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ed dungeon life RAW novel - Chapter (213)
적나라한 던전생활-213화(213/238)
외전 1편
“음… 글쎄. 처음에 올 당시 생각한 것 보다 너무 오래 있긴 했지. 여기 오키나와에.”
내가 도발한 것도 있겠지만 오늘 따라 치히로의 표정이 더 눈에 띈다.
평소의 그녀와 다르게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내 말을 듣던 그녀는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작고 귀여운 입술을 움직였다.
“그것 봐… 결국은 갈 거면서.”
“한국으로 같이 가자는 내 제안을 거절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야. 치히로 공주.”
“……”
그녀는 또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화재를 돌렸다.
“그 녀석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타츠야 일행 말인가요? 그 남자들이라면 접객실에 가둬 둔 상태로 감시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중이에요.”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있나? 이미 놈들은 아무 힘도 없는 일반인인데.”
“그래도 몰래 본토 측으로 연락할지 모르잖아요.”
나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절대 못 할걸? 그걸 내게 들키는 날에는 뼈도 못 추릴 테니까.”
놈들은 지금 내가 한숨만 내쉬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상황이다.
몸은 어느 정도 치료해 주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모든 마력을 빼앗아 버렸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다면 앞으로 절대 내 신경을 거슬려선 안될 것이다.
“그들을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죠?”
“그건 아직 비밀. 당신이 내 앞에서 조금 더 솔직해진다면 이야기 해 주지.”
“……”
미간을 좁힌 상태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똑바로 응시한다.
잠시 시선을 맞추는 것 만으로 그녀의 보석 같은 두 눈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나 또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못 참겠는지 결국 치히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라니 다 말했잖아요. 붙잡고 싶다고… 하지만 결국 가버릴 거잖아요.”
똑바로 응시하던 시선이 금세 방황하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입술도 삐죽 튀어나온 것이 영락없는 십대 소녀 같다.
“나를 왜 붙잡고 싶은데?”
“그, 그건…”
이제는 내 눈을 전혀 마주치지 못한다.
기분 탓인지, 왠지 얼굴도 서서히 붉어지는 것만 같다.
“솔직하지 못하군.”
“저는 솔직해요!”
“그런데 왜 내 눈을 못 보는 거지?”
“보, 볼 수 있어요. 이것 봐요. 이렇게…”
다시 눈이 마주쳤다.
1초… 2초… 3초…
대화 없이 시간이 흐른다.
10초… 11초… 12초…
이제는 확연히 티가 나게 붉게 익어버린 치히로의 얼굴.
“그, 그만 볼래요.”
치히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내게 등을 돌렸다.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보고만 있었다.
그녀의 진심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리며.
한참 정적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시간이 불편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다.
결국 치히로는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다.
“저기…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얼마든지.”
“…당신은 저를 왜 한국으로 데려가려고 했던 거에요…?”
“그러지 않으면 결국 죽거나 일본 측에 납치될 테니까.”
“그냥 그렇게 두면 되잖아요. 저랑 당신은…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뒤돌아 있던 치히로의 몸이 서서히 틀어졌다.
그렇게 우리의 시선은 다시 서로를 향했다.
“제가… 불쌍해 보였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당신은 오키나와 사람도 아닌데… 역시, 일본과 한국과의 오랜 악연 때문인가요?”
“아니.”
“거짓말 말아요. 당신은 굳이 오키나와에 올 필요 없었잖아요. 그 강함… 그 능력…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여기 온 이유를 모르겠어. 여기 와서 당신이 얻은 게 뭐죠? 나와 유카리들의 마나를 강화 시켜 주고 얻은 건?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아요. 대체 왜? 아무 관련도 없는 당신이 흉악한 보스는 물론이고 12 게이트 내부의 몬스터까지 전부 정리한 거죠? 왜, 왜 오키나와를… 왜 저를 구해준 거죠? 일본과 한국의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다소 흥분한 치히로는 한참 열변을 토해냈다.
그녀가 궁금해 하는 모든 걸 솔직하게 대답해 주려 했지만, 이렇게 진지한 얼굴 앞에 대고 ‘사실은 네 사진을 보고 첫 눈에 반해 따먹으러 왔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정말 일본과는 상관 없어.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야.”
거짓말은 아니다.
솔직한 이야기로, 일본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오키나와를 이용할 필요는 처음부터 없었다.
만약 놈들이 내 신경을 건드린다면 당장 일본으로 날아가 한바탕 뒤엎으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불과 엊그제까지만 해도 일본 땅에 나와 같은 권한을 보유한 녀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뭐, 설사 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거짓말…”
“정말인데.”
“그럼 이유가 뭔데요. 나를 구해준 이유…”
“그건 네…”
아차.
하마터면 말할뻔했다.
‘네가 마음에 들어서.’라고.
갑자기 뜨끔 했다.
순식간에 다양한 여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하나같이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다.
이 무슨… 주마등도 아니고…
아무래도 나는 모르는 사이 치히로의 외모에 단단히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이 특별한 권한이란 걸 얻은 이후로 줄곧 그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않고 잘 참아 왔는데 무심코 고백을 할뻔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자, 치히로는 마치 나를 잡아 먹을 듯이 뚫어져라 바라봤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
“아, 그, 그러니까, 어쨌든 네 능력을 빌렸으니 그 답례라고 할까? 무엇보다 네가 죽어 버리면 나 역시 더 이상 능력을 사용할 수 없기도 하고.”
“……”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미 누군가에게 먼저 고백해서는 안되는 입장이다.
평화로운 하렘 월드를 위하여…
“네 특별한 능력을 빌려 사용할 수 있게 됐으니, 나 역시 오키나와에서 좋은 걸 얻어가는 셈이지.”
“…그렇구나.”
또 다시 한참 침묵이 이어진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치히로 이 녀석.
주변에서 공주 공주 소리를 오래 들어왔기 때문인지, 먼저 나서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둘 다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절대 먼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발악 중이라는 소리다.
또 그런 와중에 상대에게 먼저 고백을 받고 싶어 안달 난 것이기도 했다.
그녀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난 이 줄다리기에서 절대 져 주지 않을 생각이다.
아니, 져 주고 싶어도 져 줄 수가 없다.
선배부터 시작해 김이솔까지.
치히로의 아름다운 외모에 혹해 한 순간의 판단을 흔들리는 순간, 내 화창한 앞 날에 깜깜한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때문이다.
“할 말은 그게 끝인가?”
나는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끝이라면 나는 이만 돌아가지.”
“네? 벌써?”
“왜? 할 말이 더 남았나?”
“그, 그러니까… 자, 잠깐만요!”
당황한 치히로는 어쩔 줄 몰라했다.
“이, 이대로 그냥 돌아가시면… 어제는 분명… 오키나와 주민들을 도와주신다고…”
그녀의 표정이 점점 침울해져 간다.
내가 가버린다고 하자, 잠시 잊고 있었던 현실이 다시 그녀를 사방에서 덮쳐오는 모양이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길래 내 도움 따위 필요 없는 줄 알았지. 그래, 내가 어떻게 도와줬으면 하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당신이 가진 힘이라면 분명 뭐든 할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리고 오키나와에는 당신에게 보답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아요.”
“정말 그럴까?”
“무… 뭐가 있나요? 당신이 원하는 게… 있어요?”
나는 치히로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그다지 느끼한 눈빛을 보내진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다소 갸우뚱한 얼굴이 되었다.
“그건 나중에 받기로 하고, 그럼, 오키나와는 내게 정식으로 요청하는 건가?”
“아… 네! 염치 없지만 부탁 드립니다. 강정혁씨. 제발, 오키나와 주민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부탁 드려요.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제가 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다 드릴게요.”
치히로는 나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부탁했다.
그녀의 인사나 받자고 이런 쓸데없는 줄다리기를 계속한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정식으로 도움 요청을 받아 버렸다.
“좋아. 그럼 시간이 없으니 곧바로 움직이지.”
“네? 지금 바로?”
“당연하지. 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니까?”
“아….”
내 긍정적인 대답에 다소 밝아졌던 그녀의 얼굴이 다시 침울해져 간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난 먼저 접객실에 가둬 두었다는 타츠야 일행을 찾았다.
치히로 역시 내 뒤를 따랐다.
“!?”
“흡….”
“오, 오셨습니까.”
세 남자는 나의 등장을 확인하고는 격하게 반가워(?) 했다.
한 놈은 연신 다리를 떨었고, 또 한 놈은 내가 지 주인인 양 깍듯이 인사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놈은 입을 굳게 다물고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잘들 있었나?”
“무, 물론입니다.”
“……”
“대답 똑바로 안 해?!”
“더,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접객실 소파가 푹신해 잘 잤습니다!”
세 남자의 반응에 가장 놀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치히로였다.
내가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이들이 이토록 나를 두려워 하는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나 주고받을 만큼 나는 한가하지 않다.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너희 셋. 마력 돌려받고 싶지?”
“예! 물론입니다!”
“도, 돌려 주시는 겁니까?”
“다시 초월자가 될 수만 있다면… 뭐든,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정말? 무슨 일이든? 구라 아니지? 나 속여 놓고 막상 힘을 되찾으면 다시 덤비는 거 아냐?”
“저, 절대 그런 일은…”
“목숨을 걸고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제가 어찌 감히 강정혁 님을 상대로… 목숨이 아깝습니다.”
“저엉말? 지인짜로? 막 일본으로 돌아가서 내 이야기 하면서 뒷담 까고 복수해 달라고 하고 안 그럴 거야?”
세 남자는 격하게 부정했다.
나는 피식 웃고는 재차 물었다.
“정말 뭐든지 한다고?”
세 남자는 여전히 긍정했다.
“좋아, 그럼 세 사람의 마력을 모두 원래대로 돌려주지.”
하나 같이 크게 기뻐한다.
“대신 조건이 있어.”
“예! 뭐든 말씀하십쇼.”
나는 옆에서 멀뚱멀뚱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치히로를 바라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표정을 가다듬고 세 남자를 향해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너희 세 놈은 지금부터 일본을 배신하고 죽을 때까지 오키나와의 편에 선다.”
내 발언과 동시, 세 남자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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