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91)
399화. 해후와 정리 (2)
우우우우웅.
“이거나 처먹고… 좀 뒈져라―!!”
타아아앙, 후우우우우욱.
패왕의 힘을 가득 실은 채 하얗게 물든 무쇠의 창이 혁대웅의 손에서 내던져졌다.
퍼어어어어어억, 콰아아아아앙.
굉음과 충격파가 번졌다.
혁대웅의 투창은 다시금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던 혈마의 몸통을 그대로 관통했다.
부르르르.
혈마의 신형이 경련했다.
영역의 거대화 또한 멈추었다.
“…큭!”
허나 혁대웅은 이를 악물었다.
상대는 이미 죽은 시신이며, 머리가 아닌 몸을 꿰뚫은 것 정도로는 결코 치명상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더 이상.
손에는 창이 없다.
타앙, 후우욱.
그대로 혁대웅은 허공을 박찼다.
혈마가 균형을 되찾기 전에 서둘러 거리를 좁힐 심산이었다. 허나 그 순간, 혈마와 눈이 마주쳤다.
사아아아아아아.
그리고 혈마가 ‘울부짖었다’.
“……?!”
혁대웅의 표정이 흔들렸다.
누더기가 된 뱀의 얼굴은 마치 고통에 한껏 일그러진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허나 말할 것도 없이.
시신이 고통을 느낄 리 없는 것은 물론, 하물며 호흡이 멈춘 몸이 울부짖을 수 있을 리 없다.
‘되살아…났어?’
그 순간, ‘있을 수 없는 일’을 목도한 혁대웅의 움직임에 찰나의 당혹감이 섞였다.
휘릭.
혈마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타아아아아앙.
다음 순간, 망설임 없이 돌아선 혈마가 허공을 박찼다. 그리고 순식간에 저만치로 멀어졌다.
“……!”
다시 혁대웅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자신은 등뒤의 이벽을 지키고 있었고, 혈마는 분명 그런 이벽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정말로 놈이 되살아난 건지 어떤 건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달아나는 놈의 등 뒤를 쫓아야 할 지 판단이 빠르게 서지 않았다.
‘…아니, 잠깐.’
허나 그 순간.
놈과 처음으로 맞서 싸웠던 당가에서의 일전이 혁대웅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당시의 혈마는.
상체와 하체가 잘려 나가는 중상을 입고도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을 ‘흡수’하여 몸을 재생시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놈이 사라진 방향은… 아군과 적 의혈맹의 무인들 사이로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는 방향이었다.
“……!”
타아아앙.
혁대웅은 다시 경공을 일으켰다.
어쩌면 지금 놈을 놓친다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꼬여버릴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스쳤다.
허나.
이미 벌어져 버린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는 없었으며, 외려 매 순간마다 더더욱 멀어져갔다.
타아아아앙.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투창에 몸이 꿰뚫렸을지언정, 그 정체는 천하제일의 경공으로 손꼽히던 취풍신개이기 때문이었다.
“크으, 등신같으니……!”
타아아아아앙.
삽시간에 멀어져 버린 혈마의 등을 바라보며 혁대웅은 오로지 힘에만 치우쳐 경신공의 수련을 등한시했던 스스로를 원망했다.
타앙, 쐐애애액.
“걱정 마세요! 제가 쫒을 게요! 소협께선 뒤를 부탁드려요!”
허나 그때였다.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아앗―!”
그리고 한 줄기 빛살과 같은 신형이 혈마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쏘아졌다.
그 정체는 물론.
조금 전 비무대 위로 난입하여 스스로를 소림의 제자라 소개하였던 정체불명의 여인이었다.
후우우우욱.
그리고 그 속도는.
결코 혈마에 못지않았다.
스윽.
“…….”
이내 혁대웅은 추격을 멈추었다.
정확히는 더 이상 자신이 그 뒤를 쫓아본들 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예의 여인은 조금 전까지 무려 권왕의 시신을 홀로 도맡아 상대하고 있었다.
허나 지금.
권왕의 바람은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인즉슨, 그녀는 권왕의 시신을 붙들어두는 것을 넘어 이미 ‘처리했다’는 뜻이다.
“…굉장하네, 진짜.”
혁대웅은 작게 감탄했다.
동시에 약간의 무력감을 느꼈다.
아니, 그러나 쓸데없는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아니었다. 그 즉시 발 아래를 향했다.
비무대 저만치에서.
죽적을 들고 있는 월향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쨌건 저 여자를 처리한다면 상황은 일단락될 것―
카아아아아아아아앙.
“……?!”
허나 다시 그때였다.
기예와 기예가 부딪히는 거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휙, 혁대웅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내 만개한 매화 속에서 정면으로 검을 맞대고 있는 ‘사저와 스승의 모습’을 발견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태애앵.
바로 다음 순간.
제갈소미의 매화검이 튕겨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빈손’이 된 사저를 향해 스승의 검이 파고들었다.
“…아, 안 돼―!!”
혁대웅이 기함했다.
반사적으로 극척을 쏘아 보내려 했다. 허나 지금의 자신에게는 창이 없음을 또다시 깨달을 뿐이었다.
찰나의 순간, 혁대웅은 섣불리 창을 던져버린 것을 후회했고 발이 느린 자신을 다시금 원망했다.
아니, 그러나.
후회 따윈 아무 의미도 없다.
우우우우우웅.
또한 망설일 찰나조차 없다.
제갈소미의 위기를 목도한 순간, 혁대웅의 의식이 한계까지 고양되며 시간이 느려졌다.
스르륵.
그리고 등 뒤에 맺힌 물레바퀴가 혁대웅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다시금 무륜의 기예가 펼쳐진 것이다.
덥석.
그 즉시 혁대웅은 ‘창’을 움켜쥐었다. 당연하다는 듯 손아귀에 맺힌 무형의 창을 내던지려 했다.
멈칫.
아니, 그러나.
다시 움직임이 멈추었다.
사저와 스승은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붙어있었다. 고로 무턱대고 패왕의 힘을 쏟아부었다간 외려 사저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말인즉슨.
제갈소미에게는 충격이 가지 않도록 오로지 스승의 시신만을 쳐내야만 하는 것이다.
빠지직, 빠직.
혁대웅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패도와 힘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보다 날카로우며, 섬세해야만 한다.
빠드드드득.
혁대웅은 이를 악물었다.
창을 압축하고, 압축했다.
후우우우우욱.
그리고 마침내 형체가 없는 혁대웅의 창은 더는 창이라 부르기도 어려울 만큼 작아졌다.
우우우우웅.
“윽, 크윽―!”
허나 크기가 작아질수록.
외려 무게는 더해져 갔다.
그것은 마치 바늘 한 개의 크기로 줄어든 제천대성의 여의봉과 같았다.
“으, 크아아아아압―!!”
어쨌거나.
혁대웅은 온 힘을 다해 던졌다.
후우우우우웅.
그리고 고작해야.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창이 허공을 갈랐다. 공간을 점하듯 거리를 좁힌 뒤, 흩날리는 매화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 * *
“소… 미야?”
이진천이 말했다.
그 순간, 제갈소미는 자신이 또다시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던 비도가 거짓말처럼 멈추고 말았다.
탱그랑.
그 즉시 땅에 떨어졌다.
“…아, 개같이 못 해먹겠네, 진짜.”
이내 제갈소미는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어느새 지척까지 파고든 이진천의 검을 감지했다.
후우욱.
어쨌거나 피하기에는 늦었다.
어설프게 몸을 빼려다 공연히 전투불능의 중상을 입느니 처음의 계획대로 팔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차라리 현명한 선택일 터였다.
“……?”
허나.
좀처럼 충격은 파고들지 않았다. 그제야 제갈소미의 시선이 우측의 검을 향했다.
후우욱.
이진천의 검은 분명 자신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허나 그 검형은 기이할 만큼 헝클어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미 쏘아져버린 기예를 ‘어떻게든 거둬들이기 위해’ 애를 쓰는 듯한 모양이었다.
‘…무슨?’
후욱.
다시 그때였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무언가’가 주변을 만개한 매화를 뚫고서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푸욱.
그리고 정확히.
이진천의 검을 두드렸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물론, 그것은.
극한까지 압축된 혁대웅의 무형창이었다. 그 순간, 새하얀 폭발이 일었다. 이진천의 검에 서린 창공비검의 나뭇잎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화아악.
거친 폭풍 속에 매화들이 흩날렸고, 이내 자욱한 꽃안개 속에 제갈소미와 이진천의 신형이 삼켜졌다.
후우우우웅.
“사저어―!!”
그리고 마침내.
무형창을 쏘아 보낸 혁대웅의 신형이 지척까지 내려앉았다. 그대로 망설임 없이 안개 속을 향해 뛰어들려 했다.
휘리릭, 터엉.
“…컥?!”
허나 그 순간.
안개 속에서 비도가 날아들었다.
자루가 혁대웅의 몸을 밀쳐냈다.
훅.
“…이 멍청이가 뭘 앞뒤 안 재고 달려들고 있어? 매화검이 우스워? 꽃에 닿으면 너는 안 베이고 멀쩡할 것 같아?”
꽃안개 속에서.
제갈소미가 솟구쳤다.
“괘, 괜찮아, 사저?!”
“뭐, 그럭저럭. 개 털린 거 치고, 이 정도밖에 안 다쳤으면 괜찮다고 봐야지.”
“…아하하, 아하하하.”
혁대웅이 웃음을 흘렸다.
머쓱함과 안도감이 함께 흘렀다.
타앗, 이내 일 보가량 물러선 두 사람이 비무대 위로 나란히 내려앉았다.
“…곰탱이, 너 근데 혈마는? 네 상대는 어쩌고 다짜고짜 여기로 내려온 거야?”
흠칫.
혁대웅의 어깨가 흔들렸다.
“거, 거의 다 처치했어! 사실상 끝낸 거나 다름없는데… 아마 괜찮을 거야! 아하하!”
“…….”
제갈소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피식, 허나 이내 웃음이 스쳤다.
“잘했어. 아니, 덕분에 살았네.”
“…다, 당연하지! 내가 아니면 누가 사저를 구해?! 아하하하!”
타앙.
혁대웅이 제 가슴을 두드렸다.
윽, 허나 그 즉시 표정이 험악하게 찌푸려졌다. 그제야 혹사된 몸의 고통이 느껴진 탓이었다.
“…훗.”
허나 제갈소미는 뭐라 쏘아붙이지 못했다. 어찌 되었건 혁대웅에 의해 두 번씩이나 위기를 넘긴 것이 사실이었다.
아니, 그러나.
위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뭐, 어찌 되었건.”
스윽.
제갈소미가 두 손을 뻗었다.
스르륵. 후우우우웅.
비도가 날아와 왼손의 소매 안쪽으로 회수되었고, 저만치의 매화검 또한 다시 날아들었다.
철컥.
제갈소미가 다시 검을 쥐었다.
“곰탱이. 한심한 소리해서 미안한데… 이렇게 된 김에 좀 도와줄래? 나 혼자선 문주님을 돌려보내 드리지 못할 것 같아.”
“…응, 알았어, 사저. 걱정 마.”
우우웅.
이내 혁대웅 또한 자세를 고쳤다.
‘빈손’으로 전륜패왕창의 기수식을 취했다. 허나 이내 그 손에는 다시 보이지 않는 창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래.”
허나 그때.
안개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흠칫.
두 사람의 표정이 거칠게 흔들렸다. 고작해야 한 마디에 불과했으나,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가를 알아듣지 못할 수는 없었다.
스으으.
안개가 서서히 걷혔다. 그리고 흩날리는 매화 사이에 선 스승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
침음성이 흘렀다.
혁대웅의 무형창과 충돌한 스승의 검은 이미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채 자루만이 남아있었고, 육신 또한 메마른 바위처럼 이곳저곳에 금이 그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즉시.
두 사람은 ‘사실상의 싸움’이 이미 끝났음을 깨달았다. 허나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사라락.
스승의 살아있는 눈빛이.
흩날리는 매화를 향하고 있었다.
“매화란 게… 이런 색이었지.”
다시 스승이 말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은 물론 죽은 이의 그것이 아니었다. 매화향기 속에서 침묵이 흘렀다.
“…문주님?”
이내 혁대웅이 말했다.
스윽.
그러자 마침내 고개가 움직였다.
쩌저적, 쩌적.
사내의 목에 금이 그어지며.
모래 알갱이가 아래로 떨어졌다.
“이야, 소미야. 대웅아.”
허나 그 웃는 얼굴만큼은 두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스승의 미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 뭐냐… 우리 같이 꽃구경 하는 건 처음이지?”
“…….”
다시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말했다. 제갈소미와 혁대웅의 얼굴 위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거야 문주님이 맨날 봄만 되면 집구석에 안 붙어있고 어디로 도망다니니까 그렇잖아요.”
이내 간신히.
제갈소미가 말을 받았다.
“…그래, 다 내 탓이긴 하지.”
“암요. 그래서 내가 가져왔어요.”
스윽, 철컥.
제갈소미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하핫.”
그리고 그 손에 쥐어진 검을 바라보는 이진천의 미소 위로 복잡한 감정이 덧씌워졌다.
오래 전.
매화검 청천은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매화검에 동문 사형제들의 피를 묻히고 말았다.
이후 매화검 청천은.
더는 화산의 제자가 아니게 되었다. 허나 어째서인지 그때의 검이 오랜 시간을 지나 자신의 제자의 손에 들려있었다.
“…소미야, 너. 스승님을―”
이내 간신히 입을 열었다.
“걱정 마요. 태사부님은 화산에 건강히 잘 계시니까. 등선하기 전까지 앞으로 이백 년 정도 더 사실 거예요.”
“…그래, 그렇구나.”
쩌저저적, 쩌적.
그 순간 이진천의 오른쪽 팔꿈치에 금이 그어졌다. 후두둑, 검 자루를 움켜쥔 손이 땅에 떨어졌다.
퍼어억, 파스스스.
그리고 땅에 부딪힌 순간.
한 줌 모래가 되어 부서졌다.
“…….”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과거, 이진천이 최후를 맞이했던 그 밤, 제갈소미는 힘이 없었기에 함께하지 못했고, 혁대웅은 기절하여 의식을 잃어버린 채였다.
오직 막내 제자 이벽만이.
스승의 최후를 지키며 유언을 받아들었다. 그러한 사실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두 사람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응어리로 남아있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믿을 수 없게도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을 두 사람은 깨달았다.
고로 두 사람은.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잠자코 스승의 말을 기다렸다.
“…뻔하다, 뻔해. 쯧.”
다음 순간, 이진천이 혀를 찼다.
“너희 둘, 아직 정혼도 안 했지?”
“…뭐, 뭐라구요?”
제갈소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덜덜덜덜덜.
그 순간, 땅이 흔들렸다.
아니, 혁대웅의 몸이 진동했다.
“으아아악! 문주님! 무슨 말씀이에요!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한 말 하지 마세요! 저는 그런―”
“…스승이 유언 남기는데 거기에다 대고 말을 하지 말라니 너무한 거 아니냐?”
“…어.”
혁대웅의 말문이 막혔다.
“대웅아. 언제까지 그렇게 이름값 덩칫값 못하고 소웅(小熊)처럼 굴고 있을래? 응?”
“…….”
“하여튼 그냥 좀 내려놓고 평범하게 살라니까… 두 녀석 다 말 안 듣고 아득바득 징그럽게 강해진 거 봐라. 막내가 별말 안 하더냐?”
“…내 맘이에요. 꼬와요? 그러니까 누가 오밤중에 멋대로 튀어 나가서 뒤져버리래요? 그래놓고 우리끼리 알아서 잘 살라고? 그딴 걸 유언이라고 남겨요?”
제갈소미가 쏘아붙였다.
“…사, 사저. 뒤져버렸다니. 아무리 그래도 문주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아, 시끄러, 곰탱아. 뒤지기 싫으면 하늘 같은 사저께서 말씀하시는데 끼어들지 마.”
“…….”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우리 셋 중에 아직도 꼬맹이가 제일 강하거든요?”
“…저 말 정말이냐, 대웅아?”
“네? 네… 아마 그럴 거예요.”
“…믿을 녀석 하나 없네.”
핫, 이내 이진천의 입가에 쓴웃음이 스쳤다.
후우우.
다시 옅은 바람이 불었다.
파스스스.
그리고 바람결을 따라 이진천의 몸이 모래처럼 부스러졌다. 회광반조를 지나 혹사된 몸이 티끌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헌데 그 잘난 막내는… 지금 어디 계시냐? 아니, 애당초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건…….”
“…….”
저벅, 타앗.
그 순간 제갈소미가 땅을 박찼다.
한달음에 이진천의 지척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풍화하기 시작하는 스승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쓸데없는 걱정 좀 그만 해요. 평생을 걱정만 하다 죽은 주제에 그 짓을 또 할 셈이에요?”
“…….”
“태사부님도 이벽도, 그리고 우리들도… 어련히 알아서 잘 살 거고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냥 쉬어요, 좀.”
투욱.
제갈소미의 이마가.
이진천의 가슴팍에 닿았다.
“…그래. 장하다, 우리 대제자.”
다시 이진천이 웃었다.
그리고 이내 눈을 감았다. 바스러진 낙엽처럼 서서히 바람 속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투욱, 투욱, 투욱.
이마가 거듭 가슴을 두드렸다.
“인간아, 인간아, 인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