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98)
101화. 파진성, 눈을 뜨다
“크흡, 끄흐읍!”
가부좌를 튼 파진성의 입술 사이로 답답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차마 입을 열지 못한다.
고통에 못 이겨 소리를 내지르는 순간, 내기를 다루는 마지막 한 가닥의 통제력마저 놓쳐버릴 것임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어, 어떻게 하죠?”
공손수가 당황한 소리를 내었다.
겉으로 보아도 파진성의 기류는 명백히 꼬여 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영약을 삼킨 것이 화근이 된 듯했다.
“…….”
내력이 폭주하고 있다.
기를 다스려줄 이가 필요하다.
허나… 소림에 해남검파의 내공심법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있을 리 없다.
이벽은 취풍신개나 혜능을 떠올렸다.
절정조차 넘어선 경지에 오른 이들이라면 어떻게든 다스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주륵.
파진성의 입가에 핏줄이 흘렀다.
사태는 일각을 다툰다. 다른 이를 불러올 만한 여유는 없다.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내가 하겠다.”
“…네, 네? 괜찮겠어요? 정말로?”
“호법을 부탁하오.”
이벽이 공손수와 언미희를 돌아보았다. 공손수는 보기 드물게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네, 걱정마세요, 공자.”
그때 언미희가 답했다.
공손수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
이벽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이내 파진성의 등 뒤에 앉았다.
오른손을 뻗어 파진성의 등에 가져다 대었다. 눈을 감고서 조용히 내력을 일으켰다. 선천의 힘이 반응했다.
후욱.
청강유엽공의 흐름은 물과 같다.
바위의 틈에 스며들듯 슬그머니 파진성의 피부를 뚫고 혈도 안으로 파고들었다.
움찔, 파진성의 몸이 흔들렸다.
낯선 기의 침입을 느낀 것이다. 허나 그것이 도움의 손길임을 이해한 듯 밀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혹은… 그런 걸 생각할 여력조차 없는 듯했다.
콰아아아!
이벽은 파진성의 내부를 관조했다. 통제를 잃은 내력이 소환단의 힘을 삼킨 채 성난 파도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그 흐름 위에서 파진성의 기혈은 낡은 거죽처럼 금방이라도 갈기갈기 찢겨질 듯했다.
“…….”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외부에서 폭주하는 기를 다스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흐름을 올바르게 유도하여 정상적인 심법의 흐름대로 돌려놓는 것이다.
순환을 반복하여 이내 파진성이 스스로 통제력을 되찾을 수 있을 때까지 기세가 꺾이게 한다.
그것은 가능하기만 하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허나.
이벽은 해남의 무공을 알지 못한다. 고로 남은 선택지는 두 번째 방법밖에 없었다.
‘…정면으로 부딪친다.’
와해시켜 내공을 흩어버린다.
그것은 아까운 소환단의 내력을 무위로 없애버리는 것은 물론, 성공해도 내상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말할 것도 없이, 죽거나 무공을 잃는 것보단 압도적으로 나은 선택일 테다.
이벽은 파진성의 몸 안을 내달리는 힘의 경로를 예상했다. 그리고 어깨와 목을 잇는 풍문혈 부근에 자신의 내력을 모아두었다.
웅크린 채 잠자코 기다린다.
콰콰콰콰!
이내 저만치에서 파진성의 내공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것을 감지했다. 마치 야생마와 같다.
파진성은 진즉 말 위에서 떨어졌으나 간신히 고삐를 붙들고서 질질 끌려오고 있다.
마침내 내력과 내력이 충돌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콰앙!
“크흡!”
파진성의 몸이 흔들렸다.
굳게 다문 입가 양쪽 끝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다. 내력과 내력이 힘 싸움을 시작한다.
부르르르.
자리를 지키려 하는 이벽의 내공과 달리 내달리는 파진성의 내공은 한사코 멈추기를 거부한다.
콰아아아!
이벽의 내공이 넓게 산개했다.
보자기로 감싸듯 파진성의 내력을 감싸들었다. 동시에 촘촘히 구멍을 내어 조금씩 힘을 새어 보냈다.
푸스스스.
이내 파진성의 내력이 서서히 기세를 잃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이었다.
후욱!
파진성의 왼쪽 어깨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화가 난 야생마가 제자리에서 미쳐 날뛴다.
“…큭.”
이벽은 신음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버틸 수 없다.
그나마 왼팔이 단련된 파진성이기에 아직까지 버티고 있을 뿐, 이 이상은 기혈이 터져버릴 것이다.
콰콰콰콰!
결국 이벽은 물러섰다.
그리고 파진성의 내력이 다시금 뻗어나갔다. 잠깐이나마 발목을 붙잡힌 것에 성이 난 듯, 사방으로 내달린다.
“…….”
실패했다.
‘…물러서선 안 됐다.’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서늘한 위기감 속에서 이벽은 서둘러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허나…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시도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실패했으니, 같은 짓을 반복해본들 성공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이벽은 맥이 풀렸다.
파진성은 여전히 매달려있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한 의식을 붙잡고서, 어떻게든 기를 통제하고자 발버둥 치고 있다.
허나 그 이끌고자 하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는 이벽에게는 닿지 않는다. 이벽은 못내 안타까웠다.
‘그 말을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혈도를 살펴 심법의 경로를 파악한다는 건, 마치 책의 제목만으로 내용을 파악하는 것만큼 터무니없는 이야기—
“……!”
그러나 그때였다.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내게는 불가능하다 해도… 어쩌면 선천의 힘이라면?’
이벽은 생각했다.
자신이 마음을 일으키는 순간, 선천의 힘은 몸 안에 이미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놓는다.
이벽으로선 그 경로를 일일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선천의 힘은 마치 살아 숨 쉬듯 스스로 읽어내고, 판단하고, 움직였다.
마음이 곧 흐름이다.
그것이 낙검진천신공이었다.
하지만… 물론 자기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을 다루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벽이 아는 한, 선천의 힘 그 자체를 내력처럼 몸 바깥으로 옮겨놓을 순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벽은 마음을 바로잡았다.
선천의 힘에게 부탁을 건네듯, 자신이 아닌 타인의 몸 안을 관조할 것을 간절히 의식했다.
우웅.
선천의 힘이 잘게 떨었다.
평소와는 달리 이벽의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듯했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한다.
“…….”
…역시 안 되나.
허나… 이대로는 파진성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죽지는 않는다 해도 그가 쌓아 올린 대부분이 무너질 것이다.
그것은… 좋지 않다.
본의는 아니었을지라도.
대주와 대원으로서 적지 않은 관계를 맺었으며, 호남에서는 ‘휘어짐’에 대한 깨달음의 단초를 얻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제기랄. 제기라아아알!
천수법룡 덕수와의 일전에서 패해 악을 내지르던 파진성의 목소리는… 썩 듣기 좋지 않았다.
‘그럴 순 없다.’
찌직, 찌지직!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일순 이벽의 몸 안을 흐르던 선천의 힘이 두 갈래로 ‘찢겨진’ 것이다.
우우웅.
그리고 둘 중 하나의 갈래가 계속해서 청강유엽공의 흐름을 유지했다.
반으로 쪼개어졌음에도 몸 안을 흐르는 내력은 거짓말처럼 그 기세가 전혀 줄지 않았다.
우우우웅!
곧이어 갈라져 나온 다른 한 갈래가 잘게 떨었다. 이벽의 생각에 화답하듯 길게 펼쳐졌다.
후우욱.
그리고 다음 순간, 급격히 위로 치솟았다. 채 놀랄 새도 없이 이벽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우우웅.
이명이 울렸다.
그리고 세상이 느려진다.
‘…생각과 마음의 합일.’
이벽은 그 즉시 이해했다.
지금 이 순간, 선천의 힘에 담긴 ‘생각하는 힘’이 자신의 머리에 스며들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허나 그리 낯설지 않다.
“…….”
아니,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은 없다. 이벽은 그 즉시 파진성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혈도의 움직임뿐만이 아니다.
호흡, 기척, 미세한 몸짓에 이르기까지, 파진성의 몸이 내보내는 모든 신호를 놓치지 않고 읽어낸다.
이해하고, 판단하고, 움직인다.
이벽은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문득 낙검진천신공을 처음 이진천에게서 전수받았던 날, 자신의 망가진 혈도 안을 내달리던 이진천의 내력을 생각했다.
입장이 바뀌었을 뿐, 상황은 그때와 같다.
우우웅.
그리고 마침내 이벽은 파진성의 마음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읽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
일은 급격히 간단해졌다.
파진성의 뜻을 이해한 이상, 폭주하는 내공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만 하면 그만이다.
우우웅!
파진성의 내력은 잠시 저항했다.
그러나 이벽은 단호히 제압했다.
갈 길을 확고히 안다면 선천의 힘으로 유지되는 이벽의 내력이 힘 싸움에서 밀릴 이유가 없다.
파진성의 내력이 주춤했다.
이벽은 얼른 파진성의 내력에 고삐를 채웠다. 그리고 올바른 혈로를 따라 인도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이내 내력의 흐름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파진성의 안색이 조금씩 혈색이 돌아온다.
그러다 문득, 장애물을 만났다.
분명히 맞는 길임에도 무언가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이벽은 망설이지 않았다.
‘부수고 지나간다.’
콰앙, 쾅!
“푸헉!”
파진성의 입이 열렸다.
검붉은 피를 토해내었다.
“돼… 됐어요!”
언미희가 외쳤다.
비록 내상을 입었을지라도 입이 열렸다는 건 내력의 흐름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후욱.
그리고 내력이 마침내 파진성의 단전에 도착했다. 심공의 한 바퀴를 완주한 것이다.
허나 기세는 채 죽지 않았다.
내력은 다시 단전을 출발했다.
두 바퀴, 세 바퀴, 일주천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러나 더 이상 경로를 이탈하는 일은 없다.
내력은 서서히 온순해졌다.
그리고 그즈음 이벽은 판단했다.
더 이상은 자신이 고삐를 붙들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벽은 파진성에게 그것을 넘겨주었다.
스스륵, 풀썩!
그 순간, 이벽의 머리에 스몄던 선천의 힘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이벽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 * *
파진성은 과거를 생각했다.
그는 해남검파의 2대 유파 중 하나인 청해일심류(淸海溢心流)의 혈통으로 태어났지만, 그래봤자 많고 많은 해남의 아이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리고 태어난 그 순간부터 형제고 친구고 나발이고, 주변에 보이는 모두가 경쟁자였다.
해남의 파도는 거칠다.
한 번 뒤로 밀려나면 끝이다.
고로 파진성은 강해졌다. 한 명 한 명 쓰러뜨리고, 이용 가치가 있으면 손을 내밀었다.
내 편으로 만들거나.
혹은 철저히 묻어버리거나.
그렇게 파진성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만들었고, 해남검파를 대표하는 후기지수가 되었다.
그리고 사패련으로 향할 때만 해도 아무것도 두려울 것은 없었다.
해남을 제패한 자신의 방식이 천하 어딜 가서든 그대로 통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는 맹우강에게 개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 한 번의 패배만으로 해남에서 뒤를 따르던 모두가 일제히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힘으로 굴복시켰을 뿐이므로.
손을 뻗은 자신도, 그 손을 붙들 그 녀석들도 서로를 이용하려 했을 뿐이고, 자신에게 이용 가치가 없어졌을 뿐이다.
참으로 그뿐이다.
그리고 비룡대 일행들에게 ‘주워진’ 건 그때쯤이었다. 그리고 파진성은 휘어지는 법을 배웠다.
나보다 강한 이에게 고개를 숙인다. 손을 뻗는 이와 잡는 이가 뒤바뀌었을 뿐, 달라질 건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다. 헌데.
따악!
그때, 뒤통수에 충격이 일었다.
“…….”
파진성은 눈을 떴다.
일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몸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또한 퀘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것이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임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따악!
“아야.”
그때, 누군가가 또다시 뒤통수를 두드렸다. 파진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뭐야, 왜 때리는데?”
그곳에는 공손수가 서 있었다.
언미희도 옆을 함께하고 있다.
“…맘 같아선 두 시진 정도 너끈하게 두들겨 패주고 싶지만. 너무 피곤하니까 일단 봐줄게요.”
“뭔 소리야. 그게?”
“닥쳐요. 누구누구 덕분에 호법 서느라 꼬박 하루를 샜으니까. 그러니까 우린 잘게요.”
풀썩, 풀썩.
공손수와 언미희가 쓰러졌다.
당황한 파진성이 황급히 두 사람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말 그대로 곯아떨어진 것뿐이었다.
“…….”
파진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다 문득 등 뒤로 시선이 갔다. 그곳에는 이벽마저 쓰러져 있었다.
번뜩, 그제서야 기억이 떠올랐다.
놈에게서 소환단을 받았고, 행여나 다시 빼앗길 새라 넙죽 삼켰다. 그리고… 그 이후로 기억은 흐릿해졌다.
아니, 파진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문득 생생한 고통의 기억과 함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생사의 기로를 넘겼다.’
주화입마.
미쳐 날뛰는 파도 속에서 나약한 의지는 금방이라도 휩쓸려버릴 듯했다. 그러나 그때, 누군가가 손을 뻗어주었다.
추궁과혈.
타인의 혈을 가다듬는 행위.
“…….”
파진성은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파진성은 내심 놀랐다. 누군가가 미쳐 날뛰는 운기를 돕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익혀온 청해일심공(淸海溢心功)의 경로에서 한 치의 어긋남조차 없었다.
‘마음을 읽히고 있다.’
그 ‘누군가’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자신보다 먼저 알아채고서 가장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향으로 힘을 보태주고 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파진성으로서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고로 파진성은 의문을 접어두었다. 그저 조력에 힘입어 내력을 조금씩 통제하에 두었다.
그러다가 문득, 전혀 다른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애시당초 마음이란 게 뭐지?’
마음을 읽고 있는 이가 읽히고 있는 이보다도 먼저 앞서갈 수 있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번뜩.
그 순간 깨달음이 스쳤다.
마치 자신의 몸 안에 세 번째의 눈이 자라나 몸 안의 혈로가 훤히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콰콰콰콰.
내력을 다스리는 것이 거짓말처럼 쉬워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도움조차 없이, 파진성은 스스로 내력을 다스렸다.
이내 단전에 안착시켰다.
“…….”
파진성은 이벽을 내려다보았다.
‘도운 건 물론 이 녀석이었겠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내력을 타인의 몸에 불어넣는다는 게 결코 간단한 일일 수는 없다.
자칫 타인을 구하려다 본인이 내상을 입을 수도 있으며, 심하게는 영구적 손상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린놈의 자식이.”
쯧, 파진성은 혀를 찼다.
파진성은 잠시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을 챙긴 뒤, 마당으로 나갔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다. 공손수의 말마따나 정말로 꼬박 하루가 지난 모양이다.
훙, 후웅.
파진성은 검을 휘둘렀다.
몸의 이상을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문득, 어색함을 느꼈다. 분명히 늘 휘두르던 방식이었고, 자신 있는 검로였다. 허나.
“뭐야 이게? 더럽게 허접하네.”
빈틈투성이의 검.
휘두를 때마다 새로운 약점이 하나씩 새로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싸워서 이기는 게 이상하다.
후욱, 훅.
파진성은 검에 몰입했다.
누가 뭐래도 그는 검객이었다.
어찌 되었건 약점이 눈에 보이는 이상 그것을 메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어렵지 않았다.
보이는 풍경이 달라졌다.
폭풍이 지나가고 맑은 하늘이 뜨듯, 눈앞에 있던 벽 하나가 하룻밤 사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기분이다.
아니, 어쩌면 하나가 아닐 수도.
똑똑.
“계시오?”
얼마나 검을 휘둘렀을까.
문득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렸다. 슬그머니 열린 문틈으로 민머리 하나가 안으로 들이밀어졌다.
천수법룡 덕수였다.
“…뭐냐, 너? 나 잡아가러 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