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00)
# 32장 변수의 육 단계 시험(4) #
시야를 뿌옇게 가렸던 보랏빛 독기가 가시는 곳마다 검게 변해버린 바닥에 천여운의 수하들은 절망했다.
이런 독이라면 내공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뼈까지 녹았으리라.
“주구우우우운!”
감정이 격해진 허봉은 절규하듯이 외쳤고, 문규도 눈시울이 붉어져서 도저히 연무장을 바라볼 수 없었기에 고개를 떨궜다.
‘왜 하필 독마종이랑 싸워서….’
더 바라보다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쾅! 쾅! 쾅! 쾅!
“앗!”
아직 안개처럼 흐릿한 보랏빛 독기 속에서 누군가의 몸이 물수제비처럼 바닥을 튕겨져 나가면서 대연무장을 가로질러 절반 가까이 날아갔다.
어찌나 강한 위력이었던지 한 번 바닥을 튕길 때마다 연무장이 파여 나갔다.
모두가 놀라서 구덩이 속에 쓰러져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놀랍게도 독마종의 종주인 백오였다.
“도, 독마종주?”
“서….설마?”
-저벅저벅!
걷혀가는 보랏빛 독기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오는 천여운의 모습에 관전 중이던 모든 생도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죽은 줄만 알았던 천여운이 멀쩡하게 나오자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입고 있는 옷이 독기에 엉망이 된 것 외에는 독기에 당한 상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럴 수가! 백 장로의 독을 견뎠단 말인가?”
단상 위에 있던 구 장로 사마의와 좌호법 이화명 역시도 경악한 표정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도 천여운이 죽었을 거라 단정했었다.
이십여 년 동안이나 무림맹과 사도 연맹과의 전쟁에서 독마종주 백오의 독공은 수도 없이 보았다.
학살이라고 불릴 만큼 극악한 위력을 자랑하는 독에 살아남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무당파의 화경의 고수였던 옥명 진인조차 독공에 당해서 시신조차 남지 않았었는데, 그것을 견뎌낸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다.’
모두가 놀라워 할 때 천여운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체내로 파고들었던 모든 독기가 완전히 배출되었다.
“후우.”
심상치 않은 보랏빛 독기에 위협을 느낀 천여운은 처음으로 호신강기(護身罡氣)를 펼쳤다.
아무리 나노가 치료하는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독기에 전신이 녹아내린다면 어찌해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괴독마장이라는 별호답게 백오의 독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강기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뚫고 들어오는 미세한 독기에 피부가 녹아내렸다.
나노머신들이 독을 배출해내고 피부를 빠르게 재생시키지 않았다면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한 독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천여운을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백룡도의 능력이었다.
‘백룡도가 독기를 배척할 줄이야.’
아직 완전히 재생되지 않은 상태에서 백오의 허를 찌르기 위해 백룡도에 공력을 불어넣는 순간 그의 주변에 있던 독기가 백룡도에서 퍼져 나오는 맑은 기운에 밀려났다.
단순히 높은 강도만을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영물인 이무기의 뿔로 만든 절세보도(絶世寶刀)다웠다.
“끄으윽!”
일권을 맞고 정신없이 튕겨져 나간 백오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욱씬!
일격을 당하는 순간에 호신강기를 펼쳤지만 가슴뼈가 부러진 듯 했다.
공력이 파고드는 것이었다면 그나마 덜했을 텐데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이었다.
‘무엇이냐! 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이냐?’
방금 전에 맞은 일격보다도 그 엄청난 재생력이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라고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일어났나?”
“헛?”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천여운의 목소리에 백오가 화들짝 놀라서 일장을 뻗었다.
아직까지 파마독경의 칠층을 운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손에서 보랏빛 독기가 서려있었다.
-팡!
백오의 독장(毒掌)을 천여운이 백룡도의 도신으로 막아냈다.
도신에 손바닥이 닿는 순간 맑은 기운이 일어나 백오의 독을 흩어지게 만들었다.
마치 피독주(避毒珠)와 같은 효능에 백오의 두 눈이 커졌다.
‘이놈! 이것 덕분에 견딘 것이었나?’
-타탁!
뭔가 원인을 알아냈다는 생각에 백오가 재빨리 보법을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천여운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천여운이 접무도법의 마지막 초식인 접무만개(蝶舞滿開)를 펼쳤다.
얇은 도신의 백룡도에서 푸른빛 강기가 물들며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수많은 잔상의 도식이 백오를 향해 쇄도했다.
-촤촤촤촤촤촤!
‘섭맹?’
우호법 섭맹이 펼치는 접무도법과 비교해도 위력이 떨어지지 않는 절초에 백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까 전의 일권에 튕겨져 나오면서 지팡이를 놓쳤기 때문에 맨손으로 막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쩔 도리가 없구나.’
-고오오오오오!
그 순간 백오의 피부가 섬뜩한 남색빛으로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백오의 몸에 수많은 잔상을 일으키던 접무만개의 도초가 작렬했다.
-채채채채챙!
놀랍게도 강기가 실린 접무도법의 도식이 백오의 주요 요혈들을 베었는데 병기와 부딪친 것처럼 쇳소리와 함께 백룡도가 강한 반탄력에 뒤로 튕겨나갔다.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파르르르!
떨리는 백룡도의 도신이 영롱한 빛을 내며 남색빛 독기를 몰아냈다.
전신이 금강불괴라도 된 것처럼 단단해진 것도 모자라 보랏빛 독기보다 더욱 강렬한 남색빛 독기에 천여운의 피부가 타들어갔다.
“큭!”
[체외로 침투하는 독 성분을 배출하고 손상된 부위를 자가 수복합니다.]-츠츠츠츠!
나노의 목소리와 함께 독기에 타들어가던 피부의 핏줄이 들썩거리며 재생했다.
천여운이 백룡도로 도막(刀膜)을 만들어내서 남색빛 독기를 막아냈다.
“크하아아아아압!”
-파아아아앙!
전신의 피부가 남색으로 물들은 백오가 기합을 내뱉자 엄청난 독기가 뿜어져 나오며 도막에 부딪치며 그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차아아아아아악!
연무장 바닥을 열 보 가량 밀려나간 천여운이 자세를 가다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백오를 노려보았다.
아까 전에 펼쳤던 독기는 전력이 아니었다.
체외로 독을 방출하는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면 지금은 그 자체가 독(毒)이 된 듯 했다.
“독인?”
단상 위에 있는 좌호법 이화명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백 장로. 정녕 끝장을 보겠다는 건가.’
피부색마저 완전히 바뀌어서 지독한 독기를 내뿜고 있는 저 모습은 틀림없는 독인(毒人) 상태였다.
독공의 정수라 불리는 파마독경(波魔毒經)의 최종 경지.
그 자신이 독 자체가 되는 독인의 경지는 검으로 치면 신검합일과도 같았다.
백종의 독을 다루었던 칠층보다 세 배나 많은 독을 체내에서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전신이 방패처럼 단단해지고, 일수마다 거대한 암석마저 순식간에 녹여버릴 만큼 강렬한 독기를 발산한다.
‘엄청난 기세다. 교주님께서 오신다고 해도 독인이 된 백 장로를 제압하기는 쉽지 않겠구나.’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독인의 경지가 두려울 만큼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금 백오는 마도관에 있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사아아아!
대연무장의 모래들이 자력에 이끌리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폭주하듯이 터져 나오는 엄청난 독기로 인해서였다.
백오의 주변은 까맣게 물들다 못해 바닥이 독기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노부에게서 팔층 파마독경마저 끌어올리게 만들다니. 네놈이 자랑하는 그 보도로 이번에도 막아 보거라.”
-탁! 솨아아아아!
백오가 발을 내딛으며 걸을 때마다 바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패었다.
연무장 밖에서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조차 호흡이 턱 막힐 정도로 엄청난 독기였다.
팔층의 경지는 그 자신이 독인이 될 만큼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대신 체내에 축적해놓은 독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으로 자제했으나, 이 방법이 아니고는 천여운을 죽일 방법이 없었다.
‘백룡도가 통하지 않는다라….’
그를 향해 다가오는 백오를 바라보며 천여운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접무도법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스륵!
천여운이 겨냥하던 도 끝을 내리자 백오의 눈빛이 회심으로 물들었다.
‘독인이 된 노부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백오가 천여운을 끝장내기 위해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도 끝을 밑으로 내렸던 천여운이 갑자기 백룡도를 하늘을 향해 높이 들었다.
백룡도에서 푸른빛의 도강이 발했다.
“어리석은 놈! 끝까지 반항해볼 참이더냐!”
천여운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백오가 양손에 독기를 모아 그를 향해 쇄도했다.
그때 천여운이 백룡도를 대연무장의 바닥에 내리쳤다.
-쾅! 솨아아아아!
도강이 실린 백룡도가 바닥을 내리치는 순간 연무장의 모래 파편들과 흙 먼지가 위로 튀어 오르며 백오와 천여운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시야를 뿌옇게 뒤덮었다.
“이런 잔재주를!”
어차피 그가 있는 위치는 알고 있었다.
백오가 양손에 독기를 끌어 모아 회전시키자, 남색빛 독기가 응집되며 파마독경의 최후의 살초인 파마독멸(波魔毒滅)을 펼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차차차차차차착!
뭔가가 결합하는 소리와 함께 모래 먼지로 시야가 가려진 백오의 앞에서 방금 전까지는 감지할 수 없었던 흉흉한 마성이 느껴졌다.
-오싹!
‘이 기운은 대체?’
분명 아까 전 일격을 당하기 전에 천여운의 눈과 마주쳤을 때 그 느낌이었다.
‘위험하다. 먼저 공격해야 해.’
흉흉한 마성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 백오가 중도에 멈췄던 파마독멸을 펼쳤다.
백오의 두 손에 응집한 남색빛의 독기가 거대한 악마의 손처럼 형태를 이루더니, 눈앞에 적을 없애기 위해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갔다.
“죽어랏!”
-촤촤촤촤촤촤촤!
“앗?”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거라 장담했던 최후의 살초인 파마독멸이 어두운 입자를 흩날리는 수많은 검결에 막혀서 그대로 파훼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이건?”
백오의 두 눈동자에는 똑똑히 보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검은 빛의 검강을 내뿜고 있는 흑검이 회오리를 치듯이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폭풍처럼 쇄도해왔다.
‘마, 막아야 한다!’
흉흉하면서도 무섭게 펼쳐지는 검결에 당황한 백오가 체내의 모든 독기로 반탄막을 만들어내 방어했지만 소용없었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촤!
“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흑검이 도강마저도 튕겨냈던 그의 요혈을 파고들었다.
백오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백 종의 독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독기마저 베어버리는 엄청난 검력에 백오의 몸이 난자되어가며 피로 물들어갔다.
‘비명소리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잖아!’
뿌연 먼지 속에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비명소리뿐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다.
이윽고 대연무장 전체를 뿌옇게 물들었던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서, 설마? 백 장로님인가?”
“옷이 피에 젖었어.”
전신의 옷이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 복색이 분명 백오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백오의 전신이 드러나는 순간 대연무장에 정적이 찾아왔다.
“!!!”
긴장된 마음으로 먼지가 가시길 기다렸던 모든 사람들이 너무도 경악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틀비틀! 털썩!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지는 백오의 머리가 없었다.
깨끗하게 잘려진 목의 단면에서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다.
먼지가 완전히 가셨을 때 마도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천여운의 손에 쥐어진 백오의 잘려진 머리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