯 명의 천마 (2)
천마에게 패해 쓰러진 뒤.
다시 눈을 뜬 젊은 날의 혜공은 마교와의 전쟁이 정사연합의 승리로 끝났으며 천마가 토벌되었다는 믿지 못할 소식을 들었다.
허나 그와 동시에 바로 그 천마의 존재가 다름 아닌 ‘자신의 머릿속’에 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이내 황망함에 빠졌다. 허나.
그것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는, 내면의 그 이질적인 존재와 눈을 마주한 순간 혜공은 더 이상 ‘혜공’으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번뜩.
그 즉시 마성이 눈을 떴고.
찰나의 순간 상단전을 장악했다. 그리고 혜공으로서의 자아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부르르.
“크윽, 으으으―!”
허나 혜공은.
그 고금제일의 마성에 저항했다.
소림의 무승이자 한 명의 불제자로서 불도를 갈고닦아온 기억들이 간신히 자아를 붙들었다.
허나 그것은.
성난 홍수에 휩쓸린 채 갈대 하나를 붙들고 의지하듯 위태로운 모양새였으며, 언제고 스스로를 놓쳐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조차 없더군. 천마의 주박은 무슨 짓을 해도 거스를 수 없는 본능과 같았소.”
“…….”
다시, 눈앞의 ‘늙은’ 혜공이 말했다. 이벽은 여전히 가타부타 입을 열지 않았으나 노인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천하로부터 ‘나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 외에는 달리 없더군.”
이내 젊은 날의 혜공은.
스스로를 암굴 속에 가두었다.
그리고 ‘면벽수련’에 접어들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문득 이벽은 진동을 느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는 봉우리의 아래 어디 쯤에 예의 ‘암굴’이 자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암굴 안에는.
광인이 된 젊은 혜공이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천마는 내게 ‘끝없는 수련’을 요구했소. 고로 나는 암굴 속에서 잠자코 무학을 갈고 닦았지.”
밤낮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혜공은 끝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칠십이종의 절예를 칠십이 번 반복하고 지쳐 쓰러져도 안식은 찾아오지 않았다.
탈진하여 쓰러진 이후에도 천마는 수련을 요구했고, 고로 혜공은 꿈속에서도 다시 손발을 휘둘러야만 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지났다.
허나 그 와중에도 혜공은 실낱과 같은 자아를 붙들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소림의 무학에 서려 있는 부처의 가르침 덕택이었을 터였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마침내.
혜공은 ‘단 한 번의 반역’에 성공했다. 천마의 주박 속에서 무공수련과 자기학대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들던 어느 순간.
퍼어어어어억.
오른팔이 으스러졌다.
흠칫.
아득한 고통 속에서, 혜공은 찰나의 순간 몸의 제어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콰드득, 퍼어어어억.
혜공은 오른팔을 뜯어내었다.
퍼어어어어억.
“커어…억―!”
그리고 전력을 담아.
남은 왼손으로 자신의 하복부를 두드렸다. 그렇게 소림제일의 기재는 스스로의 단전을 파괴했다.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의 손으로 끊어내었다.
“…….”
과거, 혜공은.
이벽에게 ‘마교와의 전쟁’ 중에서 오른팔과 단전을 잃었노라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그것은.
외부에 존재하는 적과의 일전이 아니라 외려 자신 안에 똬리를 틀고 있던 천마와의 전쟁에 의한 것이었다.
허나.
더는 무공을 수련할 수 없는 몸이 된 이후에도 천마의 자아는 혜공을 순순히 놔주지 않았다.
다시 무수한 시간 동안.
참선 속의 싸움이 이어졌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눈을 떴을 때… 마침내 천마의 명을 거슬러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구려.”
혜공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제서야 나는 마침내 내 안의 천마를 굴복시켰음을 깨달았소. 이후 암굴을 벗어나고 나니… 십 년이란 세월이 지나있더군.”
“…….”
그 평온한 미소로부터.
이벽은 다시금 혜공의 불상을 떠올렸다. 노인이 그와 같은 지고한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무려 십 년이란 시간 동안.
자신의 머릿속에 틀어박혀 있던 천마를 굴복시키는 과정을 통해 빚어낸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허나 그와 동시에, 나 홀로 입멸에 들기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천하에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소.”
다시 노인이 말했다.
“젊은 정파무인의 육신을 통해 그 안에 남아있는 정도의 무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노라는 천마의 계획은 나 하나로 끝이 아니었소. 기실 내가 극복해낸 것은 고작해야 천마의 ‘오 분지 일’에 불과했을 뿐이었던 게지.”
혜공의 등 뒤에는.
여전히 네 개의 관이 서 있었다.
* * *
혜공은 천마를 극복했고, 또한 그 안에 남아있는 기억 속에서 마침내 천마의 계획을 모두 이해했다.
혜공에게 ‘자신의 일부’를 심어둔 이후, 천마는 일부러 스스로의 죽음을 위장했다.
그리고 휘하의 마교도들이.
분열하여 자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전쟁은 정사무림연합의 승리로 돌아갔고, 갈 곳을 잃은 마교의 핏줄들은 새외로 후퇴하거나 중원 곳곳에 정착하여 스며들었다.
그리고.
‘거짓 평화’가 찾아든 전후무림에서 천마는 정체를 숨긴 채, 혜공에 버금가는 육신을 찾아 다시 정파무림으로 나아갔다.
“자신의 자아를 다섯 조각으로 나눈 뒤, 다섯 명의 육신에 전이시킨다. 그리고 ‘서로 싸우게’ 하여… 마지막 하나만을 살아남게 한다.”
“…….”
“그것이 천마의 계획이었소.”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목숨을 취하는 순간, 패자의 몸에 깃들어있던 천마의 파편은 승자에게로 전이되며.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는 육신에게는 다섯 조각의 자아가 모두 모여 온전한 천마를 이룰 터였다.
말인즉슨.
다섯 개의 자아를 서로 경쟁시킴으로써, 천마는 천마가 아닌 ‘정파지존’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꾀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문자 그대로 광인의 발상이었다.
말인즉슨 이미 천하제일의 힘을 지녔음에도, 조금 더 강해지기 위한 실낱 같은 가능성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여러 조각’으로 쪼개놓은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책임감을 느꼈소. 결국 천마의 ‘계획된 부활’을 알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나뿐인 셈이었으니.”
“…….”
“뭣보다 ‘씨앗’들이 본격적인 싸움에 나서게 되면… 천하는 다시 전장의 화마에 휩싸이게 되겠지.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소.”
이내 서서히.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눈앞의 혜공은 진실로 천하의 안위를 걱정하는 노승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이벽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만.”
마침내 이벽이 입을 열었다.
“자초지종은 대강 알겠소. 슬슬 결론을 듣고 싶군. 그래서 그 ‘선택’이란 게 대체 무엇이오?”
조금 전 혜공은.
이벽이 선택하기에 따라 송영영의 육신을 다시 돌려줄 수 있노라 말하였다.
“송구하오만…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소이다.”
허나 혜공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째서요?”
“나는 시주께 감히 어려운 부탁을 드리고자 하오. 허나… 이 늙은이가 그와 같은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은 시주를 설득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
“그러니 내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소만. 늙은이의 이야기가 정히 듣기 힘드시다면… 어차피 설득은 실패한 셈이니 지금 당장 검을 드셔도 좋소이다.”
이벽은 다시 갈등했다.
사형제들을 비롯해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 이들을 생각한다면,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순 없다.
허나 육신이 없는 혜공은.
진법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이벽은 자신을 속이고자 하는 그 어떤 거짓의 기색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최소한.
지금까지 혜공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노인을 ‘악적’이라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었다.
고로 검은 점점 무거워졌으며.
그것은 퍽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흘흘, 이것 참. 또 다시 이 늙은이의 생각이 짧았구려. 용서하시오 시주. 좌우간 ‘바깥의 일’에 대해서라면 이 이상 심려치 않으셔도 괜찮을 거요.”
“……!”
“시주와 이 늙은이가 이렇듯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하오문주께서도 시주의 사람들을 섣불리 해치진 않을 거요. 내 약조하리다.”
그리고 다시 그때, 이벽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혜공은 웃는 낯으로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어쨌거나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당시의 나는 뾰족할 방도가 없을지언정 우선은 어느 누구에게 천마의 씨앗이 심어졌는지를 알아내고자 했소.”
그리고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허나 그러기 위해선 물론 단전을 잃어버린 나에게도 나름의 힘이 필요했지. 그렇기에 나는 ‘무공이 아닌 기예’에 눈을 돌렸소.”
그리고 혜공은.
천마와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모산파의 마지막 후인과 가까이 지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불타 없어진 모산파의 폐허 속에서, 다행히도 감춰져 있던 비전을 찾아내기에 이르렀으며.
도술의 성취를 이루는 것은.
어둠 속에서 불법에 의지해 십 년씩이나 천마와 싸워왔던 혜공에게 있어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혜공은.
‘환야’라는 숨겨진 신분을 얻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추후 정도맹주가 될 태극검존을 비롯한 도가의 절대고수들과도 면을 쌓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나는 씨앗 하나를 찾아내었소. 가까이 다가서자 본능적으로 ‘피 냄새’가 나더군.”
덜컹.
마침내 그 순간.
혜공의 등 뒤에 늘어서 있던 네 개의 관 중 가장 좌측의 관이 소리를 내며 뚜껑이 열렸다.
안쪽의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마, 개방주 취풍신개.”
말인즉슨.
소림의 기재 혜공에게 천마의 씨앗이 심어졌듯, 개방의 기재였던 취풍신개 또한 같은 일을 겪었던 것이다.
“신개는… 다섯 개로 나눠진 천마의 자아 중에서도 본래 ‘혈마’의 것이었던 기억과 지식을 강하게 물려받았던 모양이오.”
“…….”
“어찌 되었건 나는 정체를 숨긴 채 그와 가까이 지내보았소. 다행히도 그는 천마를 극복한 나를 반대로 알아보지는 못하더군.”
허나 그 말인즉슨.
혜공과는 달리 취풍신개는 이미 천마의 씨앗에 잡아먹힌 채 스스로의 정체를 감출 수 없는 처지라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혜공 또한 자신이 소림의 제자가 아니며 불가의 무공을 익히지 않았더라면, 천마를 극복할 수 있었을지 감히 자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개방주는.
재림혈마가 되었다.
덜컹.
그리고 다시.
두 번째 관이 열렸다.
“천마, 황보세가주 권왕 황보혁.”
“…….”
마교가 몰락한 이후.
중원에 정착한 우호법 풍마의 여식은 정체를 숨긴 채 의도적으로 황보가에 접근했고.
그렇게 풍마의 마지막 후예는.
황보세가의 성씨를 달고 태어나게 되었으며, 천마는 ‘검증된 핏줄’인 황보혁에게 기꺼이 자신의 씨앗을 심어두었다.
물론 황보혁 또한.
혜공이 그의 존재를 확인했을 무렵에는 이미 자아를 잠식당해 천마와 자기 자신의 구분이 없어진 이후였다.
그렇게 혜공은.
‘두 개의 씨앗’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이미 두 사람을 천마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길은 오직 단 하나, 목숨을 거두는 것 뿐임을 이해했다.
허나 물론, 천마를 극복한 대가로 무공을 잃은 혜공으로선 그저 잠자코 숨을 죽인 채 양쪽 모두의 목을 칠 어부지리의 기회를 엿볼 뿐이었다.
또한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 명까지는 퍽 간단하게 찾을 수 있었소만… 도저히 ‘네 번째’를 찾을 수가 없더군.”
천마의 씨앗은.
그 육신의 주인이 자력으로 등천의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저 상단전에 조용히 잠들어있으며 눈을 뜨지 않는다.
물론, 애당초 그 육신이 스스로의 ‘수련과 극복’을 통해 이뤄낸 정파의 무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 천마의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렇기에.
최소한 십수 년 안에 절대지경의 성취를 이룰 것이 확실시되는 수준의 재능이 아니고서는 결코 천마의 선택을 받을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물론.
그런 재능이 동시대에 몇 명씩이나 있을 리 없다. 허나 그나마의 가능성을 지닌 이들에게서 혜공은 어떠한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지. 그 순간까지도 천마는… 나머지 두 개의 씨앗을 심을만한 적절한 육신을 찾지 못했던 거요.”
그리고 그 말인즉슨.
천하 어딘가에 아직도 천마 본인이 살아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허나 무슨 짓을 한들 천마 본인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다.
노인이 그러한 고심에 빠져있던 찰나 혜공을, 아니 ‘환야’를 찾아온 사내가 한 명 있었다.
“선우세가주, 검치 선우명.”
“……!”
이벽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