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ed dungeon life RAW novel - Chapter (232)
적나라한 던전생활-232화(232/238)
외전 1편
“헉… 헉… 후우…”
한계까지 마력을 끌어다 사용한 안지현은 숨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스킬의 여파로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새하얗게 피어 올랐다.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쏟아지던 눈은 어느덧 멎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그리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를 중심으로 반경 백 여 미터 내에는 지금도 눈이 수북이 쌓여있다.
아무리 무더운 날이라도 이 많은 양을 전부 녹이려면 족히 반나절은 걸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력이 가장 집중된 정면.
아스팔트에 대가리를 처박은 괴물 보스 녀석은 온 몸이 꽁꽁 얼어 붙었다.
전신의 혈액이 서서히 얼어붙는 와중에 어찌나 발버둥을 친 건지, 얼음에 드문드문 놈의 피가 섞여 있는 것이 보인다.
“이제 마무리를…”
놈들의 생명력은 기이할 정도로 끈질기다.
하물며 보스.
이 것으로 놈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저 얼음이 녹아버리기 전에 반드시 놈의 사지와 머리를 절단해야 한다.
“너무… 무리했어.”
마무리를 짓기 위해 다가가는 그녀의 하반신이 가볍게 떨렸다.
너무 무리한 탓이다.
하지만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스르릉.
허리춤에 멘 검집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전사의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게 세공된 환도.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그녀를 위해 특별 제작된 쓸데없이 비싸기만 한 물건이다.
그러나 화려한 외형이 전부는 아니다.
최상급 특수 마나 코팅이 되어 있어 괴물을 베는데 부족함이 없는 물건이다.
다만 더러운 괴물 녀석에게 사용하기에 괜히 아까운 마음이 들 뿐.
“후우…”
거대한 얼음 덩어리 앞에 선 그녀는 크게 숨을 골랐다.
마법 전문이지만 무기 역시 웬만큼 다룰 수 있다.
그녀 또한 아카데미 출신이니까.
“하아아!”
단지 이미 거의 바닥나 버린 마력을 쥐어 짜내는 것이 조금 힘겨웠을 뿐.
파가각!
마력을 머금은 환도가 꽁꽁 언 두터운 얼음을 깊게 파고 들었다.
“하아, 하아… 젠장! 한 번으론 부족한가.”
자신이 사용한 스킬이지만 엄청난 강도다.
아무런 방해 없이 자세를 잡고 집중해 내리 그엇음에도 얼음을 두 동강 내기는커녕 절반도 파고들지 못했다.
“이익!”
카가각! 카가각!
한 번으로 부족하면 두 번, 세 번!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으아아아아!”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마력이 부족하면 근력으로.
근력이 바닥나면 근성으로.
그녀는 죽을 힘을 다해 얼음을 깎아 내려갔다.
최후의 순간을 위해 마력을 아껴 가면서.
푹!
그리고 드디어, 환도가 얼음을 가른 끝에 놈의 뒷 목덜미에 닿았다.
“이걸로 진짜 마지막이야! 하아앗!”
남은 한 방울의 마나까지 쥐어 짜낸 안지현이 갈라진 얼음 사이로 드러난 보스의 뒷 목덜미를 향해 강하게 검을 내리 그었다.
푸욱!
“…!?”
환도가 놈의 목을 파고들긴 했다.
단지 그것이 겨우 손가락 한 마디 정도였을 뿐.
“뭐… 야? 왜 이리 단단해?”
괴물의 몸통이 너무 꽁꽁 얼어 붙어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남은 마력이 지나치게 적기 때문인 것일까?
그녀는 몇 번 더 검을 휘두르다가 제 풀에 지쳐 바닥에 주저앉았다.
새하얀 눈 위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놈의 뒷목에는 칼로 저민듯 한 상처가 여럿 생겼을 뿐, 머리와 몸통은 아직도 굳건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아… 하아…”
이젠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우는 정도가 한계다.
안지현은 분에 찬 얼굴로 어쩔 수 없이 신호를 보냈다.
– 예! 각하!
“하아… 하아… 여기로 좀 와주세요…. 마무리를…”
– 예! 즉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쪽은… 어떤가요.”
– 상대해야 할 괴물의 수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전부 정리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신호를 받은 그녀는 지쳤다는 듯이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별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밤하늘이 그녀를 짓누르는 듯 했다.
‘대통령 체면이… 아니, 초월자 체면이 말이 아니네…’
그래도 그녀 혼자 강력한 보스를 저지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이 한심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위안 삼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수 없이 내리쳤던 괴물 보스의 목 부분에서, 놈의 두터운 혈관이 꿈틀 하고 움직였다는 사실을.
* * *
“제길! 이거 대체 무슨 난리야!”
김이솔은 갑자기 등장한 강력한 보스 몬스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일대 일로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한 번에 상대해야 하는 보스가 한 녀석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벌써 몇 시간 동안 수백 수 천의 괴물을 시체 더미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놈들은 아직도 끝없이 몰려오는 중이다.
콰앙!
백화연이 날린 마력 화살이 등 뒤에서 접근하던 정예 몬스터의 대가리를 꿰뚫고, 김이솔의 볼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조, 조심하세요 이솔씨.”
“닥쳐 백화연!”
“하지만…”
휘리리릭- 촤악! 촤좌좌좍!
김이솔이 집어 던진 단도가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 백화연을 덮쳐 오는 괴물 서너 마리의 목을 모조리 잘라냈다.
“그렇게 잔소리 할 시간 있으면 한 놈이라도 더 줄이란 말이야!”
“아아, 예!”
그녀들은 한동안 서로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장소를 떨어져 밀려오는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서로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본능적이었다.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보스의 개체 수가 너무 많았던 탓이다.
“도움 좀 받으려고 왔더니, 오히려 더 심각해졌잖아!”
“그건 저도 마찬가지…”
“시끄러워!”
문제가 있다면 계획과 다르게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것.
오히려 동시에 상대해야 할 보스의 숫자가 더욱 많아지면서 난전이 더욱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대체 이놈들 뭐야? 왜 지들 끼리는 안 싸우는 거야?!”
“그건 저도 잘…”
본래 몬스터들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나 있는 족속이다.
물론 고블린은 고블린들 끼리, 혹은 오크는 오크끼리.
동족, 혹은 동일 게이트 내 녀석들 끼리는 잡아먹지 않는 경우가 흔하긴 하지만, 2중, 혹은 다중 게이트 때문에 한 공간에서 마주친 놈들은 백이면 백 곧바로 서로를 물어 뜯는 것이 지금까지 그녀가 알던 괴물들의 생태였다.
그런데 오늘 나타난 녀석들은 사이좋게 합심해서 짜기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남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심지어 보스 몬스터들까지.
게이트 내 최강의 존재인 보스에 의해 통솔 당하는 경우라면 또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저 빌어먹을 보스 몬스터놈들까지 떼로 나타나 일제히 인간을 공격하고 있지 않은가.
김이솔은 이 모든 것이 너무 황당해 말이 다 안 나올 지경이었다.
“이놈들 분명… 뭔가 있어.”
세상에는 별에 별 능력자가 다 존재한다.
박유리 그 년처럼 전기를 다루는 괴물이 있는가 하면, 이동글처럼 멍청한 얼굴로 기적과도 같은 회복 마법을 사용한다던가.
특히 강정혁 그 남자도 그렇고…
그러니 저 괴물들의 뒤에 어떤 능력자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김이솔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대체 누굴까. 북한 사람? 아니면 중국? 그것도 아니면 일본?’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 괴물들의 배후에서 누군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이럴 때 그 남자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이 사실을 그에게 전해야 한다.
또 이전처럼 누군가 심각한 위험에 빠지기 전에.
촤아악! 촤악!
김이솔은 자신의 신장 만큼이나 긴 장도를 휘두르며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에게는 이제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런 난전을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백화연! 넌 이제 그만 공격해! 저 뒤로 빠져있어!”
“예?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해! 잘 들어!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최고의 기회를 만들어 낼 테니까, 넌 쉬고 있다가 내가 신호 하면 보스 놈들 대가리를 꿰뚫어버려! 알았어!?”
“아, 알겠어요. 저… 조심하세요.”
보스만 쓰러뜨리면 잔챙이 처리는 일도 아니다.
그녀는 더 힘이 빠지기 전에 놈들을 끝장 낼 각오를 다졌다.
* * *
“도망쳐어어!!”
쿠구구궁!
“으아악!”
“뭐하고 있는 거야! 아직 안 끝났어! 빨리 피하란 말이야!”
“탱커들 그냥 뒤로 빠져! 놈에게는 방어가 전혀 안 통해!”
보스 몬스터가 등장한 것은 파주 북부나 김이솔이 있던 판문점 일대 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들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이닥친 것처럼, 보스 몬스터 역시 휴전선 각지에 나타나 겨우 유지되고 있던 균형을 깨뜨렸다.
초월자가 버티고 있는 장소는 그나마 나았다.
문제는 초월자가 커버하지 못하는 지역.
처음 돌파 당한 곳이 아직 파주 북부였을 뿐이지, 다른 지역도 그저 시간 문제인 상황이었다.
때문에 합동참모본부에서는 계획을 일부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SRBM(단거리 탄도 미사일) 준비 시켜!”
북측에서 사용한 미사일이 휴전선 이남으로 넘어오진 않았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하려고 했던 지대지 미사일을 꺼내 든 것이다.
사후에 불리하게 작용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전선 곳곳이 뚫리면 그 피해가 얼마나 클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비겁한 놈들. 당장 전쟁이라도 벌일 것처럼 하더니, 미사일은 자기들 영공에서 터뜨리고 몬스터만 떠밀려 보내다니. 이런 노골적인 수단을 동원해 놓고 차후에는 발뺌이라도 할 셈인가?”
“하지만 우리 측 미사일이 휴전선을 넘어 북한 땅으로 넘어가는 순간 놈들에게 쓸데없는 빌미를 주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방관하고 있을 수 만은 없지 않나! 전선이 밀리면 괴물 놈들이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 게 뻔한데!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봐야지! 대통령께서도 권한을 일임 하셨으니 그대로 실행해! 책임은 내가 진다!”
“예!”
미사일의 목적은 괴물들의 소탕이 아니다.
일부 잔챙이면 모를까, 단순 폭발 물리력이나 열기 폭풍으로는 미지의 힘인 마력으로 보호 받는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로 아무런 효과가 없다.
시도하는 것은 그저 놈들의 관심을 끌어 시간을 벌 목적이다.
처음 북한 놈들이 비무장지대 상공에서 미사일을 폭발 시켜 괴물들을 유인한 것처럼.
“준비 끝났습니다!”
“바로 발사해!”
“예!”
미사일이 발사됐다.
‘시간을 충분히 벌어줘야 하는데…’
계획대로 일이 풀리더라도, 이는 시간을 끌기 위한 임시 방편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건.
‘놈들은 대체 무슨 수로 저 많은 괴물을 병력으로 활용 가능해진 거지? 역시 중국이 관여한 건가?’
그렇다면 정말 큰 문제다.
중국과 북한이 짜고 치는 일이든, 모종의 이유로 배후에서 지원을 자처한 것이든.
뭐가 어찌 되었든 저 거대한 중국과의 전면전 만큼은 절대 피해야 한다.
‘아무리 강정혁 그 자가 강하다고 해도 힘의 차이가 너무 커. 각성자야 초월자 앞에서 아무 힘도 못 쓴다지만 애초에 초월자의 수만 비교해도 수십 배의 차이가 나지 않나. 설사 인도와 미국이 우리 편을 들어 준다 해도 정작 전장이 되는 것이 이 한반도 땅이어선…’
합참 의장의 머리 속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는 가운데, 발사한 미사일 수십 여 발이 휴전선 10Km 북쪽 상공에 도달했다.
이제 일제히 폭발해 그 소음과 빛과 열기로 괴물들을 유인할 것이다.
그런데.
“불발? 발사한 미사일이 모조리 불발탄이었단 말인가?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아닙니다! 모든 미사일이 그런 것은 아니고, 특정 지역으로 날아간 미사일만 폭발 반응이 없었답니다!”
“거기가 어딘데?!”
“판문점 북쪽 인근입니다! 해당 지역으로 날아간 미사일이 모조리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감시 위성으로 상황 파악 중입니다! 확인이 끝나는 대로 즉시 보고를…”
수분 후, 기다렸던 보고가 도착했다.
그리고 이를 전해 들은 합참 내 인물들의 얼굴이 일제히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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