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Advent (Descent of the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
1화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 (1)
-톡! 토톡! 톡!
훤칠한 외모와 달리 눈 밑의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온 삼십대 중반의 사내가 뭔가를 정신없이 두 엄지손가락으로 누르고 있다.
그것은 유리처럼 투명한 팔랑거리는 플렉시블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의 메신저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술을 실룩거리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내의 귀로 무언가가 들려왔다.
[이명님. 차량 정체 시간으로 자율주행 모드가 해지됩니다. 핸들에 두 손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그것은 그가 타고 있는 차량 A.I가 한 말이었다.
“쯧, 시대가 어느 때인데, 러시아워 시간대에도 자율 주행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냐.”
이명이 툴툴거렸다.
2026년 무렵부터 상용화된 자동차의 자율 주행모드이다.
수차례 여러 자동차 기업들에서 야심차게 정부의 승인 아래 자율주행 자동차를 선보였지만 어느 차를 막론하고 사고를 막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차량의 수많은 센서를 달고 차량 A.I를 개발해도 정체 시간이나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는 자율주행 모드가 원활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수많은 사고가 발생하면서 결국 정부는 자율 주행모드에 제한을 걸었다.
-차르륵!
이명이 왼쪽 손목에 투명한 플렉시블 스마트폰을 툭 내리쳤다.
그러자 스마트폰이 부드럽게 손목을 휘감았다.
“에휴.”
휘어지는 투명한 스마트폰이 시계처럼 손목에 감기자, 이명이 한숨을 내쉬며 핸들을 잡았다.
최대한 정체 시간 전에 심양시(瀋陽市) 공안국(시 단위 중국 경찰청)에 도착하려 했는데, 과학원에서 꾸물거린 자신의 탓이기도 했다.
퇴근 시간 때라 차들이 도로로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서둘러야 겠구만. 부국장 놈이 또 난리치겠군.”
공안국 부국장은 상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선 상사도 놈이다.
-부릉!
액셀을 밟는 오른발에 힘이 들어갔다.
오후 다섯 시 십 분.
2월이라고는 하나, 날이 아직까지 추워서 그런지 벌써 하늘이 노래지려 했다.
이러다 금방 해가 지곤 한다.
빌딩 숲을 지나 고가 도로를 타고 위로 올라가면서 낮은 빌딩보다 높아지자, 멀리 서쪽으로 거대한 방벽들이 보였다.
회색 빛깔에 여기저기 보수한 흔적들로 가득한 방벽은 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 벽을 게이트 방벽이라고 부른다.
“우라질, 답답하네.”
이명은 저 벽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저 거대한 방벽은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무력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만든 증거였다.
“벌써 이십팔 년이나 되었나.”
인류 최악의 날이 불리던 퍼스트 디멘션 게이트(First Dimension Gate)가 열린지도 벌써 어언 이십팔 년이 흘렀다.
그 해에 지구상의 인구 오분의 일이 죽는 사상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실 인류는 더 많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류의 이면에 감춰져 있던 힘들이 양지로 나타나면서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슥! 탁탁!
안주머니에서 꺼낸 멘솔 담배 갑에서 한 개피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려 하자 차량의 A.I의 음성이 경고했다.
-업무 차량은 금연입니다. 추후 경고나 벌점이 부여될 수도 있습니다.
“좇까.”
매번 담배 불을 붙일 때마다 나오는 경고음이 귀찮다.
공안에서 지원하는 업무 차량이라 자의로 음 소거를 할 수도 없었다.
-치익!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고서 폐가 탈 만큼 길게 필터를 빨았다가 입으로 내뱉었다.
“후우!”
차 안이 순식간에 담배 연기로 뿌옇게 물들었다.
-위이잉!
저절로 천장 선루프가 틸트 모드로 살짝 열렸다.
차 안을 가득 매우고 있던 담배 연기가 선루프가 열린 틈 사이로 빠져나갔다.
-고고고고고고!
“시끄러워.”
이명이 엑셀을 밟은 오른발에 힘을 빼고서 속력을 낮췄다.
80km 속도 구간이지만 이 속도로 날리면 선루프로 들어오는 바람 소음이 커서 귀가 아프다.
그러던 차였다.
-삐비비비빕! 삐비비비빕!
왼팔 손목의 스마트폰에서 전화음이 울렸다.
차량의 센터페시아 화면으로 흰 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육십 대 초반에 기풍이 느껴지는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엥?”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였다.
“아직 퇴근 시간도 아닌데.”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일단 블루투스로 전화를 연결했다.
“여보세요.”
-치칙! 아들.
“저 아직 근무 중 입니다아~”
-이 어미가 그것도 모를까.
“그럼 무슨 일이세요? 별 일 없으면 곧 공안국에 가까워져서 끊을 겁니다.”
-너어. 모처럼 마련한 자린데 어떻게 고작 메신저 따위로 그렇게 망칠 수 있니?
“뭐를요?”
이명이 시치미를 떼고 반문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멋대로 살게 해줬으면 이 어미가 바라는 것 하나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니? 북경에 잠시 들려서 장 이사네 셋째 따님이랑 식사 한 번 하기가…
“어렵죠. 제 일이 그렇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런 식으로 매번 피할 생각이니?
“어차피 26번 게이트 경보령 때문에 방벽 밖으로 못나갈 수도 있어요.
-경보령?
“곧 뉴스와 각 성마다 경보령이 울릴 거에요.”
-………..
그 말을 들은 이명의 어머니가 말문을 잃고 말았다.
게이트 경보령.
그것은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징조를 바탕으로 시민들에게 내리는 경고령이었다.
한 번 게이트가 열리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번 주기는 짧구나. 26번 게이트면……그이도 소환되겠네. 하아.
“이제 곧 공안국이에요. 끊을게요.”
-…..공안에 있는 네 말이니 믿는다만, 혹여 그 ‘애’를 만난다고 어미가 주선한 자리를 그런 식으로 파투낸 게 아니길 바란다.
“네네네~
이제 포기하려는가 보다 싶어서 이명이 흡족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나,
-장 이사네는 어미가 힘들게 설득했으니 경보령이 끝나거든 북경으로 가보렴. 전화번호랑 메신저 아이디는 알 테니, 네가 약속 잡으렴.
“하!”
이명의 인상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메신저로 일부러 성의 없게 대화를 하고 거절해놓았는데 그걸 또 설득했다고 한다.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누구 배에서 나왔는데, 네 머릿속을 모를까.
어머니는 한 수 위였다.
-어미가 하는 말 들어. 네 나이도 이제 서른여섯이야. 언제까지 철딱서니 없이 싱글로 허송세월 보낼 참이야. 다 너를 생각해서…
“스읍.”
그녀의 계속되는 잔소리에 이명이 반쯤 타다 남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저를 생각해서라고요?’
전혀 아니었다.
자신은 집 밖에 내놓은 자식이었다.
장가를 가기 바랐다면 수차례 자신이 원하는 여자들과 결혼을 허락했을 것이다.
‘무슨 씨족 연합 사회도 아니고….젠장!’
입이 거친 그였지만 차마 어머니 앞에서 입 밖으로 욕이 나오진 못했다.
그래도 낳아준 존재이니 말이다.
-아무튼 이 어미 말 좀 들으렴. 이번에도 파투내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휴, 예전처럼 자유롭게 항공권을 끊어서 비행기로 이동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게 무슨 난리인지.
“그 비행기 이야기는 골 백 번도 들은 것 같네요.”
비행기.
지금은 구시대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젊었을 시절에는 비행기로 각 성이나 해외로의 이동이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게이트가 열린 시점부터 항공으로의 이동이 불가능해졌다.
덕분에 이명은 태어나서 한 번도 비행기를 본 적이 없다.
그의 어머니 말로는 세 살 무렵에 비행기를 타봤었다고 하는데, 기억에도 없는 걸 어쩌나.
-얘는 꼭 이 어미를 구닥다리 취급하는 구나. 네가 몰라서 그렇지. 비행기가 얼마나 편한 교통수단이었는데.
“네네네. 그러시겠죠. 하늘로 이동할 수 있다면 이야 그렇죠. 인류가 하늘을 지배하던 시절은 이미 옛날…”
순간 이명이 하던 말을 멈췄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 전 무언가가 고층 빌딩들 사이로 떨어졌다.
‘뭐지?’
멀어서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뭔가’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틀림없었다.
-너는 왜 말을 하다 말…치칙!
그때 전화가 강제로 끊기면서 센터페시아의 화면에 공안 마크 표시가 떴다.
그리고 익숙한 공안국 정보 통신반 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공안국 정보 통신반. 철서구 2번가 도로 한복판에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가 떨어졌다.
“비행물체?”
지금 그가 달리고 있는 도로가 5번가 근방이었다.
매우 가까웠다.
그렇다면 자신이 본 그것이 틀림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행물체라면 게이트가 관련이 있을 지도 몰랐다.
-2번가 근처에 있는 공안 경찰들 및 대원들은 무장해서 사태 파악하라.
운이 없어도 오지게 없었다.
하필이면 돌아가는 도중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말이다.
“빌어먹을 아직까지 게이트 경보령도 울리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이명이 투덜대면서 센터페시아에 위쪽에 있는 빨간색 파란색이 섞여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가 타고 있는 흰색 RV차량의 천장 왼쪽에서 사이렌이 올라왔다.
-이용이용이용!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그가 핸들을 옆으로 틀었다.
공식적으로 사이렌을 울리면 유일하게 좋은 점이 한 가지 있었다.
퇴근 시간이라 도로가 정체되어도 차들이 양옆으로 비켜나서 시원하게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이 센터페시아 화면의 스피커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여기는 심양시 공안국 강력반 제 3팀장 이명. 복귀 도중에 근처에 있어서 2번가로 출동하겠다.”
-알겠습니다.
대답이 들리자, 스피커 버튼에서 손을 뗀 이명이 홍해를 가르듯이 양옆으로 차들이 비켜난 도로를 향해 액셀을 밟았다.
2번가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어디에 떨어졌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웅성웅성!
수많은 사람들이 응집한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공안 경찰들의 차량 세 대가 보였다.
-탁!
흰색 RV차량에서 내린 이명이 공안 경찰증을 꺼내들고 인파를 쳐다보았다.
‘하여간 저놈의 호기심들은.’
게이트와 관련되었다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응집해 있는 것이 이상했다.
만약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5급 위험 개체만 되어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단일 개체라도 평범한 민간인들이 감당할 수 없다.
‘미친놈들. 먼저 출동했으면 사람들을 물려야지.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이명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시민들에게 소리쳤다.
“공안입니다. 물러나세요. 물러나!”
-웅성웅성!
그런데 그런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전혀 물러나지 않고 자신들이 둘러싸고 있는 그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있었지만 누구 하나 동영상 촬영은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영상 방해 신호기는 틀었나.’
웹 미디어가 넘쳐나는 세상이었다.
누구나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보니, 정부와 공안에서는 특단의 조치로 영상 기계를 방해하는 신호기를 만들었다.
이 신호에 노출된 스마트폰 기기는 이 날 촬영한 파일들이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다.
-치칙!
그의 왼쪽 팔목에 있는 스마트폰도 강제로 종료되었다.
아시아 연합의 다른 지구 정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파생된 중화권 정부만이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덕분에 쓸데없는 정보가 노출되는 것은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인파가 몰리는 건 어쩔 수 없나.’
공안 기동 타격대가 와서 사람들을 해제시키지 않는 이상 이 많은 인파를 혼자서 물리는 건 무리인 듯 했다.
‘그런데 이렇게 몰려서 구경한다는 건 위험 개체는 아니라는 건가.’
위험 개체였다면 옛적에 사람들이 대피하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일단 이명은 급하게 인파를 뚫고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대체 무엇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건지 두 눈으로 확인을….
‘엥!?’
잔뜩 긴장했던 이명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야? 저 복장은?”
긴 머리카락에 새하얀 얼굴의 훤칠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마치 대하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짙은 망토가 달린 흑색 장포를 입고 있었고, 그 모습은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대관절에 명절도 아니고 사극이라도 찍나.’
비행물체라고 해서 잔뜩 긴장한 게 웃기게 되었다.
혼자서 다른 시대에서 온 것만 같은 자 이외에는 어떠한 정체불명의 비행물체가 떨어진 흔적은 없었다.
-찰칵!
그때 청년을 겨냥하고 권총으로 겨냥하고 있던 네 명의 남색 제복을 입은 공안 경찰들 중에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허리춤에서 수갑을 꺼내들었다.
그들은 인근 공안 파출소의 경원(警員)들이었다.
경원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비무장한 옛날 복장을 한 청년을 향해 다가갔다.
이에 이명이 견제를 위해 여전히 권총을 겨냥하고 있는 두 경원들에게 다가가 경찰증을 보였다.
경원들은 총을 겨냥한 상태였기에 가볍게 목례만 했다.
이명의 계급이 더 위였기 때문이었다.
“심양시 공안국 강력반 제 3팀장 이명이다. 이곳에 정체불명의 비행물체가 떨어졌다고 보고 받았다. 그런데 어째서 비무장한 시민에게 총을 겨냥하고 있는 거지?”
그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비록 복장이 특이했으나, 멀쩡한 시민을 갑자기 체포하려드는 것도 이상했다.
그 말에 경원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경사님. 저 자입니다.”
“저 자?”
“저 옛날 복장을 한 남자가 그 하늘에서 떨어졌다던 정체불명의 비행물체라고요!”
“그게 대체 무슨 헛소….”
그때였다.
이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퍽!
“크헉!”
옛 복장을 하고 있는 청년에게 수갑을 채우기 위해 다가갔던 경원 중 한 사람이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시트콤이라도 찍는 것처럼 나가 떨어졌다.
-쿠당탕!
“끄으으윽!”
굉장히 고통스러운지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젠장!”
다른 한 명의 경원이 다급히 청년의 팔에 수갑을 채우려고 했는데, 도리어 자신의 손목이 붙잡혀 버리고 말았다.
-탁!
“헉?”
-우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이명의 두 눈이 커졌다.
“끄아아아아아악! 내 팔!”
수갑을 채우려던 경원의 오른팔이 기이하게 뒤틀려버렸다.
팔이 꺾이다 못해 완전히 돌아가서 팔꿈치를 뚫고서 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꺄아아아악!”
“히익!”
“파, 팔꿈치에 뼈가 튀어나왔어!”
이를 구경하던 시민들조차 순간 놀라서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이런 미친!”
-착!
일반 시민에게 왜 총을 겨냥하냐고 다그치던 이명이 자신의 품속에 있던 권총을 빼들어 옛 복장의 청년을 당장 겨냥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