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Advent (Descent of the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72)
이른 아침 심양역.
30여 년 전 만하더라도 지하로 다니는 것은 지하철, 지상은 기차, 열차.
그것이 통념이었지만 게이트가 터지면서 모든 주거 시에 방벽이 둘러지면서, 기차는 지하를 달리는 열차라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말한다면 역(驛) 역시도 지하에 있을 것 같지만, 이것은 지상에 있다.
표를 발매하게 된다면 지하의 승강장으로 가면 된다.
‘이 시대는 무엇이든 크군.’
천여운이 지하 승강장의 웅장한 규모를 보면서 내심 감탄했다.
지식을 전송받았다고 해도 직접 실물을 보는 것은 다른 느낌이었다.
‘재밌구나.’
워낙 자신이 있던 시대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그렇기에 새로운 것을 볼 때마다 마치 관광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천여운과 달리 고왕현 부장과 우호법 섭형은 굉장히 아쉬워하고 있었다.
‘순각종을 놓치다니. 크흠.’
역까지만 해도 함께 왔던 백종서와 그 모친인 금오윤과 비환귀종의 환시아였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플랫폼으로 향했다.
금주시를 경유해서 제남시로 향하는 노선으로 말이다.
‘회장님께서 실망하시겠군.’
최상위 종파 중에서도 정통성이 깊은 순각종이었다.
순각종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후예인 두 모자를 합류시키기 위해 여러모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안타까웠다.
하지만 길고 긴 세 파벌의 싸움에 최대 변수가 생겨났다.
‘천마.’
누가 그가 나타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다른 수많은 명분을 확보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천여운이야말로 천마신교 그 자체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회장님께서도 모셔오라 했겠지.’
고왕현의 보고를 받은 천유성 회장은 의외로 어떠한 의구심도 품지 않았다.
오히려 최대한 정중하게 천마를 모셔오라는 지시사항을 내렸다.
‘천마께서 회장님의 손을 들어주신다면!’
긴 파벌 싸움이 끝날 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 천마신교가 부활할 최소 요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고왕현이 이리저리 승강장 내를 둘러보고 있는 천여운의 시선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지금 출발합니다.]같은 시각.
보정시(保定市)의 동남부에 있는 천신 그룹의 빌딩.
빌딩의 꼭대기 층에 있는 회장실에는 여러 중진들이 모여 있었다.
-드르르!
우측에 앉아 있던 푸른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흰머리가 듬성듬성해 회색빛을 띠고 있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중년인이 진동이 울리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장님. 고왕현 부장이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의 보고에 상석에 앉아있던 콧수염의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업무 데스크의 명패에는,
[천신 그룹의 회장인 신성유]라 되어 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름이 그럴 뿐이지 진정한 이름은 천유성이었다.
옥중인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블랙 스카이 컴퍼니의 회장 천우진의 장자이자 세 파벌 중에서 가장 많은 세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내였다.
“회장님. 정말 그분이 맞을까요?”
“왜 의심되는 건가? 몽 전무.”
좌측 두 번째 자리에 앉아있는 안경의 중년인은 몽해중 전무 이사였다.
최상위 종파 중 하나인 몽환검종의 종주이기도 했다.
“몽 전무님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고 부장과 우호법의 판단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반대편에 앉아 있는 메부리 코의 중년인이 거들었다.
그의 이름은 사마경.
천신 그룹의 이사이자 최상위 종파 중 하나인 사무종의 종주였다.
그런 사마경의 말에 좌측에 있는 대머리에 흰 눈썹을 하고 있는 중년인이 반대 의견을 냈다.
“하나 그분이 정말로 천마이시라면 우리는 큰 힘을 얻는 것이오.”
그는 상무 이사인 양자명이었다.
최상위 종파 중 하나인 북양무종의 종주였다.
“하늘이 회장님을 돕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부회장님.”
천유성의 바로 우측 편에 앉아 있는 자는 천신 그룹의 부회장이었다.
짙은 눈썹에 두꺼운 입술. 전체적으로 선이 굵은 부회장은 목소리에서부터 대단한 정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왕신.
최상위 종파인 무쌍검종의 종주였다.
천마신교에서 옥중에 있는 회장 천우진, 대호법 마라윤과 더불어 세 정점이라 불리며 최강의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원래는 천마신교의 종파가 아니었으나, 천여운의 교주 시절때 오대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무쌍검 왕전이 들어와서 만든 종파였다.
“하늘이 돕고 있다함은?”
“그 움직이는 비밀 감옥을 찾는다고 이십칠 년 가까이를 떠돌아다니던 대호법과 좌호법이 우리에게 합류했네.”
부회장 왕신의 말에 상석에 앉아있던 천유성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대호법과 좌호법이 그를 찾아와 신임 교주가 되어 달라고 청했다.
[아버님, 아니 교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정말 괜찮겠소?] [더 이상은 교주의 자리를 계속 부재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장자이신 천유성 이사께서 교주로 취임하셔서 본교를 다시 통합하셔야 합니다.]세 파벌의 대치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교주를 더 이상 찾기 힘들다고 판단한 대호법은 이대로 천마신교가 계속해서 뭉치지 않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천마신교를 재건하고 다시 통합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교주가 되어야 하고, 장자인 천유성에게 힘을 실어 주기로 한 것이었다.
부회장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다른 자도 아니고 천마일세. 게다가 선대 교주님이신 그분께서 회장님의 교주 취임식을 공증해주신다면 그보다 어찌 좋은 명분이 어디 있겠는가!”
왕신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대부분의 중진들 역시도 이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아닌 자도 있었다.
“만약 천마께서 공증을 해주지 않으신 다거나, 다른 파벌에 손을 들어주면 어떡할 건지는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닙니까?”
몽해중 전무가 날카롭게 그 점을 지적했다.
확실히 그것이야말로 천유성 파벌에게 있어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그런 동해중 전무에게 천유성이 묘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든 돕게 만들어야지.”
* * *
그날 밤 9시 무렵.
보정시의 역에 심양시에서 출발했던 지하 고속기차가 도착했다.
오랫동안 칠흑 같은 터널만을 달린 기차 안에 있던 것이 익숙하지 않았는지, 기차에서 내리는 천여운의 표정이 다소 지루해 보였다.
‘빠르긴 한데.’
가만히 앉아서 14시간을 이동하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원래 있던 시대에서 말을 타고 이동하던 것이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적어도 주위 경치를 둘러보는 맛이라도 있으니 말이다.
‘게이트가 많은 걸 버려놨군.’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게이트 덕분에 이 시대의 사람들은 보다 많은 것을 잃었을 지도 몰랐다.
플랫폼에 선 천여운을 고왕현 부장이 앞장서서 승강장 밖으로 안내했다.
“밖에 차가 대기 중입니다. 가시지요.”
거의 세 층 가까이나 되는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 1층을 향해 올라가는데, 멀리서 천여운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 들이 들려왔다.
[가슴 큰 인간.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하는 거지?]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죠.] [왜 그게 불만이면 서열 정리 한 번 하자고 했잖아. 네가 노예로서 나은 건 그 가슴뿐이잖아.] [당신 정말!] [두 분 그만하시죠. 제발.]천여운이 피식하며 중얼거렸다.
“제때 도착했군.”
“네?”
고왕현이 무슨 말인가 싶어서 의아해했는데, 지상 1층에 도착하자마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부회장님!”
“주인님!”
개찰구 바깥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여자들이 다가왔다.
천여운의 전속비서인 중력마녀 유소화와 백작 급 마족인 샤케나였다.
워낙 아름답다 보니 두 미녀들은 같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 역내 많은 행인들의 시선을 이끌고 있었다.
“천마이시여. 이 아가씨들은 대체…엇? 자네!”
고왕현이 여자들의 뒤를 따라오던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천여운의 부속실장인 비막헌이었다.
상위 종파인 환영검종의 종주인 그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고 부장!’
-척!
이는 비막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비막헌의 손이 천으로 감싸놓은 검집의 검병으로 향했다. 그들은 현재 적대적인 파벌의 관계였다.
이를 잘 알기에 서로가 보자마자 경계심이 일어나, 언제든지 출초할 수 있도록 공력을 끌어올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발을 들인 겐가.”
낮게 깔린 고왕현의 말에 비막헌이 지지 않고 답했다.
“제가 꼭 들어오지 말아야 할 곳을 왔다는 듯이 말씀하시는 군요. 그렇다는 것은 북경시나 천진시가 아니라 이곳 보정시에 천유성 이사님이 계시다는 게 확실하나보군요. 고왕현 부장님.”
그 말에 고왕현의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
“살아서 돌아가기 싫은가 보군.”
비막헌이 상위 종파의 종주라고 한들 초절정의 무인이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화경의 고수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한 두 초식 이내 그를 싸늘한 시신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때였다.
“괴롭히는 거냐? 인간.”
샤케나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는 고왕현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 일에 관여…”
-쑤욱!
“헉!”
그 순간 샤케나의 손이 반쯤 투명해지면서 고왕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물체를 투과하는 페이징 능력이었다.
“이, 이건 대체?”
-꽉!
“끄헉!”
샤케나가 고왕현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심장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어찌나 놀랐는지 고왕현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녀가 조금만 심장에 해를 가해도 죽는다는 것을 인지해서였다.
“헉….헉…..”
거친 숨을 내뱉으며 꼼짝 못하는 고왕현에게서 시선을 돌려서 천여운을 바라본 사케나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주인님. 이 인간. 죽여도 되나요? 주인님 노예를 노렸어요.”
그 말과 함께 사케나가 혓바닥을 날름 거렸다.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고왕현에게 식욕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 그 표정은 대체 뭐야?’
맛있는 먹이를 바라보는 듯 한 포식자와 다름없는 눈빛에 고왕현의 얼굴이 창백해져갔다.
그런 그녀에게 천여운이 딱 잘라서 말했다.
“안 돼.”
“네에….”
샤케나가 실망했는지 시무룩해진 얼굴로 고왕현의 가슴에서 손을 빼냈다.
-털썩!
죽다 살아난 고왕현은 식은땀에 젖은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저 여자. 대체 정체가 뭐야?’
우호법 섭형 역시도 많이 놀랐는지 사케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의 능력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무서웠다.
‘이능력자인가?’
무림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비서들이 동행할 거다. 상관없겠지?”
“네? 비서요?”
우호법 섭형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샤케나를 바라보았다. 화경의 고수인 고왕현의 목숨을 가지고 농락한 여인이 고작 비서란다.
* * *
보정시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한 레스토랑.
외곽에 작은 호수의 정경을 즐길 수 있도록 조경을 꾸며놓은 멋진 곳이었다.
평소라면 연인들이 자주 놀러오는 곳이었지만 레스토랑의 안에는 다른 남녀 커플보다도 병장기로 보이는 것들을 들고 있는 정장의 사내들로 가득했다.
그것은 한 단체에서 오늘 밤 이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기 때문이었다.
밤 10시 반 경.
-끼이이익!
레스토랑의 주차장에 회색 벤 차량 한 대가 도착했다.
-우르르르!
레스토랑의 안팎으로 돌아다니던 정장의 사내들이 일제히 그 앞쪽으로 몰려갔다.
그리고는 이 열로 서서 길을 만들었다.
-드르륵!
벤의 문이 열리고 고왕현 부장과 우호법 섭형이 먼저 내렸다.
“여깁니다.”
“흠.”
이어서 검은 코트에 정장을 입은 천여운이 내렸다.
그 양 옆으로 두 비서들과 부속실장 비막헌이 따랐다.
천여운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회사는 아니로군?”
“천유장 회장이 천마께서 이곳까지 오시느라 장시간 고생하셨을 터이니, 식사라도 하면서 뵙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 저 녀석인가?”
그때 레스토랑 안에서 정장의 사내들이 만든 길을 따라서 열 명이나 되는 중년인들이 걸어와 천여운의 앞에 섰다.
-탁!
가장 앞에 서있는 콧수염의 남자가 회장인 천유성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중년인들은 천신 그룹의 중진들이자 최상위, 상위 종파의 종주들이었다.
확실히 고수들이 한 자리에 밀집하자 주변 공기 자체가 무거워졌다.
-슥!
천유성이 바로 옆에 있는 부회장 왕신을 슬며시 쳐다보았다.
이에 왕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음을 보냈다.
[맞습니다.]여기서 제일 고수는 왕신이었다.
왕신은 천여운을 보는 순간 그 무위를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겉으로 느껴지기로는 그저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 말은 최소한 기(氣)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가벼운 확인절차가 끝나자,
-팍!
천유성이 두 무릎을 꿇고서 머리를 조아리며 소리쳤다.
“소손 천유성이 위대하신 천마를 배알 하나이다!”
-쿵!
일파의 수장인 그가 외치자, 이 자리에 있던 모든 교인들이 마찬가지로 엎드려서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위대하신 천마를 배알 하나이다!!!”
완벽하게 예를 갖췄다.
이미 고왕현과 섭형을 통해서 천여운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천유성은 그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첫 스타트는 나쁘지 않았다.
이 자리는 어떻게든 천마인 천여운을 구슬려서 교주 취임에 대한 공증을 받아내기 위한 자리였다.
‘어떻게든 받고 만다.’
그것이 그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그때 엎드려 있던 천유성의 몸이 심후한 진기에 의해서 일으켜졌다.
“엇?”
몸이 일으켜 세워지자 천여운이 다가왔다.
같은 혈손인 자신의 예를 받아 주는가 싶어서 웃으면서 다가가려 하는데,
천여운이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예를 갖추는 것도 다 괜찮은데 말이야. 나는 왜 네놈이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