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04)
# 33장 숨겨진 지하 보고 (4) #
“지하 보고의 문을 개방하게.”
-흠칫!
좌호법 이화명의 명에 철문 앞에서 경계를 서는 세 명의 중년인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경계 근무의 임기가 끝나더라도 지하 보고의 철문을 개방할 일은 없을 거라 여겼던 그들이었다.
‘이 청년이 본교의 장로님을 꺾었다고?’
새하얀 얼굴에 북풍의 찬바람처럼 냉정한 분위기를 지녔다.
환골탈태를 하면서 깨끗해진 피부에 가라앉은 태양혈만 보았을 때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귀공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완숙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그들이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것은 분명 화경의 경지에 오른 것이 틀림없었다.
‘이 문을 열게 될 줄이야. 허허허.’
-찰그랑!
세 고수 중에서 책임자를 맡고 있는 중년인이 품속에서 열쇠를 꺼내들었다.
천여운이 두꺼운 철문을 바라보니 열쇠 구멍이 총 세 개였다.
그 중 하나는 방명록 담당 교두가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좌호법 이화명이 가지고 있었다.
‘열쇠가 하나라도 없으면 열지 못하게 해두었구나.’
오 층 이상으로 경계가 삼엄한 지하 보고였다.
“제가 세겠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세 사람이 열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놓고는 중년인의 구호에 맞춰서 동시에 돌렸다.
그 순간 벽의 양 옆쪽에서 진동이 느껴지며 닫혀있던 철문이 반으로 갈라지며 입구가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이익!
오랫동안 방치되었었는지 낡고 두꺼운 철문이 삐꺽 거리며 힘겹게 열렸다.
입구가 완전히 열리며 서늘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겨울이라 춥기는 했지만 마도관의 서재 건물 내부의 공기는 비교적 따뜻했었는데 이곳은 달랐다.
입을 벌리면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이게 무슨 냄새지? 가죽?’
묘한 냄새였다.
썩은 내라고 하기에는 뭔가 약품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여러 가지가 섞여서 코끝을 자극했다. 그래도 봉마동에 있던 검은 물에 비한다면 전혀 악취에 속하지도 않았다.
-화르르륵!
중년의 고수가 벽면에 있던 횃불에 불을 붙이자 어둡던 내부가 밝혀졌다.
“아!”
천여운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횃불로 밝혀진 지하 보고의 내부의 벽면이 은은한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한옥석입니다.”
방명록 담당 교두가 천여운에게 속삭이듯이 말해주었다.
한옥석(寒玉石).
그것은 차가운 냉기를 가진 옥석이었다.
벽면 전체가 한옥석으로 되어 있어서 내부의 공기가 서늘한 것이었다.
“따라오시죠.”
좌호법 이화명이 벽면에 여분으로 꽂혀 있던 횃불을 하나 챙겨서 그를 통로의 안쪽으로 안내했다.
통로에 들어가자 넓은 오각 형태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의 맞은편 정면에는 한옥석으로 만든 큰 탁자가 있었는데, 그 위에는 놀랍게도 잘려있는 사람의 팔과 인피(人皮)로 추측되는 가죽들이 올려있었다.
“여긴 대체?”
그가 생각했던 지하 보고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게 그 두 번째 답입니다.”
이화명이 한옥석 탁자 위를 손바닥으로 가리키며 다가가서 보라고 권했다.
여러 소교주 후보자들의 오른팔을 잘랐던 천여운이었기에 크게 거부감은 없었지만, 이것을 굳이 보관까지 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한옥석 탁자 쪽으로 다가가자 철문 입구 쪽에서 났던 약품 냄새가 확 올라왔다.
‘방부 처리를 한 건가?’
인피나 잘려 있는 팔이 썩지 않도록 약품 처리를 한 게 틀림없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천여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건?”
멀리서 보았을 때는 약품 처리를 했지만 핏기가 없고 앙상하게 말라져 있어서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오른팔이 수많은 상처들로 가득했다.
마찬가지로 다섯 장의 인피들에도 날카로운 상처들이 있었다.
그것은 도초에 의해 생겨난 흔적들이었다.
“도……흔?”
도흔은 그냥 단순하지 않았다.
상처로 남겨진 도흔에서는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화경의 극에 오른 천여운의 심상 능력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다.
도흔을 바라본 뒤에 두 눈을 감자, 검은 인영이 나타나 독특한 도법을 펼치는데 전율적일 만큼 고절한 도초였다.
베기와 찌르기가 조합된 검에 비해서 오직 베기에 의한 초식이었는데도 이렇게 절묘한 도초는 처음이었다.
‘이럴 수가….이런 도초가 존재했다니.’
상상으로 접무도법의 도초를 펼쳐보았지만 두 식 이상을 막기 힘들었다.
이것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검마의 파훼검법이나 천마검공의 검초가 아니고는 원활하게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였다.
‘도법에 격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 같다.’
천여운이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더 집중했다가는 심상에 빠져들 것 같았다.
어느새 그의 옆으로 다가와 있는 좌호법 이화명이 말했다.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혹시 이 팔의 주인이 검마 공입니까?”
잘려진 팔은 손으로 무언가를 쥐고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손가락의 파지법을 본다면 분명 검(劍)을 쥐었던 게 틀림없었다.
천여운의 말에 이화명이 감탄했다는 듯이 환해진 얼굴로 말했다.
“안목이 뛰어나십니다. 맞습니다. 검마 공의 오른팔입니다.”
“그럼 이 인피들은?”
“오백 년 전에 피습 당했던 교주님의 호위 무사들과 우호법의 인피입니다.”
“……극도신의 도흔이군요?”
한옥석 탁자 위에 보존되어 있는 팔과 인피는 천하제일 도객 극도신(極刀神)에게 당한 도흔을 남겨놓은 것이었다.
설마 이것을 마도관의 비급 서재 지하층에 보존해놓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찌 본다면 이것은 극도신의 도초라고 할 수 있었다.
천여운이 뒤를 돌아 주위를 둘러보니 오각의 한 쪽 벽면에 책장이 있었는데, 단 세 권의 비급서로 보이는 서책이 놓여 있었다.
비급서는,
[진신마검(進新魔劍)] [이십사마검(二十四魔劍)] [극도신도초분석(極刀神刀招分析)]진신마검은 바로 희대의 검수라 할 수 있는 검마의 비급이었다.
자신의 진전을 이은 두 제자를 두었으나, 그 본신절기를 전수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는데 이곳 지하 보고에 비급서가 있었다.
다른 두 비급서는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검마가 남긴 것이 분명했다.
‘아!’
천여운은 이 지하 보고가 어째서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진정한 천마 조사님의 진전을 이은 후계자만이 아니라 검마 공의 심득을 이어받을 제자를 찾기 위해서이군요.”
그 말에 좌호법 이화명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린다면 극도신의 도법을 파훼할 수 있는 후인을 양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검마는 평생 진정한 제자를 두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가르쳤던 두 전인들은 높은 검의 경지를 바라보기보다는 권력과 야망이 강했다.
본래 그들에게 무공을 가르쳤던 이유는 피살된 교주의 여식인 천무화를 보호해줄 수호인을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자신들의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헛된 야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실망한 검마는 그들을 정식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까 전에 공자님께 말씀드릴 때 검마 공께서 극도신과 겨뤄서 무승부를 이뤘다고 했지요?”
극도신과 싸워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가 바로 검마였다.
비록 오른팔을 잃기는 했지만 검마로 인해 무패의 신화를 달성해가던 극도신이 무림에서 자취를 감췄다.
“검마 공께서 임종 전에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극도신이 싸우는 도중에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검마 공께서는 승부를 가리지 못했기에 무승부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검마와 대결을 펼치던 도중에 절묘한 도로로 그의 팔을 잘라낸 극도신은 갑자기 대결을 중단하고 사라졌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기에 검마 공께서는 나흘 동안 그 자리에서 기다렸지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무승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흘 밤낮으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던 검마는 팔이 잘린 데다 너무 많은 진기를 소진하여 무공이 전 같지 않게 되면서 다시 극도신이 나타날 것을 우려했다.
다행스럽게도 십오 년이 지나 검마가 임종할 때까지도 극도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검마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극도신이나 그 후예가 다시 나타날 지도 모른다며 마교의 미래를 걱정하며 숨을 거뒀다.
“그로부터 오백여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솔직히 극도신의 후예가 다시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자의 도흔을 파훼하여 검마 공의 못다 한 숙원을 풀어주십시오.”
‘아아아…..’
포권을 취하는 좌호법 이화명을 바라보며 천여운이 뜨거워진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죽으면서도 마교의 후인들과 그 미래를 걱정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남기고 간 검마는 진정으로 충신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좌호법 이화명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지하 보고를 나갔다.
‘지하 보고의 열쇠를 드리겠습니다. 안에서는 철문이 닫혀도 나갈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지만 다시 들어올 때는 열쇠가 있어야 합니다.’
열람에 시간제한이 있었던 오 층까지의 비급 서재와 달리 지하 보고는 언제든지 들어와도 좋다고 하였다.
하지만 천여운은 이곳에 다시 돌아오거나 오랜 시간을 소요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화명이 나가고 나서 천여운은 곧장 그가 남긴 세 권의 비급서적을 스캔했다.
‘제대로 된 검마 공의 비급서. 운이 좋구나.’
진신마검은 검마의 진수가 담겨 있는 검법이었는데, 그것은 평범한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운기요결을 필요로 하는 절묘한 검식들로 이루어진 검초가 수록되어 있었다.
‘흠. 여섯 종파의 무공보다는 뛰어나지만….’
천마검공이나 파훼검법에 비하면 수준이 낮았다.
수하들 중에 검을 다루는 이에게 전수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십사마검은 놀랍게도 천마검공의 세 초식을 파훼했던 스물네 개의 검식을 바탕으로 만든 새로운 검법이었다.
‘아! 대단하다.’
파훼검법은 철저하게 천마검공을 상대하기 위한 검초였지만 이것은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제대로 만든 검법이어서 그런지 파훼검법에 버금가는 검법이었다.
엄밀히 말한다면 이 검법이야말로 검마가 극도신을 상대하기 위해 창안한 절세검법이었다.
‘극도신도초분석.’
이것을 가볍게 훑어보았는데 도흔을 분석한 기록이었다.
임종 직전까지도 검마는 극도신을 도흔을 분석해서 그 약점을 파악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보다도 그 내용은 크게 진척을 이루진 못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천여운이 고조된 얼굴로 극도신의 도흔이 남겨진 검마의 팔과 인피들이 놓여진 한옥석 탁자에 다가갔다.
‘검마 공에게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끝까지 계속 겨뤘다면 분명 패했을 것이다.’
교인들이 존경하는 검마였다.
이화명 역시도 그의 유지를 받든다고 이야기를 했기에 실망시킬 필요는 없었다.
심상을 통해서 느꼈던 극도신의 도초는 전율 그 자체였다.
‘천마검공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극도신의 도초는 놀랍게도 천마검공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절세도법이었다.
심상을 통해서 느꼈던 잘려있는 팔에 남겨져 있는 도흔의 도초는 천마검공의 제 사 초식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녔다.
‘확인해보자. 나노, 증강현실 개안.’
[사용자의 시각 정보에 증강현실(增强現實) 개안(開眼) 가동합니다.]천여운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며 흰 빛의 입자가 선을 그리며 증강현실이 개안되었다.
‘나노. 팔에 새겨진 도흔을 추출해서 입체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지?’
[네. 가능합니다.]‘도흔의 도초의 입체영상과 천마검공의 제 사 초식을 구현해서 대결시켜줘.’
-우우웅!
흰 빛의 입자들이 움직이며 두 사람의 형태를 갖췄다.
그렇게 도와 검을 든 두 사람의 형태가 천여운이 지시한 두 초식을 펼치며 서로 부딪쳤다.
-채채채채채채챙!
고절한 천마검공의 검식과 패도적인 도식이 격렬하게 부딪치며 흰빛의 입자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순식간에 검과 도의 대결의 결과가 났다.
불과 일 식의 차이로 천마검공의 제 사 초식이 극도신의 도초를 파훼시켰지만 패도적인 기세에 세 보 가량 뒤로 밀려났다.
초식의 정교함은 천마검공의 위였으나 도초에서 파생된 위력은 극도신의 도초가 강했다.
“이럴 수가!”
두 대결을 지켜보는 내내 천여운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노의 증강현실의 구현으로 결론이 났다.
도객으로 천하제일인의 칭호를 얻어낸 극도신의 도법은 천마 조사가 남긴 천마검공과 맞먹는 절세무공이었다.
다만 검마의 팔에 남겨진 도흔이 마지막 초식이라면 천마검공보다 한 수 아래일 것이고, 만약에 비장의 초식이 존재한다면 천여운이 알고 있는 한 유일하게 천마검공에 대응할 수 있는 무공일 지도 몰랐다.
‘도초를 파훼해달라고? 아니야.’
검마는 이 도흔을 파훼하기 위해 남겼지만 천여운에게는 도흔에 남겨진 초식을 정확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나노가 있었다.
천여운의 입 꼬리가 흡족스럽게 올라갔다.
“천마검공과 맞먹는 도법이라….최고의 기연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