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ed dungeon life RAW novel - Chapter (220)
적나라한 던전생활-220화(220/238)
외전 1편
다음 날.
막 공항에 도착한 홍은영은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이신 거에요!”
“오랜만에 보는데 처음부터 화 낼 겁니까?”
“당연하죠! 당신 때문에 제 스케줄이 엉망이란 말이에요! 갑자기 오키나와에 오라니, 그런 게 쉽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왔으면 됐지 않습니까.”
“안 대통령이 급하게 군용기 사용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면 못 왔을 거라고요.”
폐쇄됐던 오키나와 공항은 오늘 부로 다시 공항으로서의 기능을 재개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 게이트가 폭주해 한 바탕 난리가 났던 섬에 곧바로 항공기를 띄우려는 민간 항공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홍은영은 지난 하루 동안 항공 편을 구하지 못해 무척 곤란한 상황이었다.
당장 오키나와로 튀어오라는 내 협박에 가까운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중계나 안 했으면 또 몰라. 그 징그럽게 커다란 괴물 사마귀? 사마귀 맞죠? 그런 걸 대놓고 인터넷에 공개해 버리면 어떤 항공사에서 비행기를 띄우겠냐고요. 무서워서.”
“그 이야기는 그만 하죠. 고생해서 왔다는 거 알겠으니까.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 사장 망신 주려고 여기 온 겁니까? 홍 부사장.”
“……”
내 바로 등 뒤에 잔뜩 나와있는 오키나와 각성 총국의 실무관들을 슬쩍 확인한 홍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시킨 일이나 하세요. 까불지 말고. 아니면 이 자리에서 저에게 혼 좀 나셔야 정신 차리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사장님.”
잔뜩 화가 났던 홍은영의 기세가 금세 사그라들었다.
나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다.
지금 더 대들었다가는 정말 이 자리에서 뭐든 시작할 거라는 걸.
속은 진성 변태인 주제에, 남들 앞에서 자신의 변태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것이 바로 이 녀석이다.
“어제 전화로 대강 이야기 한 것처럼 그대로 진행 하세요. 잘 모르겠으면 저에게 바로 물어보시고.”
“네… 어? 사장님은요? 설마, 저만 여기 두고 바로 한국으로 가시는 건 아니죠?”
내가 그녀를 지나쳐 군용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제가 할 일은 다 끝났거든요.”
“그, 그래도… 전 일본어도 할 줄 모른단 말이에요!”
나는 무심한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 저 보고 당신 통역사 역할이나 하라는 겁니까? 사장이 부사장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하지만…”
“걱정할 거 없어요. 한국 말 가능한 사람들이라면 여기에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힝, 너무해.”
그녀는 매우 실망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미안하지만 안 통한다.
“그럼 수고.”
홍은영은 허망한 얼굴로 멀어지는 내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속으로 내 욕을 한 바가지 했을 것이다.
나는 괜스레 미소 지었다.
어쨌거나 이걸로 내 오키나와 여행은 끝이 난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강정혁 초월자님! 곧바로 귀환 하시겠습니까?”
“주유는 끝마쳤습니다. 원하시면 당장 출발 가능한 상태입니다.”
군인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군용기에 오르기 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본다.
숨 막힐 정도로 새파란 창공이 눈에 들어온다.
“날씨 한번 더럽게 맑네.”
언제 또 다시 여길 방문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나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그 아리따운 치히로를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
“가죠.”
나는 난생 처음 보는 군용기에 몸을 실었다.
“그나저나 진짜 안 올 줄이야.”
아무리 바빠도 마지막 배웅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비행기가 활주로를 가로질러 하늘 위로 떠오를 때까지도, 치히로는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 *
각성 총국 국장실 창문 밖 저 멀리로 새까만 비행기가 한 대가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치히로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맨 손을 꽉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사요…나라.”
그녀는 일부러 배웅을 나가지 않았다.
어제 저녁 휴게실에서의 그 모습을 본 이후로 그 남자의 그림자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왠지, 이래야 할 것만 같았을 뿐이다.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런데 막상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봤더니 가슴 한 쪽이 몹시 불편하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본능이 왜, 그 남자의 마지막 배웅을 거부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흑…”
결코 참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 눈물을.
어쩌면 추하게 붙잡았을지도 모른다.
각성 총국의 요원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서.
그 남자와의 작별 앞에서 힘 없이 무너져 내릴 자신을 뻔히 알기에, 자신의 본능이 그 남자와의 마지막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리라.
“보고 싶어…”
치히로는 조용히 흐느꼈다.
지금 당장 그 남자를 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자신에게 결코 허락되지 않는 일.
현 오키나와에는 이런 사사로운 자신의 감정보다 수십 수 백 배 중요한 일들이 산더미 만큼 산재해 있다.
“……”
겨우 마음을 추스린 그녀는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 콧물을 훔쳤다.
그리고 고요하게 다짐해 본다.
먼 훗날.
이 소중한 오키나와에 안정된 평화가 찾아오게 되면.
그때는 꼭 그이를 만나러 가겠다고.
그 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서는 이렇게 바보처럼 울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짝!
“할 수 있어.”
그녀는 자신의 양 볼을 세게 때렸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아야야….”
다만 너무 의욕이 앞선 나머지 힘 조절을 잘못 했다.
“공주님. 한국의 어웨이크 레이디 부사장님께서 오셨습니다.”
“네. 지금 바로 나가요.”
급히 거울을 확인했다.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는 얼굴.
그녀는 급히 양 볼을 문지르며 밖으로 향했다.
* * *
“하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사무실에 출근했다.
오키나와에 다녀온 지 벌써 한 달.
회사의 오키나와 지부 설립은 순조롭게 진행 되었고, 박유리를 비롯한 초월자들의 파견도 완료되었다.
그 동네의 현재 분위기야 아무리 나라도 알 수 없지만,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일 없이 평화로운 모양이다.
적어도 보고서엔 그렇게 써 있었다.
아무리 내가 여러가지 방어막을 쳐 놓긴 했다 하더라도 일본 놈들이 이렇게 쥐 죽은 듯 조용한 건 조금 의외다.
분명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 게 뻔한데, 뭐 당장 알 도리가 없으니 일단은 방관 중이다.
“응? 일찍 출근하셨네요.”
아침부터 사무실에 모습을 보였더니 직원들이 의아해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 궁금한 것만 물어볼 뿐이다.
“연구소에선 연락 없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 했어요. 가공이 까다롭지만 활용 방법은 무궁무진할 거라네요. 특히 방어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요. 다만 섬유 소재로 가공은 힘들 것 같다고… 그래서 방패나 갑옷 형태로 제작하는 쪽을 연구해 보겠다네요.”
오키나와에서 회수한 비늘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 수년 동안 일본이나 미국, 심지어는 중국 쪽에서도 서로 사가지 못해 안달 났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각성자용 말고, 다른 활용 방법은?”
“사장님께서 예상하신 것처럼 강화 금속의 대체 용도로 완벽에 가깝다네요. 군용이든 산업용이든 부르는 게 값일 거라고…”
“흐흐흐. 역시 그렇대죠?”
내가 징그럽게 웃자 여직원의 눈썹이 가볍게 떨린다.
“네… 근데, 다 파시게요? 부사장님께서는 우리 회사가 독식하는 쪽으로 생각하시던데.”
“팔아야죠. 그게 다 얼만데.”
돈… 충분히 잘 벌고 있긴 하다.
회사에 소속된 초월자의 숫자가 말해주듯.
그러나 한참 아직 부족하다.
아직 이 빌딩의 대출금조차 다 갚지 못했을 정도니까.
게다가 사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지금의 벌이 가지곤 택도 없다.
우선 지난 번처럼 대통령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도록 전용기도 몇 대 갖고 싶고, 그 전용기를 보관할 창고와 전용 활주로도 있는 편이 좋다.
그에 따른 관리 인원이나 파일럿도 고용해야 하고…
고작 비행기 몇 대 가지려는 데도 이럴 정도니 역시 한참 멀었다.
“음, 연구소 쪽은 그렇다 치고, 또 다른 쪽은요?”
“이미 익숙한 일이긴 하지만, 사장님께서 요전번 오키나와를 다녀오신 이후로 더욱 다양한 국가에서 파견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요.”
“그렇겠죠. 우선 단가 쎈 곳부터 하나씩 돌려요. 초월자 많다고 동시에 여러 군데 파견 가는 건 좀 위험할 것 같으니까 순서대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문제?”
“네. 그 단가가 가장 센 곳이 하필 중국이에요.”
중국? 거긴 초월자도 인구빨로 커버하는 동네 아니었나?
내가 묻자 여직원이 오묘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니까요. 언론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어 중국 내부 게이트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지난 수년 동안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잖아요? 청와대에서 제공해준 첩보에도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하라고 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파견 요청이 왔어요. 그것도 사장님을 직접 지목하면서.”
“내가 당분간은 다른 나라에 안 갈 거라고 하지 않았나?”
“알죠.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그… 중국 측에서 제시한 액수가…”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얼마길래 그래?”
그녀는 한번 심호흡 한 뒤에 입을 열었다.
“무려… 2조원이요.”
“…뭐?!”
너무 황당해 말이 다 안 나올 지경이었다.
물론 내 가치는 고작 2조원으로는 택도 없지만 고작 일회성 출장에 2조원을 제시하는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
“설마 위안화는 아니지?”
“달러에요 사장님.”
“그렇군.”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일단, 의뢰 내용이나 함 봐볼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이 일로 부사장 회의 중이에요.”
“뭐? 나 없이?”
“네.”
아주 지들 마음대로네.
“어디서 하는데? 회의실?”
“아뇨. 아마 안 부사장님 방에서 이야기 중이실 거에요.”
“그래. 보고 수고했어. 그럼 일 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 소라 선배의 방으로 향했다.
아니, 이 여 자들이 내 파견 문제를 왜 자기들끼리 멋대로 정하려는 거지?
오냐오냐 해 줬더니 이거 안 되겠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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