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hak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떼쓴다고 다 들어 주면 버릇 나빠져.”
“떼쓰는 건 애들 특권이야. 겨우 한때고.”
꼭 애들 열은 키워 본 것처럼 대꾸한 정해준이 문득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빙긋이 웃었다. 뭐야. 자기만 너그러운 어른인가? 혼자만 속 좁은 좀생이가 된 기분에 뾰로통하게 정해준을 쪼았다.
“웃어?”
“그냥, 이러고 있으니까 꼭 부부 같아서. 아, 연인인가.”
“…….”
씁쓸한 미소가 걸린 정해준의 두 눈에 그리움이 사무쳐 있었다. 저번 주, 키즈 카페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인연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꼬인다는데, 우리 관계는 잘못의 주체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나, 이해원.
죄스러움에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내 잘못을 바로잡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 해도 지금과 달라진 결과를 이끌어 낼 자신이 없었다. 답습하고 말겠지. 그게 정해준에게 못내 미안했다.
“나,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이해원이 어떤 사람인데.”
“……나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이렇게까지 할 이유, 정말 없는데.
잠자코 듣고 있던 정해준이 언젠가도 이런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고 혼잣말했다. 정해준의 기억이 맞았다.
몇 번, 불안에 차서 얘기했었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나쁜 끝을 내고야 말면서. 그때 정해준은 내가 대단한 걸 나만 모른다 했다. 지금의 정해준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게 중요해?”
“…….”
“꼭 대단하고 특출하고, 그런 사람이어야만 해? 넌 그래?”
“아니.”
물론 넌 대단하고 특출하지만. 그렇더라도 정해준의 말대로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다. 그냥, 정해준이 좋았다.
회사 대표가 아니라도, 배경이 보잘것없어도, 정해준이면 되었다. 정해준이 가진 많은 걸 바란 적은 없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으니까.
가만히 고개를 가로젓는 내게 정해준이 승아에게 하듯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다. 아주 잘 생각했다는 듯이.
“그럼 됐어.”
그럼 된 거구나. 그럼 된 거야.
별것 아닌 말인데도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동시에 세상이 온통 반짝반짝 예쁘게 빛났다.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게 부서지고 있었다. 바야흐로 봄이었다.
***
승아는 잠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 잠귀가 예민해서 아기일 때도 톡톡히 속을 썩이더니 조금 자라서도 애먹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작은 소리에도 벌떡 깨어 우는 건 많이 줄었지만, 잠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잠투정도 심해서 몇십 분이고 엉엉 우는 건 기본이라 달래 주다 지치기 일쑤였다. 너무 심할 땐 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다스리기 힘들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승아는 진짜 순하다.”
초저녁부터 색색 잠든 승아를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는 정해준에게 할 말이 없었다. 원래 잘 자는 애인데 내가 너무 바깥 활동을 안 시켰나? 잠시 반성도 했다. 넘치는 기운을 발산하지 못해 잠투정이 그리 심했는지 모른다고.
여하튼 신기했다. 보송한 담요를 허리께에 살짝 얹어 주고 문틈을 조금 남겨 방문을 닫았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어리둥절했다. 지금부터 최소 두 시간은 자기 싫어 뻗대고 징징거려야 정상인데. 고요한 집 안이 어색해 꼭 남의 집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소파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지금 내외해?”
옆자리를 비워 놨던 정해준이 새삼 저를 피하는 줄 착각하고 어이없어하며 자기 허벅지 위를 툭툭 쳤다. 조심스레 자리를 옮기자 티셔츠 안으로 거침없이 손길이 파고들었다.
“앗, 무슨…….”
“보모 역할 톡톡히 했는데 상 안 줄 거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정해준이 먼저 탈의했다. 이어 청바지와 속옷이 함께 쑥 벗겨져 나갔다. 다리를 활짝 벌려 놓자 음란한 냄새를 맡은 살 기둥이 들어갈 구멍을 탐지하듯 사납게 꺼떡거렸다.
“승아 깨기라도 하면, 흣…….”
“업어 가도 모르겠던데.”
“그래도 소리 나면, 어떡, 아아, 읏!”
불쑥 들어선 선단이 초입을 묵직하게 갈랐다. 느리지만 꾸준한 진입에 몸서리쳤다. 내벽의 끝까지 채워진 부피감에 호흡이 버거웠다. 조금 더 대가리를 들이밀기 위해 꾹꾹 허리를 눌러대던 정해준이 비로소 만족한 듯 가볍게 아래를 치댔다.
“신음 참아.”
“아니, 읍……!”
승아가 잠들어 있는 방을 눈짓하느라 돌돌 말린 팬티가 내 얼굴 쪽으로 다가오는 걸 미처 보지 못했다. 뭉친 천을 입 안에 쑤셔 넣은 정해준이 심술궂게 웃었다.
“살살 할게, 살살.”
말은 그렇게 하면서 퍽퍽 쳐올리는 허리 짓에 다분히 의도가 담겨 있었다. 어디까지 참나 보자는. 흑, 제멋대로 흘러 버린 신음에 두 손으로 입술을 겹쳐 덮었다. 무의미한 행위였다. 철썩철썩, 젖은 살 부딪치는 소리가 보다 요란하게 울렸으므로.
계속해서 치대는 몸짓에 입을 가렸던 손은 어느새 정해준의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고 있었고 덕분에 입 속에 있던 천 조각도 빠져나간 지 오래였다.
“읏! 응! 해준아, 안, 흣!”
“금방 끝낼게, 응?”
거짓말. 눈알이 홱 돌아 있는 정해준을 안다. 까무러칠 때까지, 아니, 까무러쳐도 끝내 제 성에 찰 때까지 몰아붙이는 정사를.
“방으로, 흐, 가, 응?”
두말하지 않고 내 등허리를 안정적으로 받친 정해준이 늘어진 몸을 번쩍, 들쳐 안았다. 그 바람에 뽑혀져 질구 끝에 걸려 있던 귀두가 퍽! 박혀 들어 안을 때렸다. 강한 충격과 함께 저릿한 쾌감이 척추를 관통했다.
“아학!”
“미안.”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눈빛으로 정해준이 비릿하게 웃었다. 소파에서 박힌 채 침대로 걸을 때마다 걸음에 맞춰 슬쩍 빠졌던 성기가 푹푹 처박혔다. 응, 읏! 연신 신음하다 정해준의 어깨를 입에 물고 버텼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자꾸만 입술 사이로 쾌감이 샜다. 의도치 않게 목덜미를 애무하는 꼴만 됐다. 그예 괴롭히듯 허리를 음탕하게 털어 대며 정해준이 입매를 비틀어 웃었다.
“하, 난 진짜 변태 새낀가 봐.”
“흣, 앙, 읏!”
“네가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거 보면 더 괴롭혀 주고 싶은데 어쩌지.”
한계까지 차오른 쾌감은 정해준의 말대로 괴로웠다. 자꾸만 발가락 끝이 오므라졌다, 부챗살처럼 펴지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아랫배 전체가 욱신욱신 저리며 성마르게 출납하는 정해준을 빠듯하게 조이고 들었다.
“끊어 먹겠는데.”
농담하는 것치곤 정해준의 낯에서 여유가 싹 지워져 있었다. 쾌감에 흠뻑 젖어 보기 좋게 일그러진 낯이 절정에 이르기 전 시선에 잡힌 마지막 장면이었다.
“아, 아아!”
단단한 품에 안겨 허공에 뜬 채 경련했다. 축 늘어진 몸을 안고 두어 번 골반을 치받은 정해준이 훅, 숨을 몰아쉬며 가장 깊은 곳에 뿌리듯 사정했다. 덩어리진 정액이 엉덩이 사이에 흘러들어 질척하게 들러붙었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후드득, 떨어졌다.
“하아, 읍…….”
밭은 숨마저 모조리 앗아간 정해준이 여전히 성기를 박아 둔 채 좀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나를 침대 위에 눕혔다. 푹신하게 눌리며 꼭 그만큼 안을 더 파고드는 묵직한 살덩이에 자지러졌다.
“하윽!”
“예뻐 죽겠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허리에 질겁했다. 또?
“금방, 끝낸다며…….”
울 듯한 표정으로 밀어 내자 아쉬워하면서도 정해준은 서서히 몸을 물렸다. 쑤우욱, 길게도 빠져나가는 진득한 감각에 몸서리치다, 무언가 턱 걸리는 느낌에 당황했다. 선단만을 얕게 박아 놓은 정해준이 잘게 몸을 치대며 입구에서 깔짝거렸다.
“그만, 더는…….”
“내가 다 할게. 넌 누워서 좀 쉬어.”
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기가 막혀 쳐다봤지만, 봐주는 양 너그러이 말한 정해준이 내 의견은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입술을 맞춰 왔다. 혼을 빼놓으려는 듯 헤집는 혀 놀림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여전히 얕게 들락거리는 아래 안쪽이 허전했다. 빈 공간에 도리어 열이 고이는 듯하다.
아, 모르겠다, 이젠.
팔을 뻗어 뒷목을 그러안았다. 동시에 다리를 엇갈려 허리를 감았다. 발뒤꿈치로 엉덩이를 지그시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 짓쳐들었다. 흉악한 움직임에 이미 달아오른 몸이 식을 새도 없이 뜨거워졌다.
두 번, 세 번, 사정 횟수를 세는 게 무의미해질 즈음에야 정해준의 폭주는 멈추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까무러치지 않은 스스로가 용했다.
“많이 힘들었지.”
으응, 작게 웅얼거리며 허리를 틀었다. 배꼽 아래로 온통 먹먹했다. 그렇게 해 대놓고 힘드냐고 묻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걸 꼭 물어야 아나? 심지어 아래는 아직도 정해준의 물건에 꿰뚫린 채였다.
분명 서로 마주 본 채 사정했는데, 박아 둔 분신을 빼지 않고 정해준은 그대로 내 몸을 돌려 안았다. 단단하고 굵직한 기둥에 사방이 짓눌리며 휘저어졌다. 무지막지한 감각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늘어져서 색색 숨만 몰아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