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75)
78화. 등반 (2)
“그만! 여기까지. 내가 졌다!”
천소진의 허벅지를 가른 이벽의 검이 회수되었다.
만월무변심공의 내력이 청강유엽공으로 휘어지며 이내 청강검식이 펼쳐지려던 그때였다.
번쩍.
천소진이 양손을 들어 올렸다.
“…뭐?”
“아니, 다리를 당했으니 도망치며 싸우는 것도 힘들고… 정면승부는 안될 것 같고. 비장의 폭철사(爆鐵沙)까지 막혔는데 더 해봤자 의미가 없잖아?”
“…….”
어투는 장난처럼 가벼웠다.
“진심인가?”
“아, 그렇다니까?”
“…암기를 수도 없이 숨기고 있지 않나?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생각이라면—”
“아 몰라~ 아파서 더 움직이기 싫다고~ 난 안 움직일 거니까 삶던가 굽던가 속옷까지 벗겨 보던가 니 맘대로 해라~”
훅.
천소진이 겉옷을 벗어 던졌다.
탱, 탱그랑!
그리고 옷 안에 숨겨져 있던 무수한 암기들이 우수수 땅에 떨어졌다.
철푸덕, 그리고 쓰러지듯 주저앉은 천소진의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대 자로 드러눕는다.
“…….”
천연덕스러운 모습에서는 묘하게 공손수가 겹쳐 보였다. 거짓은… 아닌 것 같다.
혹여 기습이 이어진다 해도 말마따나 다리를 베어놨으니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을 테다.
‘…그냥 지나가는 게 낫겠군.’
무엇보다 정말로 목숨을 걸고서 계속하고자 한다면, 지지는 않더라도 자신 역시 상처가 늘게 될 것이다.
아직 ‘한 명’이 더 남아있다.
철컥, 이벽은 검을 거두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어딨지?”
“저쪽이야. 쭉 가면 있어.”
드러누운 천소진이 맥없는 모양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좌측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근데 가지 마. 가면 죽어.”
“…….”
“백가 아저씨, 얼굴에 아주 광기가 돌던데? 애초에 백룡일 그놈이 전형적인 호부견자(虎父犬子)이긴 해도 왜 그렇게까지 갈기갈기 찢어놓은 거야, 너?”
“…….”
미묘한 위화감이 스쳤다.
그것은 백룡일이 비룡대 일행에게, 그리고 공손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잘 모르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서촌과 북촌은 ‘같은 편’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 그러나 지금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이벽은 돌아섰다. 독공의 절정고수를 상대하는 건 처음—
욱신.
옆구리에서 고통이 올라왔다.
천소진의 마지막 한 수를 팔절구궁필법으로 파훼하는 데 성공했으나, 상처를 피하지는 못했다.
저벅저벅
“난 몰라~ 분명 경고했다~”
멀어지는 천소진의 목소리를 등 뒤로 하며 이벽은 어둠 속을 가로질렀다.
이내 계단을 발견했다.
저벅저벅.
한 걸음씩 올라가자 이내 서서히 어둠이 사그라들었다. 창밖에서는 해가 저물고 있다. 그리고.
이벽은 삼 층의 문 앞에 섰다.
끼이익, 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덥군.’
훅, 뜨거운 공기가 와 닿았다.
공간은 거짓말처럼 뜨거웠다.
주변을 둘러보자 실내에 아궁이가 몇 개씩이나 만들어져 있다. 그 안에서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다.
바닥에는 온통 흙이 깔려있었다.
형형색색의 꽃과 풀들이 자라고 있다.
“…….”
그것은 실내공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경이었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는 퍽 아름답다. 허나.
우웅.
선천의 힘이 작게 떨었다.
공간 안에 미세하나마 독기가 맴돌고 있었다. 이 꽃과 풀들은… 어쩌면 ‘재료’일지도 모른다.
“고맙게 생각한다.”
문득 목소리가 들렸다.
이벽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방의 한가운데에는 한 명의 사내가 등을 보인 채 앉아있었다.
“행여 도망쳐버리면 어쩌나, 그게 아니더라도 서촌장한테 쓰러져버리면 어쩌나, 내심 노심초사했는데 말이다.”
“…….”
“헌데 다행히도 여기까지 와주었군. 말인즉슨 아래층의 서촌장을 베고 올라왔단 뜻이겠지.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재능이야.”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서서 이벽을 마주했다.
“정말 고맙구나. 내게 그 재능을 짓밟고 아들의 원수를 갚을 기회를 주어서 말이다.”
북촌장 백룡강이 말했다.
* * *
“…….”
북촌장 백룡강은 남촌장 공손욱을 쓰러뜨리고서 2호가 되었다고 했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백룡강은 4층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며, 3층은 비어있으리라는 것이 동촌장 목일령의 설명이었다.
헌데.
‘…아무래도 상관없나.’
북촌장 백룡강.
3층이건 4층이건, 쓰러뜨려야 할 상대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벽은 생각을 멈추었다.
철컥, 검을 잡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복수가 될까? 그 또한 제법 고민하게 되더군. 그냥 고통도 없이 죽여봐야 큰 의미도 없지 않나?”
슥, 스윽.
백룡강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철사로 만들어진 장갑과 같았다.
두 손에 끼워 넣는다.
“그런데 듣자 하니 네놈이 낙검신룡이란 별호를 얻었다더군. 정파의 애송이들을 상대로 모조리 검을 떨어뜨렸다고.”
“…….”
“그것 참 좋은 생각이야.”
후욱.
백룡강의 기세가 뿜어졌다.
“나 역시 네놈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지. 어디 네놈이 펼칠 수 있는 최선의 검을 내게 보여봐라. 그 검을 쳐부숴 주마.”
“…….”
“그리고 절망에 빠진 순간, 네놈의 팔과 다리를 잘라내고 껍질을 벗겨내겠다. 그 재능을 짓밟고, 마침내 정신이 무너져서 제발 죽여달라 빌 때까지 천천히 썩어가게 해주마.”
파스스스.
백룡강을 둘러싼 주변의 풀이 시커멓게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중독은 피할 수 없다.’
독공의 절정고수는 내성을 뛰어넘어 체내에 독을 담고 내력에 섞어 함께 사용한다고 했다.
제아무리 주의한다 해도 호흡을 멈출 수는 없다.
다만.
타앗!
이벽은 땅을 박찼다.
중독에 앞서 선수를 내어주겠다면 그것은 고마운 일이며,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
채앵, 챙!
이벽은 청강검식을 펼쳤다.
이에 백룡강의 두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갑에 휩싸인 손이 기를 실어 검신을 쳐낸다.
하나의 검과 두 개의 손.
허나 발검과 회검에 담긴 여섯 가지 묘리가 번뜩이며 오히려 백룡강을 밀어붙였다.
“하! 그래서 어떻단 말이냐?!”
“…….”
호흡을 최소한으로 억제한다.
그럼에도 이벽은 목 안이 매캐해짐을 느꼈다. 상대하는 것만으로 온몸에 독이 스며든다.
선천의 힘은 해독을 할 수 있다. 허나 앞서 백룡일과의 일전에서 경험했듯, 해독 중에는 내력의 흐름이 더뎌진다.
그리고 그 상태로는 고작 백룡일을 상대할 때조차 고전했다.
절정고수인 백룡강에겐 어림도 없을 테다.
채챙!
즉,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청강검식, 회검식의 곡검이 유연하게 휘어졌다. 백룡강의 두 팔을 일제히 쳐내었다.
찰나의 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후욱.
이벽의 검에 강기가 일었다.
흠칫, 백룡강의 안색이 흔들렸다. 허나 대비하고 있었던 듯, 그 오른손 장갑에 희끄무레한 색이 어렸다.
역시 강기였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발검제삼식(拔劍第三式).
강검(强劍).
콰아아아앙!!
강기와 강기가 부딪혔다.
“크아악!”
그리고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일순 전각이 흔들렸으며, 두 사람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번지며 풀들이 드러누웠다.
비틀.
이벽의 몸 또한 흔들렸다.
말마따나 ‘최선의 검’을 펼쳤다.
그 대가로 내력의 흐름이 뭉텅으로 빠져나감과 동시에 비산하는 독기가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허나… 헛수고는 아니었다.
“크, 으으윽!”
이벽은 고개를 들었다. 검과 부딪힌 백룡강의 오른손이 곤죽이 된 것을 확인했다.
승기를 점했다.
그리고 이 여세를 놓쳐선,
“쿨럭.”
이벽은 기침했다.
독에 물든 피가 터져 나왔다.
아주 약간의 틈이 비어버렸다.
퍼억!
그리고 그 순간, 이벽의 몸이 좌측으로 튕겨 날아갔다. 백룡강의 왼손이 옆구리를 두드린 것이다.
쿠당탕, 풀썩.
삼 장 가까이 날아간 이벽의 몸이 땅을 굴렀다.
“크, 커헉!”
이벽은 다시 피를 토했다.
천소진의 폭철사에 당한 옆구리의 상처에 독이 스며들었다. 허리가 새우처럼 굽어졌다.
이벽은 얼른 일어서려 했다.
허나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온몸의 피가 굳어가기 시작한다.
“크… 하, 하하. 으하하하!”
그리고 망가진 오른팔을 축 늘어뜨린 채 백룡강이 괴소를 터뜨렸다.
“그래, 참으로 짓밟는 보람이 있구나! 시간이 있었다면 가히 천하제일을 논할 수도 있었던 재능이겠지. 허나 이제는 끝이다.”
저벅, 걸음을 떼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선 오른팔부터 떼어내 주마.”
* * *
앞서 동촌장 목일령은 암영각을 오르려는 이벽에게 1층을 비켜주는 조건으로 ‘거래’를 내세웠다.
“증혈환(增血丸)이란 물건이오.”
이벽은 목일령의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붉은빛을 띤 단약 하나가 들려 있었다.
“어젯밤 백룡일을 상대하던 때, 소협은 이미 응혈비독에 중독되었음에도 싸워 이긴 것 같더군. 그것은 사실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오.”
“…….”
말마따나 이벽은 중독되었다.
그때, 적파심공을 일으켰다.
어째서 그런 시도를 했는지는, 스스로도 명확히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단지 굳어가는 몸에 ‘살기’를 일으키면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스쳤을 뿐이다.
“소협의 무공의 연원에 대해선 묻지 않겠소. 허나… 나는 멀리서나마 분명히 느꼈소. 그 강렬한 살기를.”
“…….”
“이 무림에는 셀 수 없이 무수한 무공이 존재하고 있지만, 아주 드물게는 ‘혈기’를 이용하는 무공이 있지.”
목일령은 설명을 이었다.
“혈기란 살기와 아주 밀접하지만, 꼭 같지는 않소. 이는 내력으로 몸 안의 피를 들끓게 하여 파괴적인 힘을 얻는 것으로, 보통은 살기를 동반하게 되지.”
“…그렇군.”
“아마도 소협이 익힌 심공은 그런 종류의 무공인 것 같소. 그러니 피를 굳히는 응혈비독조차 잠시 주춤했던 거겠지.”
피를 끓여 독을 중화시킨다.
그것이… 적파심공의 공능.
놀랄 만큼 쉽게 납득이 갔다. 설명을 통해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던 것을 머리로 이해한다.
“허나 소협도 알겠지만, 완전하지는 않았소. 결국은 북촌장의 일장에 당해 중독이 누적되어 쓰러지고 말았지.”
사실은 조금 다르다.
독기가 가득했던 땅굴 바깥으로 기어오른 이벽은 선천의 힘으로 독을 해독했다.
단지 천소진과의 일전에서부터 누적된 상처로 인해 심신은 엉망이었고, 미처 공격을 피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허나 굳이 정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증혈환은 그러한 ‘혈기’를 더욱 증폭하는 단약이오. 허나 약만으로는 안 되고, 특수한 내력 운용을 함께해야만 하지.”
“…….”
이벽은 목일령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는 대강 알겠다. 허나 내밀어진 단약의 저의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소협께서 이 단약을 먹어주시오. 그리고 내가 전수하는 구결을 통해 북촌장 백룡강과 싸워주시오.”
그리고 목일령이 말을 맺었다.
허나… 퍽 이상한 이야기였다.
단약과 구결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 어째서 거래가 되는가?
듣기에 지나치게 좋은 이야기는 오히려 수상한 낌새를 의심하게 만든다.
“…소협은 암영각을 둘러싼 우리 네 개의 마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소?”
이벽의 마음을 짐작한다는 듯, 목일령이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딱히 아는 건 없소.”
“무흔의 공손가, 암기술의 천가, 용독술의 백가, 그리고 의약술의 목가.”
“….”
그리고 다시 설명을 이었다.
본디 전혀 다른 기원에서 비롯된 네 세력은 암영각이란 하나의 울타리에 묶여 각 마을에 정착했다.
이후 오랜 시간 서로 피가 섞여가며, 각 마을에 정착한 세력 간의 구분은 점차 옅어지긴 했다.
허나 아직까지도 각 마을의 중심에는 그러한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며, 의약술의 목가는 늘 용독술의 백가와 경쟁을 일삼았다.
“허나… 당대의 동촌장인 나는 그들의 응혈비독을 해독할 해독제를 만들어내지 못했소.”
“…….”
“그래서 찾은 게 이거지.”
줄곧 담담하게 설명을 잇던 목일령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희미하게나마 격정이 담겨있었다.
“솔직히 말하지. 이것은 위험한 물건이오. 혈기를 끌어낸다는 것은 다시 말해 살기를 증폭시키는 것. 자칫 살기에 휩쓸려 이성을 잃고 광인이 될 수도 있소.”
“…그렇군.”
그것은 이벽 역시 직접 체험하여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살심에 휘둘렸던 몇 번의 경험들을 생각해보았다.
다만 지금의 이벽은 적파심공을 통해 살심을 봉하고, 다시 만월무변심공을 통해 적파심공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허나 그럼에도 나는 내가 만들어낸 물건이 백가의 독을 이길 수 있는지, 그것을 확인하고 싶소.”
그리고 목일령의 두 눈에서 기이한 열망이 흘렀다.
“그리고 이미 혈기를 다루는 것에 익숙한 소협이라면 이 이상 가는 적임자가 없지. 다시 말해, 나는 소협께 나의 실험체가 되어달라 부탁하고 있는 것이오.”
“…….”
그리고 대화는 잠시 멎었다.
침묵 속에서 이벽은 생각했다.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테다.
아귀가 맞다고 한들 그것이 꼭 진실이란 보장은 없으며, 어쩌면 무언가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을 수도 있다.
허나… 이벽은 방 안에 누워있는 언미희와 파진성을 생각했다.
‘선택의 여지는… 없나.’
동촌장 목일령은 자신이 암영각을 오르는 동안 두 사람을 버티게 해줄 의원이며, 어쨌건 자신을 한 번 구해주기도 했다.
또한 혈기건 무엇이건, 저 단환이 북촌장을 쓰러뜨리는 데에 있어 일말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또한.’
만월무변심공.
그리고 선천의 힘을 믿는다.
덥썩, 이벽은 증혈환을 삼켰다.
단약에서는 희미하게 피 냄새가 느껴졌다. 허나 삼킨 직후 딱히 무언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말했다시피 그 힘을 이끌어 내려면 특수한 내력의 운용이 필요하오. 허나 어려울 것은 없소. 소협의 심공을 이끌어 냄에 있어 준비과정을 보태는 정도일 테니.”
그리고 이벽은 목일령에게서 ‘그 힘’을 이끌어 내는 내력 운용의 구결까지 전수받았다.
물론, 선천의 힘을 통해 내력을 이끌어 내는 이벽에게는 의미가 없지만, 그렇다 해서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건승을 비오, 소협.”
“…고맙소.”
그리고 한나절이 지나, 각주의 허락을 알리는 전령이 도착했다.
이벽은 동촌장의 저택을 떠나 암영각으로 향했다.
* * *
콰아아아.
피안개 같은 살기가 터져 나왔다.
“뭐, 뭣이?!”
움찔, 백룡강이 걸음을 멈추었다.
산전수전에 수많은 죽음을 일상처럼 겪은 그조차도 한순간 등골에 서늘함을 느꼈다.
슥.
이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쿨럭.”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쿨럭! 커헉!”
그리고 이벽은 피를 토했다. 연달아서 한 사발쯤 되는 시커먼 피를 흙 위에 토해내었다.
“네, 네놈, 대체 어, 어떻게……?”
“…하아.”
백룡강의 황망한 눈이 이벽의 위아래를 훑었다. 분명히 일장을 놈의 상처에 쑤셔 박았다.
지금쯤 일어서기는커녕 온몸이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 경련에 휩싸여야 정상이다. 헌데.
슥, 이벽이 입가를 훔쳤다.
“개운하군.”
훅, 그리고 고개가 움직였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헉, 백룡강은 숨을 들이마셨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한 발자국 물러섰다.
“…….”
허나 곧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자존심이 흔들리자 백룡강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으드득, 이를 갈았다.
“…하! 그래, 오너라! 무얼 또 얼마나 감추고 있건, 칠공으로 피를 토하게 한 뒤 한 줌 진물로 만들어주마!”
“…….”
이벽의 눈이 감정을 토하는 백룡강을 향했다. 붉게 달아오른 눈빛이 문득 웃음기를 띄었다.
‘죽일 것’이 저기 있다.
타앗, 이벽이 땅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