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06)
# 34장 이이제이(以夷制夷) (2) #
건물 벽의 옆에 달려 있는 횃불 앞으로 열두 명의 생도들이 모여 있다.
생도들은 천여운의 수하들이었다.
겨울인데다 밤공기가 차가웠기 때문에 일부는 횃불의 열기에 차가워진 손을 녹이고 있었고, 일부는 번거로워도 내공을 순환시켜 체온을 올렸다.
“주군은 오늘도 저녁 식사를 거르려나?”
오종이 횃불에 손을 쬐면서 중얼거렸다.
벌써 여드레 동안이나 아침 식사 이외에는 함께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여운이 수련할 것이 있다며 한 동안은 저녁식사를 거를 수도 있다고 하여 그들끼리만 모여서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틀에 한 번 꼴로는 드시지 않았나요?”
허봉의 말에 고왕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식당에서 못 뵈었으니 오늘은 지금쯤 식사를 하고 계실 지도 모르지.”
다 같이 모여서 움직이느라 식사 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쯤에 가는 그들과 달리 천여운은 혼자 움직였기 때문에 식당에 도착하면 나오는 그와 마주치기 일 수였다.
“으으, 조금만 빨리 나오면 천 공자님이랑 같이 식사할 수 있을 텐데요.”
아직까지 호상화와 백기, 진국 등이 나오지 않았다.
벌써 이각 여 시간 동안 밖에서 기다리느라 추운 문규가 뾰로통해진 얼굴로 횃불의 열기에 손을 비볐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고왕흘이 피식 웃었다.
‘처음엔 안 그랬는데 허봉 못지않게 주군을 참 좋아하는군.’
허봉이야 주군의 첫 수하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최상위 종파인 문규의 이런 모습을 보면 가끔씩 꼭 이성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공은 강한데 몸이 참 가냘프단 말이야.’
남자인데도 호리호리한 몸이며 가냘픈 문규의 손목을 보면 가끔씩 여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흠, 나도 요 근래 이상하군.’
혼자서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여긴 고왕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마 있지 않아 호상화가 가장 먼저 나왔고, 그 다음은 진국, 마지막으로 백기가 격세석 연공실 건물에서 털레털레 걸어 나왔다.
“지각쟁이.”
뾰로통해진 얼굴로 투덜거리는 문규를 바라보며 백기가 괜히 다른 곳을 쳐다보며 헛기침을 했다.
매번 제일 늦게 나왔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그에게 잔소리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허봉은 이미 그의 지각 습성을 포기했다.
“어제보다는 빨리 나왔잖아요. 어서 밥이나 먹으러 가죠.”
그렇게 그들이 격세석 연공실 건물 앞에서 남쪽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개인 연공실의 건물을 지나치려고 할 때였다.
가장 선두에서 걸어가던 고왕흘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육검들 역시도 뭔가를 감지했는지 발걸음을 멈췄다.
“왜, 왜 그러시는 거…아!”
-우르르르!
의아해진 진국이 물어보려는 차에 개인 연공실 건물 안에서 스무 명이 넘는 생도들이 나와서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렁이는 횃불에 비친 얼굴들을 보며 고왕흘이 눈살을 찌푸렸다.
맨 앞에 서있는 길쭉한 턱에 눈꼬리가 올라간 청년은 연현종의 극신이었다.
‘극신? 그렇다면….’
그들은 현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무연의 수하들이 틀림없었다.
여태껏 한 번도 마찰이 없었던 그들이지만, 단단히 무장을 하고서 가는 길목을 가로막았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의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매복이구나.’
* * *
한편 사천식 매운 마라탕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천여운의 앞을 가로막는 네 명의 청년들이 있었다.
‘흐음.’
그들은 천여운이 익히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검마종의 혈손인 경표와 음마종의 혈손인 항유직, 도마종의 혈손인 부양강 그리고 독마종의 혈손인 백철구였다.
‘같이 나간 게 아니었나?’
검마종의 경표는 한 달 전에 천여운의 손에 가슴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입었었는데, 그때 팔이 잘려나간 검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경운과 함께 마도관을 나갔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남아있었다.
조기에 퇴출 된 복마종과 현마종만 있었다면 여섯 종파의 혈손들이 전부 모임 셈이었다.
그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살기만 보아도 무슨 목적으로 가로막았는지는 뻔했다.
천여운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볼 일이지?”
그런 천여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독마종의 백철구가 노기가 서린 눈빛으로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천여운. 네놈이 조부님을 해하고 종섬 형님의 단전을 폐하고도 언제까지 무사히 넘어갈 것 같았느냐!”
이 중에서 가장 원한이 깊은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백철구였다.
독마종의 소교주 후보자인 천종섬의 단전이 폐해진 이후로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파마독경을 익혀서 복수의 때를 기다려왔던 그였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조부인 백오마저 지켜보는 앞에서 천여운의 손에 목이 베였으니, 그 분노는 말로 이룰 수가 없었다.
“천여운. 네놈은 하찮은 핏줄에 맞지 않는 걸 탐하고 있다. 소교주의 자리라니? 가당키라도 할 것 같으냐.”
-챙!
도마종의 부양강이 등에 차고 있는 도집에서 도를 빼내며 다가왔다.
가장 최근에 천여운에게 부상을 입었던 경표만 머뭇거리고 있었고, 음마종의 항유직 역시도 비파 형태를 갖춘 독특한 모양의 검을 빼들었다.
언제든지 출초할 준비를 마친 그들을 바라보며 천여운이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네 명이서 합공하면 나를 이길 자신이 있나 보지?”
“훗, 네놈 따위는 우리 중에 한 명만 나서더라도 죽일 수 있다.”
“네놈 따위?”
항유직의 태도를 보면 정말로 그럴 자신이 있어보였다.
이들 중에서는 누구도 화경의 경지에 이른 자가 없을 텐데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찮은 시종의 자식 같으니라고.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독마종의 백철구의 독기를 머금은 눈빛이 반짝였다.
불과 이각 전에 백철구는 두 눈으로 천여운이 식당에서 마라탕을 전부 먹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라탕에는 그가 직접 제조한 산공독(散功毒)과 파마독경의 육층 경지에 이르면서 그 독기의 정수를 모은 독단을 집어넣었다.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네놈은 모를 거다.’
이 순간을 위해서 오랜 시간을 공들이며 함정을 파온 백철구였다.
그는 무공으로는 천여운을 상대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어떻게든 그를 중독 시킬 방법을 찾았다.
‘그 놈을 중독 시킬 수 있다고?’
‘대체 무슨 수로?’
독마종의 종주인 백오가 독인이 되면서 펼친 독기마저도 견뎌낸 천여운을 무슨 수로 중독시키냐며 도마종의 부양강이나 음마종의 항유직이 반신반의 했지만 그가 세운 계획을 듣고는 함께 하기로 한 것이었다.
‘화경의 경지에 오르면서 호신강기로 체외로 침투하는 독은 어찌 막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삼켜서 체내에 퍼진 독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백철구는 천여운에게 독을 하독하기 위해 식당의 숙수를 섭외하기 위해 수많은 공을 들였다.
엄청난 재화와 독마종의 후원을 약속 받은 숙수는 백철구의 계획을 위해서 독을 감지하기 어렵게 팔각과 고추기름으로 강한 향과 맛을 내는 마라탕을 준비했다.
‘국을 퍼는 국자에 독을 준비했지.’
아무리 의심이 많은 천여운이라고 해도 평소 때 늘 보던 식당 숙수가 독을 하독 할 거라고 의심하진 못할 것이다.
젓가락으로 찔러서 맛을 볼 때는 조마조마 했지만 마라탕을 전부 먹었다.
산공독은 복용 후에 일 각의 시간이 지나면 내공을 세 시진 가량은 끌어올리지 못하게 흩어지게 만들고, 파마독경의 정수를 모은 독단은 내공이 흩어진 천여운의 경맥과 장기 기관을 전부 녹여서 비참하게 죽게 할 것이다.
처음부터 독을 눈치채고 배출해냈다면 모를까 이 각의 시간이 지났으니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됐다!’
천여운보다 먼저 식당을 빠져나온 백철구는 다른 종파의 혈손들에게 하독이 성공했음을 알렸다.
산공독과 독단에 중독되어 내공을 상실하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들은 자신만만하게 천여운을 노린 것이었다.
‘확실하게 해야 하니까.’
내공을 상실한 천여운이라면 혼자서라도 처리할 수 있지만, 화경의 경지에 오른 자를 상대로 산공독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혹시나 심후한 내공으로 산공독이나 독단의 효과가 다소 더디게 나올 수도 있기에 철저할 필요성이 있었다.
여섯 종파의 후계자이면서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 네 명이나 모였다.
천여운은 절대로 여기서 살아남을 수 없다.
독마종의 백철구가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여유로운 천여운을 도발하기 위해 그가 모르는 사실을 밝혔다.
“여유롭구나. 천여운. 그것도 끝이다. 곧 네놈의 수하들과 함께 의무실에서 만날 수 있을 거다. 네놈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야.”
“수하들?”
수하들이라는 말에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신만 노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수하들마저 노렸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이 이곳에 전부 있는데 수하들은 대체 누가 노린단 말인가?
‘설마 현마종 녀석들이랑 손을 잡은 건가?’
생각해보니 여섯 종파 중에 네 명이나 모였는데, 나머지 한 명이랑 손을 잡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만약 천무연까지 나섰다면 위험하다.’
천여운의 얼굴에서 여유롭던 기색이 전부 가셨다.
도발한 목적을 달성한 것에 희열을 느꼈는지 백철구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챙!
천여운이 등 뒤에 검집과 교차하고 있는 하얀 도집에서 백룡도를 뽑았다.
아무래도 여유롭게 이들을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으니 금방 끝내 주마.”
“건방진 놈이 뭘 금방 끝내! 누이의 팔을 잘랐으니 나는 네놈의 두 팔을 전부 잘라주마.”
음마종의 항유직이 노기가 서린 목소리로 외치며 천여운을 향해 비파 형태의 독특한 검으로 검초를 펼쳤다.
-팅팅! 우우웅!
그가 검을 휘두르자 검의 비어있는 가운데의 강사가 튕겨지며 독특한 음공이 파동을 일으켰다.
음공으로 상대의 고막을 울리게 만들어 허점을 만들어내는 음마종의 독문검법이었다.
하얀 검기가 실려 있는 비파 형태의 검이 천여운의 팔을 자를 기세로 쇄도해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챙그랑!
“헉!”
검초를 펼치던 항유직의 두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산공독으로 내공을 상실했을 거라 생각했던 천여운이 가볍게 도를 휘둘러 그의 비파 형태의 검을 부숴버린 것이었다.
“이, 이게….”
“시간이 없다고 했다.”
-촥!
“끄아아아악!”
천여운의 신형이 빠르게 그의 일보 앞으로 파고들어 단숨에 항유직의 팔을 베었다.
그의 팔을 잘라버릴 거라고 호언장담했는데 도리어 잘려버렸다.
멀쩡하던 팔이 잘렸으니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항유직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어….어떻게 이런 일이?”
독마종의 백철구의 두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우웅!
음마종의 항유직이 일순간에 당해버린 것보다도 푸른빛 강기로 물들어 있는 천여운의 백룡도가 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산공독에 중독되었다고 했잖아?’
‘어떻게 강기를?’
설사 화경의 심후한 내공으로 버텼다고 해도 산공독에 중독된 이상 공력이 흩어지기 때문에 기를 집밀시켜야 하는 강기를 일으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경표와 부양강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눈초리로 백철구를 노려보았다.
“부, 분명 내 눈으로 마라탕을 전부 먹는 걸 보았는데….”
“뭐? 설마 이걸 얘기하는 거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백철구를 바라보며 천여운이 바닥에 쓰러져서 뒹굴고 있는 항유직의 위에서 왼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짜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천여운의 쥐어짜는 손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항유직에게 떨어졌다.
-치이이이익!
“끄아아아아악!”
검은 액체를 맞은 항유직의 허벅지에서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뿌연 김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지독한 산독(酸毒)에 가까웠다.
“도, 독?”
천여운이 차갑게 식어버린 눈빛으로 경악해 하는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듯이 말했다.
“이딴 수작이 통할 줄 알았나?”