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59)
61화. 호남 정사비무 (4)
남궁환이 쓰러졌다.
세 번이나 손에서 검을 떨어뜨렸고, 급기야는 검에 베인 것도 아니라 머리를 맞고서 쓰러져버렸다.
비무대 위로 축 늘어졌다.
그리고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와… 와아아아!!”
“으아아아아!!!”
얼마 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이내 환호성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론, 그 환호성은 조금 전 남궁환이 음서희를 쓰러뜨렸을 때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환호는 사파 측의 관중들 사이로 들불처럼 번지며 더 큰 환호를 불러온다.
“이… 이겼다!! 창천옥룡을 박살 냈어!! 이겼다고!!”
“비룡대주!! 비룡대주 이벽!!!”
‘…낯간지럽군.’
이벽은 검을 거두었다.
이름을 불리거나 환호의 대상이 되는 것은 퍽 낯설다. 좌중의 시선을 독차지하는 것 역시 어색하기 짝이 없다.
다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 함성은 그간 부조리함에 의해 억눌려왔던 것의 방증인 것이다.
머쓱함 속에서도 이벽은 마땅히 할 일을 했다는 충만함을 느꼈다.
후욱, 탓.
“이… 있을 수 없다!!”
그때였다.
정파 측에서 인영 하나가 대뜸 비무대 위로 날아들었다. 숭무관주 남궁천수였다.
“네 이 노옴—!! 잘도 감히!!”
다짜고짜 이벽에게 호통을 쳤다.
“감히 이 많은 눈앞에서 삿된 짓거리로 비무를 더럽히다니! 겁도 없이 저질렀다만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남궁천수는 확신했다.
사도제일이건 뭐건, 사도의 애송이 따위가 남궁가의 혈통 중에서도 으뜸가는 기재를 꺾을 수 있을 리 없다.
아니, 만에 하나 놈의 천운과 이쪽의 불행이 겹쳐져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들, 이렇게 압도적인 패배가 있을 수 있을 리 없다.
남궁천수의 분노한 눈이 이벽의 위아래를 빠르게 훑었다. 이벽의 허리춤에 가 닿았다.
타앗!
“그래, 그 검이로구나!! 필시 검에 무슨 수작을 부렸음에 틀림없다!! 네놈의 검을 내놓아라!”
남궁천수가 거리를 좁혔다.
그대로 이벽의 검에 손을 대려는 순간, 탁, 이벽이 그 손을 쳐냈다. 동시에 한 발자국 물러섰다.
애송이가 자신의 움직임을 읽어냈다고? 당황한 남궁천수가 다시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후웅.
투박한 몽둥이가 남궁천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남궁천수는 황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남궁 관주, 이게 무슨 짓이오?”
철면개였다.
“이보시오, 걸개. 놈이 지저분한 술수를 통해 대 남궁세가와 창천옥룡의 명예를 더럽혔거늘 내 어찌 가만히 있는단 말이오?!”
“증거는 있소?”
“그거야 지금부터 저놈을 샅샅이 뒤져보면 될 일—”
콰앙!
“관주께선! 나 철면개가 그리 못 미덥소?! 아니면 우리 개방이 그리도 우습게 보이시오?!”
흠칫.
남궁천수는 그제서야 떠올렸다.
저 가증스런 놈의 작태에 눈이 멀어 이 비무를 중재하는 철면개가 어떤 이인지 잠시 잊어버렸다.
개방주의 직전제자이자 개방의 이름을 대표하는 절정의 고수 중 한 명으로, 그 강직함과 꼿꼿함은 무림에 이름이 높다.
즉, 융통성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힘으로도, 세력으로도 자신이 감히 당해낼 바가 아니다.
“아, 아니, 걸개, 그런 것은 아니오. 나는 단지—”
“그럼 이 작태는 대체 뭐란 말이오—?!”
“실례하오만 걸개, 나 역시 의문이 생기는 것은 남궁 관주와 같은 마음이군.”
그때, 정파 측에서 또 한 명이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정검문주 관일검 양호명이었다.
“나는 일전에 회화에서 비룡대주의 검을 견식한 적이 있소만. 조금 전 펼쳐진 그의 검은 그때와는 전혀 달랐소.”
양호명의 차가운 시선이 이벽을 훑었다.
과거 잠깐이나마 길을 잘못 든 정도의 제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이 어리석었다.
“…초식이 달랐단 말이오?”
“그렇소. 불과 며칠 만에 사용하는 검이 달라진 것도 모자라 갑자기 지나치게 강해졌다면, 충분히 의심할 여지가 있지 않소?”
“…….”
철면개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기야 이들이 이렇게 나서는 것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가 보기에도 남궁환은 이상할 정도로 힘을 쓰지 못했다.
마지막 일 초식을 제외한 이벽의 공격은 그의 눈에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몇 번의 검이 오고 간다고 느낀 순간, 남궁환은 제풀에 지치듯 점점 기세를 잃었으며 급기야는 검을 떨어뜨렸다.
“물론 걸개의 판단을 믿소만, 정식으로 저자의 조사를 요청하겠소. 비무를 마저 치르는 건 그 이후에 해도 늦을 게 없지 않소?”
탁, 탁!
그때, 사파 측에서도 두 명의 인영이 비무대로 올라섰다. 이벽을 보호하듯 앞을 가로막는다.
“하! 기가 차서 웃음도 안 나오는군. 대체 얼마나 생떼를 부려야 만족할 셈인가?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칼을 물고 죽었다!”
“호호, 두 대협께는 참으로 배우는 게 많군요. 정도를 걷는다는 분들이 이렇듯 치졸하기 짝이 없으니 우리 사파가 어딜 가서 대접이나 받을 수 있겠어요?”
적사파의 문주 전사욱과 나살문주 우진희였다.
이전의 비무과정에서 각각 소문주와 대제자가 중상을 입었다.
금강회의 의방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계속해서 무인의 길을 갈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는 상황.
자연히 고운 말이 나갈 리 없다.
“뭣이?! 전사욱!! 네놈이 그리 죽길 원한다면 내 오늘이야말로 칼을 그 주둥이에 물려주겠다!”
쿠웅!
“자중하시오! 지금 비무대를 어지럽히고 있는 게 진정 누구인지 모른단 말이오?!”
철면개가 타구봉을 내리쳤다.
그러나 동시에 난처함을 느꼈다.
비무의 추이는 예상을 아득하게 벗어났고, 그로 인해 양측 고수들이 서로의 부덕함을 탓하고 있다.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사파의 기세가 오른 이 시점에서 비무를 멈추고 시간을 주는 것은 현저하게 부당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날더러 어쩌란 말이오?”
그때, 이벽이 입을 열었다.
“소협, 아, 아니, 비룡대주.”
“편한 대로 부르시오.”
“크흠! 그러니까 대주께서는… 정검문주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오?”
이벽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게서 해명을 원하시오?”
“아니, 해명이라기보단… 크흠!”
“그야 그때에는 제 실력을 내지 않았을 뿐이오. 애초에 강호무림에서 가진 실력을 전부 드러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소?”
“…….”
“또한 검술을 여러 개 익히는 게 이상한 일이라면, 저 남궁가의 제자 역시 검술을 두어 개 익히고 있더군. 뭐, 어느 것도 그닥 위협적이진 않았소만.”
“이익!”
남궁천수가 격하게 반응했다.
“네까짓 놈이 감히 대 남궁가의 검을 입에 담느냐?! 잔말 말고 네놈의 검을 내놓거라!! 네놈이 떳떳하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
이벽은 남궁천수를 바라보았다.
그저 트집을 잡으려는 게 아니다.
그 눈빛과 표정에서는 본인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의 근거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벽으로선 알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소. 스승에게서 하사받은 검을 어찌 적의 손에 함부로 맡기겠소? 하지만 내 검이 문제라면 다른 방법이 있지.”
저벅저벅, 이벽이 발을 옮겼다.
“네 이놈, 어딜 가는—?!”
“어디, 명문정파의 검은 대체 뭐가 그렇게 다르다는 건지 대 남궁가의 검을 좀 빌리도록 하지.”
덥석.
이벽이 비무대 위에 떨어져 있던 검을 주워들었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검이 굴러다닐 리는 없다.
그것은 앞서 남궁환의 손아귀에서 떨어진 검이었다.
* * *
“네, 네놈이 감히 그 검을—!!”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이오? 내 검이 문제라면, 내가 사파 측에서 검을 빌려온들 결국 그 검이 그 검 아니오?”
“…….”
“이참에 옷도 갈아입을까? 남궁이나 점창의 무복 하나 빌릴 수 있겠소? 그럼 나도 삿되지 않고 의로운 정파의 검객이 되나?”
“이, 이 찢어 죽일—!”
“그만!!”
철면개가 단호하게 외쳤다.
웅혼한 내력이 메아리쳤다.
“더 이상의 소란은 용납지 않겠소. 지금부터 다시 비무를 재개할 것이오! 조금 전의 승부는 물론 비룡대주 이벽 소협의 승리이니, 당사자인 비룡대주를 제외한 이들은 모두 물러나시오.”
“거, 걸개!”
“비무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것은 나요. 만일 문제가 있었다면, 차후 내가 그 책임을 질 것이니!”
양호명은 인상을 찌푸렸다.
철면개가 이렇게까지 나온 이상, 더는 문제를 삼아 본들 득 될 것이 없다.
남궁천수를 바라보았다.
‘길길이 흥분할 줄만 알지, 요령이 없다.’
고작해야 이 정도의 작자를 속가세력의 수장으로 내세운 남궁의 수준 역시 알 만하다.
하기사 말이 정파지, 핏줄에 의존하는 폐쇄적인 무가 따위가 어찌 정도를 논한단 말인가?
“크윽! 내 지금은 걸개의 면을 보아 두고 본다만, 이대로 그 더러운 수작을 끝까지 감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
끝끝내 한 마디를 남기며 남궁천수가 돌아섰다. 잠시 서늘한 시선으로 이벽을 바라보던 양호명도 잠자코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우진희와 전사욱 역시 이벽과 눈인사를 나눈 후, 사파 측으로 돌아섰다.
“자, 그럼! 정파 측의 다음 대표자 께선 속히 무대 위로 올라주길 바라오!”
철면개가 외쳤다.
그러나 이후 정파 측에서는 한참 동안이나 비무대 위로 올라오는 이가 없었다.
이벽이 창천옥룡을 쓰러뜨렸다.
그 충격이 결코 가벼울 리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일섬룡 뿐이지만… 아무리 좋게 본들 좀 전의 승부는 박빙이라 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일섬룡조차 패배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저벅.
일각 정도가 지났다.
마침내 한 명의 인영이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점창의 삼대제자 창명이었다.
일섬룡 창성의 사형이지만, 오히려 창성보다는 한 수 처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후기지수였다.
이벽으로서는 일전 무적파에서도 검을 나눈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던 그때와는 달리 딱딱하게 굳은 창명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가득했다.
“네놈이 무슨 더러운 검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창의 도에 거하는 내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벽과 마주한 창명이 일갈했다.
“…더러운 검이 대체 무슨 검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이미 한 번은 통하지 않았었나?”
“두, 두 번은 안 통한단 말이다!”
애써 기세를 높이며 창명이 검을 뽑아 든다. 우웅, 검신 주위에 바람이 모여들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타앙!
모여든 공기가 폭발했다.
그리고 비무 개시와 동시에 창명의 신형이 다짜고짜 파고들었다.
채채챙!
점창의 급풍쾌검은 앞서 상대했던 대로 변화무쌍하고 쾌속했다. 그러나… 이벽은 그 검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 있음을 느꼈다.
‘더러운 검’인지 뭔지를 경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불안정했던 검로가 더욱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만월(滿月).
“으, 으헛?!”
이벽이 달을 그렸다.
만월의 초식이 흡입력을 일으킨 순간, 마구잡이로 날뛰던 창명의 검이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갔다.
삭월로 이어갈 필요도 없었다.
과한 힘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탱그랑!
“…….”
정파의 검이 또 한 자루 땅에 떨어졌다. 창명의 멍한 얼굴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검은 이미 봤다.”
“…….”
“주워라. 너도 보여줄 게 아직 남아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