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Advent (Descent of the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42)
“쿨럭!”
백발의 중년인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터져 나왔다.
검은 무형검의 기운을 막지 못하고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령 중 대붕의 피를 복용했기에 보통 사람을 월등히 능가하는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크웩.”
몇 번 죽은 피를 게워낸 후에 피부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천공섬광의 향연에 그는 망연자실함을 감추지 못했다.
힘겹게 모아 온 전설의 고수들을 비롯해 극도육무문의 부활한 동료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소멸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 정도까지 괴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 패가 몇 남지 않았다.
‘천우명! 놈을 잡아야 해.’
다른 것은 둘째 치고 놈을 빼앗기지 않아야 저 괴물이 날뛰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한데 이미 그것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그가 검은 무형검에 부상을 입고 튕겨나간 동안 어느새 천여운이 얼음에 갇혀 있는 천우명과 허봉, 고왕숙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주, 주군 명목이 없습니다.”
허봉이 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죄했다.
소교주 천우명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송구스러웠다.
“개의치 마라. 이 상황에 너인들 별 수 있었겠느냐.”
“주군…..”
적들이 작정하고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한 함정이었다.
제아무리 경험 많은 허봉이라고 해도 혼자서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를 대비해서 천여운은 아들의 몸속에 개조된 나노머신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슥!
천여운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들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얼음이 녹아버렸다.
천우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이며 천여운에게 말했다.
“아버지…..모두 제 탓입니다. 제가 원래의 경로대로 갔었다면 허 숙부나 고왕숙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마저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소교주로서 너무 부끄러웠다.
천여운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정작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아픈 것 하나 내색 하지 않는 심지 깊은 얼굴.
‘녀석.’
-탁!
천여운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무림 초출에 완벽한 이는 없다.”
“아버지……”
“다만 이런 실수를 교훈 삼아 네 양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천여운 역시도 젊은 시절에 여러 실수를 했다.
그리고 그런 뼈아픈 경험을 토대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천여운이 쓰다듬던 머리에서 천천히 얼굴로 손을 옮겼다.
-슥!
천여운의 손이 그의 얼굴에 닿자, 피투성이가 되었던 얼굴이 어느새 말끔하게 변했다.
얼굴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지자 천우명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역시 아버지는….’
이렇게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버지라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상처마저 쉽게 치료해낸다.
“아! 윤 형!”
문득 천우명이 청성파 출신의 낭인 윤자서를 떠올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윤자서가 쓰러져서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는 자이더냐?”
천여운의 물음에 천우명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 인해서 망자산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끝까지 의를 지켰으니 말이다.
“저희 동료입니다.”
“그래?”
걱정해하는 아들의 얼굴에 천여운이 피식 웃더니, 손을 뻗었다.
그러자 심후한 진기에 의해 쓰러져 있던 낭인 윤자서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어엇?”
이내 그의 몸이 천여운의 앞까지 날아와 세워졌다.
윤자서가 놀란 눈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이…..이 자가 마신.’
그렇게 증오해 마지않았던 천마신교의 교주.
현 중원 무림의 일인자.
그런 존재가 눈앞에 있자 윤자서는 잔뜩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들 녀석이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천여운이 쓰러져 있는 윤자서의 잘린 오른팔을 스치듯이 만졌다.
그러자 출혈이 심하던 오른팔의 피가 멎었다.
그리고 심후한 진기가 체내로 들어와 내상을 입은 부위를 감싸면서 원기를 회복시켰다.
“아!”
윤자서는 기분이 묘해졌다.
사문을 폐문시킨 원수임을 떠나서 천여운의 존재감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만인지상이라는 표현이 누구보다 잘 어울릴 만큼 압도적이었다.
“윤 형……정체를 숨겨서 미안하오.”
천우명의 사과에 윤자서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의 정체를 알고 나니 자신들이 동행하는 내내 천마신교를 욕하던 것이 떠올랐던 탓이었다.
‘이를 어쩌나.’
당황해 하는 모습에 천우명이 빙그레 웃으며 전음을 보냈다.
[걱정 마시오. 윤 형. 보기보다 나는 입이 무겁소.]“크흠.”
그 말에 윤자서가 괜히 민망했는지 멋쩍은 기침소리를 냈다.
그러는 한편으로 내심 천우명이라는 젊은 소교주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오싹!
요사스러운 기운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돌아갔다.
‘!!!’
-콰콰콰콰콰쾅!
요사스러운 기운이 폭풍이 되어 천여운이 있는 곳을 향해 휘몰아쳤다.
푸른 빛을 머금은 거대한 폭풍의 회오리는 천여운을 비롯한 주변의 이들을 집어삼킬 기세였다.
“피, 피해야 하오!”
겁을 먹은 윤자서가 외쳤지만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어째서?’
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들은 당연했다.
자신들의 곁에는 지상 최강이라 불리는 존재가 있었으니 말이다.
-슥!
천여운이 검결지를 쥐고서 그곳을 향해 뻗었다.
그 순간,
-촥!
모든 것을 휩쓸 것만 같던 요사스러운 기운을 물씬 머금은 회오리가 쪼개지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고오오오오오!
폭풍이 몰아쳐온 곳에 불길한 기운을 뿜어대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그는 시해의 왕이라 불리는 자였다.
“무, 무슨 기운이……”
윤자서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기감을 넘어서 오감을 자극하는 요사스러운 기운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도저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백발의 중년인이 앞으로 나서며 득의양양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마신 승부는 지금부터다. 왕께서 나서신 이상 아무리 네놈이 날고기어도 이 자리가 무덤이 될 거라는 사실은….”
-탁!
“응?”
백발의 중년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천여운의 어깨에 있던 금빛 털 뭉치 같던 것이 등을 쭉 올리며 기지개를 피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뭐지?’
자세히 보니 새끼 여우처럼 보였는데, 꼬리가 아홉 개나 달려 있었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의 눈에 예상지 못한 광경이 벌어졌다.
시해의 왕이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왕이시여?”
“이럴 수가…..”
대체 무엇 때문에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새끼 여우가 입을 열었다.
-시해의 왕? 재밌네. 언제부터 네가 그런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거냥?
“여우가 말을 해?”
백발의 중년인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죽은 망자나 다름없는 시귀에는 놀라지 않았으면서 말하는 여우에는 놀랐다.
대체 저게 뭔가 싶어 하는데 시해의 왕이 말했다.
“구미…..”
새끼 여우의 정체는 금모 구미호였다.
-어쭈. 구미?
금모 구미호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앞으로 번쩍 뛰어오르자 몸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우우우웅!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금모 구미호가 어느새 금발이 탐스러운 절세미녀로 변했다.
그 모습에 아무 것도 모르는 윤자서나 백발의 중년인이 놀라워했다.
“미호 이모.”
자신을 부르는 천우명의 양볼을 꼬집으며 금모 구미호가 빙그레 웃었다.
“어휴. 우리 귀여운 우명이.”
“이…이어….놓고…”
예나 지금이나 아이취급 하는 그녀의 태도에 천우명이 난처해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정체를 알기에 거부감을 드러내진 않았다.
“우리 귀여운 우명이를 괴롭혔어요. 우쭈쭈.”
아이를 달래듯이 우쭈쭈한 금모 구미호가 고개를 돌려 시해의 왕을 노려보았다.
“야.”
시해의 왕이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시 없을 오만함이 사라져 있었다.
금모 구미호가 경고했다.
“셋 센다. 당장 내 앞에서 무릎 꿇지 않으면 너 오늘 죽는다.”
그리고는 곧바로 숫자를 셌다.
“셋!”
그런 그녀의 태도에 백발의 중년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왕이시여. 어째서 그러시는 겁니까? 당장 저들을 처단…”
“둘!”
시해의 왕의 표정이 수치심으로 일그러졌다.
자신을 왕으로 받드는 인간 앞에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찰나의 순간 시해의 왕은 생각했다.
‘금모 구미호.’
상고 시대 선인들마저 힘겨워 할 만큼 위험했던 대요괴.
죽은 자들의 망념이 모여서 탄생한 자신보다 더 오래 전부터 살아온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수천 년 전의 이야기다.
‘그래. 옛날도 아니고.’
이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시해의 왕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금모 구미호가 마지막 숫자를 부르기도 전에 전력으로 요력을 끌어 모아 푸른색 빛을 광선처럼 발사했다.
“너나 꿇어라!”
-우웅! 파아아아아앙!
아지랑이가 보일 만큼 강대한 열기가 느껴졌다.
금모 구미호가 피식 웃었다.
-슉!
그녀의 꼬리 중 하나가 채찍처럼 움직이더니 이내 푸른 광선을 쳐내버렸다.
-쾅!
튕겨나간 푸른 광선이 산봉우리 하나를 날려버렸다.
-쿠르르르릉!
산사태가 난 것처럼 부서진 파편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만 봐도 시해의 왕이 얼마나 전력을 다했는지 알 수 있었다.
-슉!
“헛?”
시해의 왕이 당혹스러워하기도 전에 금모 구미호의 꼬리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며 그를 밧줄처럼 묶어버리고 말았다.
-슈르륵! 꽉!
꼬리를 풀어내기 위해 시해의 왕이 요력을 올렸지만 금모 구미호의 꼬리는 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더욱 압박했다.
-우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악!”
시해의 왕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무, 무슨 요력이?’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요력에 시해의 왕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그녀 역시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봉인되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적어도 완벽하게 회복하려면 수천 명의 인간의 장기를 먹어야 가능할 터인데, 오히려 예전을 훨씬 뛰어넘었다.
‘나는 고작 이제 수백 명의 원기를 먹었을 뿐이야.’
이 정도 수준이 되려면 수만 명의 원기가 필요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무시한 채 금모 구미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천여운에게 베시시 몸을 기댔다.
“잘했지이이이? 얘 별거 아니야. 죽은 망념이나 데리고 놀 줄 알지. 제 힘은 보잘 것 없는 너구리거든.”
“너구리?”
-우우우웅!
그녀가 꼬리에 더욱 힘을 주자 이윽고 푸른빛이 시해의 왕이 전신이 푸른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그 모습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크기가 보통 사람의 두 배만한 배불뚝이 너구리의 모습이었다.
“끄으으응.”
너구리가 고통스러운지 발버둥을 쳤다.
그 모습에 백발의 중년인이 어찌나 황당한지 허탈한 얼굴이 되었다.
대요괴의 본 모습이 이런 너구리일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절치부심으로 쌓아왔던 모든 계책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던 천여운은 더욱 위에 있었다.
“어이.”
뒤에서 들리는 무감정한 목소리.
-오싹!
백발의 중년인은 차마 뒤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언제 천여운이 자신의 뒤로 왔는지 인지조차 할 수 없었다.
“마…..마신.”
“다른 사령들은 잘 있나? 황헐이라고 했던가.”
천여운의 그 물음에 백발의 중년인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령 중 한 사람의 이름을 그가 거론할 줄은 몰랐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콰득!
“컥!”
그의 등을 뚫고서 천여운이 심장을 움켜잡았다.
음산하면서 오싹한 기운이 심장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쩌저저저적!
온몸의 생기가 사라지면서 얼어붙는 것처럼 전신이 싸늘해졌다.
신음성을 내며 몸을 부르르 떨던 백발의 중년인의 고개가 이윽고 밑을 향해 떨궈졌다.
쓰러지는 중년인의 몸에서 하얀 입자와 함께 올라오는 무언가.
-스르르르륵!
그것을 보며 천여운이 입 꼬리를 올렸다.
* * *
“아버지. 정말 괜찮습니까?”
소교주 천우명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번 사건으로 순례를 중단하고 돌아오라고 할까봐 아쉬워했던 그였다.
그런데 의외로 천여운은 계속 순례를 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허봉. 네가 더 잘 보살펴라.”
“넵! 주군. 히히히 소교주님 잘됐군요.”
허봉이 기분 좋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천우명을 보며 히죽 웃었다.
사실 허봉은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가족들에게 인정 많은 천여운이라고 해도 명색이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사자는 절대로 새끼를 유약하게 키우지 않는다.
고왕숙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천여운에게 말했다.
“교주님……저는 소교주님을 모실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 대신 더 적임자를 선출해서 소교주님을 보필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녀의 입에서 의외의 청이 나왔다.
천우명과 허봉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음?”
“저는 부족합니다.”
처음 겪는 압도적인 적 앞에서 자신감을 많이 잃은 모양이었다.
그녀를 무서워하는 천우명이었지만 그런 약해진 모습에 뭔가 안쓰러웠는지, 위로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니야. 이 편이 나을 지도.’
매번 밤마다 두려워하는 것보다 괜찮은 결과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천여운이 고왕숙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웃으면서 달래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하나의 경험이다. 좀 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도록. 명색이 고왕흘과 호상화의 딸이 이 정도에 약해지면 되겠나.”
“교, 교주님……”
그녀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아들을 잘 부탁한다.”
그 말을 듣자 고왕숙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개졌다.
그녀가 반짝이는 눈동자로 고개를 돌려 천우명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아드님을 제게 맡기신다니. 어찌 이런…..”
천우명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 뜻이 아니야!!!!!”
제대로 헛물을 켜는 그녀였다.
어쨌거나 덕분에 쳐졌던 분위기가 한층 살아날 수 있었다.
천우명이 아버지인 천여운에게 물었다.
“아버지께선 곧바로 십만대산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뭐. 잠시 들릴 데가 있지만 금방 돌아갈 거다. 새로운 장난감도 생겼으니 말이야.”
천여운이 고개를 돌려 금모 구미호의 꼬리에 사로잡혀 있는 배불뚝이 너구리, 아니 시해의 왕을 쳐다보았다.
시해의 왕이 열불을 토해내며 소리쳤다.
“이, 인간 주제에 감히 누구더러 장난감….”
-슥!
천여운이 시해의 왕의 이마로 오므린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꽈아앙!
“끄엑!”
딱밤을 때렸다.
단 한 대 맞았을 뿐인데 망치를 휘두른 소리와 함께 시해의 왕이 비명과 함께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적당한 훈육이 필요하겠군.”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의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시해의 왕은 거품을 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꾸나.”
천여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우명에게 말했다.
금모 구미호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우리 우명이 나중에 봐.”
-스륵!
공간이 일렁이며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정말이지 아버지이지만 늘 이런 모습을 보면 신선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우명이 빙그레 웃으며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고서 낭인 윤자서에게 물었다.
“윤 형. 정말 우리와 같이 가도 괜찮겠소?”
그 말에 윤자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내 대장부가 어찌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소. 어차피 남은 동료는 천 형과 허 형, 고…..소저뿐이잖소. 그대들의 순례길을 돕겠소이다.”
의외의 결정을 내린 그였다.
동료들이 전부 죽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헤어질 거라 여겼는데 윤자서는 그들에게 같이 가도 되겠냐는 허락을 구했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기에 천우명은 그를 반겼다.
“함께 해서 반갑소. 윤 형.”
“천 형!”
-꽉!
천우명이 내미는 손을 윤자서가 웃으면서 굳게 잡았다.
이렇게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이 천마신교의 25대 교주 천우명과 그 오른팔이라 불리는 마협청성검 윤자서라는 깊은 관계로 되리라고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당사자 두 사람조차도 말이다.
* * *
개봉 황궁의 황태자가 기거하는 복성궁.
황태자가 기거하는 방안.
그 안에서 양팔과 다리가 기이하게 꺾여서 부러진 태자 주치윤이 지렁이마냥 힘겹게 기어가며 방안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끄으으으……아바마마….아바마마께 고해야 해.”
그를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황제뿐이라고 여겼다.
오늘따라 자신의 방과 복성궁이 이리 넓은 것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제 곧 문 앞이다.
‘조금만 더….조금만….’
-스륵!
그때 그의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태자 주치윤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구…..국사.”
그의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천여운이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천여운이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오래 안 걸렸지?”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