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40)
40화. 파진성
이벽과 언미희, 공손수가 객잔 밖의 거리로 나섰을 때 그곳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끄으, 으으……!”
“아이고오…….”
부서진 잔해들과 쓰러져 신음하는 장한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 소란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한 명의 인영이 서 있었다.
벌컥벌컥!
봉두난발의 추레한 사내가 신나게 술병을 들이킨다. 과하게 달아오른 얼굴은 이미 상당히 취기가 오른 듯하다.
“킥, 킥킥, 케헤헤!”
문득 사내가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광경이 퍽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케헤헤헤! 그러니까… 씨바! 내가 술 좀 먹겠다는데 왜, 왜 지랄이냐고? 히끅, 내가 나중에 갚겠다잖아! 앙?! 니들이 감히 날 무시해?! 어?! 씨이발!! 씨발!!”
퍼억, 퍽!
광인 같은 웃음을 흘리다 말고 사내는 급작스레 성을 내기 시작했다.
“…그만하지.”
상황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자칫 쓰러진 양민들이 더 해를 입을 수도 있다. 이벽이 한 발 나서며 말을 꺼냈다.
그 순간 훅, 사내의 고개가 이벽을 향했다.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비치는 얼굴은 아직 소년의 티가 남아있다.
언뜻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있는 것도 같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넌 또 뭐야, 이 새끼야!!!”
타악!
다음 순간, 사내가 달려들었다.
땅을 박차고 이벽을 향해 몸을 날린다. 취객의 움직임치고는 상당히 날렵했다.
“아, 제가 처리할게요.”
그때 공손수가 나섰다.
탁,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 손가락 사이에서 철전 하나가 취객에게로 날아든다.
퍼억, 취객의 어깨에 박혀 들었다.
“컥!”
취객이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번개처럼 다시 몸을 튕기며 날아든다.
“이… 씨발! 무공 좀 한다 이거냐?! 이 가소로운 새끼들, 니들 내가 누군지 알아?!”
챙!
사내가 칼을 뽑아 들었다.
그대로 공손수를 향해 달려든다. 뽑아 든 사내의 검은 특이하게도 왼손에 쥐어져 있었다.
“…파진성?!”
그제서야 사내의 정체를 눈치챈 언미희가 외쳤다.
해남검파의 후기지수 파진성.
앞서 해남검파 측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사패련의 비무대에 올랐으나 맹우강에게 패배한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
“쯧, 한심하기는.”
후욱, 공손수의 몸이 그림자처럼 쏘아졌다.
찰나의 순간, 이벽은 그녀의 양쪽 소매에서 비수가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한 쌍의 비수가 교차하며 파진성의 일검을 막아섰다.
채앵!
“…어?!”
“아무래도 소협에겐 작은 교훈이 필요하겠네요. 술 처먹고 함부로 칼 뽑으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죠.”
훅, 뻐억!
공격이 막힐 거라곤 생각지 못한 듯, 파진성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 틈을 타 공손수의 무릎이 위로 뻗어졌다.
정확히 파진성의 가랑이 사이에 작렬했다.
“…….”
일순 이벽은 시선을 외면했다.
“억.”
파진성이 신음했다.
탱그랑, 칼이 땅에 떨어졌다.
“큭, 악, 억, 아악…….”
두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몇 걸음 정도 비척거리던 파진성의 신형이 이내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렸다.
“우, 우웩! 우웨에엑!”
두 손으로 땅을 짚고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전투 따윈 불가능하다. 그러나.
뻐억!
그 뒤통수 위로 공손수의 자비 없는 일격이 틀어박혔다.
아니, 비수의 날이 아닌 손잡이 끝으로 내려찍었다는 점에서 일말의 자비 정도는 남아있는 듯했다.
“꽥.”
철푸덕, 파진성이 자신의 토사물 위로 얼굴을 처박았다. 다행히 의식을 잃은 듯, 잠잠해졌다.
* * *
일행은 객잔의 방으로 올라왔다.
방안에는 이벽, 언미희, 공손수와 더불어 의식을 잃은 파진성도 함께였다.
행패를 부린 파진성을 일행이 데려가는 것에 대해서 거리의 어느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다.
이 거리에서 사패련의 이름은 절대적이다.
파진성이 끼친 피해에 대해 공손수가 선뜻 배상금을 물어주자 오히려 인근의 상인들은 반기는 기색이었다.
툭, 투둑.
공손수는 세상 모르고 잠에 빠진 파진성의 내력을 점혈했다. 밧줄을 빌려 온몸을 꽁꽁 묶어두었다.
벽에 기대어 앉혀두었다. 그리고.
짜악!
파진성의 뺨을 후려쳤다.
으으, 옅은 신음소리와 함께 마침내 파진성이 눈을 떴다. 몽롱한 눈으로 공손수를 바라본다.
“누, 누구……?”
“파 소협, 절 모르겠나요?”
“누, 누구야…? 추, 춘앵이? 아님 도향이? 그럼 여기는 해남인가? 나는 대체…….”
짜악!
공손수의 손이 또다시 작렬했다.
흐릿하던 파진성이 눈동자가 또르륵 움직인다. 서서히 빛깔이 선명해졌다.
“네, 네 이년, 어딜 감히—!”
“반가워요, 파 소협. 암영각의 공손수예요. 왜 모른 척해요? 나더러 어두침침한 계집이라며?”
“어… 어?”
파진성의 멍한 얼굴이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밧줄에 묶여있는 자기 자신을 확인한다.
바둥거려보지만 몸이 무겁다.
내력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뭐,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너 이 새끼들,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어떻게 되기는. 소협께서 술 처먹고 거리에서 난동부리다 나한테 제압당해서 여기 보기 좋게 묶여있는 거지 뭐겠어요?”
“…….”
기억을 되짚어 보는 듯, 파진성의 동공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다시 공손수가 말을 꺼냈다.
“아, 그리고 인사해요. 이쪽은 비룡대주이신 이벽 소협. 사패련에 있을 때 본 적은 있죠?”
“뭐, 뭣?!”
파진성의 몸이 흔들렸다.
부릅뜬 눈으로 황급히 이벽의 위아래를 훑는다.
“그, 그럼 설마 네가 그 녀석이냐?! 비무회에서 맹우강 그 개자식을 쓰러뜨렸다던……?”
“…….”
쿵!
다음 순간, 파진성이 온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력을 점혈 당하고 밧줄에 묶인 몸은 바닥을 꿈틀거릴 뿐이다.
“크아아악! 이 새끼! 당장 이거 풀지 못해?! 어디서 잘난 척이냐! 네까짓 게 감히 날 내려다봐?! 맹우강 그 새끼 내가 다 힘 빼놓은 거 운 좋게 잡아놓고는—!”
덥썩, 짝!
공손수가 파진성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또다시 뺨에 타격이 가해졌다.
“크아아악, 씨발! 니들 감히!”
짜악!
“모, 모조리 도륙을—!!”
짜악!
“씨, 씹—”
짜악! 짜악!
짜악! 짜악!
짜악! 짜악!
파진성이 입을 열려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공손수의 기계적인 손이 작렬했다.
파진성의 까무잡잡한 두 뺨에 붉은 손바닥 자국이 깊이 아로새겨진다.
추욱, 파진성이 늘어졌다.
“고, 고만… 매우 아파…….”
“저기요, 파 소협?”
공손수가 나긋한 목소리를 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해남검파의 대협들은 진작에 해남으로 떠났을 텐데 왜 혼자 여기 남아서 술이나 푸고 있었어요?”
움찔, 파진성의 어깨가 흔들렸다.
“그, 그게…….”
“하긴, 그럴 법도 하네요. 해남의 기대주랍시고 데리고 왔더니만 경쟁상대라 생각했던 흑룡방 맹우강한테 일방적으로 뚜들겨 맞고 전 사파인들 앞에서 벼락 맞은 개구리 꼴을 보였으니. 앞이 깜깜해서 집에 어떻게 돌아가겠어요?”
“다, 닥쳐!! 네가 뭘 알어!!!”
“그야 대강은 알지요. 해남검파는 안 그래도 내부 경쟁이 치열한 곳인데 그런 추태를 보이고서야 어디 자리가 남아있겠어요? 삽시간에 찬밥 신세가 되어버렸겠지.”
“…그, 그만. 제발 그만!!”
“그러니 차마 해남으로 가질 못하고 혼자 일행과 떨어져서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겠지. 그러다 돈이 떨어지니 적반하장으로 양민들한테 행패나 부리고.”
“커흑! 끄아아아악!!”
열심히 도리질을 치던 파진성이 기함을 토하며 축 늘어졌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보세요, 파 소협.”
그러나 공손수는 아직 끝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안됐지만, 공과 사는 확실히 해야죠, 우리. 그쪽은 시내에서 난동을 부렸고, 우린 그걸 제압한 입장이거든요. 그래도 인연을 생각해 한 가지 선택권을 드릴게요.”
“…어, 어떤?”
“이후의 처분 말인데요. 이대로 사패련으로 끌려갈래요? 아님 관아로 끌려갈래요?”
“…….”
이벽은 생각했다.
공손수는… 무섭다.
“케, 케케, 케케케!”
그리고 파진성이 웃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음의 축이 부러져버린 듯한 웃음소리였다.
“케케! 케케케! 케헤헤헤헤! 케케헤헤헤헤헤헤, 케흑! 케헤헤, 케헤, 커흐흑! 어흑…….”
* * *
실성한 듯한 파진성을 방 안에 방치한 채 세 사람은 다시 객잔의 식당으로 내려왔다.
못다 한 식사를 마저 잇는다.
“데려가죠. 오라버니.”
“…….”
“좀 못생기고 추하고 짜증 나긴 하지만, 그래도 쓸모가 있을 거예요. 어쨌건 사파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 중 한 명이고.”
공손수가 말했다.
“사실 맹우강이 이상하게 세진 거지 저 녀석이 약한 건 아니거든요. 물론 우리 오라버니께선 그런 맹우강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슥, 공손수의 팔이 슬그머니 뻗어졌다. 그러나 그녀의 기습에 슬슬 익숙해지고 있던 이벽은 냉큼 몸을 빼내었다.
칫, 가볍게 혀를 차는 공손수.
“…믿을 수 있을까요?”
그때 언미희가 말했다.
“괜히 일행으로 삼았다가 나중에 가서 갑자기 뒤통수를 치거나… 우릴 내팽개치고 팔아먹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어쨌거나 파진성은 해남검파의 사람이었다. 말마따나 함부로 신뢰를 줄 만한 입장은 아니다.
피식, 공손수가 웃었다.
“뭐, 그렇긴 하지만요. 그래도 머리가 장식품이 아니라면 스스로 깨닫겠죠. 저 녀석도 막다른 길에 처했으니 지금 당장은 우리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걸요.”
“…….”
“물론, 나중 가면 얘기가 달라질 수야 있겠지만… 지금 우리는 지나가는 강아지 손이라도 빌리고픈 상황이잖아요?”
공손수가 해맑게 웃었다.
“또 반대로 생각하면… 어쨌건 자파의 제자를 품은 셈이니 해남검파 쪽에서도 다소나마 우호적이 될 가능성도 있고… 아무쪼록 제가 틈틈이 길들여 놓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언니.”
여린 인상에서 나오는 따뜻한 미소는 왠지 모르게 으스스하다. 언미희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그 사이 조금이나마 마음을 정리한 듯, 파진성은 잠자코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케케케케!”
일행이 들어서자 웃기 시작했다.
“케케케케케케케!”
“…….”
말을 걸어주길 원하는 듯하다.
이벽이 마지못해 시선을 건네자, 파진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봐, 비룡대주.”
“…왜 부르나?”
“보아하니 나보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말야. 네놈이 무공이야 좀 한다고 해도 이 험난한 강호에 대해 뭘 얼마나 알아? 앙?”
“…….”
“그래서 말야. 뭐하면 이 해남의 자랑 파진성이 네놈과 함께해줄 수도 있는데 말야. 어때? 뭐, 원한다면 대주 자리를 대신 맡아줄—”
텁.
그때 파진성의 입이 틀어박혔다. 파진성의 몫으로 가지고 온 만두를 공손수가 쑤셔 박은 것이다.
“파 소협, 헛소리 말고 밥이나 처먹어요. 련이든 관아든 감옥에 투옥되고 나면 한동안 개밥만 먹게 될 텐데.”
텁, 텁, 텁.
“어읍, 읍, 읍!”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죠. 해줄 수 있긴 뭘 해줘요? 어차피 망한 인생, 우리한테 달라붙어서 어떻게 명성이라도 쌓아 재기를 노리는 거죠?”
텁, 텁, 텁.
“읍! 어읍읍! 읍!”
“응, 싫어~ 관아에 넘길 거야~”
만두가 계속 틀어박혔다.
채 씹어서 삼키기도 전에 또 한 개가 틀어박혔다. 파진성의 뺨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읍, 켁! 케헥!”
“그, 그만해요! 너무하잖아.”
그때, 보다 못한 언미희가 다가서자 만두를 쑤셔 넣던 공손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섰다.
“콜록, 켁! 커헉!”
“괜찮아요, 소협? 물 마셔요.”
시뻘게진 안색으로 기침하며 만두를 토해내는 파진성. 언미희가 파진성의 입에 물병을 대고 흘려 넣었다.
벌컥벌컥벌컥!
“크, 크아아아악!!!!”
한참을 물을 받아먹은 파진성이 느닷없이 괴성을 내질렀다. 숨을 몰아쉬며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언미희를 향했다.
“고… 고맙습니다, 소저.”
“처, 천만에요…….”
“커흑.”
“…….”
“커흑, 어흐흑…….”
이내 파진성의 까무잡잡한 얼굴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얘들아… 나 좀 껴주라.”
“응? 그게 무슨 소리예요~?”
“부탁이다… 열심히 할게. 내가 맹우강 그 새낀 못 이겼어도 그래도 칼 좀 쓰거든? 같이 가면 안 될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