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ed dungeon life RAW novel - Chapter (212)
적나라한 던전생활-212화(212/238)
외전 1편
“치히로!?”
게이트 입구에 다다르자 익숙한 얼굴이 빼꼼 튀어 나왔다.
치히로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크게 놀라워 했다.
그야 그럴 수 밖에.
온 천지가 새까맣게 타 버린 거대 사마귀의 시체로 가득한 상황이니까.
“이걸 설마, 당신 혼자서 전부…?”
나는 대답하지 않고 가볍게 미소 지었다.
“대체… 밖에 있는 보스도 당신 혼자 쓰러뜨린 거죠?”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인데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구. 나는 지금 서둘러 총국으로 돌아가야 하거든.”
“총국은 왜…?”
“거기 남겨두고 온 놈들에게 물어볼 게 있거든. 당신도 같이 가지. 상황이 정리되었다는 사실을 동료나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알려줘야 하지 않아?”
치히로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보였다.
나도 총국에 두고 온 녀석들만 아니면 느긋하게 담소나 나누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도망친 일본의 각성자 놈들이 타츠야 일행을 언제 찾아낼 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그만 가자고. 이 시체들이 당장 어디 가는 것도 아니니까.”
“네.”
우리는 함께 12게이트를 빠져 나왔다.
수 천에 달하는 사마귀들의 마나를 흡수하느라 시간이 제법 흘렀을 것이다.
게이트에 처음 진입하고 한 시간은 흐르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게이트 주변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다들 뭘 하고 있는 건지.
“아무도 없네.”
“예. 모두들 이 섬을 떠나고 있을 거에요.”
“하긴,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네… 그런데 그걸 당신은 혼자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이 여자는 정말 보면 볼 수록 미인이다.
이런 여자를 두고 여길 떠나야 하다니.
그녀가 오키나와의 공주니 뭐니 하지만 않았어도 당장 우리 회사로 스카웃 했을 거다.
잡생각은 여기까지 하고.
나는 시종일관 해답을 요구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한 마디 내뱉었다.
“사실, 내가 좀 세거든.”
“……”
“그렇다고 무적은 아니고, 불사신 같은 것도 아니야. 당신처럼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거지. 원래 비장의 수단은 감춰두는 거잖아? 그러니 치히로도 비밀로 부탁해.”
“…하지만, 그럼 이 상황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죠?”
그녀는 거대한 사마귀 보스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치히로가 한 걸로 하자.”
“제가…?”
“그래. 그래야 저쪽 녀석들도 쉽게 못 덤빌 거 아냐. 네가 무서워서.”
“하지만… 믿지 않을 거에요.”
“난 곧 여길 떠나야 돼. 이번에 희생도 많았을 텐데, 일본 녀석들을 무슨 수로 막으려고? 네가 꿈꾸던 것도 모두 까발려진 모양이던데.”
내 도움으로 게이트 폭주를 막아낸 지금, 치히로의 다음 걱정거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오키나와 독립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 측에 들켜버린 상황.
상대가 총력전으로 나오면 그녀나 오키나와 입장에서는 어찌 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믿을까요? 금세 들통날 거고… 그렇게 되면 결국 오키나와는…”
“흠… 그럼 이러는 건 어때? 섬 들을 포기하고 나랑 한국으로 가자. 물론 동료들이나 주민들도 모두 함께. 내가 요구하면 우리 대통령도 오케이 할 거야.”
“……”
“여기 남아있어 봐야 결말은 정해져 있잖아.”
그녀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입이 다시 열리길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생각한 그녀가 겨우 목소릴 내뱉었다.
“저는…”
“응.”
“저는 여기 남겠어요. 하지만 저희 주민들은 받아 주세요. 부탁 드려요. 주민들은 오키나와 독립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어도 여기 출신이라는 이유 만으로 엄청난 차별을 받게 될 거에요. 이전에도 그랬는데 훨씬 더 심해지겠죠.”
“남겠다고?”
“네. 저는 죽는 한이 있어도 이 땅과 함께할 거에요. 그렇게 다짐했어요.”
사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할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들으니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든다.
질투인가?
웃기지도 않지.
사람도 아니고 섬에…
“그래. 고향을 버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무모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한 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어.”
“좋은 제안을 해 주셨는데 죄송해요.”
“전혀. 부담 갖지 마. 그것보다 조금 서두를게.”
“……!?”
나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였다.
그녀는 안 그래도 커다란 두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나를 올려다 보고 있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고 그녀를 안은 상태로 오키나와 각성 총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풍경이 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나는 달리며 말했다.
“아까 했던 제안은 없었던 걸로 할게. 사실은 나도 그냥 해본 소리였어.”
“…!?”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어. 오키나와 주민들이 죽건 말건 내버리겠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내 목을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두 팔이 파르르 떨렸다.
마나를 전부 소진해 힘이 없는 탓이겠지만, 꼭 그런 이유인 것 만은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불안할 것이다.
오늘 희생한 동료들을 추모하지도 못했는데, 언제 또 본토 측에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달리며 슬쩍 내려다 본 치히로의 얼굴은 조금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슬퍼 보이고 힘이 없어 보였다.
* * *
우리는 불과 수십 초 만에 각성 총국에 도착했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콘크리트 건물 내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어떤 소음도 인기척도 없다.
“이미 모두 떠난 모양인데? 서둘러 불러야 하지 않겠어? 너무 늦어 일본 땅에 도착하는 날에는 그대로 인질이 될 텐데.”
“알고 있어요.”
그녀는 무척 지쳐 보였지만 분주하게 움직였다.
긴급 상황이라 동료들과 연락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었지만 하나 둘 연락이 닿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상황실에 두고 혼자 국장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장 화장실 문을 열었다.
“……”
다행히 세 놈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곤히 잠들어 있다.
나는 곧장 이동글의 능력을 불러온 다음 놈들을 적당히 회복 시켰다.
그리고는 바로 싸다구를 날렸다.
“언제까지 처 자고 있을 거야? 여기가 니들 안방이냐?”
세 남자는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그러다 내 모습을 확인하고는 경기를 일으키며 정신을 차렸다.
“아까 하던 걸 이어서 해 볼까?”
북한에 가서 뭘 했는지 그 꿍꿍이가 뭔지, 일본 초월자들은 어떤 특이한 능력들을 소유했는지.
나는 놈들에게 궁금했던 모든 것을 하나 둘 묻기 시작했고, 대답이 바로 바로 튀어나오지 않으면 곧바로 폭력을 행사했다.
내가 놈들을 취조하는 동안 치히로 역시 상황을 정리해 가고 있었다.
처음이 어려웠지 몇 몇 동료들과 연락이 닿은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소문은 금세 퍼졌고, 더는 도망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미 섬을 떠나 배에 올라탄 사람들도 게이트가 안정화 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다시 돌아왔다.
아직 여력이 남아있던 각성자들은 즉시 게이트 주변에서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혹시 모를 생존자를 찾는 한편 동료들의 시체를 회수했다.
그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몬스터들의 사체에서 돈 될만한 것들을 확보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하루가 지났다.
* * *
나는 정오가 다 되어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묵던 호텔이다.
침대 옆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어제 같은 날은 차마 치히로를 부를 수 없었다.
물론 나도 피곤했다.
그래서 인지 12시간은 세상 모르고 깊게 잠들었던 것 같다.
스마트폰을 보니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남아있다.
한국에서 온 것이 대부분이고 몇 통은 치히로에게서 온 것이었다.
치히로가 남겨둔 문자를 확인했다.
– 확인하시면 연락 주세요.
딱딱하다.
뭐, 이 이상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아마 저쪽은 희생자들의 장례 준비와 피해 복구로 엄청 바쁠 것이다.
하지만 언제 본토에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은 결코 복구할 수 없겠지.
“슬슬 돌아가야 하나?”
마력도 상승 시켜 주었고, 게이트 폭주도 막아 주었다.
그럼 내가 여기서 할 일은 다 끝난 셈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독립까지 시켜 줄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내가 사라지면 얼마 못 가겠지…”
오키나와에는 힘이 없다.
그렇다고 한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와 동맹 관계를 구축한 것도 아니고.
이대로 두면 결국은 그저 일본의 먹잇감이 될 뿐일 거다.
“그건 곤란하지.”
독립은 못 시켜줘도 일본이 쉽게 꿀꺽하게 둘 수는 없다.
암,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그녀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잠자리를 함께한 정이 있다.
나는 옷을 갖춰 입고 치히로에게 향했다.
이제 오키나와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을 때가 온 것이다.
치히로는 자신의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나는 이제 작별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고했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역시…”
“어제는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못했으니 할 말이 있으면 지금 다 해. 궁금한 거, 원하는 거 뭐든. 이렇게 대화할 시간은 이제 오늘 밖에 없으니까.”
그녀는 나를 지긋이 응시한 상태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꺼낸 첫 마디가 너무 사무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들은 우리가 독립을 하려 했다는 사실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을 모양이에요. 인터넷이고 언론사고 그 어떤 매체에서도 관련한 이야기가 없어요. 오직 12 게이트를 자신들의 지원으로 효과적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 뿐이에요. 저들의 피해도 상당할 텐데… 저희가 현재까지 확인한 저쪽 사람들 시체의 수만 해도 수 십이에요. 그런데 사망 소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요. 언론은 몰라도 인터넷까지 전부 막기는 어려울 텐데… 왜… 웃으세요?”
나는 미소를 감추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마지막인데 그런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이야기를 계속하길래.”
말이 심했던 걸까?
그녀는 불쾌한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 무슨 말을 하라는 거죠?”
“진심… 아니면 본심?”
“……”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가지 말라고 붙잡아야 하나요? 그럼 오키나와에 남아 주실 건 가요?”
아니, 이 여자 왜 이렇게 화가 났지?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