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hak RAW novel - Chapter 21
21화
“넣진 않을 거야. 잠깐만, 잠깐만 이러고 있자.”
“으응…….”
이렇게 문지르기만 한다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나쁘지 않은 느낌에 믿고 맡겼는데 순 거짓말이었다.
틈을 노리고 있다가 실수인 척 푹 들이박힌 성기에 자지러지자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재게 놀려 댔다. 결국 연달아 한참을 시달리고 나서야 풀려났다.
흥분의 파고가 가라앉은 자리에 열상의 아픔이 몰려왔다. 찡그린 표정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한 정해준이 아기를 누이듯 조심스레 나를 자리에 눕히고 약 상자를 들고 왔다.
엉망일 텐데, 거길 들여다보겠다고? 정해준이 질구를 뚫어져라 살핀다 생각하니 이미 겪었음에도 수치스러웠다.
“자, 잠깐만. 내가…….”
“손 치워.”
다정하나 단호하게 음부를 가린 손을 밀어 낸 정해준이 약 상자를 열었다.
“그럼, 씻, 씻고라도 올게……, 악!”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했다. 갓 태어난 사슴처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도무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수건 가져올게. 조금만 기다려.”
정해준은 잘만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데 너무 나 혼자만 느꼈나 싶어 창피해졌다. 그사이 미지근한 물에 수건을 적셔 온 정해준이 조심조심 사타구니를 닦기 시작했다. 정액은 모두 콘돔에 갇혔으니 부옇게 묻어나는 건 모두 내가 흘린 애액일 터였다. 와중에 흰 수건에 붉게 번지는 혈흔은 모른 척했다.
“아팠겠다.”
중심부마저 세심히 닦아 낸 정해준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중얼거렸다. 무척 걱정스러운 말투에 궁금해져 아래를 확인했다가 무참한 광경에 그냥 고개를 돌렸다. 함부로 짓이겨진 속살이 으깨놓은 석류처럼 붉었다.
스치기만 해도 한 꺼풀 벗겨질 것처럼 부푼 살점에 정해준이 살금살금 약을 펴 발랐다. 충분히 조심하고 있는데도 따끔따끔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흐으…….”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자 몹시 미안해하며 정해준이 안심시켰다.
“충분히 푼다고 풀었는데……. 그래도 다음엔 괜찮을 거야. 내가 더 노력할게.”
“…….”
다음? 덜컥 겁부터 났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자, 침묵을 이상스레 여긴 정해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희게 질린 낯을 확인하곤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머뭇머뭇 어물거리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제야 굳은 얼굴을 푼 정해준이 환히 웃었다.
“다음번엔 더 기분 좋게 해 줄게.”
이번에도 내가 좋아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물론 처음인데도 절정에 오른 건 맞지만…….
“오늘보다 훨씬 잘할 테니까 기대해.”
잘한다는 의미에 더 길게, 더 많이 한다는 뜻도 포함일까. 감당할 수 없이 들이닥치던 쾌감을 떠올리자 아랫배가 움찔 조여들었다. 벌써부터 버거운 흥분이 일어 몸서리치다 정해준에게 들킬라, 무릎을 오므렸다.
“이만하면 된 것 같아.”
“그래, 좀 쉬고 있어.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또?”
“기운 뺐는데 영양 보충해야지.”
기운은 네가 더 뺀 것 같은데. 그렇게 격하게 움직여 놓고. 도리어 팔팔해 보이는 걸 보면 아닌 것도 같고. 아리송해하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다.
“가 봐야 돼. 너무 늦게 다니면 싫어하셔서. 저녁은 집에 가서 먹을게.”
“한 입이라도…….”
“통금 있어, 미안.”
통금? 정해준에겐 개념조차 생소한지 고개를 갸웃한다.
“보수적이셔서…….”
내가 생각해도 설득력 없는 이유를 대자 정해준의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너랑 나랑 대낮부터 뭐 했는지 알면 기절하시겠네.”
“……놀리지 마.”
“미안.”
바로 사과한 정해준이 보내기 힘들어서 그랬다고, 용서를 구했다.
“이렇게 떨어지기 싫어서 앞으로 매일 너 어떻게 집에 들여보낼지, 그게 제일 걱정이다.”
떨어지기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투영하듯 옷을 입는 손길이 느릿느릿 늘어졌다.
집이랑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길에 내려 주고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는 정해준을 뒤에 두고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집에 도착했다.
“해원 학생, 왔어?”
김 여사님이 마침 저녁 준비하고 있었는데 잘됐다고, 어서 와 앉으라고 수선스럽게 손짓했다. 무척 허기가 졌는데도, 선뜻 식탁으로 향하지 못했다. 왠지, 비밀스러운 오늘의 정사를 들킬 것만 같아서.
저녁은 포기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문을 기대고 한참을 서 있었다.
진짜 성인이 된 것 같은 야릇한 고양감이 욱신거리는 다리 사이에 무지근하게 고여 있었다.
***
정해준의 말이 맞았다. 이틀 뒤 찾아온 ‘다음’은 몹시 긴장한 것치고 나름 괜찮았다. 골반이 뻐근하게 벌어지는 둔통도, 생경한 이물감도 여전했지만, 그보다 좋은 느낌이 더 컸다. 그래서 눈만 마주치면 들러붙어 서로의 몸을 탐닉했다. 덕분에 과외는 구하지도 못했다.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빠와 같은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았다. 멸시의 손가락질을 또 하나 더하는 건 싫었으므로.
하여 딱 한 번, 과외를 구하기 위해 시범 수업에 다녀온 날, 정해준은 진심으로 기분 상한 티를 냈다. 너랑 나 사이에 계산 같은 거 하지 말자는 소리에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하자 답답한 듯 혀를 찼다. 가만히 있으면 자기가 알아서 다 해 줄 텐데, 뭐가 그리 어렵냐고.
“약게 좀 굴자.”
마음껏 이용해 먹으라는 소리가 영 이상하게만 들렸다. 세상에 그런 관계가 있나?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무한히 퍼 주는 관계가? 적어도 내 세상엔 없었다. 없어 왔다. 그런 걸 부르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 있지 않나. 절로 주눅 들어 눈치를 살폈다.
“꽃뱀……, 같잖아.”
“뭐?”
정해준이 즉각 황당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 대답에 대한 재고 따위는 저 멀리 갖다 버리고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볼을 꼬집어 댔다.
“너 같은 꽃뱀이면 열 마리도 키우겠다.”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내 등을 드레스 룸으로 떠민 정해준이 선물이 있으니 풀어 보라고 종용했다.
“입고 나와, 내 소원.”
이번에는 옷인 듯했다. 이미 정해준에게 선물 받은 게 많은데 또 선물이라니. 패드나 무선 이어폰 같은 고가의 선물도 있었다. 한사코 거절해도 정해준은 한사코 갖다 안겼다. 쓰지 않겠다고 하자 버리는 시늉까지 했다. 환불도 안 된다는 말에 하는 수 없이 받아서 쓰는 나도 나지만…….
한숨을 폭 내쉬며 거울 앞에 놓인 상자를 풀었다. 남색과 흰색, 원피스 두 벌이 곱게 접혀 있었다. 기장이 무릎 위 반 뼘 정도로 떨어지는 스포티한 원피스. 제집에선 치마만 입으라고 그렇게 노래를 하더니, 언제나 멋쩍게 웃기만 할 뿐 응하지 않자 아예 제 쪽에서 마련한 모양이었다.
“음…….”
고민하다가 원피스 두 벌 중 남색을 골랐다. 옷을 갈아입고 거울을 보았다가 난감한 기분에 입술을 물었다.
‘어색해.’
너무 야하지 않나. 몸에 딱 달라붙지 않으면서 활동적인 스타일인데도 그랬다. 아무래도 짙은 남색이 흰 피부랑 대비돼서 그렇게 보이는 듯했다. 그럼 흰색은 좀 나을까 싶어 갈아입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뭔가 요부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살며시 거실로 나섰다. 난생처음 치마를 입은 사람처럼 절로 쭈뼛거리게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통틀어 6년 동안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느낌이 교복 치마와는 느낌이 딴판이었다.
“어울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있던 정해준이 나를 발견하곤 벌떡 일어나 앉았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에 괜히 매무새를 살폈다.
뒤집어 입었나? 그럴 리가……?
슬쩍슬쩍 허리를 뒤채 뭐가 문제인가 찾는 동안 정해준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성큼성큼 다가온 정해준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제 품에 날 가두었다.
“진짜 예쁘다.”
전해져 오는 떨림에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했다. 요부처럼 보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저 멀리 사라졌다. 까짓, 정해준이 원하면 뭐라도 되고 싶었다. 팔을 뒤로 돌려 정해준을 힘껏 부둥켜안았다. 별안간 배꼽 언저리에 단단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
“책임져.”
나를 그대로 번쩍 안아 올려 몇 걸음 뒤 아일랜드 식탁 위에 앉힌 정해준이 치마 밑으로 손을 쑥 넣으며 험악하게 을러댔다.
“내가 선물한 거긴 한데……, 밖에선 이거 입지 마.”
그럴 생각도 없었다고 말할 틈이 없었다. 반쯤 걷어 올려진 치마, 하얗게 뻗은 두 다리 사이로 속옷을 잡아 내리는 굵은 팔뚝이 지나치게 선정적이었다.
“진짜, 내가 짜증이 나서.”
어째서 이토록 화가 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 분위기 좋았는데. 영문 몰라 하며 물었다. 왜?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 모를 만큼 작은 중얼거림에 내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정해준이 살짝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다른 새끼들 껄떡댈까 봐…….”
제가 뱉어 놓은 말이 다시 화를 돋운 모양이었다. 생각만 해도 못 참겠다는 듯, 음순을 벌리고 귀두를 맞춰 놓은 정해준이 허리를 거세게 추켜올렸다.
“아학!”
단박에 박혀 든 성기가 자궁 입구를 짓찧었다. 수만 개의 별이 눈앞에서 점멸했다. 요즘 들어서는 줄곧 이런 식이었다. 정해준이 박아 주기만 해도 바로 몸이 달아올라선…….
“후…….”
정해준의 목구멍에서 만족스러운 신음이 끓었다.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 끙끙거리는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또 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