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86)
394화. 부처의 뜻 (1)
과거, 혜공은.
검치 선우명과의 우연찮은 만남을 통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의 후예를 자신의 ‘씨앗’으로 삼으려 하는 천마의 계획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섬서성 화산에서 천마와 검치의 핏줄을 한 몸에 이어받은 후예를 발견했다.
매화검선 소청의 제자이자 훗날 ‘매화검 청천’이란 이름으로 자라나게 될 어린아이였다.
물론 그와 동시에.
그 상단전 안에는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천마의 ‘네 번째 씨앗’이 심어져 있을 것임은 퍽 자명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혜공은 부처님의 뜻을 깨우쳤다.
즉, 여전히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천마의 씨앗을 오롯이 자신의 일부분으로 흡수할 수 있다면.
다시 하나로 모여들고자 하는 씨앗의 성질을 통해, 눈앞의 이 ‘어린 육신’에게로 스스로의 의식을 옮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아이를 구하는 길이기도 했다.
취풍신개나 권왕 황보혁의 경우.
이미 오래전에 절대지경의 깨달음을 얻었고, 그와 동시에 눈을 뜬 천마의 씨앗에 자아를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렇기에.
설령 혜공이 그 두 사람 중 한 명의 몸으로 들어선다고 한들, 이미 뿌리를 내린 천마를 어떻게 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매화검 청천은.
아직 ‘늦지 않은 것’이다. 고로.
언젠가 이 아이가 절대지경에 접어든 직후, 천마의 씨앗이 채 뿌리를 내리기 전에 그 의식 안으로 들어설 수만 있다면.
이미 한 번 천마의 씨앗을 이겨낸 적이 있는 혜공이기에 청천의 자아가 잡아먹히지 않고, 외려 천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혜공 자신이 지닌 소림의 무학과 모산파의 술법, 그리고 천하제일의 핏줄을 이은 청천의 육신이 합쳐진다면.
분명 나머지 천마들을 어렵지 않게 쓰러뜨리고 그 씨앗들을 오롯이 흡수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결국.
청천은 최후의 천마가 될 터였다.
허나 그 순간부터 그 고금제일의 힘은 더 이상 정복이나 살생이 아니라 중생들의 구원과 자비를 위해 쓰여질 것이다.
말인즉슨.
‘천마의 후예’를 ‘부처’로 만든다.
석가께서 뭇 제자들을 이끌었듯, 청천으로 하여금 불성을 깨닫게 하고 천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임을.
그날의 혜공은 깨달았던 것이다.
이후.
화산을 떠나 숭산으로 되돌아온 혜공은 다시금 암자에 틀어박혔다. 벽을 마주한 채 내면의 수행에 몰두했다.
비록 그 겉모습은 청천을 찾아내기 이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허나.
우우웅.
기실 그때의 혜공은.
벽이 아닌 천마를 마주하고 있었다.
앞서 십 년의 수행을 통해 가까스로 굴복시킨 뒤 의식의 한 구석에 몰아놓았던 천마의 씨앗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그리고.
고금제일의 마두를 상대로, 자신이 깨우친 ‘부처님의 뜻’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었다.
호시탐탐 이를 드러내며 혜공을 물어뜯으려 드는 천마를 향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거듭해서 ‘감화’를 시도했다.
그렇게.
또다시 유수처럼 흐르는 세월 속에서 혜공의 몸은 고목처럼 굽고 메말라버렸다.
허나 마음은 거울처럼 맑았다.
그리고 어느 날, 마침내 혜공은.
천마의 씨앗과 자신의 사이에 어떠한 ‘의견의 어긋남’도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십수 년의 설법으로 말미암아.
끝끝내 천마의 씨앗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천마의 씨앗은.
혜공의 일부가 되었다.
즉, 마침내 늙은 몸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부처의 탄생을 위한 밑거름이 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혜공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천마와 검치의 핏줄을 이은 청천의 재능이 ‘지나치게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이제 갓 검을 쥐었을 뿐인 아이가 절대지경에 이르기까지는, 아무리 못해도 이십 년가량의 세월이 걸리리라 생각했다. 허나.
청천은.
혜공의 예상을 뛰어넘어 고작해야 약관을 조금 넘긴 나이에 스스로의 힘으로 등천의 문을 열고 말았으며.
콰아아아아아앙.
“크으윽, 으아아악―!”
심지어는.
마침내 눈을 뜬 천마의 씨앗이 의식에 뿌리를 내리려는 찰나, 하늘에 닿은 재능으로 말미암아 그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허나 그러한 저항은.
외려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서걱, 파아아앗.
“커, 커억―!”
“사, 사형… 왜?”
마성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청천의 육신은 갈피를 잃은 광기에 물들어버렸고.
그러한 청천의 폭주를 막아내려던 화산파의 제자들 몇이 청천의 검에 허무하게 목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스승 매화검선 소청과의 혈투 끝에, 청천 또한 목숨을 잃었다. 이른바 화산혈사(花山血事)의 전말이었다.
그렇게.
무당과 함께 도가검문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던 화산은 한순간에 핵심 제자들을 잃어버렸고.
추후 정도맹 세력 내에서도.
존재감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혜공이 천마의 씨앗과 합일을 이룬 뒤 다시금 화산으로 찾아갔을 때는, 이미 그러한 일이 모두 지나가 버린 이후였다.
“…흘흘, 늦어버렸구먼.”
허나 혜공은 좌절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천마의 씨앗을 지닌 청천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목을 내놓았을 리 없으며.
설령 그랬다고 한다면 화산 일대는 마기의 폭발로 인해 이미 인외마경(人外魔境)이 되어있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즉, 청천은 살아있음에 틀림없다.
이후 혜공은 화산혈사의 뒷사정을 파헤쳤다. 그리고 예상대로 청천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화검선 소청은.
자신의 손으로 키워낸 하나뿐인 제자의 목을 차마 거두지 못했고 폐인이 된 제자를 남몰래 화산 바깥으로 빼돌렸던 것이다.
허나 그 말인즉슨 청천은.
말 그대로 ‘살아있을 뿐’이었다.
단전과 근맥이 잘린 채 하오문에 몸을 위탁한 사내의 육신은 이미 혜공보다도 더욱 처참한 수준이었으며.
더는 어떠한 가능성도.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허나 사내의 눈빛은 꺼지지 않았으며, 외려 날이 갈수록 모종의 각오로 빛을 내었다.
그리고 이내 혜공은.
그가 과거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천마의 부활을 막기 위해 싸워나갈 결심을 굳혔음을 깨달았다.
“…흘흘.”
그렇기에 혜공 또한.
청천의 주시를 멈추지 않았다.
설령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한들 자력으로 절대지경을 이루고 천마에 저항한 그 고금제일의 재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가는 길이 조금 굽어질 수는 있을지언정, 부처님의 뜻이 정녕 사내에게로 닿아있다면 결코 이대로 무너질 리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삼 년이 지나지 않아.
마침내 혜공은 ‘기적’을 목도했다.
우우우웅.
어느 날, 청천은.
단전조차 없이 내력을 일으켰다.
“……!”
선천의 깨달음을 통해.
후천의 내력을 이끌어 낸다.
허나 그것은 혜공으로서도 간신히 원리만을 짐작할 뿐, 감히 따라 하는 것을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천외천의 기예였다.
심지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후 내력으로 말미암아 청천의 육신은 하루가 다르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수련과 심, 기, 체의 조화를 통해 끊어진 근맥마저 도로 이어붙여 놓았다.
후욱, 후우욱.
그리고 마침내.
다시금 검을 익히기 시작했다.
허나 그 검은 화산의 매화검이 아닌 전혀 별개의 검공이었으며, 혜공에게 있어서는 몹시 익숙한 검이기도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검치의 비전, 청강유엽공이었다.
물론, 어떠한 연유로 청천이 그와 같은 검을 알고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의심할 이유조차 없었다.
천마의 씨앗이 눈을 뜬 순간, ‘화산에 거둬지기 이전’의 기억 또한 청천의 안에서 함께 눈을 떴고.
그 까마득한 기억 속에서.
청천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강한 무인인 ‘아비의 검’을 되짚으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불과 몇 개월만에.
청천은 청강유엽검식을 완성했다.
단숨에 창공비검을 넘어 말년의 검치 선우명이 다다랐던 역천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으며.
우우웅.
심지어는 한발 더 나아가.
‘무언가’를 성취해낸 듯했다.
물론, 이미 한 번 절대지경을 이루었던 몸이기에 그와 같은 성취가 이상할 것은 없었다.
후우욱.
“…크윽!”
허나 그럼에도.
청천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스승 매화검선에 의해 단전을 잃음으로써 그에게 심어진 천마의 씨앗은 기세를 잃고 다시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허나.
엄밀히 말해 그것은.
혜공 자신처럼 천마를 이겨내거나 하나가 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다시 잠들게 만든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청천이 등천의 영역을 일으키는 순간마다 천마는 다시금 눈을 떴고 시커먼 불꽃을 피우며 발목을 잡아끌었다.
말인즉슨 청천은 결국.
능히 천하제일을 다툴 검을 손에 넣고도 제힘을 온전히 다룰 수 없는 처지에 묶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몸으로는.
다른 천마를 쉬이 이길 수 없는 것은 물론, 어떻게든 쓰러뜨린다 한들 스스로가 천마에 잠식당해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
“…….”
그리고 그 시점에서.
혜공은 청천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뜻을 밝힐지, 아니면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 할지에 대해 고심했다.
허나 이내 후자를 택했다.
지금의 청천이 그리 순순히 자신의 뜻을 받아들여 줄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며.
또한 무엇보다도.
스스로 내력을 되찾은 것처럼, 천하제일의 재능을 지닌 사내는 분명 또다시 어떻게든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재능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온전히 피어나는 것을 기다리는 일이야말로, 부처님의 뜻에 보다 부합하는 일일 터였다.
이후 혜공은.
소림의 암자로 돌아왔다.
어찌 되었건 청천은 절대지경의 힘을 회복했으므로, 혜공으로서도 계속해서 존재감을 숨긴 채 그를 주시하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거리를 둔 채, 다양한 방법과 인선을 동원하여 신중히 그의 동선을 추적했다.
이후 청천은.
도호를 버리고 ‘약장수 이진천’이 되었으며 하오문 수호대주의 신분으로 강호를 주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본격적인 ‘천마’들의 암약으로 서서히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 무림 곳곳에 개입하며 적지 않은 목숨들을 구해내었다.
허나 그와 동시에.
사내는 마치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듯했다. 그리고 혜공은 사내가 떠올린 ‘천마를 극복할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짐작했다.
“…흘흘, 과연 그런 겐가?”
이후 약장수 이진천은.
혈교의 입김이 닿은 녹림의 산채 하나를 토벌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해낸 제갈가의 여식을 제자로 거둬들였다.
운남 지방의 어느 이름 없는 시골마을에 정착한 채 무관을 세웠으며.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혈교의 모략에 화를 입은 사파제일가의 장자 또한 거둬들였다.
허나 이후로도.
사내는 방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친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선우세가의 인근 서산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그곳에서 사내는.
마치 우연처럼 단전을 잃고 절벽에서 추락하던 선우세가의 소가주, 선우벽을 주웠다.
그리고.
당혹스러울 만큼 검치 선우명의 얼굴을 빼다 박은 선우벽의 모습에서 이진천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이제 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이내 검치의 핏줄은.
검치의 핏줄을 거둬들였다.
“나는 너의 기연이다.”
* * *
“시주의 스승은 참으로 위대한 무인이었소. 여러 가지 고난에 저물어버렸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능히 천마에 버금가는 존재였지.”
“…….”
기나긴 이야기가 일단락되었다.
허나 이벽은 침묵을 깨지 않았다.
형언하기 어려운 마음들이 스치는 가운데, 서서히 혜공이 말하는 ‘어려운 부탁’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헌데 말이오. 시주의 스승께서는… 어째서 시주와 시주의 사형제들을 제자로 거둬들였는지, 시주는 그 뜻을 헤아릴 수 있겠소?”
다시 혜공이 말했다.
이진천은 약장수로 천하를 주유하는 한편,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제자로 삼을 재목’이었다.
허나.
자신이 익힌 기예를 물려받을 수 있는 조건에 부합하는 재목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였다.
“결코 범상치 않은 재능을 지녔으되, 동시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단전을 잃어버린’ 망가진 재목이어야만 할 이유가 있었겠지. 흘흘.”
사내, 이진천은.
단전을 잃은 이후, ‘단전 없이 내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기예를 스스로 만들어내었다.
외려 그렇기에.
내력의 양에 얽매이지 않는 전무후무한 힘을 손에 넣게 되었으며, 제자들 또한 그와 같은 조건을 갖춰야 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기예를 ‘타인에게 전수할 수 있다’는 것을 혜공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은.
단전이 있고 없고의 문제 따위가 아니라 천하에 오직 단 한 명, 천마와 검치의 핏줄을 이은 사내 이진천에게만 허락된 천외천의 기예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낙검문의 세 제자는 ‘어떻게든’ 내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 년 전 소림을 찾아온 이벽을 만난 순간, 혜공은 마침내 자초지종을 이해했다.
“이건 늙은이의 억측이오만.”
다시 혜공이 웃었다.
“아마도 때가 되면, 시주의 스승께서는 자신의 몸을 버리고… 시주의 몸 안에서 ‘시주를 위한 밑거름’이 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소.”
“…….”
“자신의 한계에 봉착한 순간, 이 늙은이와 정확히 ‘똑같은 해결책’을 생각해냈던 거요.”
우우웅.
그리고 그 순간.
번쩍.
혜공의 등 뒤로 찬란한 서광이 일었다. 흡사 또 하나의 태양이 떠오른 것 같은 빛무리 앞에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허나 물론.
눈을 감지는 않았다.
우우우웅.
그리고 이내 이벽은.
혜공의 등 뒤에 자리한 네 개의 관 위로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예의 ‘황금빛 불상’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물론.
노승이 이뤄낸 절대지경이었다.
“어떤 것 같소, 시주? ‘부처님의 뜻’이란… 참으로 오묘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흘흘.”
서광에 휩싸인 혜공이.
부처와 같은 미소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